사도행전/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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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 교회의 초석(礎石, a cornerstone, a foundation stone)
읽으시기 전에
이 글 역시 '확대 로마서'와 같이 전문을 복사해서 자기 컴퓨터에 옮겨다 놓고 스스로 편집해 나가면 훌륭한 성경 공부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에도 성경을 깔아놓고 필요한 단어를 검색해 가며 읽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런 작업은 한결 쉬워진 것이다. 아주 가까운 장래에 성경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구약이 아닌 신약 성경이 그렇게 될 것은 그리스도로 자처하는 자는 악한 자가 곧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세례를 굳이 "침례"라고 고쳐 말하지만 "세례(洗禮)"를 한국(또는 한자를 국어로 쓰는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 교회에서는 이 낱말이 원래 가르치는 바대로 세례를 베푸는 '방식'을 따르지 않고 우리 편의대로 그 '의미'를 따라 확정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듯하다. 방식이야 성경에서 명시하고 있는 대로(물에 들어가 잠기는 것) 하면 되지만, 세상 불신자들이 볼 때 "세례"와 "침례"로 나누어 성경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어디인지 모르게 어색하고 극히 온당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어 첫 인상부터 구겨놓는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죄 예식(洗罪禮式-죄를 씻는 의식)의 준말로 인식하여 영역에서 원문 그대로 "baptism"하는 것처럼 두루 사용하면 무난할 것이다. 세례 받음은 죄를 씻는다(행 22:16)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영역에서 왜 원문 그대로를 차용해서 "baptism"이라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번역을 하려면 알아듣도록 말을 고쳐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현재 대표적인 번역이라고 하는 영역에서 일반인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baptism으로 해두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영미 권에서 번역 취지에 벗어났다고 항변하고 별다른 새 말로 고쳐 쓰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모두 이 번역의 취지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우리말 "세례"도 마찬가지다. "baptism"과 같은 특수 단어로 인정하여 이상의 의미가 공통으로 통하는 뜻으로 공용하자는 것.
여기서도 "방언"을 "이방언(異邦言)"으로 고쳤다. 이에 대해서는 사도 서신을 총망라하여 편집한 '확대로마서' 편에서 설명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리고 편집하면서 알기 쉬운 말로 고쳐 쓸 때에는 흠정영역(KJV)과 New King James Version, New International Version 등을 주로 참작하였다. 그리고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다 싶은 대목에서는 []를 쳐서 구별해놓거나 [주(註)]를 달아두었다. 성경 본문에서의 모든 고유 명사에는 가능한 한 ''표시를 해두어 국어가 아닌 외국어에서 오는 혼동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예: '베드로'. 또 괄호 처리에서 () 속 괄호는 []으로, [] 속 괄호는 ()로 표시했다.
10일간 기도에 전혀 힘쓰다
(행 1:1) 오 '데오빌루스'[註-영역으로는, "most noble(or, excellent) Theophilus"라 되어 존칭이 들어 있기 때문에 거기 맞도록 해야 할 것이나 우리로서는 읽기 쉽도록 그런 경어(敬語)로 된 문체(文體)는 버리고 그냥 평범하게 서술해 나가는 식으로 통일시켰다], 내가 먼저 쓴 글에는 예수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행 1:2) 그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령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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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로 줄곧 이어지는 각 시대는 성령의 시대 즉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와 접촉하시고 지시하시는 시대에 속한다. 비록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지만(현재는 오직 성령으로 말씀하시는 것과 달리 당시는 아직 승천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이 역시 이런 시대 구분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시므로, 현재는 사람의 육체로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고 성령으로 계시기는 하나 우리로 치면 육체로 계시는 것과 똑같은 의미가 되는 까닭이다.
시대는 그러하나, 성령으로 말씀하시고 명령하신 것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 위해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시던 그 때부터 시작된다. 왜냐 하면 친히 말씀하신 대로, 그 말씀하심과 모든 행하심이 아버지 친히 행하시고 말씀하심이 되는 까닭이다. 때문에 성령께 관한 말씀을 하실 때 "너희는 그를 아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다"(요 14:17) 하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탄생(영이신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영원히 사람의 육체를 입으시게 됨) 이후 30세쯤에 세례 받으시고 성령 받으시기 전에는 아버지와 하나되어 계시지 않고 분리되어 계시는 상태에 있으셨으나 성령(아버지의 영) 받으신 이후 다시 아버지와 하나되심으로 복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이후로 하신 모든 말씀은 성령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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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3) 고난 받으신 후에도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그들[제자들]에게 나타내셔서 40일간 자신을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셨다. [註-40일간 빠짐없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기보다 40일간에 걸쳐 그렇게 나타나셨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4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12제자들에게는 두서너 번으로 나타나셨지만 기타 다른 모든 제자들에게 그 40일간에 걸쳐 개별적으로 나타나 주셨다는 의미도 된다]. (행 1:4) 사도들과 같이 모였을 때 그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말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며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셨다. [註-성령을 받아 모시는 것 즉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영접해 모시는 것을 "성령의 세례"라 한다. 따라서 성령 받음, 그리스도를 영접해 모심, 성령의 세례를 따로 분리해서 이해할 것이 아니다].
(행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님께 여쭙기를, "주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 하니 (행 1:7) 말씀하시기를,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하셨다.
(행 1:9) 이 말씀을 마치시자 그들이 보는데서 올리어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였다. (행 1:10) 올라가실 때 제자들이 하늘을 자세히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서 (행 1:11) "'갈릴리' 사람들아, 왜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어지신 이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하였다. [註-누가는 이들이 천사들이라고는 하지 않았으나, 그 흰옷 입은 이들의 말투로 볼 때 천사들이 사람으로 나타난 것임이 명백하다. "천사"들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보통 때와 같이 찬연한 빛으로 그 형상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니 그냥 보통 사람의형상으로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 1:12) 이리하여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 (행 1:13) 그들이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 사람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었고 (행 1:14) 여자들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도 함께 하였다.
'가룟 유다'의 자리를 '맛디아'가 채우다
(행 1:15) 모인 무리가 한 120 명이 되니,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말했다. [註-믿는 이들이 교회로서 모이는 숫자의 단위가 12(최소)~120(최대)명 정도이면 족하다는 것을 여기서 암시한다고 볼 수 있을까]. (행 1:16) "형제들,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을 잡은 자들을 안내해 준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당연하다. (행 1: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數)에 함께 들어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으나 (행 1:18) {그가 그 불의의 대가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오므로 (행 1:19)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에게 이 일이 알려져 그 밭을 일러 그 지방 말로 '아겔다마'라 하였으니 이는 "피 밭"이라는 뜻이다}, (행 1:20) 시편에 기록하기를,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여 주십시오' 하였고 또 기록되기를,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행 1:21) 이러므로 '요한'의 세례 때로부터 우리 가운데에서 올리어져 가시던 날까지 주(主)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 (행 1:22) 항상 우리와 함께 지내던 사람 중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사람을 삼아야 할 것이다".
(행 1:23) 이에 그들이 두 사람을 천거하니, 하나는 별명이 '유스도'인 '바사바'라고도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였다. (행 1:24) 그들이 기도하기를,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의 택하신 바가 되어 (행 1:25)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지 보여 주십시오. '유다'는 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습니다" 하고 (행 1: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택했다. 이로써 열 두 사도의 수가 채워졌다. [註-이와 같이 사람을 택할 때 다수결의 표 대결로 하지 않고 제비 뽑기를 하면 편 가르기를 할 위험도 없고 오로지 성령의 인도를 따름이 되므로[수 17:2/18:11/19:1,10,16,24,32,40/21:4-6,8,10,20,40/23:4/삿 1:3/20:9/대상 6:54-65/24:5-31/25:8,9/26:13/느 10:34/11:1/잠 16:33/18:18/겔 45:1/48:22,29] 성경적이라 할 것이다].
성령의 세례
(행 2:1) 오순절 날[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이 이미 이르니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는데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다가 (행 2:3) 불의 혀[註-예수님께 임하시니 성령의 형상은 비둘기 같았다고 했으므로 실내에서는 불의 혀와 같고 옥외에서는 비둘기 같은 형상으로 나풀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뿐이고, 불 자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음에 유의할 것이다] 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 각 사람 위에 임해 있는 것이 보여지면서 (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언어[他國, 他種族 言語]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행 2:5)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그 때 당시 '예루살렘'에 묵고 있었는데 (행 2:6) 각각 자기의 언어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자 소동하여 큰 무리가 몰려들며 (행 2:7) 다 놀라 기이하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행 2:8) 그런데 우리 각 사람이 태어난 곳의 언어로 듣게 되는 것이 웬 일이냐? (행 2:9) 우리는 '바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 '유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행 2:10) '브루기아', '밤빌리아', '이집트',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행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인데,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 말함을 듣는다" 하고 (행 2: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말하기를 "이 어쩐 일이냐?" 하고 (행 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새 술이 취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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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왜 오순절 즉 유월절 이후 50일만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하면 원래 1주 7일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6일간 창조하시고 7일째에 쉬셨으므로 이 둘을 합쳐 7일이 되어 있음을 근거로 하는 것인데, 7x7=49 다음이 50이다. 따라서 그 7일을 다시 7배하여 셈해진 49 다음의 50일째 되는 날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6일 창조가 인간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7일째에 쉬시다 말고 다시 새 창조에 돌입하시게 된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6일은 창조의 역사(役事)를 의미하고 제7일은 그 창조의 역사를 끝낸 후의 안식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7x7은 그 창조의 일과 창조의 종료를 한번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고(왜냐면 새 창조를 하시지 않으면 안되었으니까) 재차 반복하시되 7번까지라도 했다고 가정하는 의미가 7x7이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창조와 안식이 반복되지 않고 이번의 새 창조로써 모든 것을 완결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그렇게 완결한(7x7) 숫자 49 다음의 50은 무엇인가. 7은 따라서 완결의 의미가 되는데 그렇게 완결한 다음의 50이 강조되어 있으니까 이는 그 '7단위'에서의 첫 숫자 1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1에서 6까지의 일하는 시기를 나타내는 숫자의 그 첫 날을 암시함이다. 이를 뜻 풀이하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창조의 일을 끝내심으로써(새 창조를 당연히 포함해서) 다시는 되풀이되는 창조의 역사가 없는 마지막으로 일하시는 때라는 의미다.
곧 오순절 날 다시 말해 그 49(7x7) 다음의 50일 때 되는 날 즉 제1일째에 성령이 임하셨으니 이는 교회를 통해 친히 일하시는 때가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하신 그 일하심은 하나님으로서의 창조 역사에 해당된다. 이제는 하나님의 창조의 일이 완성되고 교회 시대로서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는 때가 시작됨이 선포된 것이다. 다시 말해 각 사람이 자기 구원을 위해 결단하고 다른 이들(이웃)의 구원을 위해 일하는 때가 오순절 당일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제 그 최종 안식은 언제냐, 마지막 심판 후 천국에서 이루어진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출현함으로써 모든 것은 종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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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명을 회개시키다
(행 2:14) 이에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 높여 말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 이 까닭을 여러분에게 말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행 2:15) 때가 제 3시[오전 9시를 가리킴]니 여러분의 생각처럼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다[낮에 술에 취하는 법이 없다]. (행 2:16) 오직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 이뤄짐이니 기록되기를, (행 2:17) '하나님의 말씀에,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註-무릇 육체를 가진 자이면 무조건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고 "해당되는 모든 육체"의 의미임을 뜻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고전 15:22)이라 한 표현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니, 실제는 모든 인류가 다 삶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에 한해서만 해당되는 "모든 사람"이기 때문] 부어 줄 것이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행 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줄 것이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행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적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 것인즉 곧 피와 불과 연기다. (행 2:20)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될 것이다. (행 2:21)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 하셨다'고 되어 있다. [註-단순히 그리스도더러 "주님" 하고 부른다는 뜻이 아니라(마 7:21) 나의 주인 즉 나를 소유하신 소유주로서 인정하여 그 모든 지시(명령, 계명, 율법, 말씀, 뜻 등으로 나타나 있는)에 절대 복종함을 말함이니 왜냐면 주인으로 모시는 경우 그것이 종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행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여러분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으로 큰 권능과 기적과 표적[또는 표징(標徵, signs)-어떤 것과 다른 것을 드러내 보이는 뚜렷한 점이니, 이 경우에는 하나님의 역사이심을 나타내는 특징]을 여러분 가운데 베푸셔서 여러분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다. (행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가 되셨으니 여러분이 법[하나님의 법] 없는 자들[곧 이방인]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행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계실 수 없었음이다.
(행 2: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말하기를,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뵈었으니, 나로 요동치 않게 하시려고 내 우편에 계심이다. (행 2: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할 것이니 (행 2:27) 이는 내 영혼을 '하데스'[저승]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님의 거룩하신 이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다. (행 2:28) 주님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한 대로다.
(행 2:29) 형제들,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는바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다. (행 2:30) 그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셔서 그 자손 중에 한 사람을 그 왕위에 앉게 하실 것을 알고 (행 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가리켜, '그가 '하데스'[저승]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한 바와 같이 (행 2:32) 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살리심으로써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다.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님을 높이시니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다. (행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 가지 못하였지만 직접 말하기를,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시기를, (행 2: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다' 하였으니,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정녕 알라.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주(主)[만유의 주인과 동시에 나의 소유주(所有主), 나의 삶의 주인]와 그리스도[우리 인간의 구원자]가 되게 하셨다" 하였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자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여타 사도들에게 "형제들, 우리가 어찌할?" 하니 (행 2:38) '베드로'가 말하기를,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니 (행 2: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註-이방인들 즉 유대인 들 외의 모든 민족을 가리킴]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말하기를,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이 날에 제자의 수가 3,000이나 더하였다.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성찬 예식 거행을 말함]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적과 표징이 많이 나타나니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7) 하나님을 찬송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나면서 앉은뱅이된 사람을 고치다
(행 3:1) 제 9시[오후 3시ㅡ우리의 현재 시간과 6시간 차이.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대로 요한만이 로마 시간법(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로의)을 적용하고 있다]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 (행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는데,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 날마다 '미문(美門)'이라는 성전 문에 두기 때문이었다.(행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므로 (행 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말하기를, "우리를 보라" 하니 (행 3:5) 그들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그가 쳐다보자 (행 3:6)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그대에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행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양함을 보고 (행 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아는지라 그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하게 여기며 놀랐다.
(행 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므로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행각(行閣-성전의 정당[正堂] 앞과 좌우에 지은 긴 낭하)에 모이니 (행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왜 이 일을 기이하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행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신 것이다. 여러분이 그를 넘겨 주었으나 '빌라도'가 방면하기로 결정한 것을 여러분이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행 3:14) 여러분이 거룩하고 의로우신 이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자를 방면해 주기를 구하여 (행 3:15) 생명의 주님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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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KJV(흠정영역)는 "그 아들 예수님"이라 번역했고 우리말 번역과 함께 기타 영역은 "그 종 예수님"이라 되어 있는데 이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종"이라 번역된 데가 다 그러하다. 흠정영역이 옳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말 번역도 난하주(欄下註)에는 "혹은, 소자(小子)"라고도 번역한다고 되어 있다. 흠정역은 이 경우 "Son" 혹은 "Child"이다. 이렇게 두 갈래로 번역이 나누어지는 것은 원어 자체가 두 의미로 공통으로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나의 종"(사 52:13)이라 하시는 것과 우리가 그리스도를 가리켜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종"이라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이 합당하지 못하다. 더군다나 기도할 때에는 더더욱 그러한 것이다(행 4:27). 그러면 흠정역 외의 번역은 왜 "종(Servant)"으로 선택했는가 할 때 이 경우 원어는 "Son"보다 "Child"쪽에 가깝기 때문에, 하나님의 "Child"(소자)를 인간적인 개념의 어린 아이와 혼동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로서의 그 아드님을 포함해서) "품속"(요 1:18)의 아기들(children)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있음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감히 하나님의 아들을 어떻게 "어린 아이(소자)"로 나타낼 수 있는가, 필시 이사야서의 예언에 나오는 대로의 "종"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하고 판단하였으리라.
그러나 당시 베드로가 청중들 앞에서 말한 것이나(행 3:13) 당시 믿는 무리가 그와 같이 공동으로 기도할 때(4:27) 성령 충만하여 다른 입술로 다시 말해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던 순간들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나 그 때 당시의 성령 충만한 이들은 자기 생각을 따라 말하거나 기도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고 기도하였으므로 그 사실 즉 모두 하나님의 "품속"(요 1:18)에 있음을 새로이(요한도 이 사건 훨씬 이후 요한 복음서를 기록했으므로) 나타내게 하신 것이라 봄이 타당하다. 이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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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3:16) 이제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여러분이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으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한 것이다. (행 3:17) 형제들, 여러분이 알지 못하여서 그리 하였고 여러분의 지도자들도 그리 한 줄 안다. (행 3: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그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인데 이제 이와 같이 이루셨다.
(행 3:19) 그러므로 여러분이 회개하고 돌이켜 여러분의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님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 3:20) 또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님을 보내실 것이니, (행 3:21)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인간 세상이 시작한 때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만유(萬有)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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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바울과 같이(행 17:30) 베드로 역시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한다" 하지 않고 먼저 "회개하고 돌이켜 죄 용서함을 받으라"는 말부터 먼저 하는 것이 진정 복음 전파 곧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생 얻는 복된 소식이 됨을 이와 같이 성령으로 천명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인간 상식에서 벗어나심이 없으니 그렇지 않다면 상식적 판단력을 인간에게 부여하셨을 리 만무하다) 죄를 지음으로써 아담이 생명을 잃어 버리고 오늘날과 같이 모든 인생에게 죽음이 비극이 임하고 인하여 구원의 필요성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고로 그 죄를 돌이켜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약속 아래 죄 용서가 됨이다.
