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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 로마서 (2)

Tayseek Kwon 2015. 12. 31. 16:31

 확대 로마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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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단순히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른다고 구원된다는 뜻이 아니니 유의할 일이다. "주님, 주님"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하셨기 때문이다(마 7:21). "주(主)"란 뜻은 주인, 소유주임을 인정한다는 것으로서 말 그대로 그 주인(소유주)의 뜻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다시 말하면 주종 관계를 이루었으므로 무슨 말씀 무슨 뜻이든지 절대 복종하겠다는 의사표시인 것이다. 이렇게 표현해놓고 만일 복종하지 않을 때는 주종관계가 끊어지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거짓말을 하여 상대를 기만(欺瞞)하고 놀리고 조롱하는 것이 되어 혹 떼려다 도로 혹을 붙이는 결과가 된다. 구원은커녕 죄까지 더 추가하는 격이다.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主)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 10:8-10] 함과 같다. 사람들은 구원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유의하지 않고 건성으로만 읽기 때문이다.

그냥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특정 사실만 사실로서 인정하고 그리스도더러 주님이라 고 부르면 구원이 되는 줄 안다. 그리스도를 주인(소유주)으로 모시어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으니 그리스도의 말씀에 절대 복종할 의사가 없으면 이는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 되어 아무리 그 자신은 구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게 된다. 말과 달리 주인의 종으로서 복종하지 않는데 어찌 구원이 되리요.

 

그래서 그리스도 친히 나의 생명으로서 내 안에 성령으로 임하여 계시지만 (단 이 성령 주심도 그와 같이 철저히 복종하겠다는 의사 표시가 있어야 함이니 그래서 성령을 "자기에게 복종하는 자에게"[행 5:32] 하나님이 주신다고 명시하고 있다) 나는 나의 애초의 약속대로(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하게 된다) 복종하는지 여부를 따져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결정되므로(마 7:21) 영생을 "약속"[요일 2:25/약 1:12/2:5/히 10:36]이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을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고 복종하는 자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라 하고[고전  2:9/약 2:5/1:12/행 5:32] 그에게만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시라고(히 5:8) 성경은 분명히 잘라 말하고 있다. 때문에 이 복종하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각자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각자 자신의 구원을 이룸"(빌 2:12)이라고 성경은 동시에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영구적으로[왜냐면 당신 자신을 전체로 영원하신 선물로서 내게 주셨기 때문에, 이는 나의 소유가 되셨다는 뜻이요 사랑 안에서 나를 주인으로 위하신다는 것이니 나의 소유가 되셨다는 것이 바로 오직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신다는 뜻이므로 그래서도 선물이시니 그 확고한 증거로서 십자가 죽으심을 죽어 주신 것] 섬기시는 이가 되어 계심을(눅 22:27) 알고, 나도 이와 같이 보이신 본을 따라 영구적으로 주님의 종이 되어 오직 그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만(요 4:34) 존재하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회개하는 자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약속 앞서 구원 자체부터가 되지 않는다. 죄의 용서가 되지 않고 죄 용서가 되지 않은 상태에 그리스도 친히 성령으로 임하여 오실 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됨 즉 성령을 선물로(행 2:38) 받아 모심을 우리가 "세상에 보내심을 받는 것"이라 표현하신 것이다(요 20:21,22).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처럼 나 자신을 위해 살자는 목적으로 보내심 받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고후 5:15/롬 14:9) 성경은 못박은 것이다.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잃어 버릴 것이라고 친히 경고하신 것이다(요 12:25). 이 세상을 사람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결단코 함께 하실 수가 없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요일 2:15). 모름지기 알 것은, 복종하지 않을 때 그리고 이 세상에서 여전히 살고자 하며 단지 영생 얻기만을 욕심 낼 때 그런 사람은 영원히 구원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성경이 특정인들을 가리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니,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져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행 28:26,27] 하였으니 바로 그런 사람들을 지칭한 것이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들은 또한 들을 것이라"[:28] 하였지만, 이들 이방인들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 앞에서 절대 복종하기로 작정하는 경우에만 한해 구원이 되는 것이다. "들을 것이라" 함이 바로 이 듣고 "말씀을 지켜"(요 14:23,24) 복종하는 것을 뜻함이다.

 

자연법칙을 따르지 않고 자연계에 속한 생명체가 어찌 살기를 바라리요. 하나님의 말씀을 영생을 얻는 생명의 법칙 자체이다. 우리가 현재 이 육신의 생명을 유지 보전하기 위해 자연법칙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요 당연히 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리고 지킬 만하므로 지키라고 복종하라고 그래서 회개하라고 이제는 명령하시는 것이다(행 17:30). 성경에 말하는 "순종"이 이와 같이 자연법칙 지키는 것과 같은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상식 수준인 것이다.

 

과거에는 지킬 수가 없었고 복종이 불가능했고 따라서 이 계명 준수에서는 회개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었다. 왜냐면 회개는 하더라도 그 회개한 바에 대한 약속에 충실할 수 없었으니 ①육신에 얽매여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었음이요(롬 7:24), ②그 회개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으니 아무리 회개하고 순종을 한다 한들 구원은 안되므로 회개하고 순종하는 것이 일절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산 자가 되어 영생하기 위해 회개하는데 영생하지 못한다면 회개하고 순종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가장 먼저 죽지 않고는 안되고 죽은 다음에는 다시 살아나는 수가 있어야 하는데 내 스스로 이런 두 가지 일을 다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성경은  "②너희의 범죄와 ①육체의 무할례로 죽은 자가 되어 있음"[골 2:13]을 명백히 정의해 주고 있다. 그래서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자 즉 의롭다 하심을 입을 자는 아무도 없다 하는 것이다. 이상 두 가지는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새 창조로써 해 주시지 않고는 그래서 나를 다시(요 3:3) 그리고 성령으로(:5,6) 출생하도록 해 주시지 않고는 숫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자는 불문곡직하고 마땅히 죽지 않으면 안되니 먼저 죽어야 하는 것이다. 첫째로는 아담이 그 자신의 죄로써 죽은 자가 이미 되어 있기 때문에 죽은 자에게서 난 인간이 죽지 않을 수가 없음이다. 둘째 그 죽음의 결과로서 이 자연계에 속한 몸으로서의 "육신"(롬 7:15-8:13)에 사로잡혀 부득불 불가항력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모든 죄부터 짓기 시작하는 것이 인간 비극이다. 그러니 그 모든 지은 죄과에 대한 죽음이라는 대가를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즉 하나님의 아들 친히 인간이 되시어 나로서 즉 한 인간으로서 절대로 불가능했었던 일을 내 이름으로 이루어 주셨으니 즉 죄인으로서 죽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또는 의인으로서 다시 살아나신 과정과 단계를 친히 다 밟아 주신 다음 그 상태 그대로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심으로써 나와 하나가 되어 주시니 이상의 ①과 ②가 모조리 내 안에 다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니 그 죽으심이 바로 나의 죽음 그리고 그 부활이 내가 그렇게 다시 살아남이 되었던 것이다. 이 결과 마침내 과거 죄의 청산은 충분히 이루어졌으니(롬 3:25/히 9:15) 과거 죄가 청산되었으므로 더 이상 나는 죄가 아니며,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으니 (그리스도와 하나됨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 속박에서 나를 방면하여 자유 해방되게 하였으므로(롬 8:2) 얼마든지 지키고도 남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어느 누구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하나님이 애초 창조하신 대로의 그 완연하고 완전한 모습 그대로의 자유인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도 얽매이지 않았으니 왜냐면 창조하실 때 완전한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창조의 본시 의도대로 절대로 우리를 간섭하시거나 강제하시지 않는 까닭이다. 그 증거가 아담의 죽음이요 영물들 중의 일부인 사단 및 악령들의 말로(末路)가 아닌가. 이 증거는 영원히 변경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역시 새 창조의 질서 아래 이를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떠는"(빌 2:12) 것이다. 나 역시 여차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음이다. 죄의 대가로서의 죽음을 그리스도 친히 그런 참혹한 상태로 죽으신 것이니, 이는 다시 말해 누구든지 즉 아무리 성령으로 출생하고 새로 창조하심을 입었다 하더라도 범죄하는 경우 그리고 그것을 회개하지 않는 한 그와 같이 참혹한 죽음의 멸망밖에 없음을 하나님은 동시에 추상 같은 본보기로 보여 주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어떠한 경우에도 알고서는 죄를 범할 수 없으니 그것은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가 되어 악령들이 그렇게 범죄하여 다시는 용서될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가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성경은 "사망에 이르는 죄"(요일 5:16)라 하고, 리를 표현하여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히 10:26] 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원인이, 나의 죄가 그렇게 끔찍하게 하나님의 아들을 죽으시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지 영생하려는 욕심 하나로 그리스도를 찾지 말 것을 성경은 엄중 경고하고 있으니 아무나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친히 천명하신 것이다(요 6:44,65). 사는 법대로 살려는 용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명의 법칙인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우리 전체 피조물을 몸으로 구성하는 조직에서 머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모든 지시대로 따르기로 굳게 작정하는 마음이라야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영접하게 하시는 것이다.

