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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 로마서 (3)

Tayseek Kwon 2015. 12. 31. 16:55

 

확대 로마서 (3)

 

 

 

(빌 1:3) 내가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 1:4) 간구할 때마다 여러분을 위해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 1: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여러분이 교제함을 인함이다.

 

(딤후 1: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딤후 1:4) 내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넘치게 하려 함이니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다.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한다.

 

(엡 3: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가(family, 家屬)에게 (엡 3:15) 그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는 것은 (엡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엡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계시게 해 주시고 여러분이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8) 모든 거룩한 형제들과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능히 알아 (엡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해 주시기를 구함이다.  

 

(엡 1:15) 이를 인하여 주님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거룩한 형제들을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엡 1:16) 여러분을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않고 내가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말하는 것이니

 

(골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고 구하니 여러분들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여러분이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여러분 믿는 이들 속에서 역사하(役事)시는 것이다.

 

온갖 구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심

 

(엡 3:20)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엡 3: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시기를. 아멘.

(몬 1: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몬 1:5) 주 예수님과 모든 거룩한 형제들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몬 1:6) 네 믿음의 교제로써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모든 선한 것을 네가 알게 되기를 구한다.

 

성령으로 기도하라

 

(유 1:20)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은 정신을 차려 방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복음 전도자들 위해 기도

 

(롬 15:30) 형제들, 내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권하니 여러분의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해 하나님께 빌어 (롬 15:31)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않은 자들로부터 구함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거룩한 형제들이 받음 직하게 하고 (롬 15: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여러분에게 나아가 여러분과 함께 편히 쉬게 하라.

 

(살후 3:1) 종말로 형제들, 여러분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기를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살후 3: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기를 구하라.

 

(히 13:18)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한다. (히 13:19) 내가 더 속히 여러분에게 돌아가기 위해 여러분의 기도함을 더욱 원한다.

 

(빌 1:19)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가 구출될 줄 아는 고로[바울의 로마 옥중 생활에서 쓴 편지]

 

(살전 2: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여러분에게 가고자 했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다. (몬 1:22) 오직 너는 나를 위해 거처를 준비하라. 여러분의 기도로 내가 여러분에게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

 

(골 4:3) 또한 우리를 위해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했다. (골 4: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낼 것이다.

 

(엡 6:19) 또 나를 위해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셔서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시기를 기도할 것이니 (엡 6:20) 이 일을 위해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使臣)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 위해 간구함으로 도우라

 

(살전 5:25) 형제들,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

 

(고후 1:11) 여러분도 우리를 위해 간구함으로 함께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선물, 은혜]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해 감사하게 하려 함이다[Ye also helping together by prayer for us, that for the gift bestowed upon us by the means of many persons thanks may be given by many on our behalf].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知覺)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다.

 

(벧전 5:7) 여러분의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 버려라. 이는 그가 여러분을 염려해 주심이다.

 

구하는 것을 받는 요건

 

(요일 3:21)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요일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다.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다. (요일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는 것이다.

 

모두 구원 받고 진리 알기를 원하심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니 모든 사람을 위해 간구[절박한 상황 속에서 긴급 응답을 바라는 기도]와 기도[prayers-일반적인 기원]와 도고[禱告:intercession-제사장으로서의 기도]와 감사를 하되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다. (딤전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벧후 3:8)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9) 주님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여러분을 대하여 오래 참으셔서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심이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구하라

 

(약 1:5)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다.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이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다.

 

(약 4:1) 여러분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따라 나느냐. 여러분의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따라 난 것이 아니냐. (약 4:2) 여러분이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미워함도 살인이다ㅡ요일 3:15]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니 여러분이 다투고 싸운다. 여러분이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다.

 

(벧전 3:7) 이는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 함이다.[註-아내를 귀하게 여기라(벧전 3:6)]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8) 매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살전 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살전 5: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살전 5:21) 매사에 헤아려 선한 것을 취하고 (살전  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릴 것이다.

 

(딤전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한다. [註-남녀를 구분해서 "남자"들을 특히 지목한 것이라기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men)"을 가리킴으로 알면 좋을 듯].

 

(골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약 5:13) 여러분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 것이다.

 

(롬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병 낫기 위해 서로 기도하라

 

(약 5:16) 이러므로 여러분의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약 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나 그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간 땅에 비가 아니 오고 (약 5:18)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다.

 

(약 5:14) 여러분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해 기도할 것이다.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사람을 구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키실 것이다. 혹시 죄를 범했을지라도 용서하심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짐

 

(딤전 4: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으니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짐이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

 

하나님의 아들됨

 

(갈 4:6) 여러분이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註-아들께서는 원래부터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 그대로 즉 하나님으로 계시나 이제는 우리와 똑같이 육체를 입으셔서 그 때문에 "아들의 영"으로서 표현되심은 당연하다]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 (갈 4:7) 그러므로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상속 받을 자이다.

 

현재 하나님의 아들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이 당연함]은 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일 3:2)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니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일 3:3) 주님을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이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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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우리말 번역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할 것이 아니라 흠정영역 "sons"(KJV)를 따라 남녀 불문하고 그냥 "아들들"이라 해야 옳다. 기타 영역으로도 "children"이고 "sons and daughters"가 아니니 따라서 우리말 번역도 "자녀들"이라 할 것이 아니다. 옛 이스라엘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들[sons and daughters]이라 한 적이 꼭 한 번이 있다. 우리도 그런 의미에서 부른다면 하자는 없다 하겠으나, 장차 천국에서는 남녀 구별이 없기 때문에 영문처럼 "children"이라는 적절한 단어가 있으면 좋은데 없기 때문이다. 롬 8:14, 갈 4:6 같은 데서도 분명 "하나님의 아들들"로 우리말 번역 역시 명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통일시켜 "아들들"이라 일관되게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들인가, 딸인가. 남성으로서의 아들이라면 여성이 무시된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는 그런 불공정, 불공평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사람은 성별이 있으므로 인간의 대표인 첫 사람 아담을 따라 남자가 되셨을 뿐이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고로 천사들[영물들]처럼 우리도 영원 세상에 들어가면 다시는 남녀 구분이 없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남자이셨기 때문에 아들이시라 한 것이 아니라,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실 때 처음부터 '남자'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영물들과 같은 성별 없는 완전한 개체로 만드신 것이다. 남자로 만드셨다면 반드시 '여자'도 동시에 만드셨을 것이나 한참 후에야[아담의 영혼 조성, 에덴낙원 창설 등] 그것도 에덴낙원에서 영물들(에덴낙원의 땅을 소재로 하여 지으신  각종 짐승들)을 지으신 이후에야 비로소 '여자'를 지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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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마다 회초리

 

(히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여러분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지 말라. 기록되기를 "내 아들아, 주님의 징계하심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 12:6) 주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회초리를 드심이다" 했으니 (히 12:7) 여러분이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여러분을 대우하시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여러분에게 없으면 사생자(私生子)이지 참 아들이 아니다.

(히 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했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히 12: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했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신다.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이에게는 의의 평화스러운 열매를 맺는 것이니 (히 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히 12:13) 여러분의 발로 곧장 똑바른 걸음을 내딛게 하여 저는 다리로 하여금 불구되지 않고 제 스스로 고쳐지게 하라.

 

세례

 

(벧전 3:20) 노아의 날...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이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다[중복].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여러분을 구원하는 표[antitype, 대형(對型), symbolization]로서 곧 세례이니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除)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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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노아 당시 노아 가족 외에는 세상이 모두 물로 '말미암아 망했지만' 노아 등은 '물로 말미암아 구원되었다'고 여기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구원되는 것을 상징한다고 했다. 세상 종교[일반적으로 기독교라 자처하는]의 교리와 같이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됨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제로 하여 되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아 당시 '물로 말미암은 세상의 멸망'을 전제로 하는 '물로 말미암은 노아 가족의 구원'인 것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세례를 통하여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말미암아 과거 죄 청산하고 앞으로 지을 죄에 대한 그 어떤 합리적인 구실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조처를 통해, "새 생명"(롬 6:4)의 온전한 삶의 구현 즉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부활)이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비록 "육신"에 속하여 이 세상에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을 통해 구원 받아 영생하게 된다는 소설[거의 대다수가 일반적으로 그렇게 믿는 것처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육신"(롬 7:5-8:13) 곧 "죄의 몸"(6:6)을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죽음으로써 완전히 십자가에 못박아 "멸해"[:6] 치운 나머지 향후 "육신"의 변명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자기 부인의 토대 위에서, 죽음이든 고난이든 간에 이 세상의 온갖 위협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대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사는"[고후 5:15/롬 14:7-9] 삶이 구원임을 베드로 역시 확고히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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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갈 3:26) 여러분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이다[중복]. (고전 6:17) 주님과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다[중복].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다.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으니 (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니 다시 죽지 않으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다.

