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진리의 증언자·證言者

인생이여, 네 뿌리 바로 찾아 자중심 되찾지 않는 한 악마 앞에 거지 근성일 수밖에 없다

Tayseek Kwon 2019. 4. 6. 23:17




인생이여, 네 뿌리 바로 찾아 자중심 되찾지 않는 한 악마 앞에 거지 근성일 수밖에 없다




인생의 "뿌리 찾기"는

역사 바로 알기는

아담이 초자연계 존재였음을

똑바로 인식함에 있으니ㅡ


자아중심이 아닌

자중심(自重心)

자기의 참 가치를 인식하는 것과 

자아중심은 차원이 다른 것



 

주님의 초자연계 몸으로서의 부활은
하나님의 성자/聖子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대칭/對稱 아담이시기 때문에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전 위치/모습으로  

복귀하시는 의미임을 다시 강조합니다.

이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심을 

구분하여 이해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으로서의 인식은 

성부와 하나되시어 성령으로 계시는 경우에 한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와 계심으로

우리 영혼과 "한 영"(고전 6:17)이 되시고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도 똑같이 그와 같이 계실 수 있다는 점

(이는 인간도 영물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가능하신 일)

이것만 빼고는,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이심을 제외하고는,

가시적으로 나타내신 일체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시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따라서 사람인 내게도 

그와 똑같이 적응/적용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령으로 계셔도 당시와 같이 육체로(사람이시니까) 계실 때와

오늘날처럼 성령으로(하나님이시니까) 계시는 때로 구분됩니다.

이 역시 구약시대에 성령으로 계실 때와 또 다릅니다.

그 때는 순수히 하나님으로 계실 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으로 계셔도 성자의 경우에는

<동시에 또한 사람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시되 성령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육체로 계셨을 때에 

성령으로 계신 사실은 명백합니다.

 "성령" 곧 "보혜사를 주제로 하여 가르치실 때 "너희가 그를 안다" 하셨고,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신다"(요 14:17)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로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셨다"(행 1:2)고도 했습니다.


성령으로 계심의 의미는 성자의 모습과 하시는 말씀, 하시는 일 모두가

성부께서 하신 말씀, 하신 일 그리고 성부의 모습이시라는 뜻입니다(요 14:9).


성부께서 사람이 아니시고 성자만 사람이시니까 

우리의 하나됨은 하나님(성부)과 하나됨이 아니라 

사람(성자)과 하나됨입니다.


성부와 분리해 계심은 사람되실 때의

그 특정 기간에만 한합니다.

즉 여자의 몸에 태어나시기(태에서 나오신) 직전 직후 

그 사이의 한 순간으로부터

30세 정도 되시어 세례 받으실 때까지입니다.

분리해 계셨다고 하나님이 아니신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되어" 계시지 않았다는 뜻.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마 1:18) 함은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성자께서 친히 

인간 여자의 태에 들어오셨다는 의미.


십자가 상에서의 죽으심에서도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가 되어 계셨습니다.

그러나 성부께서는 사람이 아니시니까(성자께서는 사람이 되어 계시지만)

매양 살아 계시므로 성자의 죽음의 고통에만 함께 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 둘이 하나되어 계실 때만의 호칭이 아니라

성자의 영도 "성령", 성부의 영도 "성령"(마 3:16)으로 통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그 영으로서의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도 사용됩니다.

이것은 영혼과 육체 이중 구조의 인간을 기준하여 설명함이라 해도 좋고

처음부터 "하나님과 그 영"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이중 구조가 이루어졌다 해도 좋고

어쨌거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부와 성자를 가리킴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 모두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으로서의 특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자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실 때

"둘이 하나로 계시는"("함께 계신다"는 말과는 사뭇 다름)

성부로 말미암아 성자께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신다"(롬 8:11) 한 것.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성부"이시지만 

"그의 영"으로는 우리 각 사람 "속에 계시는"(요 14:17) 것.

그런즉 영혼과 육체의 이중 구조로서의 "육체"인 우리 인간과 비교하면

"하나님"은 우리 영혼에 해당되시고 

"하나님의 영"은 우리 육체(의 지체)와 같으시다 할지.


이와 같이 성자께서 성부와 둘이 하나되어 계시므로

부활하신 것도 곁 보기로는 스스로 부활하신 것처럼 됩니다.

그러나 실제는 성부께서 

성자 안에 "둘의 하나됨"으로써 계심을 따라

성자 안에 계시는 당신의 영으로 말미암아 

성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성자께서는 죽으셨으나 둘의 하나됨을 이루어 계시는 성부께서 살아 계시니

그 살아 계심을 따라 여전히 움직이시니 

성부와 하나되어 계시는 구조에서

죽으신 성자 역시 덩달아 일어나신(살아나신) 것으로서

이것이 3위1체의 법칙에서의 주종/主從, 대소/大小 관계입니다.


즉 작은 자는 큰 자를 따르게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둘의 하나됨"에서 성자께서 죽으셨다고

성부께서도 따라 죽으시는 것이 아니라

'죽으신 성자'께서 '살아 계시는 성부'를 따라 오히려 살아나신 것.


그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린다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하신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요 10:17-18)이라 하셨는데

여기가 중요 대목입니다. 

이 <둘의 하나됨>에서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함이 요체인데

주종, 대소 관계에서 갑이 을에게 명령하는 위치에 있고 

을은 갑을 추종하는 즉 갑이 보인 본을 따르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함이니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어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신다"(요 5:19,20) 하심과 같습니다.


갑의 편에서 보면 머리이므로 명령이요 계명이 되고

을의 편에서 보면 그 머리에 대한 몸으로서의 순종입니다.

우리 편에서 보면 자기를 부인함과 같습니다.