그 근거는 아담을 처음부터 영생하는 자로 만드셨다는 데에 있다. 이제 비로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님이다. 왜냐면 인생의 죽음과 죄악이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다고 성경이 밝히고 있는 것이다(롬 5:12).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아담은 살고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닌가. 자연법칙 아래에서는 인생이 그렇게 장수하지 못한다. 최고로 장수할 수 있는 한계가 천년에도 못미친다. 아담 이후 노아 이전까지의 인생들의 수명이 그 증거다.
따라서 이 자연계에 속한 육체가 아닌 신령한 몸으로 아담이 에덴낙원에서 지냈으며 따라서 에덴낙원이 이 자연계가 아닌 영계(靈界)였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범죄하여 죽게 되어 있었던 아담의 위치에서 죽으신 것임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 아담이 그 죄 값인 죽음을 완전히 청산한 다음의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으로서의 부활히신 것이다. 즉 아담이 범죄하기 전 그래서 죽기 전의 모습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열쇠는, 이러한 죽음의 결과로 인한 구원의 필요성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온 것인즉, 범죄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이다. 영생하지 않았다가 이제는 영생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지 않은 것이다. 범죄하지 않는 데에 있으므로 "믿어 영생하라" 하기 이전에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것이 가장 먼저 오는 전제 조건(영생을 얻기 위한)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은 바로 이 회개를 하기 위한 것이다. 돌이켜 방향을 완전히 반대쪽으로 틀어 절대 복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을 약속이라고도 한다[요일 2:25/약 1:12/2:5/히 10:36].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유일한 근거가 그리스도의 피인데(히 9:22) 이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친히 가리켜 "나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눅 22:20/고전 11:25)이라 하심이 바로 그 뜻이다. 이 실체의 그림자 격이었던 첫 언약 때도 당연히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닐뿐더러 백성들의 순종의 약속 없이는 또한 세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출 24:6-8).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달한다는 전도 방법을 대개 보면 네 가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으로서, ①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죄인임을 알아야 한다, ②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므로 내 스스로 나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③그리스도께서 나 위해 죽으심으로써 그리스도로써만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④이 그리스도를 그러므로 내 마음에 영접하면 된다는 식이다.
스스로 죄인인 줄 알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죄인 치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는(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왜냐면 사람마다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요 8:9). 그러므로 성경이 이런 것을 구원 얻는 조건으로 내걸 이유가 없다. 고로 성경이 명령하는 것은 회개하라는 것이다. 즉 이제부터는 절대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겠다는 다짐을 하여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라는 것이다. 고로 이 쌍방간의 약속에 순응하는 자에게 한해서 구원이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전도 메시지는 이상 네 가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회개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주안점이 있는 것이다. 회개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 용서가 되고(행 2:38), 죄 용서가 되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니" 당연히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면서 구원은 되는 것이다. 로마군의 백부장 고넬료가 세례 받기 전에도 이미 성령부터 먼저 받은 것이 이 때문이다(행 10:47). 다시 말해 성령의 임하심은 회개 여하에 달린 까닭이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증언한 데에서도 이 사실은 명확히 나타나는 것이니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역하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전파한다"(행 26:19,20)고 했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 얻는 일을 전파한다 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같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마 3:8) 것이 진정 회개임을 강조한 점에 우리는 주목하는 것이다. 왜냐면 말만의 회개가 아니라 죄를 다시는 안짓는 것 다시 말해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사는 것이[(고후 5:15) 회개의 열매요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함" 즉 야고보가 강조한 "행함"이기 때문이다. 이 행함이 없으면 믿음은 죽은 것이요 헛것이라 한 것이다(약 2:20,26).
회개 없이는 위에 언급한 ①, ②, ③, ④ 모두가 무용지물일 뿐이다. 내용 없는 수박 겉 핥기만 된다. 구원은 받지 않았으면서도 구원 받았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결과가 된다. 굳이 ①②③④로 따지려면, ①항목에서 "죄인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다 "죄인으로서의 죽은 자이므로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 자가 되면 다시는 아담처럼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결단의 약속을 하나님 앞에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면 가하다.
내 힘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가 되었으므로 산 자로서의 새 생명과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권능(행 1:8)으로 순종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무슨 힘이 있어 순종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산 자부터 되고 볼일이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써 구원되지 못한다는 것은 다름아니라 죽은 자를 벗어나 회개하여 죄 용서 받아 성령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의 산 자부터 먼저 되라는 의미인 것이다.
회개한다는 것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요일 2:1,29/3:6-10/5:18/고전 15:33,34/벧전 4:1/요삼 1:11/롬 2:7,10]. 즉 다시는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산다는 의미다(고후 5:15). 죄를 짓는다는 것은 자기가 세상에 있는 것이 이전처럼 세상 삶을 즐기기 위함(세상을 사랑하여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것)이라 착각하는 까닭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 곧 이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처단되는 모습이요 죄인으로서의 모든 인간(나 자신을 비롯해서)이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의 모습임을 여실히 입증함인 줄 믿어야 그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인데, 엉뚱하게도 자기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홀로 죽으신 것으로만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기 때문이다. 대관절 전혀 동떨어진 임의 해석으로 성경을 잘못 읽는 결과이다.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대로 읽지 않고 사단이 일일이 손으로 짚어 가며 해석을 해 주는 대로(에덴낙원에서 하나님의 경고 말씀을 여자에게 거짓말로 해석해 준 그대로) 따라 읽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인간 삶을 "죽은 자"(마 8:22)라 정의(定義)하시고 회개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음으로써 죽은 자로부터 산 자가 되는 것 외에는 이 세상에서의 일체의 의미를 부정하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 자체를 사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이,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아니다.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할 것이다" 하신 대답인 것이다[눅 13:2,3].
삶의 의미를 잃은 인생에게 오직 슬피 우는 울음밖에 있을 것이 없으므로 그래서 "지금 우는 자가 복이 있다"(6:21) 하셨고 이 세상을 사람 사는 곳으로 오인하여 희희낙락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화가 닥칠 것이라 경고하신 것이다(:25). 이 세상에 살 동안만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육신" 타령을 하는 이유가 오직 다름아닌 이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데에 있는 까닭이다. 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요일 2:15).
성경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나가니 성경대로 살 수가 없고 성경의 가르침과는 엇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필연이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죽었음을 명백히 했다(골 3:3). 때문에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다 한 것이다(:3).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면 잃고 미워해야 영원토록 보전한다"(요 12:25)고 하신 경고도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못박혀 죽은 것이다(갈 2:20).
그래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어 있고(빌 2:21)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갈 2:20) 것이다.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고후 5:15)는 선언의 반복되는 강조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은 죽기 위해 제단에 바쳐진 희생 양 곧 "하나님의 어린 양"의 모습이시다. 이것이,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셨지만 세상에는 아직까지도 감추어져 이유이다.
왜냐면 그 몸된 교회가 역시 이 세상에서 머리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 그대로를 갖추어야 할 필요성, 필연성에서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남으신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골 1:24)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여기서 이러한 고난 받음을 "기뻐한다"(:24) 한 것이다. 즉 자진해서 내 자유 선택에 의해 사랑 안에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원 받은 자의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비록 삶의 낙(樂)은 누림이 없으나(왜냐면 이 세상에서는 죽은 자이고 산 자가 아니므로-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함께 장사(葬事)한 것으로 종결 났으므로) 성령 안에서의 기쁨과 평안은 충만한(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출생하고 새로 창조되어 더 다시 '죽은 자'가 아니요 '산 자'가 되어 있으므로) 것이다(롬 14:17). 그리고 더불어 "의의 열매" 즉 올바른 행실이 있을 뿐이니(:17/빌 1:11) 여기에는 죄 짓는 것이 발붙일 틈이 없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언제나 나의 자유 선택의 결과물이지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므로 어느 때든 중도에 나의 마음이 변하여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게 됨"[빌 2:21]으로써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3:18)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요 따라서 그 "마침은 멸망"(:19)이기 때문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고(골 3:1)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2) 하는데도 "땅의 일을 생각함"(빌 3:19)으로써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는 현실을 성경은 그렇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할 것이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들에게 낫다"(벧후 2:20,21) 함이 응해지는 것이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21) 그대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은 죄에 대하여 그리고 이 세상(의 거짓된, 신기루 같은 속임수의 삶)에 대하여 죽었다는(갈 6:14) 것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 산 자가 되었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즉 그리스도께서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시는"(히 1:9) 그 안에서 살았다는 것이니 이를 가리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다고 하는 것이다(롬 6:10,11). 그래서 "아무나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처음부터 분명히 선언하신 것이다(요 6:44,65).
이 세상과 나 자신의 죽음의 실상을 먼저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서는 이 현실에 "눈 뜨지"(행 26:18) 않고는 절대로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음이다. 단지 영생이 욕심 나는 그 이유로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께 올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곧 영원한 멸망이 무서워 하는 사람이라면, 이 하나님의 진노가 첫 사람 아담의 범죄에서 온 것인즉(롬 5:12)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양심상으로도 명백히 깨달을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그 어떤 핑계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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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3:22) '모세'가 말하기를,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註-그리스도를 가리킴인데 사람이심을 강조한 대목이므로]를 세울 것이니 너희는 마땅히 무엇이든 그 모든 말씀을 들어야[말씀을 지켜 순종해야] 할 것이다. (행 3: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이는 백성 중에서 멸망할 것이다' 하였고 (행 3: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다.
(행 3:25) 여러분은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여러분의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言約)의 자손이니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신 대로 (행 3:26) 그 종[흠정역은 "Son"]을 세우신 하나님이 여러분이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심으로써 (여러분을) 복 주시려고 여러분에게 먼저[이방인에 앞서] 보내셨다". [註-"회개하여 돌이키라"(행 3:19)는 앞의 명령(17:30)과 같은 뜻이다. "악함을 버리라" 즉 악한 죄를 짓지 말라 했으니 더 구체적이다].
사도들이 잡히다
(행 4:1) 사도들이 군중들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을 관할하는 자[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녔다]와 '사두개'파 사람들이 와서, (행 4:2) 대중을 가르침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道)를 예수님으로써 전함을 싫어하여 (행 4:3) 그들을 붙잡았으나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다. (행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5,000이나 되었다.
(행 4:5) 이튿날 관리(官吏)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행 4: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그리고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門中ㅡ제사장직은 세습제)이 다 참예하여 (행 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기를, "너희가 무슨 권위로 또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행 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말하기를, "백성의 관원과 장로인 여러분, (행 4:9) 만일 이 병자에게 행한 선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행 4:10) 여러분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다. (행 4:11) 이 예수님은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다" 하였다.
(행 4:13)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그들이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들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줄도 알고 (행 4: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행 4:15) 공회(公會)에서 나가라 명하여 보내고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행 4: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그들로 인한 기적이 소문이 나서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우리도 부인할 수 없으므로, (행 4: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행 4: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행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였다.
(행 4:21) 관리들이 백성을 인하여 그들을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었다. (행 4:22) 이 기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40여 세였다.
(행 4:23) 사도들이 놓이자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전하니 (행 4:24) 그들이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 높여 말하기를,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의 만유를 지으신 대주재(大主宰)님, (행 4:25) 주님의 종인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일찍이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국(列國)이 분노하며 족속(族屬)들이 헛된 일을 하고 있는고. (행 4: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그 관료들이 함께 모여 주(主)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한다' 하셨습니다.
(행 4: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異邦人ㅡ다른 나라 사람)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소자(小子, Child)-흠정영역] 예수님을 거역하여 (행 4:28) 주님의 권능과 그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도시에 모여 있습니다. (행 4:29) 주님,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하감하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며 (행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고 표징과 기적이 거룩하신 종[Holy Child-흠정영역]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행 4:31) 빌기를 다하자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하다
(행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행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主)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므로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행 4:34) 그 중에 궁핍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이는 팔아서 그 판 값을 가져다가 (행 4: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면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었다. (행 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인으로 이름이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으니 사도들이 이름하여 '바나바'{번역하면 "위로자(慰勞者)"}라 하였는데 (행 4:37) 그도 밭이 있어 팔아 값을 가져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고
(행 5:1)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행 5: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니 그 아내도 알았다. 그 나머지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행 5:3) '베드로'가 말하기를,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더냐? (행 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한 것이다". (행 5: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였다. (행 5: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葬事) 지냈다.
(행 5:7) 3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 오니 (행 5:8) '베드로'가 말하기를,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이뿐이라" 하므로, (행 5:9)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 지내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갈 것이다" 하자 (행 5:10)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므로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 지냈다. (행 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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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아나니아 부부가 회개하였다는 말이 없다. 이는 솔로몬의 경우와 같다. 그 역시 "악을 행한 것"만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회개하였다"는 언급이 없다(왕상 11:1-13). 엄청난 비극으로서 큰 경종이 되고 있다. 처음과 끝이 같지 않았었다. 다윗과 달랐다. 다윗은 밧세바 여인 사건으로 책망을 듣자 곧 회개했으나 솔로몬은 그런 책망을 받았어도(:11-13). 사울 왕과 같이 된 것이다. 사울도 솔로몬도 회개했다는 말이 없다. 솔로몬이 저술한 잠언, 전도서, 아가 등은 하나님께로서 난 지혜요 그 지혜에서 나온 글이기 때문에(범죄하기 전) 성경에 당당히 수록되어 있으나 솔로몬 본인 자신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된"(고전 9:27) 결말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 양상은 당시 초대교회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짜가 범람하여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관계로 실제로는 구원을 받은 일이 없는 이들이 구원 받은 것으로 자처하여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까지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상으로 범죄하였는데 그렇다면 나 역시 그들처럼 더 다시는 구원의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겠는데,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교회 다시 말해 성령을 받고 실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집단인 교회에 주는 경고이지 일반 불신자에게 해당되지는 않는 것이다.
구원 받지도 않았으면서도 세상의 사이비(가짜)들의 가르침에 속아 구원 받은 줄로 착각하고 있을 뿐 세상 불신자들과 똑같은 것이다. 말로는 그리스도인이라 하지만 세상 종교 곧 기독교라는 이름의 종교인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아예 이런 '하나님의 교회에 주는 경고'와는 전혀 무관하니 오직 회개하고 성경대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부터 받는 것이 급선무다. 이렇게 구원된 다음에는 이 경고의 대상이 되니 그래서 성경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빌 2:12) 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주님을 두려워함(the fear of the Lord)과 성령의 위로(the comfort of the Holy Spirit)"라는 두 가닥 레일 위로 달리는 열차로서 제 몫을 다한 것이다(행 9:31). 오늘날 "교회"라고 자칭하나 이런 두 가닥 철로커녕 외가닥의 모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해당되는 것이 없다. 원래 종교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자는 지금부터 성경대로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을 일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이런 경고는 구원 받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성령의 위로와 동시에 주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양면으로 임하는 것이다. 어느 한 면만 강조하는 것은 결코 복음이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성령이 애당초 임하여 오시지를 않는다.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는 결심이 서 있고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약속할 수 있는 이에게만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실 바에야 세상 모든 사람에게 기계적으로 임하여 오실 것이 아니겠는가.
이 성령을 세상은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다고 미리 말씀하셨다[요 14:17].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아 순종할 의사가 전혀 없는데 어찌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오시어 그와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것이 구원인 것이다. 그래야 그 죽으심이 나의 죽음, 그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어 내가 다시 출생함이 가능해지고 새 생명으로 새로 창조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여기서 제외되는 것은 오직 단 하나의 이유이니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순종할 결의가 되어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아무리 구원 받았노라고 자처하여 그리스도인 행세를 해도 이렇게 사랑에서 우러나는 순종이 없을 때 그것은 구원 받는 믿음일 수가 없으니 혼동하지 말 일이다.
하나님이 구원의 말씀은 너무다 간단 명료하여 어긋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주님 친히 말씀하신 대로 사람이 친구를 위해 그 목숨을 버리는 것 이상으로 더 큰 사랑은 없는데 나 위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나에게 대한 최고도의 무비(無比)의 사랑을 확증하신 이상, 나는 단지 그 사랑에 화답하고 순응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화답은 나도 역시 하나님 위해 자신을 버리는 자세로 매사 임하는 데에 있음이요 이것이 '구원 얻는 믿음'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제부터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고후 5:15) 오직 나를 사랑하시어 자신을 내게 영원하신 선물로 주신(갈 2:20)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다. 이 이상으로 아무 것도 요구하시는 바가 없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니 자연스럽게 그의 보내심을 받아(요 2:20) 세상에서 그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4:34) 남은 여생의 전부를 바치는 것이 아닌가. 사랑 따라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지 아무 것도 복잡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이것이 바로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는"(마 18:3) 일이다. 사랑에 사랑으로 순수하게 화답하는 것이 어린 아이의 특성이다. 엄마의 사랑만 알고 지내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피조물에 대한 조물주의 사랑이시다. 사람이 무엇을 만들든지 낳든지 키우든지 그 대상에 대한 애착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함과 같다. 우리를 만드셨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한도 없이 사랑하신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삶의 항구적인 체제는 한 몸 구조인 것이다. 하나님 친히 그 몸의 머리가 되어 계시는 것 이상으로 이상 세계의 체제는 없다. 몸은 머리를 위하고 머리는 몸을 위하는 아주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삶의 영원한 원리 그 법질서다. 머리께서 나를 도맡아 위하시고 전체 몸을 위하시니 나 자신 아무 것도 나를 위해서는 할 일이 없으니 그래서 자연적으로 머리를 위하고 머리의 지시를 따라 함께 지체가 되어 있는 내 이웃을 위할 뿐이다.