 

믿기만 하면 되는 은혜로서의 구원에서 그 "믿음"과 "은혜"와 "구원"의 의미, 구원이 선물이라는 "선물"로서의 의미, 의롭다 하심과 거룩하게 하심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해석으로 다시 말해 성령의 계시로 성경을 읽으려는 겸손한 자세 없이 무조건 과거 누구누구의 일방적인 해석들에만 의존하려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혼동과 혼돈 속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은혜라는 것은 내가 저지른 행위의 결과로는 죽음밖에 없는데도, 우리와 같은 비천한 사람까지 되시는 것도 그러한데 십자가 죽으심의 모든 고통까지 당해 주심으로써 나를 산 자가 되도록 만드신 그 사랑과 자비와 인애가 은혜인 것이다. 무턱대고 나의 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죄를 짓고 있는데도 관계없이 영생을 안겨 주시는 것이 은혜가 아니다. 이미 하나님의 확고한 뜻 그리고 그 엄중하심은 아담이 범죄로 인한 그 가차없는 죽음에서 확증되어 있는 바다. 더군다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 그 엄중하심을 더해 주고 있는 확증이다.

 

이러한 철저한 원리원칙 주의로 나가시는 하나님의 엄격한 법도와 그 확고한 질서 아래에서 나타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그와 같은 무한 자비하심과 사랑이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히 12:29)이심과 동시에 "사랑"(요일 4:8)이시다. 우리로 가장 먼저 인식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엄정한 질서 확립이다. 그리고 나중에 나타내 보이신 것이 이 어버이 사랑이신 것이다. 이 둘은 열차가 달리는 철로와 같이 항상 두 가닥으로 평행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한데 엉길 수도 없고 엉겨서도 안되는 것이다.

 

내 안에 임하여 계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를 지켜 주신다고 착각하지 말라. 나의 구원은 그리스도와 하나됨에 있고 바로 이 '둘이 하나됨'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임하셔서 문자 그대로 나와 하나되어 계시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성이요 양면성의 사랑의 원리를 따름이니 짝사랑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대로 하나님의 사랑이 짝사랑이라면(그들은 이를 하나님만이 나타내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라 이름 붙여 미화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다 구원되게 하시어 일단 구원해놓고 그런 다음 순종 여부를 가리실만도 한데, 처음부터 회개를 명령하시어 순종하겠느냐 말겠느냐 하시고 다짐부터 받으시는 것이 아닌가.

 

벌써 이 자체가 영물들 중 악령들과 거룩한 천사들로 자연적으로 구분되게 하신 것처럼 인생들을 그와 같은 선과 악의 기준 잣대로 구분하시는 작업이심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뜻을 모르고, 하나님 친히 처음부터 구원하시기로 택하셨기 때문에 일부만이 믿게 하시는 일이라고 하여(깔벵[Calvin]의 주장), 하나님을 무척 불공평 불공정한 분으로 만들어 그런 불합리한 내용으로 된 것이 성경이라고 선전하는 꼴이 되어 불신자들의 빈축만 사게 만들 뿐 아니라 그 스스로도 멸망의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다시 강조한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主)께서 모든 사람의 주(主)가 되시어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유하시다"[롬 10:11,12]. 모든 사람의 주인(소유주)이 되신다는 것은 한 몸 체제에서 머리가 되심을 뜻한다. 머리는 몸을 위하고 몸은 머리를 위하니 몸은 머리의 소유이고 머리는 몸의 소유이다. 즉 몸(의 각 지체)는 머리를 위하고 머리는 몸(의 각 지체)을 위하는 구조이다.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니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부인"이다. 자기 중심으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굳이 멸하시기 때문이라기보다 이치가 그렇다. 다시 말해 각자 스스로 자기 자유 의지로써 죽는 길을 택하기 때문에 그 결과대로 되어지게 하시는 것뿐이다. 모든 것의 근본이시요 최종 권위이시므로 "형벌하신다, 멸망시키신다"는 표현을 쓰는 것뿐이다.

 

그러면 어째서 이 세상이 온통 자기중심인데도 이제까지 잘도 굴러왔느냐 할 것이나, 바로 이상 설명과 같은 이유로 해서 자연스럽게는 절대로 유지되지 못할 세상이지만 강제로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므로 "잘도 세상이 굴러가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보이는 것뿐이다. 왜 그러면 억지로라도 붙들고 계시느냐 하면 미리 택하심을 따라 구원 받을 자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리 택하심은 미리 아시기 때문이니 무엇을 미리 아시느냐 하면 자기 자유 의지로 믿기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그래서 절대 복종하기로 마음을 정하는 것을 미리 아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결정함에 아무 지장이 없도록 조처하시는 것이 미리 택하심으로써 거두어지는 결실이다.

 

바로 이와 같은 경우이니 즉 하나님의 미리 택하심을 따라 구원 얻은 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하여(비록 단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세상이 아직도 그 모든 죄악에도 불구하고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구원 받을 사람을 미리 아시고 계시므로 그가 구원 얻도록 까지는 세상이 그대로 버텨 주어 그의 출생과 믿음의 결단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장애나 방해가 없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런 사람이 구원 받을 기회도 오기 전에 하나님이 세상을 접으시면 그것이야말로 구원 받음에 대한 장애가 아니고 무엇인가. 바로 이런 종류의 장애를 걷어내시기 위해 하나님의 미리 택하심의 의미가 있음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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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관하여는 파선

 

(딤전 1: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命)하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했다. (딤전 1: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 준 것은 그들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갈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義)의 소망을 기다리니 (갈 5:6)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모세 시대에 강조하였던]나 무(無) 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다. (갈 5:7) 여러분이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여러분을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갈 5:8) 그 권면이 여러분을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갈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 것이다.

 

믿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약 2:14) 내 형제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양식이 없는데 (약 2:16)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평안히 가라, 따뜻하게 하라, 배 고프지 않게 하라"고 말만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약 2:18)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써 내 믿음을 네게 보이겠다" 하지 않겠느냐. (약 2:19)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 하는 일이다. 귀신들도 믿고 떤다. (약 2:20) 아아, 허황된 사람이여,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약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祭壇, 아들을 제물로 바쳐 죽이려 함)에 드릴 때에 [그와 같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2) [여기서] 보다시피 믿음이 그 행함과 함께 역사(役事)하는 것이고, 행함으로써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 (약 2: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대로,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義)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했고 "하나님의 벗"이라고 칭함을 받았으니, (약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다.

 

(약 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使者, 모세가 보낸 정탐꾼, 구약성경 사사기)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서로 사랑

 

(요일 2: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새 계명을 여러분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요일 2:8) 다시 내가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쓰니 그[그리스도]에게와 여러분에게도 참된 것이다.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다.

 

(요일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요일 2: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요일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했음이다.

 

(요일 3:11)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다. (요일 3: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찌 된 연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다.

 

(요일 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않은 자는 사망에 거처한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은 것을 여러분이 아는 바다.

 

(요일 3:16) 그[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요일 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to abide] 보냐. (요일 3:18) 자녀들이여[children],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님 앞에서 굳세게 하는 것이다. (요일 3:20)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요일 4:7)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할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8) 사랑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다.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가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자(獨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화목(和睦) 제물[祭物]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다. (요일 4: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이 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요일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처(居處)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함을 이루는 것이다. (요일 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처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처하시는 줄을 아는 것이다.

 

(요일 4:14)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니 (요일 4:15)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안에 거처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처한다.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으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거처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처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처하신다.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않은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요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 것이다. (요일 5: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이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이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이마다 그에게 난 사람을 사랑한다.

 

(요일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는 것이다.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벧전 4: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벧후 1:5) 이러므로 여러분이 더욱 힘써 여러분의 믿음에 덕[virtue, goodness, a noble character]을, 덕에 지식을, (벧후 1:6) 지식에 절제(節制, self-control)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敬虔, godliness)을, (벧후 1:7) 경건에 형제 우애[믿음의 형제끼리의 사랑]를, 형제 우애에 사랑[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8) 이런 것이 여러분에게 있어 흡족한즉 여러분으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벧후 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blindness]이니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은 것이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世俗)에 물들지 않는 이것이다.

 

사랑의 율법-최고의 율법

 

(약 2:8) 여러분이 만일 성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약 2:9) 만일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여러분을 범죄자로 인정할 것이다.

 

사람을 차별 말라

 

(약 2:1) 내 형제들, 영광의 주(主)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여러분이 받았으니 사람을 겉보기로 차별하지 말라. (약 2:2) 만일 여러분의 회당(會堂)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 (약 2:3) 여러분이 아름다운 옷을 입은 이를 보고 말하기를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시오" 하고 또 가난한 이에게는 "당신은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한다면 (약 2:4) 여러분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약 2:6) 여러분은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했다. 부자는 여러분을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않느냐. (약 2:7) 그들은 여러분에게 주신 여러분이 속해 있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않느냐.

 

자유의 율법

 

(약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니, (약 2: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내가 비록 간음하지 않아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는 것이다.

(약 2:12) 여러분은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약 2:13)긍휼을 행하지 않은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

 

(갈 5:13) 형제들, 여러분이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으니 (갈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약 1:22) 여러분은 도(道)를 행하는 이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이가 되지 말라. (약 1:23)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약 1: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 버리거니와 (약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이는 듣고 잊어버리는 이가 아니요 실행하는 사람이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이다. (약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않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다.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라

 

(갈 6:2) 여러분이 짐을 서로 져 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어 가라. (갈 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다. (갈 6: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않을 것이니 (갈 6: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다.

 

그리스도의 율법

 

(고전 9: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했음이다[중복].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어 있다.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으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전 16:14) 여러분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벧전 3:8) 마지막으로 말하니 여러분이 다 마음을 같이 하고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벧전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해 여러분이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상속 받게 하려 하심이다.

