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진리의 증언자·證言者

오늘날 혼탁한 세상에 대한 성경의 시의적절한 경고ㅡ베뢰아 사람

Tayseek Kwon 2019. 4. 9. 05:52




오늘날 혼탁한 세상에 대한 성경의 시의적절한 경고ㅡ베뢰아 사람



지금 이 세상 신 사탄은 고도의 수법으로 속이고 있다는 데에 유의해야 합니다. 진리에 아주 근사하도록 말해놓고 마음을 산 후에는 핵심 부문에서 거짓을 주입시키는 것입니다. 가령 무신론을 주장하는 무리 속에서는 유신론자는 우리 편이고 진리 쪽에 있는 듯이 보입니다. 사탄에게는, 무신론은 ①의 수법이고 유신론을 통해 성경을 음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② 수법입니다. 이런 식으로 ③, ④ 등의 단계로 끝간데 없이 확산시켜 나갈수 있습니다. 고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의 핵심 부분을 정확히 챙겨 알아두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합니다. 


요즘은 적그리스도의 특징대로 초자연적인 것(기적)으로 권위를 과시하는 시대이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미국을 위시해서 일반적인 세계 현상으로서의 신유, 방언, "천국 또는 지옥 갔다 왔다"는 증언 등에는 일단 휩쓸리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서 성경을 통해 먼저 그 진위 여부를 진단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들 중에는 성경과 아주 유사한 말을 합니다(이 비디오에서 이목사가 지적하는 바와 같은). 거기에만 넘어가 비판 없이 아무 거르는 장치 없이 그 한 가지 또는 몇 가지만 진실을 말한다고 하여 안심하고 주는 대로 받아 먹고 받아 마시는 경우 반드시 덫에 걸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모든 초자연적 능력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단 반드시 성경으로 거른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옳다는 뜻입니다.


이런 진위 판단은 평소 성경을 가까이 하여 능동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들이라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구하는 대로 믿음대로 게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움직이지는 않고 남이 주는 것만 받아 챙기는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은 다른 "신기한" 이야기가 나오면 거기 또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숩니다. 사도행전의 베뢰아 사람들은 능력 있는 역사(각종 초자연적인 현상)를 통해 바울 사도가 전해 준 것도, 그 능력 자체에 권위를 두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찾아 "그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고 살펴보았기에 "믿는 사람이 많았다"고 성경은 오히려 칭찬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 14:26,27) 하신 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 하신 듯이 따르는 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이화영 목사에 대한 두번째 소개 (부정적인 측면)



어느 비디오 설교에 보니 회개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데 대한 설명이 있는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회개'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되어버리는데 역시 "말씀 혼잡"(고후 2:17/4:2)이 됩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한 설명에서 "영혼 구원"과 "하늘의 상급 얻는 구원"으로 갈라놓지 않습니다. 성경의 "구원"은 하나이고 "회개"도 하나이고 "믿음"도 하나의 뜻뿐입니다. 신학자들은 복잡한 것(이것을 "학문적"이라 하여)을 좋아하는 듯하지만 이 역시 육신적 "자랑"에 불과하니 마땅히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구원의 희소식을 전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구원"이란 뜻은 현재의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할 때 그 갈구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죽은 자에서부터 산 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고로 이 죽은 자임을 아는 것이 "하나님께 듣고 배우는"(요 6:45) 것이라고 명백히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상급 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성경이 말한 적이 없습니다. 시종일관 구원은 구원 단 하나의 의미밖에 없습니다. 다른 글에서 누누이 밝혔지만 하늘의 상급 받겠다는 생각은 자아중심일 뿐입니다. 영어로 "reward"는 보응 즉 결과물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런 의미의 "상(賞)" 은 말할 필요도 없이 영생뿐입니다. 모든 상은 자기 자랑입니다. 항상 강조하는 바이지만 생명에는 애시당초 내가 나를 위함이 없습니다. 내 자랑, 나의 독점물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공유(共有)입니다. 모든 것이 공유이므로 만인의 소유물이 또한 나의 소유입니다. 이것이 이상적 삶의 뼈대인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단순명료 그 자체입니다. 복잡한 설명은 그 자신 아직도 모르기 때문에 방황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복음의 진리가 복잡하고 난해하게 비치는 것은 사탄의 짓거리 때문일 뿐입니다. 부언해 드리고 싶은 것은 필자는 처음부터 히브리어든 헬라어든 원어를 참작하지 않기로 작정했었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원어에 정통해야 비로소 성경을 바로 읽을 수 있다는 선입관을 모두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해로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겨우 국문 정도를 이해하는 이들은 아예 성경을 보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영어는 독자로 하여금 의미를 명확하게 인식시키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간혹 사용하고 있습니다. 





핵심을 잡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만 붙드니 오도가도 못해



사랑은 막강하다

아가서에 사랑은 죽음만큼 강하다고 했다

죽음 앞에 누가 의젓해지겠는가

죽음보다 강한 것이 없다고 인식들 하는데

허나 삼위일체 법칙의 인과, 주종, 대소, 선후 원리대로 하면

오히려 죽음보다 앞서 있는 것이 생명의 핵심인 사랑이다.


이 사랑 빼놓고 믿음을 말하고 구원을 이야기하니

온통 맥빠진 것이 되고 갈팡질팡이 된다

갈 바를 모르고 천덕구러기되어 헤매기만 하는 것이다

중심을 바로잡으라

이 중심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