이 이상으로는 아무리 이치상으로 뜯어보려고 해도 없다. 간명하기가 한량 없다. 어린 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삶의 원리다. 아주 간단한 삶의 이치로서의 자기 부인이다. 나를 위하지 않으니 자기 부인이요, 나를 위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고 그 지시를 따르는 내 이웃들이니 내가 나를 위하는 것보다 한도 없이 완벽하게 나 자신이 위해지는 구조다. 이 이상 가는 이상세계가 없다. 오직 교만과 부질없는 고집의 자기중심과 어리석음이 스스로를 망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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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적이 많이 일어나니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행 5: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가까이 하려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였다. (행 5:14) 믿고 주님께로 나오는 사람이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였다. (행 5: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덮일까 바라고 (행 5:16) '예루살렘' 근읍(近邑)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었다.
다시 잡힌 사도들을 밤에 천사가 구해내다
(행 5: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들은 '사두개'파에 속해 있었다)이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 (행 5: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행 5:19) 주님의 사자(使者-천사)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며 말하기를, (행 5: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므로 (행 5:21) 그들이 순종하여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는데,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와서 공회 회원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행 5:22) 관속(官屬)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행 5:23)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는데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하고 보고하였다.
(행 5:24) 성전을 관리하는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당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는데 (행 5:25) 사람이 와서 또 보고하기를, "보십시오,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니 (행 5:26) 성전을 관리하는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자기네를) 돌로 칠까 두려워 함이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행 5: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행 5:28) 묻기를,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나 너희가 너희 교(敎)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그리스도]의 피[의 대가]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다". (행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기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행 5:30)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행 5: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셔서 죄 용서를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시어 왕과 구주로 삼으셨다. [註-이것까지 세 번째로 우리의 구원 얻는 도리를 가리켜 성경은 "회개케 하심으로써 죄 용서를 얻게 하시는" 것으로 거듭 확인해 주고 있다. 단순히 '영생 얻게 하심'이 아닌 것이다].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
(행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시다" 하였다.
그 이름 위해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함
(행 5: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애고자 할 때 (행 5:34) '바리새'파 사람 '가말리엘'은 율법 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서 공회 중에 일어나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명하고 (행 5:35) 말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조심해서 이 사람들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행 5: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니 사람이 약 400이나 따랐는데 그가 죽임을 당하자 따르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행 5:37) 그 뒤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사람이 다 흩어졌다. (행 5:38) 이제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니 이 사람들을 상관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행 5:39)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그대들이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한다" 하니, (행 5: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므로, (행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
(행 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님은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다.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하기 위해
(행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그리스'계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게 되자 '히브리'계 사람들(형제들)을 원망하므로, (행 6: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구제(또는 공궤ㅡ윗사람에 대한 음식 대접)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행 6:3) 형제들, 여러분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행 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專念)할 것이다" 하니 (행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행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按手ㅡlaying on of hands)하였다.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道)에 복종하였다.
'스데반'
(행 6:8) '스데반'이 은혜와 능력이 충만하여 큰 기적과 표적을 민간(民間)에 행하니 (행 6:9) '리버디노'[유대인으로서 노예 신분이었으나 그 후 속량되어 자유인이 된 이들로 결성되어 있던 무리들이 모이던 회당(會堂)] 소속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갈라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 때, (행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치 못하여
(행 6:11)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기를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 하게 하고, (행 6:12) 백성과 장로와 율법학자를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公會)에 이르러 (행 6:13) 거짓 증인들을 세워 말하기를,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역하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한다. (행 6: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規例)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다" 하므로, (행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행 7:1) 대제사장이 말하기를, "이것이 사실이냐?" 하니, (행 7:2) '스데반'이 말했다. "여러 부형(父兄)님들, 들으시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행 7:3) 말씀하시기를,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행 7: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처하다가 그 아버지가 죽으므로 하나님이 거기서 여러분이 시방 거처하는 이 땅으로 그를 옮기셨다.
(행 7: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몫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씨(자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시며 (행 7:6) 말씀하시기를, "그 씨가(자손이) 다른 땅에 나그네될 것이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400년 동안 괴롭게 할 것이다" 하시고 (행 7:7) 또 말씀하시기를,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할 것이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길 것이다" 하시고 (행 7: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8일만에 할례(생후 8일 된 아이의 포피(包皮)를 자르는 의식)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 두 조상을 낳았다.
(행 7:9) 조상들[요셉의 10형들을 가리킴]이 '요셉'을 시기하여 '이집트'에 팔았으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서 (행 7:10)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시고 '이집트' 왕 '바로'(Pharaoㅡ고대 '이집트' 왕의 칭호)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니 '바로'가 그를 '이집트'와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다.
(행 7:11) 그 때에 '이집트'와 '가나안' 온 땅에 흉년 들어 큰 환난이 있을 때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으므로 (행 7:12) '야곱'이 '이집트'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행 7:13) 또 재차 보내니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었다.
(행 7:14)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75명을 모셔왔더니 (행 7:15)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가 자신과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은 후 (행 7:16) [그 시신이]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었다.
(행 7: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니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는데, (행 7: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의 왕위에 오르자 (행 7:19) 그가 우리 족속에게 간계를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 즈음 (행 7:20) 그 때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사랑스러우므로 그 부친의 집에서 3개월을 기른 다음에 (행 7:21) 버려졌으나 '바로'의 딸이 주워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니 (행 7:22) '모세'가 '이집트'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였다.
(행 7:23) 나이 40이 되자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행 7:24)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이집트' 사람을 쳐 죽였다. (행 7:25) 그는 자기 형제들[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킴]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다.
(행 7:26)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서로 싸울 때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 (행 7:27) 그 이웃을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치며 말하기를, "우리 위의 관원(官員)과 재판장으로 누가 너를 세웠느냐? (행 7:28) 네가 어제 '이집트'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행 7:29) '모세'가 이 말을 듣고는[소문이 퍼져 이집트인들의 귀에 들어가 자기 신상에 화가 미칠 줄 알고]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았다.
(행 7:30) 40 년이 차니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므로 (행 7:31)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님의 소리가 있으시기를[천사를 통해 말씀하신 것], (행 7: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시나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였다.
(행 7:33)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양 발의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행 7:34)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으니 지금 내가 너를 '이집트'로 보낼 것이다" 하셨다. (행 7:35) 그들의 말에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관할하는 자 그리고 속량(贖良)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행 7: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이집트'와 홍해와 광야에서 40년간 기적과 표적을 행하였다.
광야 교회
(행 7:37)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울 것이다' 하던 사람이 곧 이 '모세'이니, (행 7:38)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더불어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이가 이 사람이다. (행 7: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이집트'로 향하면서 (행 7:40) '아론'더러 말하기를,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집트'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고 (행 7: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네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였다.
(행 7:42) 이에 하나님이 등을 돌리시고 그들을 그 하늘의 만상(萬象) 섬기는 [해와 달과 별 등 하늘의 천체들을 위하고 경배의 대상으로 삼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의 집이여, 40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물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행 7:43) '몰록'의 신전(神殿)과 '레판' 신(神)의 별을 받들었음이니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들이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내칠 것이다" 하심과 같다.
(행 7: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witness, testimony)의 장막(帳幕ㅡ옛 '유대'의 이동식 성전(聖殿)을 말함)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명하심으로써 그가 본 그 식(式)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다. (행 7: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렀다. (행 7: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행 7:47) 마침내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성전)을 지었다.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니
(행 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니 선지자가 말한 대로, (행 7:49)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행 7: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하셨다' 함과 같다. [註-사정은 오늘도 마찬가지다].
(행 7:51) 목이 곧고[겸손하여 말씀대로 순종할 생각은 없이 교만해져]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형식주의에 흘러 원래의 근본 취지를 망각한-롬 2:28,29] 사람들아, 여러분이 항상 성령을 거역하여 여러분의 조상과 같이 여러분도 행한다. (행 7:52) 여러분의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치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실 것이라고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여러분은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었으니 (행 7:53) 여러분은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다".
마음에 찔리자 그를 향하여 이를 갈다
(행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가는데 (행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6)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人子-곧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 하니 (행 7: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행 7:58) 성(城) 밖으로 끌고 가 동댕이쳐 돌로 칠 때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이는 모세의 율법에 따른 것].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주십시오!"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으며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다시 외치기를, "주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주십시오!". 이 말을 하고 곧 잠에 들었다.
모든 땅으로 흩어져
(행 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행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었다. (행 8:3) '사울'이 교회를 파멸시키려 들어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다.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 전하다
(행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때 (행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城)에 내려가 백성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니 (행 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기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따랐다. (행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행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
(행 8:9) 그 도시[城]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위대한 사람으로 자처하였으니 (행 8: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그에게 열중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였다. (행 8:11)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랐는데 (행 8:12) '빌립'이 하나님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행 8: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워했다.
성령 받음
(행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니 (행 8: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였다. (행 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기 때문이다.
(행 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을 받으므로 (행 8: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들여 (행 8:19) 말하기를,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달라" 하니 (행 8:20) '베드로'가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 것이다. (행 8: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道)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받을 몫도 없다. (행 8: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님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행 8: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다" 하였다. (행 8:24) '시몬'이 대답하기를, "나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해 달라" 하였다.
(행 8:25) 두 사도가 주님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빌립'이 '에티오피아' 환관(宦官)에게 전도
(행 8:26) 주님의 사자(使者-천사)가 '빌립'더러 말하기를, "일어나 남(南)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였다. (행 8: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티오피아' 사람 곧 '에티오피아' 여왕(女王) '간다게'의 모든 국고(國庫)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內侍)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행 8:28) 돌아가는데 병거(兵車, 戰車ㅡchariot, 고대에 전쟁, 사냥, 경주 등에 사용한 말 두 필이 끈 2륜 마차)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
(행 8:29) 성령께서 '빌립'더러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니 (행 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기를, "읽는 것을 깨닫느냐?". (행 8:31) 대답하기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 어찌 깨달을 수 있는가?"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였다.
(행 8: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기록되기를, "그가 사지(死地)로 가는 양(羊)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행 8:33) 비천하게 될 때에 공정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한 생애(生涯)를 말할 수 있으랴.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다" 하였다(사 53:7).
[註-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서의 그 한 생애를 마치기 전에 죽임을 당하신 유일한 경우가 되시니, 이는 한 인간으로서의 예정된 삶을 마치기도 전에 죽음을 맞으셨다는 의미로서 곧 속죄 제물로서의 어린 양의 운명을 가리킴이다. "어린 양"이라는 말은 앞으로 살 날이 창창한데도 제물이기 때문에 제 명전(命前)에 죽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행 8: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기를, "설명해 달라. 선지자가 이 말을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행 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을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행 8: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기를,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행 8:37) 5{없음} [그러나 흠정영역은 아래와 같이 수록하고 있다. 즉 "And Philip said, If thou believest with all thine heart, thou mayest. And he answered and said,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 번역하면, "빌립이 말하기를,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가하다". 대답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내가 믿는다" 하였다"].
(행 8: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행 8:39) 둘이 물에서 올라올 때 주님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가시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내시는 기뻐하면서 계속 길을 갔다. (행 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城)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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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교회가 설립되는 또다른 양상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로써 성령께서는 명백히 그 한 예를 보이신 것이니, 왜냐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을 받고 나서 그 내시는 홀로 그 자기가 사는 고장에서 교회를 설립했을 것이기에 그렇다. 빌립 자신이 그 머나먼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한 것도 아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전도자가 외지에 나가 단 한 사람이라도 믿게 만들어 홀로 남겨 두고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복음을 전하더라도 그 믿은 한 사람으로 인하여 훌륭하게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립될 수 있음을 명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 설립에 대한 확실한 성경적 근거를 이 구절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울 사도가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님과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는 것이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셔서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에서 너희 상속분을 얻게 하실 것"[행 20:31,32]이라 함과 같은 맥락임은 물론이다.
말씀만 전파해 놓으면 나머지는 살아 계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맡아 하시는 것이다. 즉 우리로서는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면" 되는 일이다. 단 스데반이나 빌립과 같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행 6:3) 정도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을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그런 사도나 집사 같은 직분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그렇게 당시 집사로 뽑힐 수 있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함"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오직 각자의 믿음과 사랑과 순종에서 나오는 충성 여하와만 관련되기에 그러하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만이 전도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말씀을 믿으면 그 말씀을 이웃 주변에게 알리는 것이 그리스도인 됨의 일차적 책무인 까닭이다. 이것이 바로 그러함을 성령은 그 에티오피아 내시를 통하여 명확히 밝히신 것이다.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딤후 2:2) 함과 같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은 릴레이 식으로 전파되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구원의 말씀은 찾아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니 그리스도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임하여 오시는 것과도 상통한다. 어떠한 형태이든 종교 의식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의식이라고는 처음 믿을 때 단 한번 받는 세례 의식과, 내가 스스로 전도하여 만든 새로 생긴 그리스도의 제자(천하 만방에 다니며 제자들을 삼으라 하신 대로)들과 함께 모일 때 거행하는 성찬 예식이 전부다.
함께 모이는 것이야 사람이 사회적 존재인 이상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교제하는 것이므로 비단 이런 경우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그 어디서나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의 범주이다. 특별한 것일 수가 없다. 보다 열심을 내니 그리고 필요에 의해서 사도시대의 초대교회처럼 매일 모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뿐이다. 살아 계시는 사람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단지 성령으로 역사(役事)하시고 머리로서 활동하시므로 그 몸된 교회의 지체(肢體)들을 통해 하신다는 그 차이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에티오피아 내시를 통해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명백히 하신 것이다.
간다게의 내시의 예를 들면, 빌립이 그에게 전도함으로써 "간다게의 내시(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으므로)의 성전"이 세워진 것이다. 그 성전(내시의 육체)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몸인즉 간다게의 내시 역시 제사장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나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우므로 그 육체가 역시 "살아 있는 제물"(롬 12:1)이다. 따라서 그 내시가 자기 친족이나 가족을 권하여 믿게 하든지 하면 그 믿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빌립이 내시에게 가르친 그대로 내시의 가르침을 받아 함께 기도하고 성찬식을 거행할 때 이미 교회는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빌립이 그 내시에게 세례를 주기 전에 성령의 인도로 모든 필요한 것을 내시에게 죄다 가르쳐 주어 전달한 것이다. 어떻게 믿음의 생활을 하는지 어떻게 성령의 인도를 받는지 등등 빌립이 성령 충만해 있는(행 6:3) 현재의 자기 모습 그대로를 그 내시에게 옮겨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세하고 구체적인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나 실상 그런 것은 성령께서 때와 형편에 따라 적절히 가르쳐 주시는 것이므로 빌립이 그 날 죄다 일러 알려 줄 필요는 없었고 단지 기본 바탕만을 깔아 주면 되는 일이었다.
기본 바탕이라는 것은 그리도께서 성령으로 우리 각자 안에 임하여 오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고전 6:17)를 이루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성령의 인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려는 결단과 변함없는 의지인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반드시 자기 이웃을 건져 내기 위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일할 것이요 그래서 믿는 이들이 생겨나고 모이기 시작하면 그것이 교회인 것이다. 에티오피아 내시의 경우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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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으로 가는 '사울'
[註-여기서 내용을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나중 '바울'이 '로마' 총독과 유대인들 앞에서 발언할 때 밝힌 관련 증언도 앞당겨 함께 수록하여 편집하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행 9:1) '사울'이 주님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 9:2) '다메섹' 여러 회당(會堂)에 갈 공문(公文)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道)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었다.
(행 22: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으니 (행 22:5) 이에 대해서는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나의 증인이다.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을 받게 하려고 갔다".
(행 26:9) "나도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을 대적(對敵)하여 범사를 행해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행 26: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可)편 투표를 하였고, (행 26: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을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城)[도시]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행 26: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행 22: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므로 [(행 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므로 (행 22:7)(행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져 있는데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말하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말을 듣지 않는 황소가 가시가 달린 소몰이 채찍을 뒷발로 걷어차면 자기만 상처를 받게 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임을 나타내신 것)가 네게 고생이다'.
(행 22:8)(행 26:15) 내가 대답하기를, '주님, 누구십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행 22: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행 22:10) 내가 말하기를 "주님,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
까?"[무엇을 분부하시든지 제기 시행하겠습니다] 하니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다멕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말해 줄 것이다". [(행 26: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일꾼(minister, servant)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행 26: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행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용서 받음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들 가운데 있어 (만유를) 상속(inheritance) 받게 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사울'이 앞을 보지 못한 채 '다메섹'으로 들어가다
(행 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는데 (행 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므로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행 9:9) 3일간을 보지 못하며 식음을 전폐하였다. [(행 22: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다"].
'아나니아'
(행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주님께서 환상 중에 불러 말씀하시기를, "'아나니아'야" 하시므로 대답하기를,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니 (행 9:11)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직가(直街(Straight Street)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 있는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이를 찾으라. 그가 기도 중이다. (행 9: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신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환상 중에] 보았다" 하셨다.
(행 9:13) '아나니아'가 대답하기를, "주님, 이 사람에 대하여 제가 여러 사람에게 듣자니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고 (행 9:14) 여기서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다 합니다" 하니, (행 9:15)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 (행 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해(害)를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일 것이다" 하셨다.
(행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말하기를, "형제 '사울'아, 주님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였다.[(행 22: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행 22: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기를, '형제 '사울'아, 다시 보게 되어라' 하니 즉시 그를 쳐다보았다. (행 22:14) 그가 또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그대를 택하여 그대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義人-예수님을 가리킴)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행 22:15) 그대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그대의 보고 들은 것에 대하여 증인이 될 것이다. (행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님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그대의 죄를 씻으라' 하였다].
'아나니아'에게 세례 받고 전도 시작
(행 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므로 일어나 세례를 받고 (행 9:19) 음식을 먹으니 강건해졌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때 (행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행 9: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기를,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였다. (행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설득시켰다.