 

(골 2:12) 여러분이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transgressions/trespasses, 범법 행위, "죄는 불법"-요일 3:5]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살리셨고 {여러분이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다} (골 2:13) 또 여러분의 범죄와 육체의 무(無)할례["육체의 무할례"가 "육신" 즉 "죄의 몸"]로 죽었던 여러분을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엡 2:6)  함께 일으키셔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다.

 

(딤후 2:11) 신실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딤후 2:12) 참으면 또한 함께 다스릴[통치할] 것이요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다[누 12:9].

교회[하나님의 가족]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이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거룩한 형제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속(家屬, family, members of the household)이다.

 

몸인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셔서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다.

 

(엡 4:15) 그는 머리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다. (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相合)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役事)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운다.

 

(엡 1:20) 그 능력[하나님의]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셔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셔서 (엡 1:21) 모든 다스림과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엡 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다.

 

(엡 5:26) 이는[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해 자신을 주심은]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셔서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平康,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해 여러분이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또한 여러분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2:19)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 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란다.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

 

(롬 12: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肢體)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

 

(롬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 대로 받은 은사[선물, gift]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롬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롬 12:8) 혹 권고하고 위로하는 자면 권고하고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불쌍히 여김. 가엾게 여겨 도와 줌]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다.

 

(고전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다.

(고전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요 7:38,39]. (고전 12: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고전 12:15) 만일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렇다고 몸에 붙지 않은 것이 아니요 (고전 12:16)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렇다고 몸에 붙지 않은 것이 아니니 (고전 12: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고전 12: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고전 12: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고전 12: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다.(고전 12:21) 눈이 손더러 "네가 내게 쓸모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네가 내게 쓸모가 없다" 못할 것이다.

 

(고전 12:22)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고전 12:23)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우리가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고전 12: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셔서 (고전 12: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다. 

 

(고전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니 (고전 12: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다. (롬 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중복].

 

첫째는 사도, 둘째는 선지자, 세째는 교사...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 둘째는 선지자, 셋째는 교사[teacher], 그 다음은 능력 행함,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각종 이방언[異邦言]을 하는 것 등이다. (고전 12: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고전 12: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이방언[異邦言]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이방언'(외국 언어)이라 알아듣지 못하므로 그것을 통역]하는 자겠느냐? (엡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 혹은 복음 전하는 자[註-외지에 나가 선교하는], 혹은 목자(牧者)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 4:12) 이는 거룩한 형제들[saints]을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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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우리말 성경의 "방언(方言, tongues)"으로 번역된 것은 모두 "이방언(異邦言)"으로 바꾸었다. "방언(方言)"은 고장 특유의 사투리를 가리킬 때 오늘날도 쓰이는 용어인데 반해, "이방언"은 말 그대로 이방 즉 외국의 언어, 타종족(他種族)의 말이라는 뜻이기에 그렇게 정했다. 흠정영역으로 "an unknown tongue"(고전 14:2,4,13,14,19,27)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말 번역은 일괄적으로 "방언"이라고만 했지만 이 경우 모두 "미지언(未知言, an unknown tongue)"으로 고쳤다.

 

좀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나 성경을 바르게 이해한다는 차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성경에서 '방언'이라고 하면 외국인의 말 즉 자국인은 알아듣지 못하는 각 나라 언어를 말함인 것이다. 성경이 이로써 가리키는 의미는 믿는 사람이면 자동적으로 외국 말이 술술 나온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마땅히 할 말을 그 입에 두시고 말하게 하신다는 데에 핵심 뜻이 있다. 특별한 경우 그것이 때로는 말하는 본인 자신도 알지 못하는 외국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천사의 말"(고전 13:1)은 가정법을 써서 "비록 그런 것이 있다 해도"라는 뜻이다. "천사의 방언"은 없다. "방언도 폐한다"고 바울이 말했는데 천사의 말이 폐해질 리 있는가. 그래서 여기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방언"에 대해서만은 인식을 새롭게 하 수 있도록 일부러 용어 자체를 이상과 같이 바꾸는 시도를 한 것이다. 말세지 말을 당하여 사단이 이런 면으로 교회를 혼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도 방언을 가리켜 "종교적으로 흥분 상태에 있을 때 나타내는 현상"[영어사전]이라 설명하고 있고 혹은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놓는 뜻을 알 수 없는 말의 개신교 용어"(국어사전)라 적고 있으니 어째서 이 지경이 되어 있는지 답답해할 뿐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내는 완벽한 외국어 구사인데 이렇게 조롱 섞인 설명이 가해진 것은, 믿는다고 하는 이들 자신의 혼돈이요 불찰 때문이니 그 책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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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

 

(엡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으니 (엡 4: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註-죄악과 사단에게 포로된 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포로된 자 곧 구원 받은 이들로 전환시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했다. (엡 4:9) 올라가셨다 했은즉 땅 아래 곳[마 12:40]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엡 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이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다.

 

(고전 12:4) 은사(恩賜-gift, 선물)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전 12: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님은 같으시며 (고전 12:6) 또 역사(役事, activities)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役事)하시는[to work] 하나님은 같으시니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다.

(고전 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 (고전 12: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 (고전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 ,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 ,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 , 다른 이에게는 각종 이방언(異邦言)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이방언 통역함을 주시니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셔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것이다.

 

이방언(異邦言)

 

(고전 14:1)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 14:2) 미지언(未知言, an unknown tongue)을 말하는 이는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다. 마13:11 (고전 14:3) 그러나 예언하는 이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고하며 위로하는 것이다. (고전 14:4) 미지언(未知言, an unknown tongue]을 말하는 이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이는 교회의 덕을 세우니 (고전 14:5) 나는 여러분이 다 이방언(異邦言)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한다.

 

이방언을 말하는 이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통역하지 않으면 예언하는 이만 못하다. (고전 14:6) 그런즉 형제들, 내가 여러분에게 나아가 이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고전 14: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않으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고전 14:8)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고전 14:9) 이와 같이 여러분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않으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다.

 

(고전 14:10)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 같이 많되 의미 없는 소리는 없으니 (고전 14: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상대에게 외국 말이 되고 말하는 본인도 내게 외국 말을 함이 될 것이니

 

(고전 14:12) 그러면 여러분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이들인즉 교회의 덕 세우는 일에 풍성하기를 구하라. (고전 14:13) 그러므로 미지언(未知言, an unknown tongue)을 말하는 이는 통역하기를 기도할 것이니 (고전 14:14) 내가 만일 미지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다. (고전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할 것이다. (고전 14:16) 그렇지 않으면 내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이를 알아 듣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이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니 내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고전 14:17) 나는 감사를 잘 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덕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고전 14:18) 내가 여러분 모든 이들보다 이방언(異邦言)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전 14:19)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해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미지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

 

(고전 14:20) 형제들,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고전 14: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른 혀와 다른 입술로 말하는 자들로써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오히려 듣지 않을 것이다" 하셨으니(고전 14:22) 그러므로 이방언(異邦言)은 믿는 이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이들을 위함이다. (고전 14: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이방언(異邦言)으로 말하면 알아 듣지 못하는 이들이나 믿지 않는 이들이 들어오면 여러분을 미쳤다 하지 않겠느냐?

 

(고전 14: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않는 이들이나 그런 말을 못알아 듣는 이들이 들어와도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고전 14:25)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여러분 가운데 계신다고 전파할 것이다.

 

(고전 14:26) 그런즉 형제들, 어찌 할꼬. 여러분이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詩)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啓示, revelation)도 있으며 이방언(異邦言)도 있으며 이방언 통역함도 있으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해 하라.

 

(고전 14:27) 만일 누가 미지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고전 14:28) 만일 통역하는 이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다. (고전 14:29) 예언하는 이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고전 14:30)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이는 잠잠할 것이다.