 

(롬 12:9) 사랑엔 거짓이 없으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롬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롬 14: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 함이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하게 하지 말라. (롬 14:16) 그러므로 여러분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살전 4: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여러분에게 쓸 것이 없음은 여러분이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다. (살전 4:10) 여러분이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한다. 형제들, 권하니 더 많이 하고

 

(골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다.

 

(엡 4:31) 여러분은 모든 악독, 노함, 분 냄, 떠드는 것,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惡意)와 함께 버리고 (엡 4:32) 서로 인자(仁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5: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여러분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엡 5:2)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 것 같이 여러분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셔서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

 

(히 1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히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다.

 

(딤전 1: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딤전 1: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딤전 1: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유 1: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한다.

 

(몬 1:7) 형제여, 거룩한 형제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

 

계명을 안지키면 그 속에 진리가 없다

 

(요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 2: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이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되 (요일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으니 이로써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줄을 안다.

 

(요일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요일 3: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이는 주님 안에 거처하고 주님은 그 안에 거처하시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처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는 것이다.

 

(요일 2:6) 그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 것이다.

 

선을 행하라

 

(히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중복]

 

(롬 16:19) 여러분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므로 내가 여러분을 인하여 기뻐하니 여러분이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한다.

 

(요삼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뵙지 못했다.

 

(벧전 2:12) 여러분이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여러분을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다.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것[製作品, His workmanship]이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자로서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셔서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다.

 

(골 1:10) 주님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될 것이다.

 

(딛 3:8) 이 말이 신실되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다.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딛 2:7)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가르칠 때 성실함[sincere]과 진지함[serious]과 (딛 2:8) 책망할 것이 없는 건실한 말로써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다.

 

(히 13:21) 모든 선한 일에 여러분을 온전케 하셔서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기뻐하시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한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으시기를. 아멘. [중복]

(고후 13:7) 우리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로 악을 조금도 행치 않게 하시기를 구하니 이는 우리는 옳게 되어 있음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우리는 버려진 자 같을지라도 오직 여러분들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다. (고후 13:8) 우리는 진리를 거역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살후 3:13) 형제들, 여러분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면 거둘 것이다.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것이다.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물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의를 행하라

 

(요일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무릇 의를 행치 않은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않은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다. (고전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중복].

(요일 2:29) 여러분이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 것이다[중복].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

 

(고전 12:31) 여러분은 더욱 큰 은사(giftㅡ선물)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일 것이다. (고전 13:1) 내가 사람의 이방언(異邦言, tongues)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sounding brass, resounding gong, blaring trumpet]와 울리는 꽹과리[clanging cymbal]가 되고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

 

(고전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질투하는 자가 되지 않으며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고전 13:5) 무례히 행치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치 않으며 (고전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않으나 예언도 폐하고 이방언[異邦言]도 그치고 지식도 폐할 것이다. (고전 13: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전 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할 것이다.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다.

 

(고전 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님께서 나를 아시는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 것이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고전 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벧전 1:22) 여러분이 진리를 순종함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원수 사랑,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음

 

(롬 12:19) 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을 것이다"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롬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해 주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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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이는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게 해 주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실 것이다"(잠 25:21,22)를 인용한 것으로서, 솔로몬의 지혜 즉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말씀이므로 재미 있다는 표현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퍽 상식적인 생활 지혜인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머리에 숯불을 올려 놓으면 황급히 이를 피할 것이 아닌가. 내가 베푼 선에 대하여 그는 양심상 큰 가책을 받음이니[사람에게는 다 양심이 있어] 이는 자기 머리에 올려 놓인 숯불을 의식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이를 피하려는 즉 머리 위에 놓인 숯불을 피하기 위한 동작을 취하는 것과 같음을 비유한 것이다.

 

숯불을 머리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앙심을 품고 복수하자는 것이 아니니 숯불을 머리에 얹어 줌으로써 놀라게 해 주려는 것뿐이다. 정신 차리게 만든다는 의미다. 숯불이 자기 머리에  놓아진 것을 알고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마 뜨거워하고 기겁을 하고 털어낼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숯불을 머리에 올려 주는 것은 상대를 해코지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죄와 악의 결말 즉 그 위험을 깨닫게 해 주려는 참으로 점잖은 군자(君子)의 방법인 것이다.

 

자기 머리에 숯불을 올려놓는 것을 허용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악을 선으로 갚는 선행이 그런 역할 또는 효과를 낸다는 그 뜻이다. 숯불에 머리털이 순간적이라도 그을리는 것은 양심의 가책이 이에 해당된다. 양심의 가책에 못이겨 사람이 스스로 죽기까지 하는 것이니 가룟 유다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 가책으로 당자로 각성시키고 반성하게 하는 것으로는 유일한 현책(賢策)인 것이다. 물론 반성하고 않고는 자기 나름이다.

 

이것이 솔로몬의 지혜이니 이솝 우화의 '바람과 해의 힘 겨루기'와 같은 것이다. 겨울에 외투를 입고 가는 한 남자를 보고 누가 더 센가 힘을 겨루자고 바람이 전력을 다해 불어 주니 "어 추워!" 하고 외투를 더 오므리는데, 해가 힘껏 내려 쬐니 외투는 물론이고 속옷까지 벗으려는 것이 아닌가. 따뜻한 것은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해가 이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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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살전 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벧전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속임수를 베풀지 말고 (벧전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따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위해 죽으신 목적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 우리가 생각컨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해 살게 하려 하심이다. (고후 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 대로 알지 않으니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 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 같이 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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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이제까지 우리가 죽은 자로서의 행세밖에 한 것이 없어 자기중심으로 지내왔는데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어 산 자로 새로이 만드셨으므로 산 자로서 사는 방법을 가르치시고 그 방법대로 살 수 있는 완전한 장치를 마련하심에 있으니, 곧 위의 두 구절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이 그 전부다. 즉 나는 죽었으니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 살 그 나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자기 부인이니 즉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음이다.

 

그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나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그리스도시니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일단 나에게 그 자신을 주신 터라 이렇게 한 번 하신 일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하시는 일의 성격이므로 그대로 주님 그리스도는 나의 소유로 주신 것이다. 죽으셔도 나를 위하고 다시 살아나셔도 나를 위해 사시는 것이다. 이렇게 나를 위해 영원히 사시고 나를 위해 영원히 존재하시니 나 역시 당연히 죽어도 주님 위해 살아도 주님 위함(롬 14:7-9)이 마땅하고 자연스러우니 그렇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는 삶의 새 구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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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으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롬 14:9)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主, 주인]가 되려 하심이다.

 

(딛 2:14)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 (딛 2:15)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살전 5:10)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은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심이다. (살전 5:11) 그러므로 피차 권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여러분이 하는 것 같이 하라.

 

(골 3:17)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님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고전 10:31) 그런즉 여러분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11) 누구든지 말할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구든지 봉사할 때에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으시기를. 아멘.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시도록 하려 함은(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다.

 

(빌 1: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빌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빌 1: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여러분을 위해 더 유익할 것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註-우리말 "산 것", "사신 것"이라고 과거사로 처리하여 번역한 것은 불분명한 의미가 되어 오해와 착각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자신[註-우리말 번역대로의 "자기 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른 것이니 이 역시 분명한 의미를 전달하기에 미흡하다]을 바치신[주신, to give]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註-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죽으심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다시 살아나심]과 맞물려 있으므로 아래에 그에 관한 구절들을 모아보았다].

 

그리스도께서 살지 못하셨으면 너희 믿음도 헛것

 

(고전 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여러분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전 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을 것이다.

 

(고전 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여러분의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날 것이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고전 15: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여러분의 믿음도 헛되고 여러분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했을 것이니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가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이다[중복].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심

 

(롬 4:23) "그[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롬 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다.

 

(롬 4:25) 예수님은 우리 범죄함을 인해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해 살아나셨다.

 

(롬 1:3) 이 아들[그리스도]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was a descendent of David[NIV]/was made of the seed of David[KJV]/was born of[came as] the seed of David[NKJV]] (롬 1:4) 성결의 영[거룩하신 성령]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능력으로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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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이라 함은, 위의 영역(英譯)에서 보듯이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다"기보다 "다윗의 후손으로 되셨다"는 의미다. 왜냐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시므로 이 점은 민감한 사안으로서 표현이 정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리아가 다윗의 혈통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요셉의 양자가 되신다는 뜻이니 그래야 다윗의 후손이 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셉 자신 역시 양자로 있었음을 명백히 하고 있으니 그 양부는 헬리요(눅 3:23) 그 생부는 야곱이다[마 1:16]. 양부 계통을 말할 때는 아담까지 올라가 "아담의 이상은 하나님"이라[눅 3:38] 하여 우리 역시 하나님의 양자됨을 인한 구원임을 선명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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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註-즉 산 자가 아닌 "죽은 자"(마 8:22)로 있을 때이니 죽은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

 

(롬 5:7) 의인을 위해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의인을 위해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다. (롬 5:11)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는 것이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로 우리를 위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黑暗)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그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救贖) 곧 죄 용서함을 얻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저주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은 바가 되셔서 율법의[율법으로 말미암은]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贖良-원 뜻은, 종의 신분을 면하여 양민이 되게 함, to redeem)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했음이다. (갈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이 이방인[이스라엘 또는 유대 민족이 아닌 세계 모든 민족]에게 이르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다.

 

죄에서 해방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에게는 결코 정죄(定罪-斷罪)함이 없으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했음이다[중복]. (롬 6:17)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여러분이 본래 죄의 종이더니 여러분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롬 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된 것이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을 단죄하심으로 (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성령]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다[중복].