대칭 아담께서 나 위한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내가 본을 보임과 같이)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것.


성자께서 받으신 세례는 

오직 우리 각자와 하나되시는 표징으로서

따라서 이후의 모든 하시는 일이 하나님으로서가 아닌 사람으로서

나타내시는 일체의 것이 된다는 확실한 의미가 됩니다.

우리가 세례 받음으로 성령 받아 모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시작함과 같은 꼭 그대로입니다.

이 때부터 우리가 사탄의 시험의 대상이 되기 시작함과

같은 모양새가 주님의 광야 시험입니다. 


성부와 둘이 하나되심과 더불어 

나와 둘이 하나되심의 이중성을 띠는 것으로서

내면으로는 성부와 하나되심이요 

외부적으로 즉 표면상 나타나는 바로는 사람되심

곧 나와 둘이 하나됨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실 때 초자연계 몸으로 나타나심은 

하나님 곧 성자이시기 때문에 가능하신 것이 아니라

첫 사람 아담이 바로 그런 초자연계 몸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나와 하나되심이 어디까지나 첫 사람 아담을 기반으로 하시는

대칭 아담의 자격이시므로 그러합니다.

아담이 초자연계 몸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새롭게 인간이 초자연계 존재가 되는 단계를 나타내심이었다면

부활하실 때도 자연계 몸으로 나타나셔야 정상입니다.

우리도 어차피 일단 죽고 나서야 영생하는 초자연계 몸이 될 터이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둘의 하나됨을 따라) 

반드시 그렇게 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자연계 몸이 되어 있는 때 

초자연계 몸이 되신 것이요

초자연계 몸이시니까 하늘 구름을 타고 공중 부양으로 오르신 것이니,

물론 보이지 않게 올라가실 수도 있으나 

초자연계 몸은 거의 만능의 초능력이므로

자연계 몸으로도 얼마든 변환 가능하기에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그렇게 자연계 몸의 형상으로

하나님 옥좌 앞으로 오르신 것뿐입니다.


이것은 첫 사람 아담이 

범죄 전에 초자연계 몸으로 있었던 상태를 따르심이니

범죄 후의 첫 사람 아담의 자연계 몸이 

죄의 대가인 죽음으로써 종결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셔도 자연계 몸이셨다면 성부와 하나되심으로 살아나기는 하셨으나

역시 자연계 몸이라 어차피 다시 죽으시는 판이므로

우리가 영생하기 위해서는 자연법칙이 폐기되거나 아니면

우리를 다시 새로 또 창조하는 작업이 필연이게 됩니다.


아담을 비롯 모든 인간이 처음부터 자연계 몸으로 있다가

이제 비로소 초자연계 몸이 되는 판이니

외려 아담이 범죄하기를 잘했고 죽기를 잘했고 

그러니 칭찬해야 마땅하지

죄를 지음으로써 사망이 왔다는 즉 아담에게 죄를 묻는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인생이 죽을 리가 없다는 성경의 설명이

모두 빈 말이 되어 버립니다. 


자연법칙대로 하면 

영생할 수 있는 자연계 생물이 없으니까.


그리고 부활 후 오순절 당일 성령으로 임하신 것인데

이렇게 세상에 다시 오심으로써(육체로가 아닌 성령으로)

성부와 하나되심, 나와 하나되심의 

이중성의 존재가 되심으로써

내가 대칭 아담을 성령으로 내 안에 모실 때

나와 하나되심의 모든 과정이 일거에 그대로 반영/성취되는 

대 혁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오순절 성령으로 오심과도 하나됨은 당연하니

원천적으로 주님의 부활로써 나 역시

초자연계 몸(첫 사람 아담의 범죄 전 모습)으로 일단 복귀되었다가

머리되시는 주님의 닮은꼴로서의 머리의 몸의 동질성을 따라

머리와 똑같이 되기 위해  

다시 자연계 몸으로 환원되는 잠정적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범죄한 첫 사람 아담과 하나되는 대칭 관계를 이루기 위해

친히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태어나신 것과 같은 모양새를

그 몸된 교회 구성원으로서 몸의 지체된 자격으로서 

나도 따르기 위함입니다.


고로 대칭 아담으로서 세상에 오시고 

고난 받으신 후 성부께 돌아가시기까지의 일체의 과정이 

하나님의 성자이시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일점도 있으실 수 없습니다.

오로지 첫 사람 아담과의 하나됨(대칭 관계로서)

그리고 새 창조를 입는 나와의 

하나됨을 근거로 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의 하나되심은  

내게 대칭 아담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성령"과 관계된 일로서 성부와 하나되심을 제외하고는

인간으로서의 하나됨이라는 의미만이 유일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초자연계 몸으로서의 부활을 

이같은 인간되심의 시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애당초 인간(아담)은 초자연계 존재였고

영생하는 자였고 죽지 않으며 

영물들 위에 군림한 지배자 곧 하나님의 대리자였으나

자연계 몸으로 회귀시키는 초능력의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자연계 육체로 전락("퇴화"라 해도 무방)했던 것.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우습게 알고 부지런히 탐독하지 않는 이는

남의 덕으로 진리를 깨달아 거기 얹혀 천국 들어가려는 그런 마음으로는

영생에 들어갈 자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은 주체(주인) 의식, 적극성, 능동성이 특징이기 때문.


그런 것이 없으면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악인의 무리에 소속되어 버리심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천국은 스스로 침입하여 빼앗아 차지하는"(마 11:12/눅 16:16) 것이라고 

친히 못박아 두셨기에 그러합니다.


두드리고 찾고 구하고 않는 자는 내치실 수밖에 없음은

그런 이는 천국에서의 사랑 생활에서도 

자아중심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리 되면 자가당착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은 존재부터가 불가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