 

(고전 14:31) 여러분은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고를 받게 하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다. (고전 14:32) 예언하는 이들의 영이 예언하는 이들에게 제재를 받는 것이니 (고전 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다.

 

(고전 14:39) 그런즉 내 형제들,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이방언(異邦言)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전 14:40)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장로-믿는 자에게 본

 

(벧전 5:1)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서 내가 여러분 중 장로들에게 권하니 (벧전 5:2)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flock]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利)를 위해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벧전 5:3) 맡겨진 이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 5:4) 그리하면 목자장(牧者長)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다.

 

(히 13:7)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여러분을 인도하던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종말[outcome]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딤전 4:12) 누구든지 네 연소(年小)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貞節, purity/)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딤전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딛 1:5) 내가 너를 그레데[Crete]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도시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딛 1: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 것이다.

 

(딤전 3:1) 신실하다, 이 말이여1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다. (딤전 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방심하는 일이 없으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 3:3) 술을 즐기지 않으며 구타하지 않으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않으며 돈을 사랑치 않으며 (딤전 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 것이다 (딤전 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딤전 3:6) 새로 입회[註-교회에 가입]한 사람도 말지니 교만해져 마귀를 정죄(定罪-단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딤전 3:7) 또한 외부 사람들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 것이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딛 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註-하나님의 사업이 맡겨진]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않으며, 급히 분 내지 않으며, 술을 즐기지 않으며, 구타하지 않으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으며, (딛 1: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방심하지 않으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딛 1:9) 신실하신[faithful, trustworthy]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할 것이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역하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다.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 그렇게 할 것이다. (벧전 5:5) 젊은 이들이여,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順服)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중복].

 

(딤전 5:19) 장로에 대한 고소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딤전 5: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註-"감독"과 "장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장로"를 때로는 "감독"이라고 불렀다. 바울은 "감독과 집사에게 편지한다"면서 "장로" 말이 없는 데에서 이를 알 수 있다(빌 1:1). 그리고 디모데 전서에서 "감독"과 "집사"의 자질을 말하면서 "장로"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이다.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디모데에게 보낸 서한의 내용과 아주 비슷하게 감독의 자질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으나 장로에 대한 말이 없다].

 

(살전 5:12) 형제들, 우리가 여러분에게 구하니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여러분이 알고 (살전 5:13) 그의 역사(役事)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여러분끼리 화목하라.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히 13:17) 여러분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to obey] 복종하라[to submit].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깨어 있기를 자기가 책임질 자인 것 같이 한다.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유익이 없다.

 

집사

 

(딤전 3:8)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않고 술에 인 박이지 않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고 (딤전 3: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 것이니 (딤전 3: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딤전 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악담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 것이다. [註-여기서 "여자"들은 전후 문맥을 살필 때(딤전 3:7까지 포함하여) 장로 또는 감독될 사람들의 아내된 사람을 지칭한 것임을 알 수 있고 "여자 집사"라는 의미는 아니다].

 

(딤전 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할 것이니 (딤전 3: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명망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 [註-여기서 집사의 구실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대로 교회 구제 혹은 재정을 맡는 역할이다].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

 

(고후 7:15) 여러분 모두가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여러분을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어졌다.[註-하나님의 말씀으로써 가르치는 자 또는 그런 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대했던 당시 사람들의 자세가 인상 깊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그러한 자세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자와 남자

 

(고전 11:2) 여러분이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여 준 대로 모든 가르침을 여러분이 지키므로 여러분을 칭찬한다. (고전 11:3)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알기를 원하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다.

 

(고전 11: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이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고전 11: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이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다.

 

(고전 11:6)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 것이다.

 

(고전 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다. (고전 11: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고전 11: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해 지음을 받지 않고 여자가 남자를 위해 지음을 받은 것이니 (고전 11:10)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 것이다.

 

(고전 11:13)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고전 11:14)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이 되는 것을 본성이 여러분에게 가르치지 않느냐? (고전 11:11) 그러나 주님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 (고전 11: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다.

 

(고전 11: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다. (고전 11:16)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이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다. (고전 11: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여러분을 칭찬하지 않으니 이는 그들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고전 14:34) 모든 거룩한 형제들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으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고전 14: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 것이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다.

 

(고전 14:36)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여러분에게만 임한 것이냐? (고전 14: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여러분에게 편지한 것이 주님의 명령인 줄 알라. (고전 14: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하는 자다.

 

(딤전 2: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딤전 2: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치 않으니 오직 조용할 것이다. (딤전 2: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Eve]가 그 후며 (딤전 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않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다. (딤전 2: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키면 그 해산(解産-아이 낳음)함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註-성경은 에덴동산에서의 여자의 범죄를 중시하여 남자가 나면 7일을 부정하고 여자의 경우 그 갑절이 됨을 통해서도 나타난다(레 12:3,5). 그러므로 여기서도 여자가 "죄에 빠졌다"는 그 악명(惡名)은 그 범죄에 대한 혹독한 대가 곧 저주(창 3:16)를 받음으로써 상쇄되는 것이고 따라서 믿음, 사랑, 거룩함을 지키면(여자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지마는) 구원 얻는 것이다].

 

여자들은 선행으로 단장

 

(딤전 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딤전 2: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이들로서 마땅한 것이다.

 

성찬-여러분 중에 분쟁이 있다

 

(고전 10: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니 여러분은 내 말하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라.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고전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다.

 

(고전 1:10) 형제들, 내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권하니 다 같은 말을 하고 여러분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18) 첫째는 여러분이 교회'로' 모일[註-우리말 번역 혹은 영역(英譯) 일부에서도 "교회'에' 모임"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잘못된 번역이니, 교회를 건물로 여겨 거기 모인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를 구성하여 어느 곳에서나 모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때에 여러분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건대 (고전 11:19) 여러분 중에 편이 갈라져야만 그 가운데 옳다 인정함을 받는 쪽이 나타나진다고 [서로] 여기는 것 같다.

 

(고전 11:20) 그래서 여러분이 주님의 만찬으로서 함께 모여 먹을 수 없으니 (고전 11: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다. (고전 11:22) 여러분이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하랴. 여러분을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는다.

 

(고전 11: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은 주님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셔서 (고전 11:24) 축사[축복 말씀]하시고 떼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전 11:26) 여러분이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

 

(고전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이는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 (고전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것이니 (고전 11:29) 주님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이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고전 11:30) 이러므로 여러분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않은데 (고전 11: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않겠지만, (고전 11:32) 우리가 판단을 받게 되는 것은 주님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함께 단죄(斷罪)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고전 11:33) 그런즉 내 형제들,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릴 일이다. (고전 11: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 것이니 이는 여러분의 모임이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다. 그 나머지는 내가 언제든지 가서 바로잡아 줄 것이다.

 

성찬-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예함

 

(고전 10:15) 내가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니 여러분은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고전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다. [이상 두 구절은 '성찬' 항목에서 중복 게재됨].

 

헌금

 

(고전 16:1) 거룩한 형제들을 섬기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Galatia]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여러분도 그렇게 하라. (고전 16:2) 매주일 첫날 여러분 각자가 이(利)를 얻은 대로 저축해 두어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도록 하라. (고전 16:3) 내가 여러분에게 가면 여러분이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여러분의 선물[註-헌금]을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할 것이니 (고전 16: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나도 그들과 함께 갈 것이다. (고전 16:5)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 여러분에게 나아가서 (고전 16:6) 혹 여러분과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한데 이는 여러분이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 주도록 하려 함이다. (고전 16:7) 이제는 지나는 길[김]에 여러분 보기를 원치 않으니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여러분과 함께 얼마 동안 유하기를 바람이다.

 

(고후 8:1) 형제들,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여러분에게 알게 하거니와, (고후 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그들로 풍성한 헌금을 넘치도록 하게 했다. (고후 8:3) 내가 증언하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自願)하여 (고후 8:4) 이 선물[헌금]과 거룩한 형제들 섬기는 일에 참여하게 해 줄 것을 우리에게 간절히 구했던 것이다.

 

(고후 8:5)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또 우리가 바라던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었다.

 

(고후 8:6) 이러므로 여러분 가운데 시작한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도록 우리가 디도[Titus]에게 권했다. (고후 8:7) 오직 여러분이 믿음, 말, 지식, 모든 간절함,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되기를 원한다.