 

(벧전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여러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가다듬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벧전 4: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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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죄의 온상(溫床)이 바로 "육신"(롬 7:5-8:13)으로서 이를 "육체의 무할례"(골 2:13)라 하는 것인데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을 단죄하셨다"는 것은 그 죽으심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이제 육체가 죽었으니 죄도 함께 죽은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로서의 그 죽으심이므로 이를 가리켜 "죄에 대한 죽으심"이라 하는 것이다.

 

그 죽으심을 나의 죽음으로 삼으니 즉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니 이를 "육신의 몸을 벗는 것" 곧 "그리스도의 할례"(골 2:11)라 한다. 난지 8일만의 사내 아이의 포피(包皮)를 벗기는 일을 "할례(割禮)"라 하는데 "육신의 몸을 벗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 모세 율법으로 확립된 바 사내 아이의 포피를 벗기는 이 할례가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 "그리스도의 할례"이다.

 

포피를 벗기면 당연히 출혈(出血)하게 된다. 모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낸 모세의 아내가 자기 남편을 "피 남편"이라 했던 것과 같다(출 4:25). 남편의 이 피 흘리게 하는 할례가 그 여인에게는 기이하게 느껴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피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바로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내 아이의 포피를 베는 이 할례에서 "사내 아이(남자)"가 상징하는 바가 또 있다.

 

그것은 첫 유월절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 곧 맏아들(남자)이 구속된 때문에 이를 미리 상징하는 의미다. 다시 말해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구속되는 이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오직 하나님을 위하고 섬기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이 때 구속된 이스라엘의 "기력(氣力)의 시작(始作)"이 되는 장자(長子)를 상징하는 것이 곧 레위 족속으로서, 이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전 일 즉 하나님 섬기는 일에만 평생을 보냈던 것이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이들에게서 나온 것은 물론이다. 이 모두 우리 구속 받은 사람들의 삶의 특징을 미리 상징해서 나타낸 것이다. 베드로가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다" 함이 바로 이 뜻이니 곧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을 말함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이 되어 있기 때문이니[그리스도 친히 성령으로 내게 임하시어 나와 하나되심을 통해], 죄란 것이 원래 자기가 자기를 위하는 자기중심에 있는 까닭이다(고후 5:15). 자기가 죽어 장사되고 없어졌는데 또 무슨 자기를 위함이 가능한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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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롬 6:2) 그럴 수 없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다.

(롬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롬 6: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라.

 

(롬 6:12)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로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을 순종치 말고 (롬 6:13) 또한 여러분의 지체(肢體)를[사람은 몸(의 각 지체)으로써 움직이므로] 불의(不義)의 도구(道具)로 죄에게 바치지 말고 오직 여러분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

 

(롬 6:14) 죄가 여러분을 주관(主管, 主掌, 지배) 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여러분이 법[모세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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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법 아래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 우리의 죄를 자각하게 했을 뿐(롬 7:7)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했던 '율법의 역할'을 말하는 것이다. 구원한다는 것은 '죽음에서의 탈출'(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 장사 지내진 후 성령으로 다시 출생하여 새 생명 가운데 있게 됨-롬 6:4)과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즉 율법 아래 있을 때는 죄를 짓게 하지는 못하고 죄인임을 깨닫게 해 주었을 뿐이다.

따라서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죄인으로서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과거 죄가 청산됨과 아울러 죄의 뿌리인 자기중심(육신)이 나 자신이 죽음으로써 와해되었으므로(6:6) 비로소 죄로부터의 자유 해방이니 왜냐면 이제는 죄를 지을 수가 없게 된 까닭이다. 다시는 자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 구절에서 죄가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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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6:16) 여러분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죄의 종이면 사망에 이르고 아니면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

 

(롬 6:19) 여러분의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例)를 따라  말하거니와, 전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지체를 부정(不淨, uncleanness)과 불법[lawlessness]에 바쳐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바쳐 거룩함에 이르렀다.

 

(롬 6:20) 여러분이 죄의 종이 되었을 때는 의에 대하여 자유했다. (롬 6:21) 여러분이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여러분이 그 일을 부끄러워 하니 이는 그 결말이 사망임이다.

 

(롬 6:22)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결과가 영생이다. (롬 6:23) 죄의 대가(代價)는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 있는 영생이다[중복].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

 

(롬 6:5)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될 것이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않으려 함이니 (롬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났음이다.

 

(골 3:9) 여러분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골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다. (골 3:11) 거기는 헬라인[Greek]이나 유대인[Jew], 할례파(派)나 무할례파, 야인[野人-미개인]이나 스구디아인[Scythian-이스라엘 북방의 천박한 유목민], 종이나 자유인의 차별이 있을 수 없으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Christ is all, and is in all].

 

(엡 4:21)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 같이 여러분이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엡 4:22) 여러분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舊習)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영역은, "true" 즉 참된, 진실된]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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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아담 창조시에도 아담을 의롭고(올바르고) 거룩한 존재로 만드셨고 우리의 새 창조에서도 우리를 의롭고 거룩한 존재로 만드셨음을 말한다. 올바르고 거룩한 것으로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아담은 스스로 범죄하여 죽었다(롬 5:20). 우리 역시 스스로 범죄하면 즉 "육신대로 살면"(8:13) 똑같이 "죽음"(:13)에 이른다. 즉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는데(고후 5:15) 자기중심이 되어 자기를 위하고 자신을 위해 살고 따라서 그리스도를 위해 살지 않을 때 이를 회개하지 않으면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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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肢體, 한 몸의 체제 안에서)가 됨이다.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죄 짓지 말라

 

(고전 15:33) 속지 말라. 악한 사람들과 벗을 삼으면 선한 행실을 더럽히니 (고전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註-죄를 짓는 자 또는 지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자를 가리킴이다] 내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다[중복].

 

(요일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니 죄는 불법이다.

 

(요일 3: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여러분이 아니 그에게는 죄가 없으시다. (요일 2:29) 여러분이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 것이다[중복]. (요일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않는 것이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했고 그를 알지도 못했다.

 

(요일 3:3) 주님을 향하여 이 소망[註-주님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와 같이 되어 변화함]을 가진 이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요일 3:7) 자녀들이여[Children], 아무도 여러분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다.[註-"마귀의 일"은 죄 짓게 하는 것].

 

(요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으니 이는 하나님의 씨[seed]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않는 줄을 우리가 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니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한다. [註-죄 짓고자 하지 않는 나의 의지와 맞물려 나타나시는 이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남이니, 즉 내가 죄를 짓지 않는 능력(힘)은 그리스도 친히 이와 같이 자기(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되어 있으므로)를 지키시는 능력을 가리킴이요 나 자신의 능력이 아닌 것이다].

 

(요일 2:1) 나의 자녀들이여, 내가 이것을 여러분에게 씀은 여러분으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다.

 

(약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 부정, 정욕, 악한 욕심,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다. (골 3: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골 3:7) 여러분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했으나 (골 3:8) 이제는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릴 일이다. 곧 분, 악의, 훼방하는 것, 여러분의 입의 부끄러운 말들이다.

 

짐짓 죄를 범하면

 

(히 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고의적으로]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물이 없고[중복] (히 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을 것이다[중복].

 

(히 10: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히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言約)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여러분은 생각하라.

 

사망에 이르는 죄

 

(요일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않은 범죄자들을 위해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는다. (요일 5:17) 모든 불의가 죄이나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도 있다.

 

타락한 자들

 

(히 6:4)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선물]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가 되고 (히 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히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으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다.

 

(히 6: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히 6: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될 것이다.[註-이는 말씀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어 새로 창조하심을 받은 후의 양 갈래로 나타나는 결과를 말함이다].

 

(히 6:9)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같이 말하나 여러분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한다. (히 6:10) 하나님이 불의치 않으셔서 여러분의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해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거룩한 형제들을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지 않으신다.

 

(벧후 2: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님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할 것이니 (벧후 2:21)의(義)의 도(道)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낫다. (벧후 2:22) 속담에 "개가 그 토했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는 말이 그들에게 응한 것이다.

 

그 백성을 심판하심

 

(히 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을 것이다" 하시고 또 다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니 (히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 일이 아니랴!

 

(벧전 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으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않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벧전 4: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않은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불의한 자, 하나님 나라 상속 받지 못함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 우상 숭배자, 간음하는 자, 여색을 좋아하는 자, 남색[동성행위]하는 자, (고전 6:10) 도둑, 탐욕이 있는 자, 술 취하는 자, 욕하는 자,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지 못할 것이다.

 

(고전 6:11) 여러분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벧전 4:3) 여러분이 음란, 정욕, 술 취하여 질탕하게 떠드는 것,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 등을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다.

 

(갈 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 더러운 것, 호색, (갈 5:20) 우상 숭배, 점치는 것,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갈 5:21) 시기하는 것, 술 취함,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다. 전에 여러분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지 못할 것이요

 

육신

 

(롬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성령]을 따르는 자는 영[성령]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다. (롬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롬 8:9)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여러분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성령]에 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롬 8:10)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다.

(롬 8:11)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이다.

 

[註-이상 세 구절[9-11]에서 보듯이 내 안에 임하여 계시는 성령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 곧 아버지의 영으로서 명백히 표현하여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전 6:14) 하나님이 주님을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다. (고후 4:14) 주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이께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셔서 여러분과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니

 

(롬 8:12) 그러므로 형제들,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다. (롬 8:13) 여러분이 육신 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다.