'사울'의 '다메섹' 탈출
(행 9:23) 여러 날이 지나자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는데 (행 9: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졌다.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므로 (행 9:25) 그의 제자들[사울이 즉각 전도를 시작했으므로]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城)에서 달아 내렸다. [(고후 11:32)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지방장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 때 (고후 11:33)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 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 났다"].
'사울'의 '예루살렘' 방문
(행 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행 9: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님을 본 것과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전도하던] 것을 말하였다.
(행 9: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행 9:29) 또 주(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그리스'계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므로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니 (행 9: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 '다소'로 보냈다.
[註-이에 대한 '바울'(당시는 '사울') 자신의 증언('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을 아래에 수록해놓았으므로 참고할 수 있다. 곧장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로 간 후 3년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갈 1: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여러분이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박해하고 (갈 1:14) 내가 내 동족 중 나의 여러 동류들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이 전해 준 가르침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갈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께서 (갈 1:16) 그 아들을 이방(異邦) 중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갈 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이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
(갈 1:18) "그 후 3년만에 내가 '게바'(배드로)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15일을 유할 때 (갈 1:19) 주님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다. (갈 1:20) 보라,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다. (갈 1: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갈 1:22)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갈 1:23)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박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갈 1: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갈 2:1) "14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 갔으니 (갈 2: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한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었다".
주님을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교회가 진행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님을 경외함[the fear of the Lord]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졌다.
8년된 중풍환자
(행 9: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행 9: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8년이었다. (행 9:34) '베드로'가 말하기를,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하니 곧 일어나므로 (행 9: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님께로 돌아갔다.
죽은 '도르가'를 살리다
(행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로서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는데 (행 9: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니 시신을 씻어 다락에 뉘었다. (행 9: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우므로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없이 오라고 간청하였다. (행 9: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당도하니 그들이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는데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였다.
(행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신을 향하여 말하기를,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으므로 (행 9: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행 9: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님을 믿었다.
'이탈리아'대(隊) 백부장
(행 9: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을 때 제혁업(製革業)을 하는 '시몬'이라 하는 사람의 집에 머물렀다. (행 10: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탈리아'대(隊)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百夫長, centurion-100명의 부대원을 거느리는 하급 장교)이었다. (행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 10:3) 하루는 제 9시(오후 3시)쯤 되어 뚜렷한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말하기를, "'고넬료'야" 하므로 (행 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말하기를, "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천사가 말하기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 10: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행 10:6) 그는 제혁업을 하는 '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고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였다.
[註-"주님(영역으로, "Lord")"이라는 호칭은 종이 주인을 부를 때 쓰는 것으로서, 경외의 대상이 되는 이를 상대해서는 무조건 그렇게 불렀던 것이 당시 관습이었고 이는 그 후로도 상당 기간에 걸쳐 내려온 것이다].
(행 10:7) 말하던 천사가 떠나자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군졸(軍卒)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행 10:8) 이 일을 다 말하고 '욥바'로 보냈다. (행 10:9) 이튿날 그들이 출발하여 성(城)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6시(정오)였다. (행 10:10) 시장해서 먹고자 하여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행 10: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었다.(행 10: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행 10:13) 또 소리가 나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므로 (행 10:14)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속되고 깨끗치 아니한 물건을 제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니 (행 10:15) 또 두번째 소리 있기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였다.
(행 10: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갔다. (행 10: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행 10:18) 묻기를, "'베드로'라는 별명의 '시몬'이란 분이 여기 계시냐?" 하므로 (행 10: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하던 중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행 10: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다" 하시므로 (행 10: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말하기를, "당신네가 찾는 사람이 나인데 무슨 일로 왔느냐?". (행 10:22) 그들이 대답하기를,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義人)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는데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씀을 들으려 한다" 하였다.
(행 10: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였다.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 때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하였다. (행 10: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다가 (행 10: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오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려 절하니 (행 10:26) '베드로'가 일으켜 말하기를,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행 10: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 (행 10:28) 말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여러분도 알지마는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셔서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치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행 10:29)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는데, 무슨 일로 불렀느냐?". (행 10:30) '고넬료'가 말하기를,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9시(오후 3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행 10:31) 말하기를,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행 10: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제혁업을 하는 '시몬'의 집에 유하고 있다" 하기로 (행 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였다.
(행 10: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행 10: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義)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다. (행 10:36) 만유(萬有)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셔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행 10: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여러분도 알거니와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으셨으니 그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다.
(행 10: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니, 그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행 10:40)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셔서 나타내시되 (행 10: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들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다. (행 10:42) 우리를 명하셔서 백성에게 전도하여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이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행 10: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기를,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용서함을 받는다' 하였다".
(행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께서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 10:45) '베드로'와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믿는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들어온 이방인들을 이렇게 불렀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행 10:46) 이는 타종족 언어(他種族[他國]言語)로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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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타국 또는 타종족 언어로 말하게 하신 의미는 다름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우리의 행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모두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아(요 20:21) 그 뜻을 행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온전히 이룸에 있어(4:34) 그것이 바로 나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양식"(food)(:34)이 되어 있으므로,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고후 5:15) 그가 성령으로 말하게 하심을 따라 우리가 말하게 되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성령을 받음으로써 그런 현상이 일어났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활동하시는 시대에 처한 교회의 당연한 자세임을 강조하는 의미인 것이다.
이는 베드로가 "각각 은사(성령의 선물, gift)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다'(벧전 4:10,11) 함과도 같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함과 같은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함과도 같다.
이는 친히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되어 계심을 가리켜,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너희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하심과 같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으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한다"(5:19) 하심과 같다.
우리는 자기중심으로 뭉쳐진 이 세상 살아 오던 버릇이 있어 이런 것을 무슨 큰 속박인 양 오해하고 착각하나 이런 것이 자기 부인이요 곧 생명의 영원한 법칙인 것이다. 한 몸 체제의 삶에서 자연스러움 그대로다. 결코 이상하거나 부자연스러움이 없다. 물 흐르듯 하는 순리다. 자기를 위해 살아 자기 말을 하고 자기 행동을 하고 자기 욕심을 따라 움직이는 자기중심이 모든 진리에 대한 역행이요 역류인 것이다. 자연스러운 순리가 생명이라면 이런 역행은 오직 죽음이요 멸망일 뿐이다. 생명과는 반대 현상만이 몫으로 태일 뿐이다.
한 몸 체제에서는 말 그대로 전부가 하나의 본질이고 체질이다. 모두가 제각기 전체의 분신(分身)일 따름이다. 따라서 전부가 바로 나 자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머리가 되시니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모세의 율법과 항상 혼동하지 말 것이다)과 계명과 뜻과 말씀 전부가 우리를 위하시지 않음이 없고 나를 위하시지 않음이 없다. 내가 이런 말씀을 듣지 않고 역행하면 할수록 나는 자해(自害) 행위만 일삼게 된다. 파멸, 멸망, 죽음에 이름은 지당하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억지로 마지못해 자기 부인을 하게 되고 절대로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것으로 착각한다면 이 경우 나는 절대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입으로는 구원 받았음을 자처해도 자기를 속이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기쁨으로 자기를 부인해야 그래서 오로지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살고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아야 그것이 구원 받은 증거다. 그래서 "항상 복종함으로써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 2:12) 경고하면서도 동시에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라"(4:4) 함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구원을 이루라 함은 이전처럼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하라는 당부인 것이다. 아담처럼 되지 말고 사단처럼 되지 말라는 뜻이다. 그들은 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망쳐놓은 경우다. 모든 죄인이 다 그러하다. 자멸, 자살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어 그 자유 의지로써 자기 선택에 의해 거둔 결과이니 이는 하나님도 강제하시거나 간섭하실 수 없어 멸망 길을 걸으면 그대로 되어지는 것뿐이기에 각자는 자기의 영원한 운명이 자기 손에 있는 줄을 알므로 어찌 두려워 않고 떨지 않으리요. 이 세상에서만은 그러하다. 이 세상 끝나고 모든 시험이 종료된 다음에는 그런 것이 없다. 모든 과정과 단계가 일절 종료되었기 때문에 일사부재리다.
그래서 이제 후로는 절대로 과거처럼 내가 즉 자기중심의 육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므로 그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엄청나다. 두 경우 다 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원치 않는 것을 아니할 수 있는 자유다. 과거에는 이 세상 지배자요 신으로서 막강하게 나를 꼭두각시처럼 좌지우지하던 사단의 조종을 따라 자기중심이 옳은 줄로 착각하였기에 내 마음대로 하고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을 자유라 여겼지만, 이제는 눈이 띄어져 어두움을 벗어나 모든 것을 밝게 대낮처럼 보는 까닭에 머리의 지시를 따르는 하나님 중심이 진정 삶인 줄 확신하고 기쁨으로 자진해서 주인 의식으로 스스로 앞장 서서 자기 부인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자기중심인지라 자기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체가 죽음처럼 비쳐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상의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안목일 뿐임을 잘 아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릐 고난일지라도 한사코 그런 헛된 일에 굴종(屈從)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휩쓸리지 않기로 작정하고 "조심하여"(고전 10:12) 나가는 것이 자기 부인의 복된 행보(行步)이다. 이제는 죽어도 죄 짓기가 싫으니 그 싫어하는 대로 하지 않는 것이 완전 자유다. 자기 부인이 생명의 길인 줄 알므로 비록 이 세상에서 그 대가로 죽음의 참혹함을 당할지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으니 자유를 만끽함이다. 과거와는 전혀 양상이 다른 것이다. 180도 전환이다. 어두움과 빛의 대립 개념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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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0:47) 이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행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였다[註-베드로 직접 세례 주지 않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니 바울 역시 자기는 세례를 주라고 보내심 받은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 한 것과 같다(고전 1:17)]. 그들이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였다.
(행 11: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행 11: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註-모세 율법에서 명령한 대로 할례를 받은 이들로서 이방인들은 부정(不淨)하다는 선입견이 있어 비'유대'인과는 식사도 함께 하지 않았음]이 힐난하여 (행 11:3) 말하기를, "그대가 무(無)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행 11: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행 11:5) 말했다.
"내가 '욥바' 성(城)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의 환상에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여 하늘로부터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는데 (행 11:6) 이것을 유심히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었다. (행 11: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말하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기에 (행 11:8) 내가 말하기를,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속되거나 깨끗치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습니다' 하니 (행 11: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였다. (행 11:10)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갔었다.
(행 11:11) "마침 세 사람이 내가 머물던 집 앞에 섰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었다. (행 11:12) 성령께서 내게 명하시기를 '아무 의심말고 함께 가라' 하시기에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행 11:13)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자기가 천사를 보았는데 자기 집에 서서 말하기를,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행 11: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를 것이다' 하였다 하기에, (행 11:15) 내가 말을 시작할 즈음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므로 (행 11:16) 내가 주님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을 것이다' 하신 것이 생각났다. (행 11:17) 그런즉 우리가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하나님이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였다.
(행 11: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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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일반적으로 회개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성령의 세례(성령 받음 혹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모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행 2:38).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위의 고넬료와 같이 세례 받음이 없이 성령부터 먼저 받게(구원됨) 되는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세례 받는 것이 생략할 수 있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니 오해하지 말 것이다. 다시 말해 세례는 기회를 보아(자기가 자기에게 세례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반드시 세례 주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서 세례를 받게 되어 있으므로) 나중에 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세례를 주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자기의 구원 받음이 지체된다고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는 그 뜻이다. 어떤 때가 이런 경우가 되느냐 하면 집사 빌립의 전도를 받고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세례 받은 후 홀로(빌립이나 기타 어느 믿는 형제와의 대동 없이) 에티오피아로 돌아간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는 경우다. 즉 이런 글을 읽고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달을 때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주(主, 내가 절대 복종하게 되어 있는 나의 주인, 소유주)로서 시인하면[전도가 바로 이런 "시인"에 속한다] 의에 이르고 구원이 되는 것이다(롬 10:10).
따라서 이런 경우 자기에게 세례를 베풀어 줄 사람이 없다고 하여 그 때문에 자기 구원이 지연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설혹 그 날 그 자리에서 죽는 한이 나더라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전도하기 시작하면) 그는 구원 받아 천사들에게 받들려 (십자가 상에서 회개하여 주님과 함께 낙원으로 들어간 그 강도처럼) 생명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세례 받지 못하고 그리 되었으니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 받는"(고전 15:29) 것이 적용된다 할까.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그리 흔히 않으므로 너무 여기에 집착해 있을 것은 없다. 일어나기가 썩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세례만 그렇다는 것이고 회개해야만 반드시 성령의 선물을 받는 것이며 이런 절차는 절대로 사람 마음대로 생략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순서가 고넬료의 경우와 같이 바꾸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생명의 일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그 결단에 나타나는 행동을 중시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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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으로 흩어져 나간 이들의 전도 활동
(행 11: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道)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행 11: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그리스[Greece]'인들에게도 말하여 주(主) 예수님을 전파하니 (행 11:21)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왔다.
(행 11: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행 11: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님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행 11:24) '바나바'는 선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이로서 이에 큰 무리가 주님께 더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어짐
(행 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행 11:26) 만나 '안디옥'에 데리고 와 둘이 교회에 1년간 모여 있으면서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교회의 상호 부조
(행 11: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행 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기를, "천하가 크게 흉년이 들 것이다" 하더니 '글라우디오'('로마' 황제) 때에 그렇게 되었다. (행 11: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행 11: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을 통해 장로들에게 보냈다.
야고보가 '헤롯'에게 죽임을 당하다
(행 12:1) 그 때에 '헤롯'왕[註-예수님 탄생 당시 죽은 '헤롯'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로서 이 '헤롯' 가문은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이다. 그 부친은 당시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역을 B.C. 19년 경에 시작하여 그가 죽은 뒤인 A.D. 64년 경에 완성시켰는데 A.D. 70년 '디도'(Titus)의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훼파되고 성전도 함몰된다. 요한복음 2:20에 유대인들이 "46년 동안에 지어졌다"고 말한 대로 이미 성전 형태는 당시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었다]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행 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행 12: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 때, 때가 무교절일이므로 (행 12:4)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여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군인들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있었다.
베드로를 옥에서 천사가 구출하다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었다. (행 12: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는 두 군인들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는데, (행 12:7) 홀연히 주님의 사자(使者-천사)가 곁에 서니 옥중에 광채가 두루 비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말하기를,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졌다.
(행 12:8) 천사가 말하기를, "띠를 띠고 신을 신어라" 하므로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말하기를,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행 12: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 때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였다. (행 12: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把守, watch, guard)를 지나 성(城)으로 통한 쇠문[iron gate]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므로 나와 한 거리를 지나는 중에 천사가 곧 떠났다.
(행 12: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말하기를,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님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다" 하여 (행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행 12:13) '베드로'가 대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나왔다가 (행 12: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기를,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다" 하니 (행 12:15) 그들이 말하기를,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기를, "참말이라" 하므로 그들이 말하기를,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였다.
(행 12: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므로 (행 12: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님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註-죽은 야고보(요한이 형제)가 아니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는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행 12:18) 날이 새자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는데 (행 12: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므로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였다.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처하였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으므로" 죽어
(행 12: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방(寢房)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하므로, (행 12: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연설)하니 (행 12:22) 백성들이 크게 환호하여 "이것은 신의 소리지 사람의 소리는 아니다" 할 때, (행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님의 사자(천사)가 곧 치니 충(蟲-worms)이 먹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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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성경은 여기서 왜 사람이 죽으며 무엇이 죄인지를 밝히고 있다. 죄와 죽음은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은 것인데(롬 5:12),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시고 "사단아! 물러가라" 하고 꾸짖으셨을 때 "네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막 8:33) 하신 것과 같은 내용이 된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이 영광을 위하고 자기 스스로 영광을 취하거나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곧 범죄로서 죽음이요 멸망의 장본이 되는 까닭이다. 헤롯이 이 세상 사람으로서 자기중심이 되어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은 것은 세상 안목으로 보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사리를 판단할 때 모든 죄는 자기 스스로 영광을 취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는 것이므로 성경이 이를 지적한 것이다. 인간의 죽음은 이런 죄에서 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자기중심의 세상이나 인간은 죄요 죽음 일색이므로 이런 죽음 가운데에서 마치 이를 생명처럼 착각하여 억울하게 죽는다느니 명대로 못살고 죽는다느니 하는 생각들은 허망한 것일 뿐임을 강조하시어 한 마디로 잘라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한다"(눅 13:3) 하신 것이다. 즉 모든 인류의 현주소는 "망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 여기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회개하여 생명(영생)에 이르는 것"뿐이라는 적나라한 현실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히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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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섬겨 금식하다-안디옥 교회
(행 12:24) 하나님의 말씀은 왕성하여 더하였다. (행 12: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왔다.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敎師)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흑인]'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 동생(함께 양육 받아 자랐다는 의미) '마나엔'과 및 '사울[나중에 '바울']'이었다. (행 13:2) 주님을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냈다.
두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파송되다
(행 13: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Cyprus)'에 가서 (행 13: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 때 '요한'을 수종하는 자로 두었다. (행 13:6)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마술사(sorcerer)를 만나니 (행 13: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는데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
(행 13:8) 이 마술사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행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면서 (행 13:10) 말하기를,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후예(後裔)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님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행 13:11) 보라, 이제 주님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므로 (행 13:12)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님의 가르치심을 기이하게 여겼다.
(행 13:13) '바울' 일행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자 '요한'은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으나 (행 13:14) 그들은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행 13: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 회당의 간부들이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 혹 청중들에게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므로 (행 13: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들으라. (행 13: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셔서 (행 13:18) 광야에서 약 40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행 13: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셔서 그 땅을 물려 주시고 (약 450년간) (행 13: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士師-judge)를 주셨더니 (행 13: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므로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40년간 주셨다가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며 증언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인즉 내 뜻을 다 이루게 할 것이다' 하시더니 (행 13:23)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님을 세우셨으니 곧 예수님이시다.