 

(고후 8: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에 비추어 여러분의 사랑의 진실함을 입증케 하고자 함이다.

 

평균하게 하려 하심

 

(고후 8:9)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여러분이 알거니와 부유하신 이로서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여러분들로 부유케 되려 하심이다. (고후 8:10)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니 이것은 여러분에게 유익함이다. 1년 전에 여러분이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했은즉 (고후 8:11)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 것이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고후 8: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고후 8: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여러분은 곤난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고후 8:14) 이제 여러분의 여유 있는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여유 있는 것으로 여러분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다.

 

(고후 8:15)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았다"고 기록한 것과 같다. (고후 8:16) 여러분을 위해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니 (고후 8:17)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여러분에게 나아갔고 (고후 8:18) 또 그와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이요 (고후 8:19)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님의 영광과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사람이다. (고후 8:20) 이 일을 조심해서 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헌금으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고후 8:21) 이는 우리가 주님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다.

 

(고후 8:22)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열성을 여러 번 확인해 보았지만, 이제 그가 여러분을 크게 신뢰하고 있는 고로 그의 열심이 더욱 더하다.

 

(고후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분이 전에 약속한 헌금을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했으니 이렇게 준비해야 참 헌금답고 억지가 아니다.

 

억지가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고후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함이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 것이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이를 사랑하신다.

(몬 1: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치 않으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않고 자의(自意)로 되게 하려 함이다. (몬 1: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몬 1:9)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니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고후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여러분에게 풍성하게 하심은 여러분들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하려 하심이다. (고후 9:9) 기록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다" 함과 같다.

 

(고후 9:10) 심는 이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께서 여러분의 심을 것을 주셔서 풍성하게 하시고 여러분의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실 것이니 (고후 9:11) 여러분이 모든 일에 부유하여 너그럽게 헌금함은 우리로 말미암아 그들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함이다. (고후 9:12) 이 봉사의 직무가 거룩한 형제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더욱 풍성하게 되었다.

 

(고후 9:13) 이 직무가 증거가 되는 것과 같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여러분의 후한 헌금을 인하여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고후 9:14) 또 여러분을 위해 간구하며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여러분을 사모하는 것이다. (고후 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恩賜-선물)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후 9:1) 거룩한 형제들을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여러분에게 쓸 필요가 없으니 (고후 9:2) 이는 내가 여러분의 원함을 앎이다. 내가 여러분을 위해 마게도냐[Macedonia]인들에게 아가야[Achaia]에서는 1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 자랑했는데 과연 여러분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자극했다. (1고후 9:3)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여러분을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다. (고후 9: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여러분의 준비치 않은 것을 보면 여러분은 고사하고 우리도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염려함이다.

 

분쟁

 

(고전 1:11) 내 형제들, 글로에의 집 편으로 여러분에게 대한 말이 들리니 여러분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다. (고전 1:12) 다름아니라 여러분이 제각기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전 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세례를 받았느냐?

 

(고전 1: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여러분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하니 (고전 1:15) 이는 아무도 내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고전 1: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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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세례 주는 것 자체에 어떤 권위를 두어 특정인만이 세례를 주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명백히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 친히 세례를 베푸신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므로 따라서 누구를 통해 세례를 베푸시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세례를 주는 중대한 일[에티오피아 전국의 복음 전도에 도화선이 되는]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도를 통하시지 않고 집사 빌립을 시키셨던 것이다. 바울이 전도를 했으니 바울 자신이 세례를 베풀만 한데도 다른 사람에게 세례 주는 것을 맡긴 것도 그런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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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3:1) 형제들,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여러분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한다. (고전 3:2) 내가 여러분을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했으니 이는 여러분이 [밥으로 먹는 것을] 감당치 못했기 때문이거니와 지금도 못할 것이다. (고전 3:3) 여러분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이들이다. 여러분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세상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4)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 편이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 편이라" 하니 여러분이 [세상]사람처럼 하는 것이 아니냐. (고전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님께서 각각 주신 [은사]대로 여러분들로 하여금 믿게 한 일꾼[使役者]들이다.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오직 하나님만이 자라나게 하셨다.

 

연로한 이들

 

(딤전 5:1) 연로한 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부친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고 (딤전 5:2) 늙은 여자를 모친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딛 2:2) 늙은 남자로는 절제, 경건, 자제심, 믿음, 사랑, 인내에 온전케 하고 (딛 2:3)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여 [남을] 흉보지 말며 술 취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이들이 되고 (딛 2: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딛 2:5) 자제할 줄 알며 순결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다. (딛 2:6)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도 권고하여 자제하게 하라.

 

과부

 

(딤전 5:3) 참 과부인 과부를 돌보라. (딤전 5: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이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딤전 5:6) 놀기를 즐기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다.  (딤전 5: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딤전 5: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사람은 나이 60이 덜되지 않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이로서 (딤전 5: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거룩한 형제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따른 자라야 할 것이다.

 

(딤전 5:11)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딤전 5: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는다. (딤전 5:13) 또 그들이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험담하며 남의 일에 참견하며 마땅히 않을 말을 하니 (딤전 5: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림으로 대적자(對敵者, 사단)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한다. (딤전 5:15)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이들도 있다.

 

(딤전 5: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로 짐 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다.

 

상전과 종의 관계

 

(골 3:22) 종들이여, 모든 일에 [(엡 6:5)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신[육체]의 상전(上典)들에게 순종하되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하지 말고 오직 주님을 두려워하여 [(엡 6:6)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엡 6: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님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註-골로새서와 똑같은 내용이 에베소서에도 나오므로 여기 한데 합친 것].

 

(골 3:24) 이는 주님 주실 상속(相續) 분(分)을 그 상[reward]으로서 받을 줄을 앎이니, 여러분은 주님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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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을 섬기든 그것이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주님을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왜냐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므로 사람의 종이 아니라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기(고후 5:15)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상(賞, reward) 얻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는"(빌 3:8) 것 즉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9) 결과를 스스로 이루는 것임을 마땅히 명심할 일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님께 잡힌 바가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빌 3:12]고 한 대로, 우리의 구원은 내가 구원 받음으로써 "나의 구원을 쉴 새 없이 이루어가는" 것을(2:12) 말하는 양면(兩面) 동시성(同時性)이 그 특징인 것이다. 왜냐면 갑과 을의 하나됨에서 갑은 쉴 새 없이 을을 위하고 을 역시 쉴 새 없이 갑을 위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이라고 그 위함을 그치거나 멈추면 그것은 그 자신을 위하고 자신을 위해 살기 때문인즉 그 둘의 하나됨 역시 그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생명)이 나와 그리스도와의 하나됨을 말할진대 이 둘이 하나됨이 그쳐지면 자동적으로 나의 구원은 와해되는 그런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인즉 나는 이미 구원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 구원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이 그 핵심으로서 사랑은 쌍방이 동시에 움직이는 양면성의 특질을 지니므로 나 역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필수이고 필연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생명의 원리, 삶의 이치가 바로 그런 한 몸 구조에서 머리를 몸은 위하고 몸을 머리가 위함으로써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얻는다는 것은 나를 위하시는 그리스도를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자기 부인으로써 항상 붙잡고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구원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내게 생명(영생)을 주시는 것으로써 착각하는 이들이 오늘날 거의 전부인데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전처럼 나 자신을 위해 살아도 영생에 들어간다고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데, 그래 가지고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 성경이요 그 중의 몇 구절이 바로 위에서 말하는 바 우리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를 섬김"(골 3:24)이라 하는 것이요, 그래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빌 1:21)라 하는 것이다. 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곧 우리를 다시 출생하게 하신(요 3:3) 하나님의 새 창조[고후 5:17/엡 2:10/갈 6:15]의 의도이신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는 만큼 그리스도 역시 나를 위하실 수밖에 없으므로 열매를 맫는 것도 차등이 생겨 "30배, 60배, 100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치대로 하면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도 아무리 나를 위하시고 싶어도 위하실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제약하는 것"(to limit the Holy one-시 78:41[흠정영역])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이 믿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예수님도 하나님이 능력을 나타낼 수 없었던 것이다(막 6:5,6).