 

(벧전 2: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했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것이다. (벧전 2:11) 사랑하는 여러분, 외국인과 나그네 같은 여러분을 권하니 영혼을 거역하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 5:16) 내가 말하거니와 여러분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것이다. (갈 5:17) 육체가 원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름이 되고 성령이 원하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름이 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피차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함이다. (갈 5:18) 여러분이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註-"율법 아래 있는" 의미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벧전 2: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요이 1:4) 네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다. (요이 1: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는 바는 우리 상호간의 사랑이다.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다. (요이 1: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다.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

 

(롬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롬 14:11) 기록되기를 "주님 말씀에, '내가 살았으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할 것이다' 하셨다"고 했다. (롬 14: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이실직고[以實直告]할 것이다. (롬 14: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않도록 주의하라.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자.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다[중복].

 

거룩하라

 

(살전 4:1) 종말로 형제들, 우리가 주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구하고 권면하니 여러분이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여러분의 행하는 바로서 더욱 많이 힘쓰라. (살전 4:2) 우리가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는 바다.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다. 음란을 버리고

 

(골 1:11) 그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거룩한 형제들의 상속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한다.

 

(히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이다. (롬 12:18) 할 수 있거든 여러분들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벧전 1:14) 이전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정욕을 본 삼지 말고 순종하는 자녀[children]가 되어 (벧전 1:15) 오직 여러분을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6) 기록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다.

 

(딤후 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 믿음, 사랑, 화평을 따르라. (딤후 2: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릴 것이다.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다.

 

(딛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딛 2: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방심(放心)하지 않음], 의로움,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딛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딛 3:2)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빌 4:5)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님의 오심이 가깝다.

 

(롬 12:13) 거룩한 형제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롬 12:14) 여러분을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롬 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중복].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롬 13:11) 또한 여러분이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다.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으로 완전무장하자. (롬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싸우거나 시기하지 말고 (롬 13:14) 오직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골 3: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심을 받는 사람들처럼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골 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리하고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이다[중복].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라.

 

(고전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음란을 버리라

 

(살전 4: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살전 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色慾)을 따르지 말고 (살전 4:6) 이런 일에 자기 분수를 넘어[그 아내와 상관함으로써] 형제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여러분에게 미리 경고하고 증언한 바와 같이 이 모든 일에 주님께서 보응하실 것임이다. (살전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不淨]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살전 4:8) 그러므로 [이 가르침을]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여러분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다.

 

(엡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여러분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거룩한 형제들의 마땅한 바다. (엡 5:5) 여러분도 이것을 정녕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골 3:5]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상속을 얻지 못할 것이니 (엡 5:6) 누구든지 헛된 말["육신대로 살면 죽는다"는 성경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육신대로 살아도 구원은 받는다는 등의 교리-편자]로 여러분을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니 (엡 5: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참예하는 자되지 말라.

 

(히 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寢所-부부관계)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자.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다[중복].

 

(살전 5:23) 평안의 하나님이 친히 여러분들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여러분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한다. (살전 5:24) 여러분을 부르시는 이는 신실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실 것이다.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

 

(엡 4:1)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갇힌 내가 여러분을 권하니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으로 장성하여 그리스도의 충만의 분량에까지 이를 것이니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않아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다.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 것이다.

 

성령의 열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gentleness], 양선[goodness], 충성[faithfulness], (갈 5:23) 온유[meekness]와 절제[temperance]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 것

 

(갈 5:24)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 것이니 (갈 5:26) 우쭐해져 서로를 자극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 것이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 5: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님 안에서 빛이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

 

(엡 5:11) 여러분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 5:12) 그들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다. (엡 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다. (엡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실 것이라" 하셨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註-"성령 충만"은 항상 기도하기를 힘쓰고 기뻐하기를 힘쓰고 모든 일에 감사하기를 힘쓰고(살전 5:15-18) 성경을 가까이 하기를 힘쓰는 데에 있다. 이런 일은 의식적으로 그렇게 되기 위해 즉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힘씀에[고후 5:9/고전 7:32] 있다. 자동적으로 되는 일이라면 항상 기뻐하라, 매사 감사하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는 말부터 성경에 없을 것이다. 성령 충만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보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일을 계승하여 온전히 이룸에 있는데 이를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성경의 모든 경고와 권유 등은 마땅히 그렇게 하게 되어 있는 것을 다시 일깨워 줌에 있기 때문이다(벧후 1:12,13,15)].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살전 5:14) 또 형제들, 여러분을 권하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勸戒-타이르고 경계함)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살후 3:6) 형제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명하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가 가르친 대로 행하지 않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살후 3: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여러분 스스로 아는 바니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않으며 (살후 3: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 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여러분 중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으려 함이니 (살후 3: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다.

 

(살후 3:10)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도 여러분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했는데 (살후 3:11) 우리가 들은즉 여러분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이들이 있다 하니 (살후 3:12)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니,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밤과 낮으로 일하며 복음 전파

 

(살전 2:9) 형제들,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여러분이 기억할 것이니 여러분 중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며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다. (살전 2:10) 믿는 여러분들을 향하여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여러분이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고전 9: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님을 보지 못했느냐? 주님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바로 여러분이 아니냐. (고전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님 안에서 인(印) 친 것이 여러분이다.

 

(고전 9:3)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이 이것이니, (고전 9:4)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한[자격]이 없겠느냐? (고전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한이 없겠느냐? (고전 9: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않을 권한이 없겠느냐? (고전 9:7) 누가 자기 부담으로 군대(軍隊) 생활을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딤전 5:18) 성경에 이르기를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했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했다.

 

(고전 9:8) 내가 사람의 예(例)를 따라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않느냐? (고전 9:9)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했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해 염려하심이냐. (고전 9:10)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탈곡(脫穀, threshing)하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고전 9: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여러분의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고전 9:12) 다른 이들도 여러분에게 이런 권리가 있는데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않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다.

 

(고전 9:13) 성전(聖殿)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祭壇)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하느냐? (고전 9:14)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고 명하셨다. (고전 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않았고 또 이 말을 하는 것은 내게 이 같이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살전 4:11) 또 여러분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여러분의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살전 4:12) 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빌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무슨 권면(勸勉-권하여 격려하고 힘쓰게 함)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 자비가 있거든 (빌 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으로 서로 대하며 뜻을 합하여 같은 마음을 품어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라.

 

(빌 2: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의 동등을 유지할 것을 내세우지 않으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되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다.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세상의 빛인 하나님의 아들들

 

(빌 2:15) 이는 여러분이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역하는 [이]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아들들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별빛처럼 비추며[to shine as lights/to shine  like stars in the universe/as heavenly lights in the world]

 

위로부터 난 지혜

 

(약 3:14)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역하여 거짓말하지 말라. (약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약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함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다.

 

(약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偏僻, 치우침)과 거짓이 없으니 (약 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이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다. (약 4:5)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신다"는 말씀을 공연히 한 말인 줄로 아느냐?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니 그러므로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한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약 4:7) 그런즉 여러분은 하나님께 순복(順服)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여러분을 피할 것이다.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여러분을 가까이 하실 것이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여, 마음을 성결케 하라. (약 4: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 일이다. 여러분의 웃음을 애통으로, 여러분의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 일이다.

 

(약 4:10) 주님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이다.

 

시간을 아껴 쓰라

 

(골 4:5) 믿지 않은 이들을 대해서는 '때를 최대한 선용하여'[redeeming the time] 지혜로 행하라. (엡 5:15) 그런즉 여러분이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엡 5:16) 시간을 최대한 선용할[redeeming the time] 것이니 때가 악함이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고후 6:14) 여러분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도록

 

(엡 5:10) 주님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더러운 말, 선한 말

 

(딤후 2: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릴 것이다. 그들은 경건치 아니 함에 점점 나아가니 (딤후 2:17) 그들의 맡은 문드러진 상처의 썩어져 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다. (딤후 2: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다.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여러분의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jesting/coarse joking, 시시덕거리는 농담, 익살]이 마땅치 않으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골 4:6) 여러분의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 것이다.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해야

 

(롬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롬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 것이다. (롬 15: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으니 기록된바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치었다" 함과 같다.

 

(롬 15:5) 이제 인내와 안위(安慰)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셔서 (롬 15: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시기를 원한다. (롬 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납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납하라.

 

이 세대에 부한 자들

 

(딤전 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딤전 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유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딤전 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해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다.

 

(약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약 1: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 일이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다. (약 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할 것이다.

 

돈을 사랑함ㅡ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해

 

(딤전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므로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니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다.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니 곧 사람으로 몰락하게 하고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해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언했다.

 

(히 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않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 하셨다. (히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기를, "주님은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 않을 터이다.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하는 것이다.

 

세상의 부자들

 

(약 5:1) 들으라, 부유한 사람들이여, 당신네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약 5:2) 당신네의 재물은 썩었고 당신네의 옷은 좀 먹었으며 (약 5:3) 당신네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그대들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그대들의 살을 먹을 것이다. 그대들은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

 

(약 5:4) 보라! 그대들의 밭에서 추수 일을 한 노동자에게 주지 않은 밀린 임금이 소리 지르며 추수를 끝낸 일꾼들의 우는 소리가 만군[the hosts, 허다한 무리들]의 주(主)님의 귀에 들렸다. (약 5:5) 그대들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宴樂)하여 도살(屠殺, slaughter/butchery/massacre)의 날에 여러분의 마음을 살찌게 하였다. (약 5:6) 그대들은 옳은 자를 정죄[단죄]했다. 또 죽였다. 그는 그대들에게 대항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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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여기서의 "부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세상의 부자들을 가리키므로 죄인 또는 악인들과도 동일시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면 부유하게 사는 것을 제일로 치는 것이 이 세상 모든 악인(죄인)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세상 악인에게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고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이런 세상 악인이 나타내는 일반적인 처사라고 보아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모든 의인의 대표이시므로, 부자들의 행세 또는 행패를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결시켜 비유한 것은 당연하다.

