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생명(삶)의 법칙(머리와 몸)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으니 사람 살리는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

Tayseek Kwon 2019. 4. 10. 11:54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으니 사람 살리는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




기계적으로 자동적으로 주님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심이 아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기로 작정,

회개하고 세례 받아 죄 용서함 받아 예수님을 영접했으므로(성령 받음)

이에 부합하게 시종일관하여 주님만을 위해 사는 것을 전제로 한

함께 계심임을 알아야(고후 5:15/롬 15:7-9/딤후 4:17).

"내가 항상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신다" 하심과 똑같은 이치다(요 8:29").

똑같이 둘의 하나됨의 짝의 원리에 의한 생명(삶)의 법칙이다



말하자면 아래 그림에서

똑같은 두 사람이 똑같은 모습으로 이삭을 주울 때에는

좌편 사람은 우편 사람을 위해 줍는 것이고

우편 사람은 좌편 사람을 위해 줍는 것이지

제각각 자기를 위해 줍는 것이면 둘이 <하나>됨이 아니다. 









소년 시절 항우가 진시황의 행렬을 길 가다가 구경하던 중 부지중 튀어나오는 소리가,

"나도 저렇게 한 번 되어 보았으면 좋겠다".

삼촌이 옆에 서 있다가 얼른 항우의 입을 틀어막고는 "네가 죽고 싶어 환장이냐".

그것도 귓속말로 간신히 말했다. 


개인적 야심을 부추기느라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가치를 설명함이다. 

모두 그런 팔짜를 타고나야 그런 마음도 먹는다고 말들을 한다. 

이것은 세상 이야기다. 우리의 새 창조에서는 그렇지 않다.

누구나 평등하게 똑같이 권능과 기회를 주셨으니 

그 이유는 누구든지 성령의 크나크신 선물을 원도 한도 없이 받아 모시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평등이다.

머리되신 이를 모시고 있으니 

말하자면 일국의 대통령이나 제왕(지금은 제왕이 없지만)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의미이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마음이 여리고 머리 굴리는 것이 남만 못하면 정승 감사라도 감당 못해 못받는다. 

그런 자식에게 아무리 천하 권력이라도 일을 맡길 마음이 나지 않는 법. 

우리가 머리를 모시고 있으니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개인의 가치와 힘을 100분 발휘할 수 있다. 

이 마지막 때 일꾼이 부족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 하시는 이 때

스스로 나서서 무엇이든지 한 가닥 맡아 충성을 다할 생각을 품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지지 않겠는가. 

기도하는 일로 그 응답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다.

100살 넘기기까지 안나 여선지자는 주야로 금식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겨(눅 2:36)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는 영광도 얻었다. 

말씀 전파하는 일에 뜻을 세우면 나도 바울 사도처럼 할 수 있다. 

남녀노소를 여기서는 가리지 않는다. 성령께서 친히 앞장 서시니까. 

개인의 욕망은 여기서 일절 배제된다. 자기 이름 석자 휘날려보려 한다면 

그 이름 날리기 전에 이미 멸망 가운데 처해져 있을 것이니까.  


명심할 것은 우리의 유일한 일은 사람 살리는 일이니

이 일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

이 한 가지 사실만 가슴 깊이 새겨 두면 천하무적이 된다. 

천군만마보다 더한 하늘의 천사들이 유감없이 위용을 떨칠 터이니까. 


이 모든 일에

유일한 원동력은 '사랑'(고린도전서 13장)임을 명심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