 

이것이 바로 "나를 시인하면 나도 그를 시인할 것이요 나를 부인하면 나도 그를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부인할 것"[눅 12:8,9/마 10:32/딤후 2:12]이라 하신 엄중 경고의 근거인 것이다. 그러니 "항상 복종함"(빌 2:12)으로써 즉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하는 둘이 하나됨의 이치로써 "두렵고 떨림으로"(:12) 즉 이 세상은 시험의 무대요 이 세상 지배자요 신(神)인 사단이 시험하는 자로서 눈에 불을 켜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므로(벧전 5:8) 각자의 구원 즉 "너희 구원을 이루라"(:12)는 것이다.

 

바울이 눈물을 흘리며 경고한 바 "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여 멸망하고 있다"(빌 3:18,19)는 것도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십자가의 원수"라 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실을 부인하고 신 여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살기 때문에(고후 5:14,15)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새 생명으로 다시 출생하여 새로이 창조된 것이 그리스도와 내가 둘이 하나된 구조로 된 것 즉 한 몸의 체제에서 머리든 몸이든 자기 부인이 핵심이요 생명으로 철두철미 상대(몸이든 머리이든)를 위하는 것임을 부인하고 자기가 자기를 위해 살기 때문이다(:15).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 것이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다"[요 8:28] 하심과 같으니, 이는 다름아니라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와 하나됨이 아들께서 아버지와 하나되어 계심을 본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대해 어떤 자세로 임하셨는지 아는 것은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께 마땅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 친히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을 근거로 하여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떠나시지 않는 것이다. 즉 아버지께서 아들과 함께 하심 즉 둘이 하나되는 근거는, 아들께서 아무 것도 스스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심으로써 본을 보이신 그대로 행하심에 있고[요 5:1914:10]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말씀만을 말씀하심에 있는 것이다[요 8:28/8:38/12:48/14:24].

 

이런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는 아들께서 아버지로서 나오심으로써 아버지께서 아들을 낳으심에 비롯된 것이니 곧 아버지 친히 아들에게 본을 보이신 결과인 것이다(요 5:19). 즉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하며 을은 갑이 자기를 위하는 줄을 알기 때문에 전적으로 갑을 위하는 그런 명확한 구도(構圖)인 것이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께서 나를 그렇게 위하시는 줄 믿었으므로(갈 2:20) 즉 그리스도 친히 내게 본을 보이신 그대로 나도 그리스도를 그렇게 위하는 것이다(고후 5:15).

 

그러므로 나도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았으므로(요 20:21) 즉 성령을 받아 모심으로써 그렇게 되었으므로(:22) 그래서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됨으로써 구원이 되었으니,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 나의 먹을 양식"(4:34) 곧 생명선(生命線)인 것이다. 죽지 않으려면 "양식"을 먹어야 하고 먹지 않으면 그 존재는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복종함"으로써 즉 그 모든 계명을 지키고 그 뜻을 지켜 행함으로써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룸"이다.

 

두렵고 떤다는 것은 아담과 같은 "미친 마음"(전 9:3)을 얼마든지 언제든지 이 세상에서 사단의 시험을 받고 있는 동안은 품을 수 있어 범죄하여 죽음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일방적으로 지켜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다. '양변 동시성'의 원리를 따라 내 스스로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즐거이 그 뜻을 행하고 그 모든 계명을 지켜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고후 5:9-11/고전  7:32-34/히 12:28/롬 12:2) 것이 있을 때에 한해서 그 지켜 보호하시는 능력이 함께 해 주시기 때문이다.

 

즉 내가 내 스스로 나의 구원을 이룬다고 내 스스로의 힘으로 그렇게 한다고 착각하지 말 것이다. 철저히 그리스도의 능력이시니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하다. 즉 "나를 붙잡아 주시는"(빌 3:12) 그 능력으로 내가 그렇게 이룰 수 있고 달려갈 수 있음이니, 이전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 또는 오늘날 세상 종교처럼 자신의 구원을 이루려는 것과는 180도 차이가 있다. 그들은 입으로는 아무리 이룰 수 있다고 해도 가상에 불과하고 꿈으로 그치지만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어 우리에게 "권능"(행 1:8)이 되어 계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현실적으로 능히 이룰 수 있는 그런 차이도 물론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려 하고 우리는 능히 그리스도 안에서 이를 수 있는 일을 이루어 가고 있을 따름이다. 이제는 나의 생명 자체가 그리스도이신데(골 3:4) 모든 행함과 믿음과 노력이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지 않는 것이 없어 신종일관해서 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지 나란 것, 나에게 속한 것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다음의 결실 곧 다시 출생함이요 새로이 창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지 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뿐이다. 이것이 사랑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즉 자유 의지다. 완벽한 자유를 주심은 이 사랑이 생명의 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어야 구원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 즉 전체 인간을 위해 마련하신 구원이지만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 즉 머리로서의 하나님 지시를 따라 움직이려 하는 마음이 없을 때는 그 구원은 그림의 떡인 것이다. 생명 자체가 한 몸의 원리로 말미암은 것인데 머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몸(의 각 지체가)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이런 말되 안되는 행동을 여전히 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에는 절대로 구원이 임할 수 없고 그런 이들에만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구원도 예외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자기를 순종하는 자, 사랑하는 자를 위한 구원이라(고전 2:9/약 2:5/1:12/행 5:32/히 5:8) 하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한" 구원이라 하여 자기중심의 인간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러하시다고 착각하지 말 것이다. 사랑의 원리 즉 한 몸 체제에서의 자기 부인이니 자기중심과는 정반대 개념임을 명심할 일이다. 즉 죄인과 악인의 사랑은 자기중심에서 우러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부인 즉 일체 당신 자신을 위하지 않고 상대를 위하는 사랑에서 (바로 그 때문에) 상대 역시 자기를 사랑하도록 하심인 것이다. 이것이 머리와 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사랑하지 않는 몸이 어디 있고 몸을 사랑하지 않는 머리가 어디 있는가, 자기 분신 곧 자기 자신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렇게 하나님을 머리로서 사랑하는 자에 한해서 적응되는 구원이라고 성경은 처음부터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처음에는 믿어 순종을 결의해 살고자 해도 중도에 마음이 변하는 경우(자유는 최대한으로 보장되어 있으므로) 역시 마찬가지니, 자연스럽게 그 한 몸 구조에서 탈락 또는 이탈될 수밖에 없음이다].

 

여전히 악령 사단의 뒤를 따르고 아담의 전철을 밟는 것을 "두려워하고 떨지" 않으니 사단의 자업자득에 의한 멸망과 아담의 죽음의 결말과 동일한 운명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하는 이 둘의 하나되는 이치는 바로 머리는 몸을 위하고 몸은 머리를 위하는 구조와 체제로서 만일 어느 쪽이든 자기 자신을 위하게 된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한 몸'에서 격리되고 스스로 이탈하는 것이니 생명과 대립되는 죽음밖에 있을 것이 없다.

 

사단 등 악령들이 이런 이치를 알면서도 범죄하고 결국 멸망에 이르는 운명에 처해진 것이 아니다. 알기는 알아도 믿지는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이렇게 한 몸의 이치로 나가지 않아도 그래서 자기 욕심대로 나가 자기중심이 되어도 무슨 묘한 수가 생길 수도 있다는 환상에 빠진 것이다. 명령에 거역하고 기존 질서를 무시하는 등의 일체의 행위들이 바로 이런 엉뚱한 데에 자신감을 나타내는 교만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교만을 멸망의 앞잡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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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3: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을 것이니 주님은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는다. (엡 6: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님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아는 것이다.

 

(딤전 6:1)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다. (딤전 6: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다.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딛 2:9)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역하여 말하지 말며 (딛 2:10)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다.

 

(벧전 2:18) 사환(使喚, 피고용인)들이여,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고용주]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벧전 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엡 6:9) 상전들이여, 여러분도 종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골 4:1)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 것이니 여러분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들과 여러분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차별하시는 일이 없는 줄 여러분이 앎이다.

 

아내와 남편 관계

 

(골 3:18)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님 안에서 마땅하다.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다. (엡 5:24) 그러니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 것이다.

 

(골 3:19)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엡 5:25)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해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 것이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엡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니 (엡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肢體)임이다.

 

(엡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2) 이 비밀이 크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한다. (엡 5:33) 그러나 여러분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두려워하라].