 

일반적인 세상의 부자들을 가리킨 것이므로, 말로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여전히 그런 세상 부자의 행티(심술을 부려 남을 해치는 행짜를 부리는 버릇)를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있을 때 이들에게 함께 경고하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자는 오직 하나님의 청지기 의식으로 일관하여(마 19:21) 바울이 경고한 바와 같이 "마음을 높이지 않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고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유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어야(딤전 6:17,18) 함이다].

 

[註-이 대목을 전후하여 바울 사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면서 "영생을 취하라(to lay hold on/take hold of the eternal life-딤전 6:12)" 했는데, 이는 부자들에게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해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the life that is truly life-NIV)을 취하는 것이다"(so that they may lay hold on eternal life-6:19) 하고 경계하는 것과 같은 의미요 표현이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 그리스도 친히 내 안에 계심으로써 영생이 있는데 또 내 스스로 영생을 취하라("to win"-Good News Bible) 하는가 할 것이나, 우리의 구원을 가리켜 "그리스도께서는 내 안에, 나는 그리스도 안에"로 표현되는데, 이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할 것이다"(요 15:4) 하신 말씀 그대로이므로 이상히 여길 것이 없다. 이 말씀은 "나를 부인하면 나도 부인할 것이요 나를 시인해야 나도 시인할 것이라"(눅 12:8,9)는 말씀과 같은 뜻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구원은 '피동적이면서도 동시에 어디까지나 능동적인 것'임을 명심할 일이다. 피동적이라 함은 죽은 자로서의 내가 스스로 산 자가 될 수 없으므로 하나님 단독으로 나를 새로 창조하시고 다시 나게 하시는 능력이니 따라서 나는 단지 믿음으로써 은혜로 주시는 선물로서의 구원을 받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능동적이라는 것은 내가 믿어야 구원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스스로 믿고 그 믿음에 따르는 순종을 "행함"(약 2:20,26)으로 나타내야 함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친히 나를 그리스도 안에 있게 그리스도는 내 안에 계시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새 창조로서 이 관계를 이루어놓으신 다음에 내 스스로 회개하여 믿어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계속 거처하는 즉 사는, to abide) 것이 있어야 그리스도 역시 내 안에 거하실 수가 있으므로 그래서 "내 안에 거하라"(요 15:4) 명령하신 것이다. 이는 내가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을 이루라"(빌 2:12) 경고 명령을 함과 똑같은 뜻이다.

 

전에는 죽었으므로 살아 있는 자로서의 움직임이 불가능했는데 이제는 살리심으로써 산 자가 되어 있으니 즉 영생하는 자가 되어 있으니 살아 움직이는 것은 나의 몫인 것이다. 살아 움직이되 사는 법을 따라 살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니 아담이 사는 법대로 살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나갔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닌가. 사단 등 악령들 역시 바로 그런 것이다. 반면에 "거룩한 천사들은" 사는 법대로 순종하여 살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영광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법대로 올바르게(義) 살아 좋은 것(善)을 따라 사는 것이 나의 책무인 것이다. 만유(萬有)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이 아들이 되어 있는 망극하신 은혜를 입은 것은 내게 아들된 권리를 주심이다. 권리에는 반드시 책무가 따르니 그 책무가 다름아닌 "부르심에 합당하게"(살후 1:11/빌 1:27) 즉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고후 5:15/롬 14:7-9)에 부합되게 사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살지 못할 때는 택하신 자들의 반열(班列)에 끼이지 못해 당연히 탈락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르심을 입는 자는 많으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신 것이다. 왜냐면 이와 같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지"(빌 2:12) 못함으로써 탈락되어 나가는 이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셔서 자기의 영원한 운명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게 하신 것이다. 이 사실 앞에서 이 시험 많은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우리는 두렵고 떨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두렵고 떨라"고 경고하면서도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라"(빌 4:4)고 같은 편지에서 동시에 명령하고 있다. 성경이 주는 모든 명령은 그런 명령을 받지 않아도 우리가 당연히 하게 되어 있고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여기서 예외가 없다. 즉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명령하시지만 회개할 수 있는 바탕을 이미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충분히 마련해 놓으신 근거 위에서 내리시는 것임과 같다(행 17:30,31).

 

기뻐하지 않으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일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구원 받은 기쁨과 평안이 없으면 의를 행할 수 없고 선을 행할 수가 없는 것을 말한다. 성령 안에서의 의의 열매는 반드시 평강과 기쁨이 함께 하는 동반자 성격이다(롬 14:17). 다시 말해 "항상 복종"(빌 2:12)을 하되 스스로 기쁨으로 자진해서 자발적으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고 복종하는 것이다.

 

구원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즉 나 자신을 위해서,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구원을 받아 넉넉하고 든든하고 그득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주인 의식으로써 내 일로서 나의 일을 하는 주인의 위치에서 하되, 두렵고 떠는 것은 내 마음을 내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잠 4:23) 엉뚱한 데로 흘러갈 수가 얼마든지 있음을(히 2:3) 아담 자신의 범죄에서 기타 사단을 위시한 악령들의 범죄에서 그 무서운 실례를 현저히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양쪽으로 천 길 낭떠러지가 저 멀리 아래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좁은 외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그 아래로 사정없이 떨어져 나간 실지 사례가 바로 아담이요 사단 등 영물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 위협이 실제 현실이지 가공(架空)이나 관념만이 아닌 것이다. 바로 그런 실상을 잘 알므로 그런 절벽을 내려다볼 때 가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리가 절로 후들후들 떠리는데 길은 멀다. 이 때 힘이 되어 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함께 나와 걸어가신다는 믿음에서 오는 기쁨인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이 내 스스로 주님 안에 거하여 주님의 모든 명령대로 수행하고 그 뜻을 행하면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룰 생각이 없는데도 주님 일방적으로 내게 능력이 되어 주시는 법이 없다. 반드시 나의 발걸음에 밎추어 움직여 주시는 것이니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주님도 한 발짝도 움직이실 수가 없으니 왜냐면 강제에 의한 하나됨이 아니라 쌍방 약속에 의해 즉 너는 나를 위하고 나는 너를 위한다는 약조 아래 이루어져 있는 '둘이 하나됨'의 우리 구원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열매 맺는 것도 차별이 난다. 어떤 이는 100배요 혹자는 60배, 또 다른 이는 그보다 못한 겨우 30배다(막 4:20). 그리스도께서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면 모두가 한결같이 100배이지 그런 차이가 절대로 날 리가 없다. 그래서 이를 가리켜 우리 구원의 능동성의 측면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능동적이라 하지만 내 자신의 능력이나 힘이 아닌 것이니, 은혜로 얻은 구원이고 모두가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내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것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로 주시지 않은 것이 없고 따라서 시종(始終) 은혜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하나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가 일거수 일투족을 하는 것이지만 움직이는 주체(主體)는 나 자신이므로, 주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전면에 나서시어 나를 일방적으로 끌고 가시지는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오직 내가 주님께서 명령하시고 지시하시는 무엇이든 하리라는 결의가 충분할 때 물론 내 앞서 나가시고 인도하시나 중도에 내 마음이 바뀌어 그 인도를 따르지 않을 때는 주님 역시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는 것을 가리켜 이미 구약시대에서부터 이를 밝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제약한다고[to limit the Holy one] 하는 표현을 쓴 것이다(시 78:41).

 

하나님을 재차 삼차 계속 "시험함으로써"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음으로써 그런 결과를 내었다고 한 것이다. 이 말씀을 이상히 여길 것이 없는 것은, 신약시대에 그리스도 친히 그런 무기력하심을 나타내 보이셨기 때문이다. 즉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저들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다"[막 6:5,6]고 되어 있다. 때문에 항상 강조하시기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되었지만 그렇게 강조하셨으니 이는 다시 말해 앞에서 지적한 우리 구원의 양면성 즉 피동성과 동시에 능동성, 하나님의 능력과 동시에 우리의 믿음, 순종, 사랑의 자세 여하인 것이다].

 

[註-여기서 또 주목하는 한 가지는 영생을 가리켜 참된 생명("the life that is truly life")이라 한 것이다. 고로 시한부 생명의 이 세상 삶은 전정한 즉 참된 인간 삶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통제하시고 간섭하시고 강제하시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아담을 처음 창조하실 때 완벽하게 만드시지 이런 참되지 못한 생명 즉 자연계에 속한 한시적인 생명을 부여하실 리가 없다. 그래서 성경에 죄도 죽음도 한 사람 아담 때문에 왔다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영생하도록 창조된 아담이다. 자연계에 속한 자연법칙으로는 이 자연계에 속한 육체는 썩게 마련이지 영생하는 속성이 아니다. 고로 당연히 신령한 몸으로 아담이 있었고 따라서 그 세계 곧 에덴 낙원은 영계(靈界)이지 이 자연계가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이 같이 명백하게 [기타 다른 성경 대목들을 통해서도] 설명하고 있건만 지금까지 천 년을 넘기면서도 소위 신학자, 신학교, 신학은 이를 속 시원하게 밝혀 주지 못했으니 완전히 그 소위 권위는 땅에 떨어진 것이다. 성령의 계시로 진리를 깨우치신다는 말씀,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는 경고를 무시해온 당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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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

 

(갈 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했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한다.

