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진리의 증언자·證言者

있어도 없는 것이고 없어도 있는 것ㅡ이 결론에 대적(對敵)할 천하 그 아무 것도 없다

Tayseek Kwon 2019. 4. 6. 14:12


있어도 없는 것이고 없어도 있는 것ㅡ이 결론에 대적(對敵)할 천하 그 아무 것도 없다






인생고는 불가피ㅡ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엎질러진 물을

애초 안엎질러진 것처럼 하실 수는 있으나

이미 엎질러진 것을 그렇게 하시면

원리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것인데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친히 그 적용을 받으시는 것이라

지금 우리와 함께 고난 중에 계시는 것.  


그리하여 성자(聖子)께서 우리 위해 고난 받으시게 하셨고

성자로 말미암아 둘이 하나되어 계신 성부(聖父)께서도

똑같이 함께 십자가 고통 받으셨고 지금도 그러하시니

왜냐면 대칭 아담의 몸된 교회와 하나되심을 인해(행 9:4).

머리와 몸 관계에서 똑같이 고통 받도록(고전 12:26)  되어 있어.

때문에 "그리스도의 남으신 고난"(골 1:24).


이러한 고난은 새 창조, 다시 출생시키기 위한 

산통, 산고, 해산의 수고의 성격임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으니 한 몸 체제에서 

만물이 같은 고통 중에 있는 것(롬 8:22).

(우리말 번역 롬 8:22의 "함께 탄식, 함께 고통"은

"산고(産苦) 중의 신음"(groaneth and travaileth in Pain")으로 고쳐야.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그 십자가 죽으심을 설명하시면서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치 않는다"(요 16:21) 하신 것. 

고로 주님의 십자가 고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미 머리께서 당하신 것을 그 몸이 함께 당하는 과정(고전 12:26).


내가 이러한 산통에 의해 다시 출생하는 은혜를 입었으니

사람 낚는 어부로서 다른 사람들 역시 그와 같이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 남아 있는 것이요 동시에 이 일을 충실히 하는지 여부로써

나의 믿음의 사랑/사랑의 믿음이 저울질되는 것이기에

즉 시험의 대상이 되어 있으므로

"멸망하게 하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짓"(빌 3:18)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고로 "두렵고 떨" 수밖에(2:12).


이것이 또한 제사장, 제물, 성전의 3대 요소를 

각자 자기 자신 안에 이루어 있는 이유ㅡ

제사장에게는 제물이 필수이고 그 제물이 자기의 고난 받음(롬 12:1).

이러한 고난 받음을 통해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짐.

우리가 하나님 아들로서의 영광의 초자연계 몸을 일시 잠정 보류하고

이 자연계 몸으로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이 산고에 합류함인 것.


이렇게 "그리스도의 남으신 고난" 중에 위치하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축복 받아 잘 살고 형통한다는 것은

성경에 대한 전적인 무지이거나 사탄에게 사주되고 있는 증거.

이런 사람들에게서 구원의 여망은 없다ㅡ자명한 일.

고통 받을 때에는 모두가 고통 받아야 한 몸된 증거.

그렇지 않은 예외가 있을 때에는 한 몸에 속하지 않았다

또는 머리되시는 대칭 아담께 속해 있지 않다는 증거이니까.


우리의 현 위치는 이러하나 대칭 아담 안에서의 근본 위치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대칭 아담과 함께

무릇 존재하는 모든 권력과 권위를 유감 없이 행사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서의 하나님 대리자로

모든 피조물 위에 군림해 있던 아담(범죄 전)의 자리

그 자리를 회복해 있는 것ㅡ대칭 아담의 그 모습 바로 내 모습.


때문에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요

약한 것도 아니요 강한 것도 아니라는 논리가 충분 성립됨.

아무 근거 없이 그런 말을 하는 불교식 궤변이 아니라

(사실상 이런 표현은 사탄은 모든 것을 알므로 성경을 모방한 것)

3위1체 법칙에 의해 둘이 하나됨을 인한 과학적 사실에 근거.

남의 종교를 비방함이 아니라 진리 아니면 거짓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악령의 요술 즉 거짓밖에 없는

흑백 논리만 통하니까 그런 것.   


성경은 이러한 논리로 가득하니 자연 그럴 수밖에ㅡ.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다"(고후 4:8-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는 것이다"(고후 4:12).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가벼운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다"(고후 4:16-18).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앎이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는 것이다"(고후 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