 

(벧전 3:1) 아내된 이들이여,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順服)하라. 이는 혹 도(道, 말씀)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벧전 3:2) [아내된] 여러분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다.

 

(벧전 3:3) 여러분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벧전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의 온유함과 안정된[조용한, 정숙한, 얌전한, 말수가 없는, 온화한, 평온한, 수수한, 은근한] 심령[gentle and quiet spirit]의 썩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다.

(벧전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했으니 (벧전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主, 주인)"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여러분이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동요하지 아니함으로써 그의 딸이 되어 있는 것이다.

 

(벧전 3:7) 남편된 여러분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여러분의 아내와 동거하고 그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 함이다.

부모 자식 관계

 

(골 3:20) 자녀들이여, 모든 일에 부모에게 [(엡 6:1) 주님 안에서] 순종하라. 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다[이것이 옳다]. 자녀들이여,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여러분의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엡 6:3)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할 것이다" 했다.

 

(엡 6:4) 또 아비들이여,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골 3:21)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다] 오직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딤전 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다.

 

음행하는 자를 내어 쫓으라[교회 내의 문제]

 

(고전 5:9) 내가 여러분에게 쓰면서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했거니와 (고전 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 탐하는 자들, 착취하는 자들,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고전 5:11) 내가 여러분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이가 음행하거나 탐욕스럽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욕설을 하거나 술 취하거나 착취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이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다.

 

(고전 5:12) 외부 사람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여러분 내부의 사람들이야 여러분이 판단치 않을 것이랴. (고전 5:13)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여러분 중에서 내어 쫓으라.

 

교회 치리(治理)

 

(고후 12:20) 내가 갈 때에, 내가 보기를 원하는 바대로 여러분을 보지 못하고 나 또한 여러분이 원치 않는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보여질까 염려함이니, 여러분 중에 다툼,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중상(中傷)함, 수군수군 하는 것,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염려하고, (고후 12:21) 내가 다시 갈 때에 또한 내 하나님이 여러분 앞에서 나를 낮추실까 염려하고[註-교회의 "육신" 상태를 보고 바울이 지나치게 엄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그 결과 바울 자신이 죄를 짓거나 혹은 죄 짓는 일로 나아감이 있을까 하여 하나님께서 미리부터 조처하심으로 바울의 나약한 모습이 교회 앞에 드러나지도록 하신다면, 이 일이 결코 교회 앞에 덕이 될 일은 아니기에], 또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 음란함, 호색 함을 회개치 않음을 인하여 내가 근심하게 될까 염려한다.

 

(고후 13:1) 내가 이제 세 번째 여러분에게 갈 터이니 "두 세 증인의 입으로 사건은 정리될 것이다". [註-구약 신명기 19:15의 인용구로서 교회 치리(治理)의 의지를 밝힘]. (고후 13:2) 두번째 대면 했을 때 이미 말한 바 있듯이, 전에 죄 지은 사람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내가 지금 떠나 있지만 미리 말해 두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고후 13:3)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여러분이 찾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약하시지 않고 도리어 여러분 안에서 강하시다.

믿는 형제들끼리 법정 다툼을 해서야

 

(고전 6:1) 여러분 중에 누가 다른 이와 관계된 사건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소하고 거룩한 형제들 앞에서 하지 않느냐? (고전 6:2) 거룩한 형제들이 세상을 판단할[to judge]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여러분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고전 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to judge]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고전 6:4) 그런즉 여러분이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세우느냐? (고전 6:5) 내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니 여러분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 같이 하나도 없느냐? (고전 6:6)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고소할 뿐더러 믿지 않은 자들 앞에서 하느냐?

 

(고전 6:7) 여러분이 피차 고소함으로 여러분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으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않으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않냐. (고전 6:8) 여러분은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여러분의 형제다.

 

순종치 않거든 그와 사귀지 말고

 

(살후 3: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않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살후 3: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치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 

 

(고전 4:21) 여러분이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고전 5:1) 여러분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다. 누가 그 부친의 아내 [즉 의모(義母, a stepmother, a foster mother)를 취했다 한다.

 

(고전 5:2) 그리하고도 여러분이 오히려 교만해져서 어찌하여 통탄하지 않고 그 일 행한 자를 여러분 중에서 물리치지 않았느냐? (고전 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이를 이미 판단했다[judged]. (고전 5:4)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전 5:5) 이런 사람을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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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이 일의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방인 가운데서도 없는" 그런 정도의 일은 역시 하나님의 교회로서도 용납 못한다는 사실로서 그것을 절대로 묵과하지 않고 그 육신은 반드시 멸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갈 5:13)는 경고가 생각이 나는 대목이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합법적이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전 6:12)는 대목도 생각나게 한다. 이것을 '내가' 해도 좋으냐 하는 데에 초점이 있지 않고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그리고 '내 이웃'에게 사랑으로 종 노릇 함이냐 그 여부에만 있음을 가르친다.

 

여기 이 바울의 편지에서는 그것이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되어 있는지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역시 분명한 사실은 그 육체는 멸해도 영혼은 구원될 수 있는 경우이니, 그 범죄의 성격이 알면서도 지은 즉 고의적인 범죄(히 10:26/요일 5:16) 유형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불가피하게 어쩌다가 그런 결과가 되었고 그 당사자의 개인적인 욕심에서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기에 그런 것인지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다시 여기서 명백해지는 또 하나의 사실은, 비록 개인적인 구원에는 지장이 없을지라도 그 어떤 형태든지 (세상에서도 불합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까지 포함해서) 죄라는 것은 절대로 용납되지 못한다는 하나님 교회의 엄정한 성경의 기준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는 사도적인 권위와 능력과 징계가 확립되어 있어 그런 종류의 범죄자들을 "사단에게 내어 줄" 정도로까지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나,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렇게 가시적으로 징계를 내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정도로 교회가 한 치 양보 없는 성결(聖潔, holiness and purity)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이 이와 같이 밝혀진 이상 우리가 이 표준에 따르느냐 여부로 가려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밝히고 있는 바울 사도의 표현으로 판단하건대 이 범죄자는 이렇게 육신이 멸해짐으로써 그 영이 구원된다는(이는 그 어떤 경우에서든 구원의 조건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영원한 질서 확립 차원에서) 뉘앙스를 풍기고 있으므로, 오늘날 그런 사도적인 권위를 볼 수 없는 처지에서는 (그 이유가 사도라는 직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전반적인 교회 타락에 있다고 보지만) 오직 우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각자 스스로가 "항상 복종함으로써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빌 2:12) 것 외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이 바로 이런 점에 있으니 세상은 변하고 사람의 인식은 변해도 즉 진화하지 않고 갈수록 퇴화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으로써 그 영원한 기준을 정하셨으니 항상 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따르기로 작정하고 충실히 이행하면 하나님의 의중(意中)에서 벗어날 일이 없음을 이로써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교만한 마음은 절대로 금물이고 시종 일관되게 "겸손으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벧전 5:5,6/1:3) 매사 임할 일이다. 우리의 본이 되기로 노심초사한 바울의 특징은 "모든 겸손과 눈물"(행 20:19/)이었음을 항상 상기할 필요가 있다(골 3:12/빌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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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5:6) 여러분의 자랑이 옳지 않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5:7) 여러분은 누룩 없는 이들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해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릴 일이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다. (고전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원한이나 악독의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註-그 때 첫 유월절 당시나 그 후로 계속해서 유월절에 모든 이스라엘은 누룩 없는 떡을 먹었던 것]으로 하자.

 

이간 붙이는 자들이 언제나 생겨

 

(갈 4:12) 형제들,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되었은즉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한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내게 해가 된 일이 없다. (갈 4: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병고(病苦)]을 인하여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여러분이 아는 바로서 (갈 4:14) 여러분을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나 이것을 여러분이 업신여기지도 않으며 버리지도 않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같이 영접했다.

 

(갈 4:15) 여러분의 그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여러분에게 증언하지만 여러분이 할 수만 있었더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을 것이다[註-당시 바울이 안질을 앓고 있었던 듯]. (갈 4:16) 그런즉 내가 여러분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갈 4:17) 그들이 여러분을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여러분을 이간 붙여 여러분들로 하여금 그들을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다. (갈 4: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여러분을 대했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요삼 1: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않으니 (요삼 1:10)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게 폄훼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않고 접대하고자 하는 이들을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고 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 교회

 

(딤전 3: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註-처소를 말함이 아니라 전체 믿음의 식구, 가족을 의미]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고 이 편지를 네게 쓰는 것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교회 구성원

 

(고전 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 (고전 1:26) 형제들, 여러분을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이가 많지 않으며 능한 이가 많지 않으며 문벌 좋은 이가 많지 않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셔서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니

 

오직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다.