 

(엡 4: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해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하나님의 나라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의 의(義)와 평안과 희락(喜樂, joy)이다. (롬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 (롬 14:19)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쓸지니

 

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 1:27) 오직 여러분은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여러분을 가보나 떠나 있으나 여러분이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것을 듣기 원한다.

 

우리는 낮에 속한 자

 

(빌 4:8) 종말로 형제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 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 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9) 여러분은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안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이다.

 

(살전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謹愼-방심 않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함)할 것이다. (살전 5: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살전 5:8) 우리는 낮에 속했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胸背, 胸甲, 갑옷의 가슴받이-breastplate, 요즘 말로 하면 방탄복)를 붙이고 구원의 희망의 투구[옛날 전투시 머리를 보호하던 철모]를 쓰자. (살전 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심이다.

 

교만에 대한 경고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벧전 5:5) 젊은 이들이여,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順服)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對敵, 적대)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중복]..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여러분을 높이실 것이다.

 

비방이나 판단하지 말라

 

(약 4:11) 형제들,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다. [註-이 "율법"은 그리스도의 율법,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계명'을 가리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사랑하지 않고 비방하고 판단하니 계명(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다. (약 4:12)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신다. 너는 누구인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주님의 뜻이면" 하고 말하라

 

(약 4:13) 들으라, 여러분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득을 보겠다" 하는데, (약 4:14) 내일 일을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이냐? 여러분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이다. (약 4:15) 여러분이 도리어 말하기를 "주님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할 것이다" 해야 할 것인데, (약 4:16) 이제 여러분이 헛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다.

 

혀가 작은 지체로되

 

(약 3:1) 내 형제들, 여러분은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다.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울 것이다. (약 3:3) 우리가 말(馬)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馭車-마소를 몰다)하며 (약 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니 (약 3: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한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약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다.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난다. (약 3: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바다에 있는 것들은 다 길들임으로 사람에게 길들여졌거니와 (약 3:8) 혀는 능히 길들일 이가 없으니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

 

(약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主)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니 (약 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온다. 내 형제들, 이것이 온당치 않다. (약 3: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약 3:12) 내 형제들,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 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한다.

 

(약 3:13) 여러분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이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 일이다.

 

성 내지 말라

 

(약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 여러분이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 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지 못함이다.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겸손]으로 받으라.

 

경건의 비밀

 

(딤전 3:16) 크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다. 그[그리스도를 가리킴]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성령]으로 의로우심[죄 없으심]이 드러나셨고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만국에 전파되셨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음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겁 많은[timid, 소심한, 수줍어하는, 주저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자기 단련[self-discipline]의 마음이니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불쌍히

 

(유 1:22) 의심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라.

 

(유 1:23) 또 어떤 이는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이는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불쌍히 여기라.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

 

(딤전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들을 깨우치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 받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선한 일꾼이 될 것이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심

 

(벧후 1:3) 그의 기이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그 선하심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다.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스럽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으로 하여금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divine nature]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온유와 두려움으로

 

(벧전 3:15) 여러분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이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6) 양심을 따라 선한 삶을 살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다. 

 

(딤후 2:24) 마땅히 주님의 종은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분 내지 않으며] (딤후 2: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 것이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셔서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딤후 2: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가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고후 2: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드로아에 이르니 주님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나 (고후 2:13)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다. (고후 2:14) 우리를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후 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 2:16) 전자에게는 사망을 따라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후자에게는 생명을 따라 생명에 이르는 냄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 누가 이런 일을 감히 할 수 있으리요.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이 많다

 

(빌 3:18) 여러 번 내가 여러분에게 말했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 (빌 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神)은 배(腹)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이들이다.

 

우리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졌음

 

(골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골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치 말라. (골 3:3) 이는 여러분이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졌음이다. (골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여러분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다.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시는 이 곧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기다리니 (빌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이의 역사(役事)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요일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to do the truth] 아니 함이거니와["진리를 행하는 자"는 영역으로 "he that doeth truth"-요 3:21],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을 것이다. 

 

[註-여기서 요한이 "죄 있고 없음"을 논하는 까닭은 다음 절에서 사랑 없음 즉 형제 사랑이 없음(구체적인 사례로 지적한 것이 요일 3:17, 야고보도 약 2:2-4에서 같은 식으로 말하고 있다)을 죄라 지적하고 있고 그리고 편지 전체의 내용이 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데에서 연유된다. 왜냐면 편지 내용 곳곳에서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원칙을 거듭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구절들도 같은 맥락이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불의하지 않으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않았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代言者)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요일 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시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다.

 

고난

 

(벧전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여러분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한 것이다. [註-이 '고난 후 영광'이라는 공식(公式, a formula)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 20:21) 하셨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 몸에 채운다"(골 1:24) 한 것이다].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며 고통

 

(롬 8: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 8: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다.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註-children: "sons and daughters"가 아님] 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다. (롬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註-"산통(産痛) 중에 신음하듯이"의 의미로서 우리말 번역 "탄식"은 오역]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니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니

 

(롬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니 이는 환난은 인내[endurance, perseverance]를, (롬 5:4) 인내는 단련(鍛鍊/approved character/God's approval/ripeness of character)을, 단련은 소망(所望, hope)을 이루는 줄 앎이다. (롬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 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가 됨이니

 

(살후 1:3) 형제들, 우리가 여러분을 위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니 이것이 당연함은 여러분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여러분이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살후 1:4) 그리고 여러분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여러분의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다.

 

그 나라 위해 고난 받는 것

 

(살후 1:5) 이는 하나님의 공의(公義/righteous)로운 심판의 표요 여러분들로 하여금 하나님

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해 여러분이 또한 고난을 받는 것이다.

(살후 1:6) 여러분들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살후 1:7) 환난 받는 여러분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安息 쉼, rest)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公義, a righteous thing, justice)시니

(빌 1: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핍박하는] 자들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은 이 일을 듣고자 함이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요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조이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다.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

 

(고후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해 내가 세 번 주님께 간구했더니 (고후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짐이다" 하시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다.

 

택하신 자 위해 모든 것 참음

 

(딤후 2:8)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후손]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딤후 2:9)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 (딤후 2: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해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로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다.

 

(딤후 2:13) 우리는 신실됨이 없을지라도 주님은 일향(一向) 신실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심이다.

(살전 3: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살전 3: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니 이는 여러분을 굳게 하고 여러분의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살전 3:3)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다.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여러분이 친히 알 것이다.

 

(살전 3:4)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여러분에게 미리 말했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여러분이 안다. (살전 3: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알기 위해 보내었으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여러분을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살전 3:6) 지금은 디모데가 여러분에게로부터 와서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여러분이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여러분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여러분을 택하심을 안다

 

(살전 1:2) 우리가 여러분을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말함은 (살전 1:3) 여러분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살전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 내가 여러분의 택하심을 안다. (살전 1:6) 또 여러분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道/the word)를 받아 우리와 주님을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중복].

 

보이는 것은 잠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니, 보이는 것은 나타나져 있지 않은 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

 

(고후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가벼운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다.

 

(롬 8:24) 우리가 소망(所望, hope)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 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고후 5:6)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처(居處)할[to abide] 때에는 주님과 따로 거처하는 줄을 아니 (고후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 함이다. (고후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처하는 그것이다.

 

땅의 장막 집과 영원한 집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상속자] 곧 하나님의 후사(後嗣, heir)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다.

 

(롬 8:18)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帳幕, tent) 집[earthly house, 우리의 육체를 가리킴]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니 (고후 5: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to groan]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바 (고후 5: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다.

 

(고후 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다. (고후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약 5:13) 여러분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 것이다.

 

항상 예수님 위해 죽음에 넘겨짐

 

(고후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고후 4: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고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다.

 

(고후 4: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님을 위해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다. (고후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역사한다.

(히 10:32) 전날에 여러분이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히 10: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더불어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히 10:34) 여러분이 갇힌 자를 동정하고 여러분의 재산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재산이 있는 줄 앎이다. (히 10:35) 그러므로 여러분의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는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

 

(고전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고전 15:31) 형제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서 가진 바 여러분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니, 나는 날마다 죽는다. (고전 15:32)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대로[그 때 당시 원형 경기장에서]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이다.

모든 환난 중에도 위로가 가득

 

(고후 1:3) 찬송할 것은, 그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후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 (고후 1: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여러분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여러분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여러분 속에 역사(役事)하여 우리가 받는 것과 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게 한다.

 

(고후 1:7)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확고함은 여러분이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다.

 

(고후 7:4) 내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여러분을 위해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친다.

 

(고후 7: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다. (고후 7: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Titus]를 오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고후 7:7) 그의 온 것뿐 아니요 그가 여러분에게 받은 그 위로로 [우리를] 위로하고 여러분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해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했다.

 

자기를 의뢰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

 

(고후 1:8) 형제들,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여러분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으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사는 것 자체를 단념할 지경에까지 이르러[so that we despaired even of life] (고후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다. (고후 1:10) 그가 이 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다.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는 것이다.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

 

(롬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적대]하리요.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to deliver up]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굶주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님을 위해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屠殺, slaughter)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함과 같다.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

 

(롬 8:38) 내가 확신하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그 몸된 교회 위해 내 육체에 채움

 

(골 1:24) 내가 이제 여러분을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운다.