(행 13:24)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였다. (행 13:25)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sandals]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 하였다.
(행 13:26)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여러분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으니 (행 13:27) '예루살렘'에 사는 이들과 그들의 관리들이 예수님과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님을 단죄함으로써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다. (행 13: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행 13: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이 다 이루어지기 위함이었다.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행 13: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시므로 (행 13: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다. (행 13:32) 이제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파하는 기쁜 소식은, 조상들에게 주신 그 약속이 (행 13:33) 그 자녀들인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을 다시 일으켜 살리셨다 함이다.
이는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으니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행 13: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셔서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윗'에게 약속한 확실한 은혜를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셨으며, (행 13:35)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기록되기를, "주님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함과 같다.
(행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나(행 13: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셨으니 (행 13:38) 그러므로 형제들, 여러분이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용서함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행 13: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여러분이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다. (행 13:40) 그런즉 여러분은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여러분에게 미칠까 주의하라. (행 13:41) 기록되기를,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여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셨다" 하였다.
(행 13:42) 그들이 나갈 때 사람들이 청하기를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였다. (행 13:43)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였다.
(행 13: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城)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행 13: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므로 (행 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였다. (행 13:47) 주님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기를,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인하여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할 것이다 하셨다" 하니 (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이는 다 믿었다.
이방인들이 많이 믿기 시작하다
(행 13:49)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행 13: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함으로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행 13: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 (행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다.
(행 14: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그리스'의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 (행 14:2)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므로, (행 14:3) 두 사도가 오래 있으면서 주님을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님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적을 행하도록 해주셔서 자기의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므로 (행 14:4)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었다. (행 14: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행 14: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도시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행 14:7) 거기서 복음을 전하였다.
나면서 앉은뱅이
(행 14: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가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행 14: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는데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행 14:10) 큰 소리로 말하기를,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걸으므로 (행 14:11)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말로 소리 지르기를,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행 14:12) '바나바'는 '쓰스'(Jupiter)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Mercurius)라 하였다.
(행 14:13) 성 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牛)와 화관(花冠)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바울 일행에게] 제사하고자 하므로 (행 14: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으며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 소리 질러 (행 14:15) 말하기를, "여러분!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性情, nature)을 가진 사람이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다.
(행 14: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저 갈대로 가도록 묵인하셨으나 (행 14: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셔서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을 만족케 하신 것이라" (행 14:18)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였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
(행 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불러 모아 와서 '바울'에게 돌멩이를 던져 치다가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내어 버렸다. (행 14:20)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는 '바울'이 일어날 수 있어 성(城)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행 14: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 (행 14:22) 믿음을 지키도록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며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격려하였다.
금식 기도로 장로들을 택함
(행 14:23) 각'교회에 장로들을 세우고 금식 기도하며 그들을 그 믿은 바 주님께 부탁하고 (행 14: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행 14:25) 도(道, 말씀, the word)를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 (행 14: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이 일을 위해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었다. (행 14:27) 이르러 교회를 모아[to gather the church together]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행 14: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었다.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
(행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 형제들을 가르치기를,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행 15:2)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므로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 (행 15: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모든 형제들을 크게 기쁘게 하였다.
(행 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니 (행 15:5) '바리새'파 중 믿는 어떤 이들이 일어나 말하기를,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행 15: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행 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했다.
"형제들, 여러분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행 15: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고넬료의 경우를 말하는 것] 증언하시고 (행 15: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셔서 그들이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다. (행 15: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행 15:11) 우리가 그들과 동일하게 주(主)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는다".
(행 15:12) 온 무리가 조용해져 '바나바'와 '바울'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적을 보고하는 것을 듣더니 (행 15:13)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예수님의 동생)가 대답하기를, "형제들, 내 말을 들으라. (행 15: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행 15: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한다. 기록된바 (행 15: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쇠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킬 것이니 (행 15: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님을 찾게 하려 함이다. (행 15:18) 세상이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일을 하시고 그 모든 것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곧 주님의 말씀이라' 하심과 같다.
(행 15: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사람들을 괴롭게 말고 (행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행 15:21) 이는 예로부터 각 도시에 '모세'를 전하는 자들이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였다.
인편에 부치는 편지에, "성령과 우리는"
(행 15: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였다. (행 15:23) 그 편에 보내는 편지에 쓰기를,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이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는 것은, (행 15:24) 듣자니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현혹하게 한다 하기로 (행 15:25) 사람을 택하여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니, (행 15:26) 함께 가는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이들이다. (행 15: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써 전달할 것이다.
(행 15: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으니 (행 15:29) 즉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하라는 것으로서 이것들에 스스로 주의하면 잘 될 것이다. 평안함을 원한다" 하였다.
(행 15: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행 15: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였다. (행 15: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행 15: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행 15:34) {없음} [註-흠정영역에는 "Notwithstanding it pleased Silas to abide there still"라는 대목이 있는 바 번역하면, "그러나 '실라'는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였다"].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행 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머물며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였다. (행 15:36)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기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각 도시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행 15: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행 15: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행 15: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행 15: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 주님의 은혜에 맡기는 형제들의 기도를 받고 떠나 (행 15: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였다.
(행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니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어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그리스'인으로 (행 16:2)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인데 (행 16: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 때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이 '그리스'인인 줄 다 앎이었다. [註-그리스도의 시대에 이르러 할례의 무용성을 역설하는 터이지만, 하나님 사업의 원활을 기하기 위해 신축성을 발휘한 것이니 우리 역시 이런 여유를 보일 필요가 있음을 배우게 된다].
(행 16: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행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였다.
예수님의 영이 허락치 아니하시니
(행 16:6)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으니,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행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님의 영이 허락치 아니하시므로 (행 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행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원하여 말하기를,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므로 (행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었다.
[註-단순히 복음만 전하면 그것이 주님의 일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기 쉬우나 반드시 주님의 인도를 간구하여 그 시키시는 대로 주님의 뜻을 따라 일하는 것이 핵심이어야 하는 것이다].
(행 16:11) 배로 '드로아'를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행 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역의 첫 도시요 또 '로마'의 식민지이므로 이 도시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행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 가에 나가 거기 앉아 모인 여자들에게 말할 때 (행 16:14) '두아디라' 도시의 자주(紫紬ㅡ자줏빛 나는 명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여자가 들었는데, 주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귀 담아 듣게 하시므로 (행 16: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기를 "만일 나를 주님을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였다.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행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롭게 하였는데 (행 16:17)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들"이라 하며 (행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소리 지르므로,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니 그에게서 나오라" 한대 귀신이 즉시 나왔다.
[註-귀신은 어디까지나 귀신이다. 귀신을 통해 복음이 전파될 수는 없다. 귀신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선입견에 사람들이 대개 사로잡혀 있으므로 그 말을 듣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귀신이 그런 진실을 말한다 치더라도 나중에 가서는 다시 말을 바꾸어 그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해 버리면 간단히 복음의 일을 좌초시킬 수 있는 것이기에 바울이 이런 귀신들의 소행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행 16:19)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시장 터)로 관리들에게 끌고 가 (행 16:20) 재판장들 앞에 세우고 말하기를, "이 사람들은 '유대'인인데 우리 도시를 심히 요란케 하여 (행 16: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니 (행 16: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소하므로 재판장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행 16: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옥리(獄吏), jailor]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였다.
빌립보 간수
(행 16:24) 이 영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긴 두 개의 나무 토막으로 두 발목을 고정시켜 자물쇠로 채우는 형구(刑具)]에 든든히 채웠더니 (행 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니 죄수들이 들었다. (행 16: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므로(행 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므로 (행 16: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단신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하니 (행 16: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행 16: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말하기를, "두 분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하였다.
(행 16:31) 이에 "주[主, 주인 곧 소유주로서 인식하여 종으로서 절대 복종하라는 뜻) 예수님을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과 당신네 집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고 (행 16:32) 주님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다. (행 16:33) 밤 그 시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식구가 다 세례를 받은 후 (행 16: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 음식을 차려주고 그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크게 기뻐하였다.
(행 16:35) 날이 새자 재판장들이 아래사람들을 보내어 그 사람들을 방면하라 하므로 (행 16:36)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선생님들을 방면하라 하였으니 이제는 평안히 가라" 하니 (행 16:37) '바울'이 말하기를,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몰래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는가? 아니다.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할 것이다" 하였다.
(행 16:38) 그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행 16: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城)에서 떠나 주기를 간청하니 (행 16: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는 떠났다.
많은 '그리스' 사람들이 복음을 믿다
(행 17: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도착하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으므로 (행 17:2) '바울'이 자기의 규례(規例, custom)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행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할 것을 증명하며 말하기를,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이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라" 하니 (행 17: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그리스'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
(행 17: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장터)의 어떤 건달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그들[바울 일행]을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 (행 17:6) 발견치 못하므로 '야손'과 및 형제들을 끌고 관리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말하기를,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오니 (행 17:7) '야손'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Caesar)'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기를,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고 하더라" 하였다. (행 17:8) 무리와 관리들이 이 말을 듣고 곤혹스러워 하였다. (행 17: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풀어 주었다.
(행 17: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다. (행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품격이 있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詳考)하므로[to search] (행 17: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그리스'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행 17: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난동을 일으키니 (행 17: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해안 쪽으로 가게 하였으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렀다.
'아테네' 철학자들과 더불어
(행 17: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테네[Athens]'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당부를 받고 떠났다. (행 17:16) '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온 성(城)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행 17: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市場)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였다.
(행 17:18) 어떤 '에피큐로스' 학파(the Epicureans)와 '스토아' 학파(the Stoicks)의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하면서 혹자는 말하기를 "이 수다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혹은 말하기를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님과 또 육체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었다.
'아레오바고'
(행 17:19) 이에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註-본시는 그곳의 평평한 언덕 이름인데 이 광장에서 아테네의 주요 종교 또는 도덕적 문제에 관한 재판이 주로 열렸으므로 아테네의 "법정" 또는 "평의회"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고 함)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대의 말하는 이 새 종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행 17:20) 그대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를 알고자 한다" 하니 (행 17:21) 모든 '아테네'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었다.
이제는 사람을 다 명하여 회개하라 하셨다
(행 17: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아테네' 사람들아, 여러분을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다. (행 17:23) 내가 두루 다니며 여러분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위하는 것을 내가 여러분에게 알게 하겠다. (행 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主宰)시니 손으로 지은 전(殿)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註-교회당 건물을 "하나님의 성전" 또는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라 하지 말 것은 그것은 여기서 나타난 대로 바울이 전한 복음과 상치되기 때문이다](행 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심이다.
(행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두셨으니 (행 17: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한다. (행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가운데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행 17: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다.
(행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지만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셔서 회개하라 하셨으니 (행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公義)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다" 하였다.
(행 17: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는데 (행 17:33)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날 때 (행 17: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장막을 만드는 생업
(행 18:1) 이 후에 '바울'이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행 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로마 황제)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하여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로부터 새로 왔으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가니 (행 18:3) 생업(生業)이 같아 함께 거처하며 일을 하였는데 곧 장막을 만드는 직업이었다.
(행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그리스'인을 권면하였다. (행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니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라 분명히 증언하니 (행 18:6) 그들이 대적하여 훼방하므로 '바울'이 옷을 떨어 말하기를, "여러분의 피가 여러분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다.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갈 것이다" 하고 (행 18: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었다.
이 도시 중에 내 백성이 많다
(행 18:8) 또 회당장(會堂長)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님을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다. (행 18:9) 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행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도시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셨다. (행 18:11) 1년 6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행 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행 18:13) 말하기를, "이 사람이 법에 어긋나는 신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니 (행 18: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가하지만 (행 18: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 하고 (행 18:16) 그들을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니 (행 18:17) 모든 사람('그리스'인들)이 회당장 '소스데네'(바울을 고소한 '유대'인 책임자로 여겨짐)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구타하되(반유대주의적 감정으로)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였다.
바울의 이전의 서원(誓願)
(행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였다. '바울'이 일찍 서원(誓願)이 있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톰슨(Thompson)註-바울의 서원: 바울이 이전에 일정 기간을 두고 '나실'인의 서원을 한 듯하며(삿 13ㅣ5) 머리 깎는 등의 행동은 그 서원 기한이 완료됨을 뜻한다(민 6:13-18). 하나님 앞에서 한 서원이므로 반드시 지키기는 하되 '모세' 율법대로 하면 '예루살렘'에서 행해야 하지만 '겐그레아'에서 했다는 것은 '모세' 율법에는 더 이상 구속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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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위의 예와 같이, '바울'이 어떤 서원으로 왜 머리를 깎았는지 그리고 그 앞서 회당장 '소스데네'를 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때리기 시작했는지 설명이 없다.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모든 기록이 실제 일어난 그대로의 기록임을 입증함이다. 근사하게 지어낸 것이라면 일반 독자들을 위해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 주어야 그럴 듯하므로 그런 지어낸 이야기에도 넘어갈 수 있는 줄 거짓말쟁이 스스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거짓말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머리가 좋아서 될 일이 아니다. '사단'도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이 그를 단죄하고 있는 대로 그리고 창세기에도 '사단'이 가장 간교하더라고 한 대로 머리가 남달리 좋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이고 그리고 주님은 그를 "거짓의 아비"라 하셨다, 그런 까닭에 반드시 설명을 하게 되어 있다. 이 설명을 하는 것이 말하자면 그런 거짓말쟁이로서는 자기가 만든 함정에 자기 스스로 빠지는 꼴이 되는 것이니, 왜냐면 그렇게 소상하게 설명을 하면 할수록 그것이 실제가 아닌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폭로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명 없이 그냥 그대로 그 때 생긴 일을 써 나가기 때문에 앞서 살핀 대로 왜 '소스데네'가 구타를 당했는지 그리고 '바울'이 머리를 깎게 되었는지, 독자가 몹시 궁금하게 여길 정도로 만들면서도 그것을 풀이해 주는 친절을 베풀지 않는 것이다. 왜냐면 그 기록한 사람의 원래 의도는 그런 소소한 것을 설명하여 구수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 있지 않고,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 인간을 통해 복음 전하는 일을 이루어 가셨는가 그 내력을 소개함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성격의 기록 중에, '베드로'가 죽은 '도르가'를 살린 일이라든지 '베드로' 또는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기적적으로 풀려 나오게 되었던 사실들이 삽화처럼 끼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게 엄정하게 사실만을 알리려고 기술해가면서 가끔 과장해서 없는 사실을 있었던 것처럼 거짓말을 꾸며댈 수 있겠는가? 있다면 앞에서 말한 그런 '소스데네'의 구타 사건 그리고 '바울'의 서원에 대해서도 반드시 손대어 설명을 가하게 됨으로써 얼마든지 손질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다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면 그런 기적의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는가. 그 기적 앞에서 '빌립보' 간수는 자기의 실상을 본성적으로 깨닫게 되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한 것이 아닌가. 제자들이 그런 기적을 행할 정도이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야 무슨 일을 못하시겠는가. 기적 하나만으로 속단하고 성경이 진실이 아니라느니 어떻다느니 하는 것이야말로 철부지의 거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나님이신데 무엇을 못하시겠는가. 고로 기적의 사례들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과연 계시느냐 않느냐 그것부터 알아놓고 볼 일이다. 그에 대한 사실 입증은 지금까지 편자가 설명해 온 이 성경 기록 자체가 훌륭히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대로 수용하지 못할 지경이라면, 영원토록 "어리석은 자였다"라는 지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너르고 너른 우주 하나도 제대로 한 눈에 파악하지 못해 망원경을 동원해도 그 광대함을 헤아리기 어렵다면 이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은 이보다 더 크실 것이니 어찌 볼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그럴 듯한 이유가 된다고 감히 생각이라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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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8: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고 (행 18: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으라는 청을 거절하고 (행 18:21) 작별하며 말하기를,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행 18: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행 18: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였다.
(행 18:24) '알렉산드리아' 태생의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이로서 (행 18:25) 일찍 주님의 도(道)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님께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다. (행 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말해 주었다.
(행 18: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므로 형제들이 그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는데, 그가 가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게 된 이들에게 적잖은 유익을 주니 (행 18: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대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었다.
'에베소'에서 만난 제자들
(행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행 19:2) "여러분이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물으니, 말하기를 "아니다.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다" 하므로, (행 19:3) '바울'이 말하기를,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기를, "'요한'의 세례라" 하였다. (행 19:4) 이에 '바울'이 말하기를,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는데 이 곧 예수님이라" 하니 (행 19:5) 그들이 듣고 주(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이방언(異邦言, 다른 나라 또는 민족의 언어)도 하고 예언도 하였는데 (행 19:7) 모두 열 두 사람쯤 되었다.
'에베소'에서 2년간 가르침
(행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3개월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고하는데 (행 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道, the Way)를 비방하니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행 19:10) 이같이 2년 동안을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다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행 19: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행 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 (행 19: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主)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말하기를,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로 내가 너희를 명한다" 하였다.
믿은 사람들이 자복(自服)하여 행한 일을 고함
(행 19: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행 19:15) 악귀가 대답하기를,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행 19: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압하여 이기니 그들이 상한 채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므로 (행 19: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그리스'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主)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행 19: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自服-저지른 죄를 자백하고 복종함)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행 19: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銀) 5만이나 되었다.
(행 19:20) 이와 같이 주님의 말씀이 힘이 있어 왕성하여 세력을 얻었다. (행 19: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로 계획하고 말하기를,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겠다" 하고 (행 19: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었다.
(행 19:23) 그 때쯤 되어 이 도(道, the Way)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행 19: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이[금, 은, 구리 따위의 세공을 업으로 하는 사람]가 '아데미'[女神]의 은감실(銀龕室-silver shrine; 신상[神像]을 두는 은으로 만든 함[函])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행 19:25)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말하기를,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행 19:26) 이 '바울'이 '에베소' 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다'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행 19:27)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殿閣-shrine)도 경시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 위엄도 떨어질까 염려된다" 하였다.