 

(고전 1:30)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 의로움, 거룩함,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1:31) 기록된 대로 "자랑하는 이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게" 하려 함이다.

 

모이기를 더욱 힘쓰라

 

[히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중복] [히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여[중복][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중복] [히 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중복]

 

날을 중히 여겨도 주님 위해 중히 여기고

 

(롬 14: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사람은 채소를 먹는다[중복]. (롬 14:5)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 일이다. (롬 14:6) 날을 중히 여기는 이도 주님을 위해 중히 여기고 먹는 이도 주님을 위해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이도 주님을 위해 먹지 않으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 함이 좋다

 

(고전 7:1) 여러분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 함이 좋으나 (고전 7: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전 7: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 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 것이다. (고전 7:4)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니 (고전 7:5) 서로 방[거처하는]을 나누지[별거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여러분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여러분을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註-초대 교회 믿음의 식구들이 얼마나 기도에 힘썼는가를 보여 주는 단적 증거라 하겠다].

 

(고전 7: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고요 명령은 아니다. (고전 7: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註-바울 자신처럼 독신으로 지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선물)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다. (고전 7:8) 내가 결혼하지 않은 이들과 과부들에게 말한다면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고전 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불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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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정욕이 불 같이 탄다"는 말은 원문에는 없고 그냥 "타는 것(to burn)"으로만 되어 있다. 이는 앞 구절대로 "절제할 수 없어" 범죄함으로 인하여 심판의 대상이 되면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갈 것이므로 그것보다는 결혼하는 것이 났다는 그 뜻으로 수용함이 타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남녀 정욕을 마치 불타는 것처럼 불가항력인 것처럼 과장해서 표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고 독신으로 지내는 자기 자신[바울]처럼 "혼자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하겠는가.

 

그리스도께서도 천국을 위해 고자되는 자도 있다고 하시고 누구든지 받을 만한 자는 받으라 하신 것이다. 또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러면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 제자들의 질문에 이를 시인하신 것이다. 다만 사람마다 이를 다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 인정하신 것이다(마 19:10). 지금은 그리스도의 시대요 '천국에 들어가는' 또 '천국을 전파하는' 시대다. 천국을 위해 홀로 지내는 일이 바울 사도의 지적처럼 "더 복된"(고전 7:40) 것이고 누구나 이를 받을 만하면 받도록 적극 권장하는 시대다.

 

이 "받을 만하다" 또는 "못하다"는 것은 개인의 육체적 여건이 아니라 각자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의지에 달렸다고 해서 구원과 연관된 문제는 아니니, 같은 열매를 맺어도 혹자는 30배, 혹자는 60, 100배의 차이가 나는 것과 같은 것일 뿐이다. 다른 의지(意志)가 아니라 사랑의 의지다. 사랑함에는 일반인 것이니 구원의 요건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갈 5:6). 고로 열매 맺음의 차이가 구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과 같음이다.

 

그리고 또한 천부적인 의지력이라기보다 그런 사랑의 열심에서 우러나는 각자의 선택일진대, 그렇게 사랑함으로써 드러내는 능력은 우리 각자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님 친히 베풀어 주시는 능력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천부적인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가. 따라서 우리가 상대하는 이는 이러한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기만 하고 확고한 의지만 있으면 그 결단에 걸맞게 얼마든지 능력을 베푸시는 것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주님 말씀에 음행의 연고 외에는 사람이 그 짝이 된 남녀와 피차 나누어질 수 없다 하실 때 갈라설 수는 있으나 재혼할 수 있다는 말씀이 없으신 점에 유의할 일이다. 재혼은 상대(남편이나 아내)가 사별했을 때에만 한하고 그것도 반드시 "주님 안에서 한다"(고전 7:39)는 단서가 붙게 되어 있다. 왜냐면 주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하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다시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기"[고후 5:15] 때문이다.

 

혹자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것이다.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우리가 죽임을 당하였으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롬 7:1,4)이라 하였다.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데 왜 여전히 사는 것처럼 율법에 얽매여야 하느냐?". 그 정확한 의미를 말하면 바로 이렇다.

 

죽 바울은 여기서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고 오직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롬 3:20)뿐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21]라 했다. 이 설명만 들으면 마치 율법이 우리 생명에 관한 한 무용지물처럼 착각될 수도 있다.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처음부터 선언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다.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지만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룰 것이다"(마 5:1718) 하신 것이다.

 

이에 따라 바울 역시 강조하기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냐? 그럴 수 없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롬 3:31] 하였다. 따라서 성경의 설명을 잘못 이해한 탓이니 즉 그리스도 없이 율법을 지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는 것이 무익하고 무의미하다는 뜻이지(왜냐면 율법을 지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여 오직 죽어 있는 자 곧 죄인임을 깨닫는 데에 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어 먼저 의롭다 여기심 받은 연후에야 지켜야 하고 또 능히 지킬 수 있는 율법이기에 "내가 하나님께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고전 9:21]란 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인하여 원래의 하나님의 율법(계명) 다시 말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마 22:40)의 의미를 자기 부인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원래의 뜻으로 완벽하게 그리고 더 엄중하게(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의 안목으로 보면) 지키게 되어 있는 그러한 '실체'에 대한 단지 '그림자'의 형태로서 모세가 말한 이른바 '모세 율법'은 "의문(儀文)에 속한 것"(엡 2:15) "의문의 묵은 것"(롬 7:6)이었으니, '실체'로서의 계명을 지킬 수 없는 대신에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고 할례를 받는 등으로 조목 별로 명시한 내용을 준수함으로써 대용(代用)해 온 것이었다.

 

모세 당시는 계명 자체를 지킨다는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모세를 통해 그림자로서의 의미로 내리신]에 순종하는 순종에 역점을 둔 것이다. 이 믿음[하나님을 믿는]에 의한 순종이라는 본질에서는 그림자로서의 모세 율법이나 "그리스도의 율법"(고전 9:21)에서나 의미는 똑같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이런 믿음으로 이미 그리스도 오시기 전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순종으로 구원됨을 상징하고 있었던 사실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모세의 율법을 표현하여 "율법에 대하여 우리가 죽었다"(롬 7:1),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다"[:5,6]라고 한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할례 받고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는(갈 4:10) 등의 일을 말한 것이다.

 

바울 당시(초대교회 혹은 사도들 당시)는 모세 율법 시대로부터 "그리스도의 율법"(고전 9:21) 시대로 갓 넘어온 터라 혼동과 마찰이 없잖아 있어,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 중에 "그리스도만 아니라 할례도 받고 기타 모세 시대에 지켜 오던 것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 교회를 혼란케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를 위시해서 바울 서신들을 보면 이 점에 대해 유달리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오늘날 우리와는 일면 전혀 상관이 없는) 사정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당시는 이와 같이 모세 율법까지 지켜야 구원된다고 말한 것은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갈 6:12] 한 대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고후 5:15] 자기중심의 발로였고, 오늘날은 거꾸로 "하나님의 계명을 부득이 지키지 않아도 구원은 된다" 식으로 주장하니 자기중심 곧 자기 자신을 위해 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욕심대로 살고 이 세상을 따라 살고 싶은 마음이니 자연 그런 주장이 안나올 수 없음이다.

 

자기와 짝을 이루었던 상대가 아무리 현재는 갈려졌다 해도 아직 생존해 있기 때문에 재혼해서는 안되는 것과 "결혼을 금하는 것"(딤전 4:3)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다"(막 10:9)는 것은 육체적 관계를 가지면 무조건 그리 되는 것으로서 창녀와 관계를 가져도 한 몸이 되는 까닭이다(고전 6:16). 결혼이라는 것을 아담의 범죄 이전과 이후를 따져 볼 때 현재 상태는 저주의 하나임을 기억할 일이다.