 

그리스도 위해 고난 받음은 은혜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해 고난도 받게 하심이다. (빌 1:30) 여러분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이는 여러분이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다.

 

(히 11:25) [모세가] 도리어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을 이집트의 모든 보화[보배]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 결말[reward, 응보, 우리말 번역은 "상 주심"]을 바라봄이다.

 

(빌 3:13) 형제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결말[reward, 우리말 번역은 "상"]을 위해 달려간다.

 

(빌 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니 만일 무슨 일에 여러분이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여러분에게 나타내실 것이다. (빌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 대로 행할 일이다.

 

감당 못할 시험 허락치 않으심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여러분에게 당한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은 신실(信實)하셔서[faithful] 여러분이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치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셔서 여러분들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히 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신다.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

 

(히 2: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분께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주(主)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다. (히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도 그 능욕을 지고

 

(히 13:10) 성막(聖幕, tabernacle, 하나님의 성전을 상징했던 모세 당시의 성역화된 또는 성별(聖別)된 텐트]에서 섬기는 자들이 그 제물(祭物)을 먹을 권리가 없는 제단(祭壇)이 우리에게 있는 바 (히 13:11) 이는 죄를 위한[이스라엘 백성의 죄 용서를 위해 죽는 희생 제물로서의] 짐승의 피는 대(大) 제사장이 가지고 성소(聖所)에 들어가고 그 육체[제물로 사용된 짐승]는 장막[영역으로 "camp". 당시 천막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처하던 야영지(野營地)] 밖에서 불사름이다. (히 13:12) 그러므로 예수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시려고 '예루살렘' 성문(城門)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히 13:13) 그런즉 우리는 그의 능욕[reproach/disgrace/shame]을 지고 장막[註-사람들이 모여 삶을 형성하는 곳을 말함이니 여기서는 세상 삶(혹은 삶의 재미 또는 낙)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경건하게 살려면 핍박 받게 되어 있어

(딤후 3: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목적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딤후 3:11)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Antioch]과 이고니온[Iconium]과 루스드라[Lystra]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박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님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다.

 

선행의 대가로 고난 받으며 참기 위해 부르심 받아

 

(벧전 2:20)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 (벧전 2:21) 이를 위해 여러분이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여러분을 위해 고난을 받으셔서 여러분에게 본을 끼쳐 그 발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다.

 

(벧전 2:22) 그는 죄를 범치 않으시고 그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 (벧전 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公義, 정의, 의)로[righteously]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다[위임 또는 일임하셨다, 맡기셨다, committed Himself].

 

(벧전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낫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 한번 죄를 위해 죽으셔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위하셨으니["the just for the unjust"]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다.

 

(벧전 3:12) "주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님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신다" 했다. (벧전 3:13) 또 여러분이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여러분을 해하리요. (벧전 3:14) 그러나 의를 위해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의 두렵게 함[threats]을 두려워 말며 동요하지 말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 즐거움

 

(벧전 4: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련(試鍊)하려고 오는 불[fiery, 맹렬한]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벧전 4:13) 오직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여러분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다.

 

(벧전 4:14)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의 위에 계심이다.

 

(벧전 4:15)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벧전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신실하신[faithful] 조물주께 부탁할 일이다.

 

(벧전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실 것이다. (벧전 5:11) 권능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돌아가 있으시기를. 아멘.

 

(약 5:10) 형제들,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니 여러분이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님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불쌍히 여기는 이시다.

 

(히 13:3)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사단

 

(벧전 5:8) 방심하지 말라. 정신을 차리고 있어라. 여러분의 원수 마귀가 포효하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으니 (벧전 5:9) 여러분은 믿음을 굳게 하여 그에게 맞서라. 이는 세상에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다.

 

(엡 2:1) 여러분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여러분을 살리셨다. (엡 2:2) 그 때에 여러분이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대로 행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靈)이다.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震怒)의 자녀[children of wrath]이었다.

 

(고후 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려진 것이다.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神)이 믿지 않은 자들의 마음을 눈 어둡게[註-그렇기 때문에 "그 눈을 뜨게"(행 26:18) 한다 하셨다]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롬 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여러분의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실 것이다. 예수 우리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고후 2: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다. 우리가 그 책략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다.

(고후 11: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임수의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다. (고후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니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 하므로 (고후 11:15) 사단의 일꾼들이 자기를 의(義)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다. 그들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될 것이다.

 

시험

 

(벧전 1:6)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더라도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것은 (벧전 1:7) 여러분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다시 오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다.

(약 1:2) 내 형제들,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3) 이는 여러분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여러분이 앎이다.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여러분으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다.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 것이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 속지 말라, (약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돌아가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註-해의 비침 또는 등불에 따라 그림자도 돌거나 움직이듯이 상대적으로 영향을 받으시는 것이 없으니 하나님은 홀로 절대자이시므로].

세상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으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眼目)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the lust of the flesh, the lust of the eyes, the pride of life]으로서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다.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있게 된다.

 

(요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는 것이며

 

(요일 3:13) 형제들,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세상을 이기는 자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다. (요일 5:5)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요일 2:12) 자녀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것은 여러분의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용서함을 얻음이요 (요일 2:13) 아비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것은 여러분이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것은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음이다.

 

(요일 2:14) 자녀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쓴 것은 여러분이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쓴 것은 여러분이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쓴 것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거하시고 여러분이 흉악한 자를 이겼음이다. [註-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기본적으로 사단을 이기고 있는 상태다].

 

이 세상을 사랑하여

 

(딤후 4:10) 데마는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세상이 나를 대해 내가 세상을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혀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다. (갈 6:15) 할례나 무(無)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a new creature]뿐이다. (갈 6: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으시기를.

 

그리스도 예수님의 좋은 군인

 

(딤후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좋은 군인으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딤후 2:4) 군인이 되어 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는 바, 이는 자기를 군인으로 모집한 자의 마음에 들도록 하기 위함이다. (딤후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우승의]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딤후 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다. (딤후 2:7)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님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실 것이다.

 

함께 군인이 된

 

(빌 2:22) 디모데의 단련(鍛鍊)을 여러분이 아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했다. (빌 2:23) 그러므로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내가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빌 2:24) 나도 속히 가기를 주님 안에서 확신한다. (빌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인(軍人ㅡfellowsoldier)된 이요 여러분의 사자(使者)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사람이다.

 

(빌 2:26) 그가 여러분을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여러분이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했다. (빌 2: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셨고 그만 아니라 또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다. (빌 2: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여러분들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빌 2:29) 이러므로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이들을 존귀하게 여기라. (빌 2: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은 것은 나를 섬기는 여러분의 일에 그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딤후 4:6) 부어 따르는[to pour] 제물처럼[빌 2:17] 벌써 내가 다 부어지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우리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님

 

(고후 10:3)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않으니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陣)을 파(破)하는 강력이다.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 (고후 10:6) 여러분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응징할 만반 태세를 갖춤이다.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 중 각 사람에게 말하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엡 6:10) 종말로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고 (엡 6:11) 마귀의 책략을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으로 완전무장을 갖추라. (엡 6:12) 우리의 씨름["wrestle"-KJV, "struggle"-NIV]은 혈(血)과 육(肉)에 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력[rulers/principalities], 권세[authorities/powers],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powers/rulers] 및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다.[註-총괄해서 사단을 필두로 하는 모든 악령이 세력을 말함].

 

(엡 6:13)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완전무장하라. 이는 악한 날에 여러분이 능히 대적(對敵)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to stand] 위함이다. (엡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여러분의 허리 띠를 띠고 의(義, 올바른 행실)의 흉배[胸背-breast plate]를 붙이고 (엡 6:15) 평안의 복음의 준비한[복음 전도를 하는] 것으로 신[shoes]을 신고 (엡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shield]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 화살(火箭-fiery darts/flaming arrows)]을 소멸[quench, distinguish]하고 (엡 6:17) 구원의 투구[helmet]와 성령의 검[sword]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無時)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해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거룩한 형제들을 위해 구하고

 

성령께서 우리 위해 간구하심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심이다. (롬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한 형제들을 위해 간구하심이다.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고소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누가 정죄(定罪-단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이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이시다.

 

항상 여러분 위해 기도

 

(롬 1:8)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 모두를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하니 여러분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다. (롬 1:9) 내가 그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여러분을 말함은 (롬 1: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 뜻 안에서 여러분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함이다. (롬 1:11) 내가 여러분 보기를 심히 원함은 신령한 은사[gift, 선물]를 얼마간 여러분에게 나눠 주어 여러분을 견고케 하려 함이니 (롬 1:12) 이는 내가 여러분 가운데서 여러분과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 함을 얻으려 함이요 (롬 1:13) 여러분도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다.

(살전 3: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을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여러분을 위해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살전 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여러분의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다.

 

(살후 1: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여러분을 위해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役事)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살후 1:12) 우리 하나님과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여러분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여러분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다. (살후 2:13) 주님의 사랑하시는 형제들, 우리가 항상 여러분을 위해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여러분을 택하셔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살후 2:14) 이를 위해 우리 복음으로 여러분을 부르셔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골 1:3) 우리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니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거룩한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골 1:5) 여러분을 위해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여러분이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골 1:6) 이 복음이 이미 여러분에게 이르러 여러분이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여러분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고 있다. (골 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여러분이 배웠으니 그는 여러분을 위해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골 1:8) 성령 안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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