(행 19: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치기를, "위대하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행 19: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演劇場)으로 달려들어 가므로 (행 19: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행 19: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 가지 말라 권하였다.
(행 19:32)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였다. (행 19: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해명하려 하나 (행 19:34) 사람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위대하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2시간이나 하였다.
(행 19:35) 시의 사무원[city clerk]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말하기를,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위대한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행 19: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해야 할 것이다. (행 19:37) 전각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 왔으니 (행 19:38)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소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proconsuls]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행 19: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民會)에서 결단할 일이므로 (행 19: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행 19: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였다.
(행 20:1) 소요가 그치니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면(勸勉)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갔다. (행 20:2)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그리스'에 이르러 (행 20:3) 거기 3개월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행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이들은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고'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였다.
(행 20: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행 20: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7일을 머물렀다. (행 2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 때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니 (행 20:8)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행 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므로 졸음을 이기지 못해 3층 누(樓)에서 떨어지므로 일으켜 보니 죽어 있었다.
(행 20: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기를,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행 20: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났다. (행 20:12)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다.
(행 20: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행선하니 이는 자기가 도보로 가고자 하여 이렇게 정해 준 것이었다. (행 20: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올리고 '미둘레네'에 가 (행 20: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리고 또 그 다음날 '밀레도'에 당도했다.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었다. (행 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행 20:18) 왔으므로 그들에게 말하기를,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여러분도 아는 바니 (행 20: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님을 섬긴 것과 (행 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행 20:21) '유대'인과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다.
(행 20: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혹은 성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한다. (행 20:23) 오직 성령께서 각 도시에서 내게 증언하시기를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主) 예수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
(행 20: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을 안다. (행 20: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 (행 20: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주의하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여러분으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 (행 20: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행 20: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니, (행 20: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스스로를 일깨워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님과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셔서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이들 가운데 [하나님의] 상속을 받게 하실 것이다. (행 20: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행 20:34) 여러분이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행 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으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主) 예수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행 20: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들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행 20: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행 20: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였다.
(행 21: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행선(行船)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 (행 21: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행 21: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었다. (행 21: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7일간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 가지 말라 하였다.
(행 21:5)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 때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니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행 21: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행 21:7) '두로'로부터 수로(水路)를 따라 줄곧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행 21: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물렀다. (행 21: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서 예언을 하는 이들이었다.
(행 21:10) 여러 날 있는데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행 21:11)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의 말씀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줄 것이다' 하셨다" 하니 (행 21: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행 21:13) '바울'이 대답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主)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 하며 (행 21:14)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고 그쳤다.
(행 21:15) 이 여러 날 후에 행장(行裝)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행 21: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고자 함이었다. (행 21:17) '예루살렘'에 이르자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므로 (행 21: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었다.
(행 21: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보고하니 (행 21: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말하기를,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이들로서 (행 21:21) 그대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기를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모세의 ]규례를 따르지 말라' 한다고 그들이 들었다.
(행 21:22) "그러니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을 것이니 (행 21:23)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 즉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행 21: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潔禮)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다. (행 21:25) 주님을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다" 하니, (행 21: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물을 드릴 때까지의 결례 만기(滿期)를 알렸다.
(행 21:27) 그 7일이 거의 차니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행 21:28) 외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그리스' 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행 21: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었다.
(행 21: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내어 나가니 성문(城門)들이 곧 닫혔다. (행 21: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千夫長-'예루살렘' 치안을 담당한 '로마'군의 천명으로 구성된 군대의 부대장)에게 들리므로 (행 21:32)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百夫長)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므로 (행 21: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나 (행 21: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외치므로, 천부장이 소동을 일으킨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군대의]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였다.
(행 21:35)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행 21: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었다. (행 21:37)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하니, "네가 '그리스' 말을 아느냐? (행 21: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4,000의 자객(刺客)을 거느리고 광야로 들어간 그 '이집트'인이 아니냐?" 하였다.
(행 21:39)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유대'인으로 소도시가 아닌 '길리기아' '다소' 성(城)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행 21:40) 천부장이 허락하므로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기를, (행 22:1) "부형들 여러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였다.
(행 22:2) 그들이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하므로 이어 말하기를, (행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도시]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여러분 모든 이들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이다. [註-여기서 나머지 누락된 부분은 이미 앞의 항목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로 옮겨 놓은 바 있는 '사울'의 회개에 대한 내용이므로 중복되지 않도록 생략하였음).
(행 22: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행 22:18) 보니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다' 하시므로 (행 22: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제가 주님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행 22:20) 또 주님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제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압니다" 하니, (행 22:21) 나더러 또 이르시기를,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낼 것이다' 하셨다".
(행 22:22) 이 말 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말하기를,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다" 하고 (행 22: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행 22: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하였다. (행 22:25) 이에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말하기를, "너희가 '로마' 사람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행 22: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시렵니까? 이는 '로마'사람입니다" 하니 (행 22: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기를,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바울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행 22:28) 천부장이 대답하기를,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태생이 그렇다" 하니 (행 22: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였다.
(행 22:30)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고소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의 앞에 세웠다. (행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말하기를, "여러분 형제들, 오늘날까지 내가 매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 하니 (행 23: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행 23:3) '바울'이 말하기를,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그대를 치실 것이다. 그대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행 23: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행 23:5) '바울'이 말하기를, "형제들,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했다. 기록하기를,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치 말라'고 했다" 하였다.
(행 23: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파 사람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파 사람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말하기를, "여러분 형제들, 나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또 '바리새'파 사람의 아들로서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는다". (행 23:7) 그 말을 한즉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뉘니 (행 23:8) 이는 '사두개'파 사람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파 사람은 다 있다 함이었다.
(행 23:9) 크게 논쟁이 일어날 때 '바리새'파 사람 편에서 몇 율법학자가 일어나 다투어 말하기를,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행 23:10) 큰 분쟁이 생기므로, 천부장이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였다.
(행 23:11)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기를,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할 것이다" 하셨다. (행 23:12) 날이 새니 '유대'인들이 결단(結團)하고 맹세하기를,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말자" 하니 (행 23:13) 여기에 가입한 자가 40 여명이었다. (행 23:14) 이들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기를,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행 23:15) 이제 여러분들께서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볼 양으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여러분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십시오.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습니다" 했다.
(행 23: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고하므로 (행 23: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말하기를,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행 23: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말하기를,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합니다" 하므로 (행 23:19)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기를,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행 23:20) 대답하기를,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행 23: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십시오.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40 여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립니다" 하니 (행 23: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기를,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고 (행 23:23) 백부장 둘을 불러 말하기를, "밤 제3시(오후 9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200명과 기마대 70명과 창군(槍軍) 200명을 준비하라" 하고 (행 23: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낼 말(馬)을 준비하라 명하며 (행 23: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기록하기를, (행 23: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합니다. (행 23: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것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 구원하여다가 (행 23: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소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행 23:29) 고소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습니다. (행 23: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각하께로 보내며 또 고소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습니다" 하였다.
(행 23: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행 23:32) 이튿날 마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문으로 돌아 갔다. (행 23:33)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올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행 23: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領地) 사람이냐 물어 '갈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행 23:35) 말하기를, "너를 고소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을 것이다" 하고 '헤롯' 궁(宮)[註-본래 '헤롯'왕(B.C.37-A.D.4)이 자기의 권위를 떨친다고 '가이사랴'에도 건립했던 큰 궁전인데 후에는 '로마' 총독의 관저와 본영(本營)으로 사용되었음]에 그를 지키라 명하였다.
(행 24: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辯士)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였다. (행 24:2) '바울'을 부르니 '더둘로'가 고소하여 말하기를, (행 24:3) "'벨릭스' 각하,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先見)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하게 생각합니다. (행 24: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쭈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합니다. (행 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처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서 (행 24: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으니 (행 24:7)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행 24:8) 우리가 고소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습니다" 하니 (행 24:9) '유대'인들도 이에 동조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였다.
(행 24: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당신께서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이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합니다. (행 24:11) 당신께서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12일 밖에 못되었고 (행 24: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행 24:13) 이제 나를 고소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행 24:14) "그러나 이것은 당신께 고백할 것이니,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the Way]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행 24:15) 그들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 함이요 (행 24: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행 24:17) "여러 해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행 24:18) 그것을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행 24: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소하였을 것이요 (행 24: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해 주십시오.
(행 24: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입니다" 하니 (행 24:22) '벨릭스'가 이 도[Way]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말하기를,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 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할 것이다" 하고 (행 24:23) 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였다.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
(행 24: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를 믿음에 관한 것을 들으니 (행 24: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할 때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기를,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를 것이다" 하고 (행 24:26) 동시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였다.
(행 24:27) 2년을 지나자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었다. (행 25:1) '베스도'가 도임한 지 3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행 25: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 때 (행 25: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었다.
(행 25: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불원 떠나갈 것을 말하고 (행 25:5) 또 말하기를,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소하라" 하였다. (행 25: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8일 내지 10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행 25:7) 그가 나오므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 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소하나 능히 증명하지 못하였다.
(행 25:8) '바울'이 변명하여 말하기를,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Caesar)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니 (행 25: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기를,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행 25:10)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습니다.
(행 25: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나에 대한 이 사람들의 고소가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합니다" 하므로, (행 25:12) '베스도'가 배석자(陪席者)들과 상의하고 말하기를,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였다.
(행 25:13) 수일 후에 '아그립바'왕[註-'헤롯'왕의 증손으로 사도 '야고보'를 죽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데 '로마' 제국을 등에 업고 발 빠르게 움직여 공을 세움으로 '로마'의 덕을 많이 보고 있었으므로 신임 총독이 올 때마다 인사차 들렀다)과 '버니게'(그의 누이)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샤랴'에 와서 (행 25:14)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행 25:15)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단죄해줄 것을 청하기에 (행 25:16) 내가 대답하기를,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 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다' 하였다. (행 25:17)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므로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 왔으나 (행 25:18)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행 25: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의 송사뿐이라 (행 25:20)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査實)할지 의심이 나서 '바울'에게 묻기를,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행 25:21)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두라 명하였다" 하니 (행 25:22)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말하기를,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였다". '베스도'가 말하기를, "내일 들으시겠습니다" 하였다.
(행 25: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訊問所)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행 25:24) '베스도'가 말하기를, "'아그립바'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쳐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행 25:25)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호소한 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습니다. (행 25:26)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습니다. (행 25:27) 그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압니다" 하였다.
(행 26:1)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말하기를, "네 자신을 위한 변론을 네게 허락한다"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기를, (행 26:2) "'아그립바'왕이여, '유대'인의 송사에 관한 모든 것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됨을 다행히 여깁니다. (행 26:3) 특히 당신께서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입니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옵니다. (행 26: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행 26: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행 26: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행 26:7) 이 약속은 우리 열 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는 것입니다. (행 26: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십니까?" [註-여기서 나머지 누락된 부분은 이미 앞의 항목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로 옮겨 놓은바 있는 '사울'의 회개에 대한 내용이므로 중복되지 않도록 생략하였음).
(행 26:19) "'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역하지 아니하고 (행 26:20)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전파하는 까닭에 (행 26: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지만, (행 26: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될 것이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행 26:23) 곧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실 것이다' 함입니다" 하였다.
(행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니 '베스도'가 크게 소리치기를, "'바울'아, 네가 미쳤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행 26:25) '바울'이 말하기를, "'베스도' 각하,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합니다. (행 26: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오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습니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닙니다. (행 26:27) '아그립바'왕이시여, 선지자를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 (행 26: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말하기를,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한다". (행 26:29) '바울'이 말하기를, "말이 적으나 많으나 전하(殿下)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소원합니다" 하였다.
(행 26: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아그립바의 누이]'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행 26:31) 물러가 서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였다. (행 26: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방면할 수 있을 뻔했다" 하였다.
(행 27:1) 우리의 배 타고 '이탈리아'로 갈 일이 작정되자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Augustus) 대(隊)의 '율리오'란 백부장에게 맡기니 (행 27: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 때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였다.
(행 27: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음을 허락하더니 (행 27: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름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행 27: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러 (행 27:6) 거기서 백부장이 '이탈리아'로 가려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였으나, (행 27: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치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행 27: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美港)"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성(城)에서 가까웠다.
(행 27:9) 여러 날이 걸려 금식(禁食)하는 절기(節氣)[註-유대인의 절기, 여기서 이를 언급한 것은 그런 절기에 해당되는 때가 바로 10월임을 밝히기 위한 것이니 즉 9월 중순 후에는 지중해 연안 항해가 위험했고 그 한 달 후에는 항해 자체가 불가능했다]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하므로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행 27:10) 말하기를, "여러분, 내가 보니 이 번 행선이 하물(荷物)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을 것이다" 하나 (행 27: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다.
(행 27:12) 그 항구가 과동(過冬)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이들이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로서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다. (행 27:13) 남풍이 순하게 부니 그들이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행 27:14)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강력한 태풍 이름]라는 광풍이 대작하였다.
(행 27: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행 27: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룻배[돛을 달지 않은 작은 배로 큰 배 뒤를 따라가는데 구명정 역할을 하는 것]를 잡아 (행 27: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암초와 모래밭이 많아 위험한 만(灣), '그레데' 서남방에 위치]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는데, (행 27: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에는 선원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렸고 (행 27:19)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어 버렸다.
(행 27:20)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니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다. (행 27: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므로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여러분,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다. (행 27:22) 그러나 내가 여러분을 권하니 이제는 안심하라. 여러분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일 것이다. (행 27: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使者, 천사)가 어제 밤 내 곁에 서서 말하기를, (행 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맡기셨다" 하였으니 (행 27:25) 그러므로 여러분,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나님을 믿는다. (행 27:26)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릴 것이다" 하였다.
(행 27:27) 14일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 저리 쫓겨 가다가 밤중쯤 되어 선원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 짐작하고 (행 27:28) 물을 재어보니 20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15 길이어서 (행 27: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는데, (행 27:30) 선원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으니 (행 27: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당신네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행 27:32) 이에 군인들이 거룻배의 로프를 끊어 떼어 버렸다.
(행 27:33) 날이 새어갈 때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고 권하며 말하기를, "여러분이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14일인즉 (행 27:34) 음식을 먹으라고 내가 간곡히 부탁한다. 이것이 여러분의 건강을 위함이요 여러분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고 (행 27: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니 (행 27: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는데 (행 27:37) 배에 있는 우리가 전부 276인이었다.
(행 27: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행 27:39) 날이 새자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는데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행 27: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의 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행 27: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거니 이물(船首)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배의 뒷부분)은 큰 물결에 깨어져가니 (행 27:42) 군인들은 죄수들이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행 27: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 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행 27: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었다.
(행 28: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알고 보니 그 섬은 '멜리데'(Malta)라 하였다. (행 28:2)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므로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였다. (행 28:3) '바울'이 한 뭇나무[단으로 묶은 땔감]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으므로 (행 28:4) 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기를,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公義)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다" 하였으나 (행 28: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니 조금도 상함이 없었다.
(행 28:6)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으나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기를, "신(神)이라" 하였다. (행 28:7)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으므로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행 28: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으므로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니 (행 28: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행 28: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려 주었다.
(행 28:11)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의 이물(船頭)을 장식한 기호(記號)는 쌍둥이 신(神) '카스토' '폴룩스'[Castor and Pollux]였다. (행 28: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행 28: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렀다. (행 28:14) 거기서 [믿는]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일주간을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갔다.
(행 28:15)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the Forum of Appius]과 삼관(三館, the Three Taverns)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 (행 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였다.
(행 28: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말하기를, "여러분 형제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례(規例)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도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가 되었으나, (행 28: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지만 (행 28: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다.
(행 28:20) "이러므로 여러분을 만나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所望, 희망하는 바)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다". (행 28:21)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유대'에서 그대에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그대에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다. (행 28:22) 이에 우리가 그대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派)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였다.
(행 28:23) 그들이 일자를 정하고 그의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님의 일로 권하였다. (행 28: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행 28: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써 마무리 지어 말하기를,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다. (행 28:26) 기록되기를,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한다. (행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라'고 했으니 (행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그들은 또한 들을 것이다" 하였다.
(행 28:29) {없음} (행 28:30) '바울'이 2년을 고스란히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행 28: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
요한의 계시록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啓示)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으로서,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다. (계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기록하여 증언하고 있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으니 때가 가까움이다.
(계 1:4)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의 일곱 영과 (계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한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왕(우리말 번역과 일부 영역은 "나라"로 번역하고 있으나 흠정영역은 "왕"으로 번역하고 있다)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으시기를. 아멘.
(계 1:7) 보라,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哀哭)할 것이니 정녕 그러할 것이다. 아멘. (계 1:8) 주 하나님의 말씀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다" 하셨다. (계 1:9) 나 '요한'은 여러분의 형제요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증언을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 1:10) 주님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계 1:11) "네가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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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주님이 날"이라는 말이 신약 성경에 단 한번 나온다. 어떤 날일까. 주님의 날로서 특별히 기념할 만한 그런 날이 있는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함으로써 그 죽으심을 세상에 전하는 의미로는 우리가 교회로서 모일 때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것이고 이를 주님은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이와 부합되게 주님의 날로서 기념할 때는 주님의 다시 살아나심을 의미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부활하신 날을 주님의 날로 정하는 것은 합당하다.