 

저주 받아 남자는 여자를 다스리게 되고 여자는 남자를 넘보고 주관, 주장하려는(창 3:16-여자가 남자를 "사모한다"는 우리말 번역은 잘못된 것이니 이 대목은 "죄의 소원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리라"[창 4:7] 하신 대목과 똑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죄가 너를 덮치려 노리고 있으니 너는 죄를 부득불 다스려야 한다"는 말씀인데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한 그 어느 인간도 죄를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죄가 너를 사모한다"는 의미는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상태가 결코 복된 관계일 수가 없다.

 

고로 결혼을 해도 불행하고 아니해도 불행하다는 말도 있듯이, "하나님이 복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심은 아담의 경우 범죄하기 전에 주신 말씀이시고, 노아의 경우(9:1)는 이미 범죄로 저주 받아 세상이 망한 다음이라 인간이 희귀했기 때문이다. 복이 아니라 저주만이라면 그런 생육과 번성마저도 있을 수 없다. 생육과 번성은 하되 결혼생활의 행복과는 별개인 것이다. 생물적 욕구 충족과 행복한 생활이 병행하지 않으니 저주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이들이야 그런 생물적 욕구 충족을 행복의 한 도구로 삼을지는 모르나, 그리스도 사람들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의 권능"(행 1:8)으로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고 그 보내신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양식"(요 4:34) 그 자체이고 최대 목적이므로 바로 그 목표를 위해 바울처럼 혼자 지낸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베풀어 주심이다. 오직 믿음에 따름이니 믿지 못하면 아무 능력도 받을 수 없으니(약 1:6/4:2,3) 능력이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의 속성이 "무엇이든 그 자체적으로 속된(unclean) 것이 없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된"(롬 14:14) 것이 되어 버리는 그런 놀라운 측면이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영적 정신적 결의와 목표에 육체는 자연 따라오게 마련이다. "먹는 것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13)는 것도 그런 일면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계에 속한 육체의 인간으로서 식욕보다 더 큰 것은 없으나 이 모두 이와 같이 조정, 조절될 수 있음이다.

 

때문에 천국을 위해 고자된 자도 있으니 받을 만한 즉 받을 수 있는 자는 받으라 하신 것이요(마 19:12) 바울 역시 사람이 홀로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다 한 것이다(고전 7:40).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진리를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한 세상 번듯하게 삶의 낙을 누리고자 함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죽음의 고난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을 멸망으로부터 건져내고자 하는 그런 일념으로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아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한 것이다. 우리는 죽든지 살든지 주님을 위하고(롬 14:7-9) 나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으므로(고후 5:15) 나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이 무너지게 하지 않는다"(롬 14:20)는 일편단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 대목과 같은 것이니 여기서는 "음행의 연고로" 하는 것조차도 없이 무조건 갈리지 말라는 것뿐이요 갈리면 그냥 지내라는 것뿐이요 아니면 다시 화합하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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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7:10) 결혼한 이들에게 내가 명하니 {명하는 이는 내가 아니요 주님이시다}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고전 7:11)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동정(童貞)을 지키는 일

 

(고전 7:25) 동정에 대하여는 내가 주님께 받은 계명이 없으나 주님의 자비하심을 받아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는 바 (고전 7: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고전 7:27)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고전 7:28)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을 것이니 나는 여러분을 아낀다.

 

(고전 7:29) 형제들, 내가 이 말을 하니 때가 단축해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고전 7:30) 우는 이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고전 7: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다.

(고전 7:32) 여러분이 염려 없기를 원한다. 장가가지 않은 이는 주님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 하여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꼬 하되 (고전 7:33) 장가간 이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 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어지며 (고전 7:34) 시집가지 않은 이와 처녀는 주님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이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 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한다.

 

(고전 7: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여러분의 유익을 위함이요 여러분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여러분들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심적 갈등이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려 함이다.

 

(고전 7:36) 누가 자기의 동정(virgin)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하고 혼기도 지났고 그 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결혼하라.(고전 7:37)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 자기 동정을 지키기로 마음에 작정해도 잘하는 것이다. (고전 7:38) 그러므로 동정을 버리고 결혼하는 자도 잘 하거니와 동정을 지키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다.

 

(고전 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님 안에서만 할 것이다. (고전 7: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을 것이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한다.

 

이단에 속한 사람

 

(딛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 멀리 하라. (딛 3:11) 이런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해져 스스로 정죄(定罪-단죄)된 자로서 죄를 짓는다.

 

(롬 16:17) 형제들, 내가 여러분을 권하니 여러분의 교훈을 거역하여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롬 16:18)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다만 자기의 배(腹)만 섬기니 교묘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이들의 마음을 미혹한다.

 

(딛 1:10) 복종치 않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파(派) 가운데 심하니 (딛 1:11)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다.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않은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고 있다.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딤전 4:1) 그러나 성령께서 명백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라" 하셨으니 (딤전 4:2) 자기 양심이 화인(火印-불로 지짐) 맞아서 거짓말하는 위선자들이다. (딤전 4:3) 결혼을 금하고 어떤 것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할 터이나 음식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이들과 진리를 아는 이들은 감사함으로 받을 일이다.

 

영들

 

(요일 4:1) 사랑하는 여러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했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다. (요일 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 것이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 4:3)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은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다. 올 것이라는 말을 여러분이 들었으나 이제 벌써 세상에 있다.

(요일 4:4) 자녀들이여[Children],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했고 또 그들을 이겼으니 이는 여러분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다.

 

(요일 4: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니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는다. (요일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으므로 하나님을 아는 이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이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안다.

 

미혹하는 자

 

(요이 1: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미혹하는 자요 적 그리스도니 (요이 1:8) 여러분은 스스로 주의하여 우리가 일해놓은 것을 잃어 버리지 말고 오직 온전한 결실을 거두도록 하라.

 

(요이 1:10)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지지 않고 여러분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요이 1:11) 그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사람이다. 


 

(딤전 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않으면 (딤전 6: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딤전 6:5) 마음이 부패해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난다.

 

(딤전 6:6) 그러나 경건 중에 분수를 지켜 족한 줄로 알면 이것이 큰 이익이 된다.

 

(딛 3:9)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다.

 

(약 5:19) 내 형제들, 여러분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약 5:20) 여러분이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다.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印) 침이 있어 이르기를,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마다 불의에서 떠나라" 했다. (딤후 2: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으니

 

(딤후 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해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니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 3:15와 연결되나 특별한 의미는 없음-註].

 

거짓 선생들

 

(유 1:3)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일반적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내가 여러분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거룩한 형제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道)를 위해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여러분을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으니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다.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않아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色慾)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主宰)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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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하나이신 하나님"으로 표현되었으니 한 분밖에 없는 것처럼 들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뜻이요 하나님은 하나로서 표현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면 아버지와 아들 둘이시지만 표현되기는 언제나 "하나"로서 나타내어지심이니 실제 '하나'로 계시기 때문이다. 영역으로 only"라고 되어 있으나 one"이라 함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하나"라 할 때는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아들의 모습이시고 아들의 모습이 곧 아버지의 모습이신 것이다.

 

그러나 '둘이 하나되심'이므로 언제나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이 엄연하다. '모습' 또는 '표현'이 하나이신 까닭이다. 다시 말해 형체와 실체는 양립되어 있으나 형체는 실체를 나타냄이요 실체는 형체를 통해서 나타나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과 육체와의 관계와 같으니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 혹은 "내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라는 것이 같은 의미로서 그래서 내 안의 성령께서는 나 자신을 '육체'로 칠 때 그 '영혼'으로 계시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이 바로 이런 형식 즉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됨으로 통하는 것이니, 이는 아담이 처음 자연계에 속한 육체로 창조된 후 다음 단계로 그 영혼이 조성된(하나님 친히 그 입김[呼氣, 生氣, the breath of life]을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심으로써] 것과 같은 궤적을 나타내는 새 창조인 것이다. 즉 처음 창조(아담)와 같은 모양새를 취함이다. 아버지와 아들께서 둘이 하나로서 한 모습을 취함과 같이 나 역시 그리스도와 그러하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영락없는 바로 나의 죽음이요 그 부활은 나의 새 생명 가운데에서의 다시 출생함이요 성령으로 남인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히 1:9] 당연히 나도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므로 죄를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니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우리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고후 5:15) 때문이다. 보내심을 받아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진실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다(요 7:18) 하신 대로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 것"(요일 2:29)이라 한 것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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