그러나 이 날을 그 죽으심을 의미하는 것처럼 기념하여 지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은 없다. 지킨다는 것은 모일 때에 반드시 빠짐없이 그 의식을 거행한다는 의미이다. 그 죽으심은, 그 "피로 세우신 새 언약"(눅 22:20)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므로 그 피와 더불어 그 살을 먹는 의미가 되는(요 6:55,56) 것은 피는 그 육체가 죽음을 통해 망가짐으로써 쏟아져 나오(요한 사도는 이를 강조했다-요 19:34,35/요일 5:6,8)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피와 살을 상징하는 것으로써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것이므로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나, 그의 다시 살으심을 기념하는 것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이 없고, 그의 살으심은 우리 역시 그와 함께 살아나 산 자로서 활동하는 것으로써 충분한 의미가 되므로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처럼 지키는 그런 성질의 것은 전연 아닌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목적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제대로 인정하여 하나님께로 돌리고 드린다는 의미이니 즉 그 날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오실 실체에 대한 그림자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로서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니,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으므로 우리의 혼과 몸만 아니라(고전 6:20) 우리의 삶 그래서 우리의 모든 날과 시간이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소유인 것이다. 이것이 "산 자로서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고후 5:15) 의미다.
그래서 바울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든 또는 모든 날을 같게 여기든 특정한 날을 중히 여기든 않든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롬 14:5) 것을 엄중히 가르친 것이다. 그 이유를 들어,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소유)이라"(:7,8)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을 유대인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처럼 지켜도 그 날 하루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날 또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날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일주 7일 1년 365일 모두가 하나님의 날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날들로 인식하고 그렇게 살아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고후 5:15) 하며, 그렇게 특정일을 안식일처럼 지키지 않고 매일을 안식일처럼 여겨 안식일로서 사는 이들 역시 같은 자세임을 강조한 것이다.
만일 전자의 경우 특정일을 그렇게 지킨다고 하여 여타의 날은 유대인이 그러한 것처럼 자기를 위해 살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무의미한 종교 의식으로만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종교 의식은 마치 불교에서 방생(放生) 법회를 하는 것과 같은 무의미인 것이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을 해치지 말고 자비심으로 방생하라" 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하면 뒷날 반드시 복을 받는 선근의 씨를 이룬다 함인데, 이것이 무의미한 한낱 종교 의식이 되는 것은 동물만 아니라 식물도 엄연한 "생명 있는 모든 것"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식물도 동물과 똑같이 공포에 떨고 희열을 느끼는 등 감정의 기복이 있음은 오늘날 과학이 증명하고 있는 바다. 똑같은 생명체이지만 오직 정(靜)과 동(動)의 대립(대칭) 관념에서 나누어져 있을 뿐이다. 아무리 육식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입 속으로 날마다 들어가는 것은 식물의 주검들이니 전자에 속한 "생명체를 해친" 결과물이다. 식물은 살생(殺生)하면서 동물들을 방생한다고 해서 "자비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니 이렇게 황당한 모순이 되기 때문에 무의미한 한낱 종교 의식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 바로 이 뜻으로 "주님"(주인, 소유주)이라 부르면서도 일주 가운데 하루만 하나님의 것이라 하니, 그러면 나머지는 나의 날과 시간 즉 나의 소유로서 내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위에 예를 든 방생 법회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웃음거리가 아닌가. 주님의 날로서 그리스도의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것은 좋으나 이를 법식화(法式化)하여 지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인데 별도로 건물을 지어 올려 "하나님 계시는 성전"이라 부르는 것과 똑같은 무의미다. 이렇게 모순이 되어 서로 충돌하면 결국 흘러 가는 방향은 종교일 수밖에 없고 이런 화석화(化石化)한 형식에서는 실질로서의 성령의 역사(役事)가 있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종교는 원래부터 속이는 자 사단이 인간을 기만하여 만들어놓은 일종의 웃음거리다. 속아 넘어간 대로 그것을 진실처럼 믿고 움직이고 있으니 속이는 자로서는 얼마나 재미있어 할 일인가.
교회로서 모이는 것은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모이는 형식을 취한다.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 3:12,13) 한 그대로다. 이 경고에서 우리에게 거울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 "광야 교회"(행 7:38)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히 3:14-4:2). 성령 강림 직후 초대 교회는 매일 모였다. 당시 교회는 갓 시작한 터라 그렇다면 오늘날은 전무후무한 사단의 최후발악적 속임수 앞에 놓여 있으므로 사정은 아무 것도 더 나아진 것은 없다.
모든 것의 핵심은 다음 말씀에 있으니 즉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는 것이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므로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 것이다"(요 6:56,57) 하심이다. 여기서 요체가 되는 것은 "보내심 받음",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 "인하여 사는 것" 등이다. 여기에 덧붙여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니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63] 하셨다.
이 말씀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는 말씀을 듣고 많은 제자들이 "이 말씀은 어렵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했을 때 주신 대답이다. 한마디로 제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부인에 대하여 반발한 것이다. 왜냐면 그러한 제자들에게 지금까지의 세상은 시종일관 자기중심이었기 때문에 자기 부인은 마치 사형선고와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글에 '저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을 것이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온다"(:45) 하신 것이다.
무엇을 배우느냐 하면, 사단에게 가려져 있는 어두움의 실상 즉 아담의 범죄 이후 죽음 일색으로서의[롬 5:12] 현실에 눈 뜨는 것을 가리킴이다. 죽음인데도 생명인 것처럼 착각하니 앞서의 지적대로 자기 부인의 생명의 원리 말씀을 듣고는 "어렵다, 누가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어두움을 실감하지 못하면 즉 어두움을 빛으로 착각하고 있으면 정작 빛이 나타날 때 그 빛을 빛으로 인식하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죽음 가운데 있지 않는 한 생명으로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병든 자라야 의사가 필요하다 하신 말씀 그대로다. 목 마른 자가 물을 찾는 법이니,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의미가 그러하다. 이는 한시적인 이 자연계에 속한 목숨을 영원토록 연장시켜 보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경우 한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과의 대립 개념이지만,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죽음과 생명으로서의 상반된 개념으로 분류된 그 죽음에 우리가 속해 있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의 차이일 뿐 생명으로 여기는 것은 같다. 생명은 생명의 법대로 사는 것을 말함인데 지금까지의 삶(이것을 삶이라 또는 생명이라 여긴다면)은 자기중심 일변도인데 그렇다면 자기중심으로 살아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의 많은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다시는 함께 하지 않고 주님을 떠나가 버린 이유가 이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단지 영생에만 욕심이 나서 그리스도께 나온 이들은 그리스도의 실상은 보지 못하고 오직 허상만을 붙들고 구원은 받지 못했으면서도 구원 받아 천국 가는 것인 양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거의 전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현재의 상황 자체를 모두 죽음으로 바로 보는 고로 자기중심이 주재하는 세상인지라 이것이 죽음이라면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고후 5:15) 것 자체가 죽음인 줄 또한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중심'이 죽음이라면 그러면 생명은 당연히 '자기 부인'이다.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15) 것이 자기 부인이다. 이 자기 부인의 근거를 이상 말씀으로써 주님은 명확히 밝히신 것이니 곧 내가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아"(요 20:21) "그 살과 피를 참된 양식과 음료로 삼음"으로써 그리스도로 "인하여" 내가 사는 현재의 나의 구원된 모습인 것이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께서 둘이 하나로 계심과 같은 이치로 된 것으로서 나는 따라서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있음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영에 있지 않고 육체에 있으므로(즉 신령한 몸으로 있지 않고 자연계에 속한 몸이 되어 있어) 육체를 따라 이 귀중한 생명의 원리를 설명할 수밖에 없어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고 하신 것이다. 이는 우리 위하신 그리스도의 죽으심만을 나타낸 것이라기보다 그 이전의 근본적인 의미를 말씀하심이니 다시 말해 자기의 존재 자체를 선물로서 상대에게 주는 즉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와 하나를 이루고 있는 상대를 위해서만 사는(고후 5:15) 것을 가리킴이다.
바로 이 근본적인 의미의 생명의 법질서를 따라 그리스도 친히 우리 위해 죽으신 것이요 또한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살아나셔야 산 자로서 나와 하나가 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죽으심은 내가 이미 죽은 자가 되어 있어 나와 하나되시기 위해 즉 나와 같은 모양이 되시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왜냐면 죽은 자로서는 무조건 일단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살아나시는 것이 목적이므로 이렇게 살아나기 위해서는 마땅히 죽음을 전제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신 것은(사 53:12) 이 죽음이 정상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결과물로서가 아니라 범죄함으로써 야기된 하나님의 창조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정상적인 것임을 입증함이다. 따라서 자연계에 속한 동물들과 같은 자연사가 아니라 죄인으로서의 형벌에 의한 죽음이어야 하므로 십자가 상에서의 저주 받은(갈 3:13) 죽음이셨던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 아담이시니, 우리가 아담의 육체를 물려받아 사람으로서의 몸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어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그리스도와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되어 있음은 당연하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된 모습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으로써 아버지를 인하여 산다고 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고 그 살을 먹음으로써 그리스도로 인하여 산다고 하셨다. 이런 관계를 가리켜 "내 안에 너희가 있고 너희 안에 내가 있다"(요 6:56) 하셨다. 이는 "아버지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아버지께서 계신다"(10:38) 하심과 똑같은 원리다. 그렇다면 내가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아 그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4:34) 것과 같은 뜻이다. 왜냐면 이것을 가리켜 "내가 먹을 양식"(:34)이라 하신 것이다.
곧 이 말씀은 아버지 친히 아들에게 대하여 바로 그러하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살을 그리고 그 피를 아들이 먹고 마시는 양식으로 제공하심이다. 그렇기에 아들은 아버지로 인하여 살고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것이니 이것이 생명과 사랑의 영원한 법질서인 것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양식임과 같으니 그래서 아버지로 인하여 산다고 하신 것이다.
이는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서 만유의 기본 원리인 삼위일체 법칙의 양면성이요 동시성이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먹을 양식이 친히 되어 주시어 그 살과 피를 내가 먹고 마심으로써 내가 생존하게 되는 것이니 내가 이렇게 먹고 마시는 "양식이 다름아닌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34)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하는 관계다. 갑이 을을 위하는 것이나 을이 갑을 위하는 것이나 동시에 나타내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이 을을 보낼 때에는 을을 보내었으니 갑 자기는 태평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낸 을 안에 있어 을을 통하여 을을 보낸 자기 뜻을 행함이다. 이것이 둘이 하나됨의 의미인 것이다. 을을 통해 갑 자신의 일을 한다 해도 실제는 그 일의 의미인즉 갑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을을 위함이다. 그러나 을은 을 자신의 일을 함이 아니라 갑의 일을 함이다. 같은 일을 두고서도 이와 같이 갑과 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갑은 을을 위해 일함이요 을은 갑을 위해 갑의 일을 함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실체이시고 아들께서는 그 형체(형상)이시라는 뜻이다(고후 4:4). 보낸다는 것은 실체의 나타남을 의미하는 고로 그 나타내는 모습은 형상의 몫이지 실체가 아니다. 즉 실체의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말씀"(요 1:1)이시라고도 하는 것이다. 형체 안에 실체가 있으니 실체를 떠나서는 형체가 있을 수 없음이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으나 아버지 친히 아들을 통해 그 모든 말씀을 하시고 그 모든 일을 행하신 것이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았으니 마찬가지 이치다. 이 형상과 실체는 머리와 몸과의 관계로도 표현된다. 이것이 바로 갑과 을의 둘이 하나 됨인 것이다. 때문에 형체와 실체는 하나이므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영원한 불가분성을 지닌다. 따라서 "나를 영접하는 이는 나를 보내신 이(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요 13:20)이라 하셨고 "나를 믿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너희가 하지 않는 것이 곧 내게 하지 않는 것"[마 25:45]이라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피조물을 만드실 때 살도록 만드신 것이므로 그렇게 살아 생존하여 삶을 유지하기 위한 일체의 일을 조물주 자신께서 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즉 피조물을 조물주께서 위하심이다. 따라서 피조물은 자기 자신을 위할 필요가 없고 오직 조물주께서 하라고 명하시는 그 뜻에 복종하는 것인데 이 복종은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조물주의 뜻대로 행하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차원인 것이다.
그래서 조물주께서 피조물의 생명이시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골 3:4) 계심도 그런 차원이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우리를 위하시니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지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님이다. 고로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정상적으로 사는 법을 따라 사는 정상 단계로 복귀되어 있는 것이다. 항상 복종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구원을 이룸도(빌 2:12) 다름아닌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룸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이러하지 못하면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하는 관계에서 을이 갑을 위하지 않으므로 갑 역시 을을 위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이 둘의 하나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까닭에 그리고 우리 구원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하나됨에 있으므로 내가 주님을 위하지 않으면 주님도 나를 위하실 수 없는지라 내가 주님을 부인함을 따라 주님도 나를 부인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눅 12:8,9/마 10:32/딤후 2:12). 그리 되면 구원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기에 말 그대로 나는 "내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야"(빌 2:12) 함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성경은 그와 같이 경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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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계 1:13) 촛대 사이에 인자(人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 1: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계 1: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놋쇠(brass)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계 1: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劍)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았다.
(계 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니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계 1:18) 곧 산 자다. 내가 전에 죽었었다. 보라.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하데스'(저승)의 열쇠를 가졌으니 (계 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계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다.
(계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使者)에게 [이렇게] 편지하라.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말씀하셨다. (계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계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길 것이다. (계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단'(Nicolaitans-도덕율 폐기론자들) 사람들의 행위를 미워하고 있다. 나도 이것을 미워한다.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할 것이다.
(계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편지하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말씀하셨다. (계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니 실상은 네가 부유한 자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會)다.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보라,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獄)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할 것이니 너희가 10일 동안 환난을 받을 것이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줄 것이다.
(계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
(계 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이가 말씀하셨다. (계 2: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니 거기는 사단의 위(位)가 있는 데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 (계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으니 거기 네게 '발람[구약 성경의 인물]'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다. (계 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단'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계 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울 것이다.
(계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으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
(계 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놋쇠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하셨다. (계 2:19) "내가 네 행함(works)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 (계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다. (계 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한다. (계 2:22) 보라. 내가 그를 침상(寢牀)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계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일 것이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 것이다.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줄 것이다.
(계 2: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그릇된]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다. (계 2: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계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줄 것이니 (계 2:27) 그가 철장(鐵杖)을 가지고 저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할 것이다.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다. (계 2: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줄 것이다. (계 2:29)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계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씀하셨다. "내가 네 행위를 아니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다. (계 3: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으니 (계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스스로를 일깨우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임할 것이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다. (계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이다. (계 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셔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말씀하셨다. (계 3:8)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 (계 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할 것이다. (계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할 것이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다. (계 3:11) 내가 속히 임할 것이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할 것이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도시(城)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할 것이다. (계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계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말씀하셨다. (계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 하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한다.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칠 것이다.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다.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유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20)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을 것이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할 것이다. (계 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4 생물과 12 장로들
(계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말씀하시기를,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일 것이다" 하셨다.
(계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계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았다. (계 4:4) 또 보좌에 둘려 24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24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다.
(계 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며, (계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 뒤에 눈이 가득하였다.
(계 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계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였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다" 하고 (계 4: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셔서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계 4:10) 24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께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말하기를, (계 4:11)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므로 만물이 주님의 뜻대로 있고 또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였다.
일곱 군데로 인봉된 책
(계 5:1) 내가 보니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印)으로 봉해져 있었다. (계 5:2) 또 보니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계 5: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었다. (계 5:4)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계 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기를,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獅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실 것이다" 하였다.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았다.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었다. (계 5:7)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셨다. (계 5:8) 책을 취하시니 네 생물과 24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하프(harp)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다.
(계 5:9) 새 노래를 노래하여 말하기를,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다. 일찍 죽임을 당하셔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 5: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왕(王), 흠정영역)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할 것이다" 하였다.
(계 5:11) 내가 또 보고 들으니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었다. (계 5:12)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하였다. (계 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와 바다 위,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말하기를,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리라" 하니 (계 5:14) 네 생물이 말하기를,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다.
각기 다른 모양의 네 말
(계 6:1)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 같이 말하기를, "오라!" 하는 것을 들었다. (계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였다.
(계 6: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기를, "오라!" 하더니 (계 6: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왔다.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고 있었다.
(계 6:5)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기를, "오라!" 하기에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지고 있었다. (계 6: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 하는 음성을 들으니 말하기를, "한 '데나리온[화폐 단위]'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였다.
(계 6:7) 네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네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기를, "오라!" 하는데 (계 6:8) 내가 보니 청황색 말이 나왔고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하데스'(저승)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땅 1/4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사람들을] 죽였다.
다섯째 인(印)을 떼시니
(계 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언(믿음의 고백)을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계 6:10) 큰 소리로 외치기를,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시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伸寃, 원통한 일을 풀어 줌)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렵니까?" 하니 (계 6: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들의 동료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셨다.
여섯째 인을 떼시니
(계 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coarse black cloth of hair, 결이 거친 검은 천으로서 머리에 쓰는 것)같이 검어지고 달 전체가 피 같이 되며 (계 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 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계 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지니 (계 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 모든 자유인이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계 6:16) 산과 바위에게 말하기를,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계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였다.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 서다
(계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였다. (계 7:2) 또 보니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印)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계 7:3)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였다.
(계 7: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4,000이니 (계 7:5)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12,000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12,000이요, 갓 지파 중에 12,000이요, (계 7:6) '아셀' 지파 중에 12,000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12,000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12,000이요, (계 7:7) '시므온' 지파 중에 12,000이요, '레위' 지파 중에 12,000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12,000이요, (계 7:8) '스블론' 지파 중에 12,000이요, '요셉' 지파 중에 12,000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12,000이다.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 7:10) 큰 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다" 하니 (계 7: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 7:12) 말하기를,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으시기를. 아멘" 하였다.
(계 7: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말하기를,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계 7: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님, 당신이 아시겠습니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 (계 7: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니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실 것이므로 (계 7:16) 그들이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 것이니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다".
일곱째 인을 떼시니
(계 8: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半) 시 동안쯤 고요하다가 (계 8:2) 내가 보니 하나님 앞에 시위해 서 있는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다. (계 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다. (계 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므로 (계 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니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났다.
일곱 천사 중 첫째 천사
(계 8:6)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였다. (계 8: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니 땅의 1/3이 타서 불살라지고 수목의 1/3도 타서 살라지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살라졌다.
둘째 천사
(계 8: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니 바다의 1/3이 피가 되고 (계 8: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1/3이 죽고 배들의 1/3이 깨어졌다.
셋째 천사
(계 8: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1/3과 여러 물 근원에 떨어지니 (계 8:11) 이 별 이름은 쓴 쑥(wormwood)이다. 물들의 1/3이 쑥이 되니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
넷째 천사
(계 8: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1/3과 달 1/3과 별들의 1/3이 타격을 입어 그 1/3이 어두워지니 낮 1/3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였다. (계 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소리로 말하기를,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다" 하였다.
다섯째 천사
(계 9: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데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無底坑, bottomless pit, 밑이 없는 구덩이)의 열쇠를 받아 있었다. (계 9:2)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furnace)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니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계 9:3) 또 메뚜기(locust) 떼가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니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scorpion)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고 있었다.
(계 9:4)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印)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셨다. (계 9: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5개월간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았다. (계 9: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할 것이다.
(계 9:7) 메뚜기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계 9: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teeth]는 사자의 이 같으며 (계 9:9) 또 철 흉갑(胸甲, 윗몸에 두르는 갑옷)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兵車, 戰車)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계 9: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5개월간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었다.
(계 9:11) 그들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bottomless pit)의 사자(使者)로서 '히브리' 언어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그리스[Greece]' 언어로 이름은 '아볼루온'(Apollyon)이었다.
(계 9:12)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를 것이다.
여섯째 천사
(계 9: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나님 앞 금단[golden altar] 네 뿔[horn, 단의 네 귀퉁이를 떠받치고 있는]에서 한 음성이 들리는데 (계 9:14)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니 (계 9:15) 네 천사가 놓였는데,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1/3을 죽이기로 준비한 자들이었다.
(계 9:16) 기마병(騎馬兵)의 수는 2억(億)으로 내가 들었다. (계 9:17) 이 같이 환상 중에 본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은 불빛과 자줏빛(jacinth)과 유황(brimstone) 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왔다.
(계 9:18) 이 세 재앙 곧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1/3이 죽임을 당하였다. (계 9:19)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였다.
(계 9: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계 9:21) 또 그 살인과 복술(卜術)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치 아니하였다.
(계 10: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계 10:2)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계 10:3) 사자의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였다. (계 10:4)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印封)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였다.
(계 10: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계 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말하기를,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니 (계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룰 것이다" 하였다.
(계 10: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기를,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계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하니 천사가 말하기를, "갖다 먹어버려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 것이다" 하였다. (계 10: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으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
(계 10: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언어[tongues]와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다.
(계 11: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계 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42개월간 짓밟을 것이다. (계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줄 것이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할 것이다" 하였다.
(계 11:4) 이는 이 땅의 주님 앞에 섰는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니 (계 11: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한즉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 것이므로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같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계 11:6) 그들이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칠 것이다.
(계 11: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계 11:8) 그들의 시체가 큰 도시[성] 길에 있을 것이니 그 도시[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다.
(계 11:9) 백성들과 족속과 각종 언어[tongues]와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3일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계 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낼 것이다" 하였다.
(계 11:11) 3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의 속에 들어가자 그들의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계 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였다.
(계 11:13) 그 시(時)에 큰 지진이 나서 성 1/10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7,000이었다.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렸다.
(계 11: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를 것이다.
일곱째 천사
(계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니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말하기를, "세상 나라가 우리 주님과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것이다" 하니 (계 11:16)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24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 11:17) 말하기를, "감사하옵니다,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하십니다. (계 11:18) 이방들이 분노하니 주님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보답하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입니다" 하였다.
(계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 궤[히 9:4]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었다. (계 12:1) 하늘에 크고 기이(奇異)한 일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었다. (계 12: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니 아파서 애써 부르짖었다.
(계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상(異象)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었다.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계 12:4) 그 꼬리가 하늘 별 1/3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려는데 (계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鐵杖)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였다.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갔다.
(계 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니 거기서 1,260일 동안 그 여자를 보양하기(to feed)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었다.
하늘의 전쟁
(계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使者)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때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계 12: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하므로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다.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어 쫓겼다.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말하기를,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讒訴-남을 헐뜯어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치는 것)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계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언하는 말을 인하여 그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계 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처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 것이다.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였다.
(계 12: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므로 (계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보양되니(to be nourished) (계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계 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님의 증언을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
(계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었다.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분수에 지나치게 함부로 행동하는 즉 자칭 "하나님이라" 하는) 이름들이 있었다.(계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다.
(계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니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계 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말하기를,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였다.
(계 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되게 말하는 입을 받고 또 42개월간 일할 권세를 받았다. (계 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居)하는 이들을 훼방하였다. (계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언어[tongues]와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 책에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이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게 될 것이다.
(계 13: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으라. (계 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다
(계 13:11) 내가 보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였다. (계 13:12)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다.
(계 13:13) 큰 이적을 행하는데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계 13: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기적을 행함으로써 땅에 거하는 이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이들에게 말하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였다.
짐승의 표를 받게 하다
(계 13: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였다. (계 13: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계 13:17) 누구든지 이 표 혹은 짐승의 이름 혹은 그 이름의 수(數)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였다. (계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이다.
(계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4,000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었다.
(계 14:2) 이에 하늘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는데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뇌성과도 같은데 그 들리는 소리는 하프(harp) 타는 자들의 그 하프 타는 것 같았다.
(계 14:3) 그들이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000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었다. (계 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였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이들이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이들이니 (계 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었다.
(계 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이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언어[tongues]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었다. (계 14:7) 그가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박두하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였다.
(계 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가며 말하기를,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다" 하였다.
(계 14:9)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계 14: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니 섞인 것이 없이[순수한] 부은 그 진노의 잔의 포도주다.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니 (계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갈 것이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 믿음을 지키는 자다.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기록하라. 이후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복이 있다" 하니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다.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다" 하셨다.
(계 14: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人子]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가지고 있었다. (계 14: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말하기를,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되어 땅에 곡식이 다 익었다" 하니 (계 14:16) 구름 위에 앉은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는데 곡식이 거두어졌다. [註-이 구름 위에 앉은 이를 그리스도를 그렇게 나타낸 것이라 보는 이도 있으나,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왔다고 했으므로 그 먼저 나타난 이가 천사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아닌 천사로 보고 위의 구절들을 약간 수정했다].
(계 14: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날카로운 낫을 가지고 있었다.
(계 14: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날카로운 낫 가진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말하기를, "네 날카로운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다" 하였다. (계 14: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포도주 틀을 밟아 포도즙을 내는 것)에 던지니 (계 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는데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까지 닿았고 1600 '스다디온'(길이를 재는 단위로서 1 '스다디온'은 우리 1리의 절반 곧 184.85m)에 퍼졌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
(계 15:1) 또 하늘에 크고 기이한 다른 이적(異蹟)이 보이니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는데 곧 마지막 재앙이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칠 것이다.
(계 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數)를 이기고 벗어난 이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하프를 가지고 (계 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말하기를,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십니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님의 길이 의롭고 참되십니다. (계 15:4) 주님, 누가 주님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오직 주님만 거룩하십니다. 주님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니 만국이 와서 주님께 경배할 것입니다" 하였다.
[註-"오직 주님만 거룩하시다"는 것은 상대적인 의미로서 다시 말하면 이렇게 거룩하신 주님께 속한 우리는 거룩하나 속하지 않는 그 누구든 거룩하지 않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 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 거룩하게 될 것을 성경은 명령하는 것이다(엡 4:24/벧전 1:15,16/히 12:14/고후 7:1)].
(계 15:5) 이 일 후에 내가 또 보니 하늘에 '증언 장막의 성전'(the temple of the tabernacle of the testimony)이 열리며 (계 15: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들이 맑고 빛난 세마포(細麻布, 삼 껍질에서 뽑아낸 가는 실로 곱게 짠 베를 우리나라에서는 의미하나 그런 종류로 알아들으면 될 터)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성전으로부터 나오니, (계 15: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계 15: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어 일곱 천사들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었다.
(계 16: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였다.
첫째 천사
(계 16:2)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니 악하고 독한 헌 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이들에게 났다.
둘째 천사
(계 16:3)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니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어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었다.
셋째 천사
(계 16:4)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니 피가 되었다. (계 16: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말하기를,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시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십니다. (계 16:6)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로 피를 마시게 하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였다.
(계 16: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십니다" 하였다.
넷째 천사
(계 16:8)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니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는데 (계 16:9) 사람들이 그 열로 크게 태워지므로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님께 돌리지 아니하였다.
다섯째 천사
(계 16: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계 16:11) 아픈 것과 종기(腫氣)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였다.
여섯째 천사
(계 16: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니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
(계 16:13) 또 내가 보니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데 (계 16:14) 그들은 귀신들[혹은 마귀들, devils; 가룟 유다를 "마귀(a devil)라고 하신 점 참고-요 6:70]의 영들로서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았다.
(계 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올 것이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
(계 16:16) 세 영들이 '히브리' 언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다.
일곱째 천사
(계 16:17)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니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와 말씀하시기를, "되었다" 하시니 (계 16:18)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다.
(계 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는데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니 (계 16: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었다.
(계 16:21) 또 무게가 한 '달란트'(약 34kg, 57근)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므로 사람들이 그 우박 재해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었다.
음녀
(계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기를,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淫女)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일 것이다. (계 17:2)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계 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갔다.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계 17:4) 그 여자는 자줏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였다.
(계 17: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Mystery)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다. (계 17:6) 또 내가 보니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여 있으므로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하게 여기고 크게 기이하게 여기니
음녀에 대한 천사의 설명
(계 17:7) 천사가 말하기를, "왜 기이하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말해 주겠다. (계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계 17: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계 17:10) 또 일곱 왕이다.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자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할 것이다. (계 17:11)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다. 그가 멸망으로 들어갈 것이다.
(계 17: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을 것이다. (계 17:13)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줄 것이다. (계 17:14) 그들이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이들 곧 부르심을 입고 택하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길 것이다" 하였다.
(계 17: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언어[tongues]들이다. (계 17: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를 것이다. (계 17:17)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셔서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다. (계 17:18) 또 네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城, 도시)이다" 하였다.
(계 18: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해졌다. (계 18:2) 힘센 음성으로 외쳐 말하기를,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성(城)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 (계 18:3) 진노의[진노를 촉발시키는] 그 음행의 포도를 인하여 만국이 취했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다"고 하였다.
(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 18: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시므로 (계 18: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계 18: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는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女皇)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니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하니 (계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를 것인즉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다.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질 것이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이심이다. (계 18: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계 18: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말하기를, "화 있다. 화 있다. 큰 도시[성], 견고한 도시[성] '바벨론'이여, 일시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할 것이다. (계 18: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다. (계 18: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들이요 값진 나무와 놋(청동)과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물건이요 (계 18: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다.
(계 18:14)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the fruit]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계 18:15)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들 상품의[상품을 거래하던] 상인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계 18:16) 말하기를, "화 있다. 화 있다. 큰 도시[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있었는데 (계 18:17) 그러한 부(富)가 일시에 망하였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계 18:18)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말하기를, "이 큰 성[city]과 같은 성[city]이 어디 있었느냐?" 하며 (계 18: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말하기를, "화 있다. 화 있다. 이 큰 성[city]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그대의 보배로운 상품들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에 망하였다. (계 18:20) 하늘과 성도들[saints]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여,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그대들을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내리셨음이다[그대들의 원수를 갚으셨다]" 하였다.
(계 18:21) 이에 힘센 한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말하기를, "큰 성[city]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할 것이다. (계 18:22) 또 하프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musicians]와 퉁소 부는 자[flutists]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craftsman of any craft]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millstone] 소리가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계 18: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할 것이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the great men of the earth]이다. 네 점술(占述)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다. (계 18: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다"고 하였다.
(계 19: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말하기를,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다. (계 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므로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harlot]를 심판하셔서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다" 하고 (계 19:3) 두번째 말하기를,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고 있었다.
(계 19:4) 또 24 장로와 4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말하기를,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셨다.
(계 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말하기를, "할렐루야, 주(主)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께서 통치하신다. (계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자.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 19:8) 그에게 허락하셔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saints]의 옳은 행실이다" 하였다.
(계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다" 하고 또 내게 말하기를,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다" 하기로 (계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님의 증언[testimony]은 대언(代言)의 영[the spirit of prophecy]이다" 하였다.
(계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는데 그 이름은 "신실"(Faithful)과 "진실"(True)이었다. 그가 공의(公義, righteousness)로 심판하며 싸우신다. (계 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이가 없고 (계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한다.
(계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랐다. (계 19:15) 그의 입에서 만국을 치기 위한 날카로운 검[sword]이 나오며 친히 그들을 철장[a rod of iron]으로 다스리겠고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신다. (계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이름 쓴 것이 있다.
(계 19: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말하기를,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계 19:18)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힘 있는 자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였다.
(계 19:19) 또 내가 보니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계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기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기적으로 미혹하던 자로서 이 둘이 산 채로 유황 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계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니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 불리었다.
(계 20:1) 또 내가 보니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계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다. 잡아 1,000 년 동안 결박하여 (계 20: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1,000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일 것이다.
(계 20:4) 또 보좌들이 보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고 있었다. 또 보니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이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1,000년 동안 왕 노릇하니 (계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1,000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였다} 이는 첫째 부활이다.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1,000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할 것이다.
(계 20:7) 1,000년이 차니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계 20: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일 것이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 것이다. (계 20: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陣)과 사랑하시는 성(城, city)을 두르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소멸하고 (계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계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온데 없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 책으로서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하데스'(저승)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니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 20:14) 사망과 '하데스'(저승)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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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생명 책 외에 다른 책들이 펴져 있어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 이는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게 된다.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 12:36,37) 하신 말씀 그대로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않다"[엡 5:4]는 경고도 그러하고,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했고,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다"[벧전 4:11] 함과 같다.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대로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안믿는 것으로만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면 생명 책 하나만으로 충분하지 다른 책들이 심판 날에 펴져 있어 "그 책들에 적힌 대로" 즉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니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 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이기주의로 나가(self-seeking, selfish: 즉 자기 중심임을 말함이니, "당을 짓는다"라는 우리말 번역이나 "contentious"라 한 흠정역은 모두 오역)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노(怒)와 분(忿)으로 하신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을 것"(롬 2:6-9)이라 경고한 바와 같다.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와 하나됨에 있어 그리스도는 내 안에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안에, 그리스도 안에 아버지께서 계시어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하심과 같고,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으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한다"[5:19] 하신 바로 그 이치를 우리 역시 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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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0:15)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졌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때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았다.
(계 21:2) 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城, city)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았다.
(계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므로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 것이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다" 하셨다.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루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다.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 없이 줄 것이니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 받을 것이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the cowardly, 소심하고 비겁한 겁쟁이]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할 것이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계 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았던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기를,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일 것이다" 하고 (계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城)[도시, city] '예루살렘'을 보이는데 (계 21: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도시]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jasper)과 수정같이 맑았다.
(계 21:12) 크고 높은 성벽이 있고 12 문이 있는데 문에 12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12 지파의 이름들이었다. (계 21: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계 21:14) 그 성에 성곽은 12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12 사도의 12 이름이 있었다. [註-이스라엘 자손 12지파니 12사도 등은 모든 구원된 사람들을 상징하는 이름들이고 반드시 그 12지파, 12사도에게만 해당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계 21:15) 내게 말하는 이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지고 있었다. (계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으므로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12,000 '스다디온'이요 길이, 폭, 높이가 같았다. (계 21:17) 그 성벽을 척량하니 144 '규빗'(1 '규빗'은 45.6cm 곧 1.5자)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다.
(계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았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았다. (계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 둘째는 사파이어(sapphire), 세째는 옥수(chalcedony), 네째는 에메랄드(an emerald), (계 21:20) 다섯째는 홍마노(sardonyx), 여섯째는 홍보석(sardius), 일곱째는 황옥(chrysolite), 여덟째는 녹옥(beryl), 아홉째는 담황옥(topaz), 열째는 비취옥(chrysoprasus), 열 한째는 청옥(jacinth), 열 두째는 자정(amethyst)이었다.
(계 21: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었다. (계 21:22)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다. (계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빛이 되심이다.
(계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올 것이다. (계 21: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할 것이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다.
(계 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 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다.
(계 22: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 22:2) 길 가운데로 흘렀다.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었다.
(계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을 것이다. (계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취심이다.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할 것이다.
(계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 하였다. 주님 곧 선지자들의 영들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정녕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다.
(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올 것이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을 것이다" 하셨다.
(계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계 22: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였다. (계 22:10) 또 내게 말하기를,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印封)하지 말라. 때가 가까웠다. (계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다.
(계 22:12)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속히 올 것이니 내가 줄 상[reward]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다" 하셨다.
(계 22:14) 그 옷을 빨래하는(흠정영역에는,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을 것임이다. (계 22:15) 개들[註-마 7:6/빌 3:2 등을 참작해볼 때 말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는 '사이비'를 믿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즉 순종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가리킨다]과 점술하는 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을 것이다.
(계 22:16) 말씀하시기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다" 하셨다.
(계 22:17) 성령께서 신부와 더불어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신다. 또 듣는 자도 "오라!" 말하라.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계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언하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다.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속히 올 것이다" 하신다. 아멘. 주(主) 예수님, 오십시오.
(계 22:21) 주(主) 예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으시기를. 아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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