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진리의 증언자·證言者

21세기 세계 선교 전략, 국내 전도 방략

Tayseek Kwon 2019. 3. 30. 11:08







카나다의 유명 독립교회(어느 교파에도 소속되지 않은)의 오스왈드 스미스

(Oswald J. Smith, 1889-1986) 목사는 평소 말하기를,

사도 바울 이래 최대 능력의 부흥 전도자라고 극찬했던

찰즈 피니(Charles G. Finney, 1792-1875) 목사(장로교)는

미국 교회사상 가장 강력한 교회부흥 전도자인데

(미국에서 신학 수업을 마치고 귀국한 박형룡 목사가

칼빈 신학을 부분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여 미국내 일부 장로교단의

공격 대상이 돼 있는 것을 확대 해석하여 한국 장로교회에

잘못된 인상을 심어 놓은 결과로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각지에 나가 집회를 시작할 때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집회 현장에 먼저 가서

기도의 산고/産苦를 하던 다니엘 내쉬(Daniel Nash, 1763-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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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장로교 목사로서 교회 목회에서 나름대로

괄목할 만한 성과도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교회 연합집회시 대표 기도로 나섰을 때

뒤늦게 들어오는 참석자들을 뜬 눈으로 일일이 살펴가면서

입으로만 "기도"를 열나게 하던 것이 것이 들통날 정도로

미적지근한 한심한 상태였지만 심각한 실명 위기의 안질을 앓는 중에

본격적으로 회개하는 계기가 되어 그 후로부터는 완전히 변화되어

기도의 사자/使者로 변모하여 피니 집회 성령 역사의 오른팔이었다.

설교는 하지 않고 오직 기도에 전념하였다.

집회 전에 몇 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기도함은 물론이고

집회에도 참석하여 청중들을 위해 오로지 기도에 집중했다.

이에 대한 유명 일화도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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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피니 자신 금식 기도에 힘쓴 것도 물론이거니와

이와 같은 기도 협력자가 굳건히 버티어 주게 하심으로써

피니의 집회는 예외 없이 철저한 회개와 결신/決信으로써

성령의 역사하심이 과거 어느 시대의 집회보다

강력하신 성령의 감화 감동이 함께 하셨던 것이다.

대개 부흥전도 집회에서의 決信者즐 통계를 내어보면

처음 믿음을 유지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상당수인데 비해

피니 집회에서의 결신자는 상당수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으로 드러났었다.

그만큼 견실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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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흥 역사의 여파로 유명한 1857년 무렵의

세계 교회 사상 유례 없는

미국의 정오기도회 부흥(the noontime prayer meeting revival,

the Fulton-street Prayer Meeting Revival) 역사가 일어났고

이 당시의 영적 기세가 1907년 주한 미국 선교사 장감/長監 합동 정오 기도회의

산파 역할로 사도 시대 이후의 최대 성령의 역사로 일컬어지는

1907년 한국교회 대부흥이 태동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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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선교사들은 처음 매일 정오에 시작하여 1시간 정도로

합심 기도를 계속했으나(30명 가량 모여) 한 달이 지나도

바라던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일부에서는 기도를 그만 두고

이전처럼 각자 활동하던 대로 계속하자고 했으나

그럴수록 더 힘을 내어 기도를 일층 강화하자는 다수의 의견을 따라

정오에서부터 4시간 연속 기도 심지어는 저녁 식사 때까지도

남아서 기도할 사람은 기도하도록 시간을 확장하여 나갔는데

4개월을 계속했다. 이것은 참으로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당시 한국교회도 나름대로 기도를 특별히 힘썼다고 하나

우리는 이들 선교사들의 결의와 끈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도 목적은  한국 교회의 보다 알찬 부흥의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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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4개월이 되던 1907년 신년 예배 시간의 평양 장대재 교회에서

드디어 성령의 대역사의 기폭제가 나타나게 되었으니

그 교회 주동 장로인 길선주가 "내가 교회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아간(수 7:20)입니다" 하고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 속에서

공중 앞에서의 회개 자백이 나오게 되자

전교회가 벌집을 쑤신 것처럼 되어버려 회개가 온 교회를 휩쓸었고

마침내는 한반도 전체에 영적 회오리가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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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필자가 확신하기로는

국내 전도 방략이요

세계 선교 방략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단시일내 가장 효과 있게 사탄의 심장부를 무찌를 수 있는 

본보기로서 하나님이 세계 교회에 적시해주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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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라, 하루 한 시간도 무엇한데

중단하여 포기하려다가 오히려 더 박차를 가하여

4시간 이상으로 시간을 늘여 기도로 매달리는

도전 정신, 감투 의욕도 본받을 만한데다

실제 가시적인 응답이 이루어지기까지 

장장 4개월을 끈질기게 지탱해 나갔다는 것은

성령께서 인도하심이 아니고는 안될 일이다.

반드시 4개월을 채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니

우리의 기도가 합당하면 그 안에라도 응답하실 것이요

필요하다면 그 이상이라도 지체될 일이나

반드시 큰 역사/役事로 초대교회와 같이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일단 구원받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고

그런 것을 "은혜"라고 착각하고 있다. 

불로소득의 "공짜" 의식과 다름 없다. 

자아중심의 본색이다. 당연히 성경은 이를 단죄한다.

왕이 거액을 탕감해주었지만 이를 취소시켰다(마 18:34).

권리와 의무는 항상 병행한다. 

사람의 일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랴. 

모든 것은 짝의 원리로서 상대적이다.

양면성의 동시성이 작용하지 않는 것이 없다. 

"나를 부인하는 자는 나도 부인하고

시인하면 나도 시인한다" 하심은 항구불변(마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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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한다.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겠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길 것이다"(삼상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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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너무나 읽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는 성령의 계시로 알아진다는 경고를

시도 때도 없이 무시하기 때문에

이런 어이없는 성경 해석에 지배되는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둔다"(갈 6:7)는 엄중 경고를 명심해야. 







신학교의 수업 과정도 

책상머리에서 부질없이 책과 씨름할 것이 아니라 

직접 거리에 나가 전도하는 실습 자료를 만들어 

상호 열띈 토의를 하고 

일선 목회자들을 초빙하여 

다양한 문제점을 놓고 토론하는 등의 

일대 혁신을 꾀해야 산 공부가 되고 

령 충만의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사람들 

양성, 배출이 되지 않을까.


필자도 가형/家兄이 일반대학교 철학과를 나와

(처음부터 목회자되기를 목표) 신학교 대학원 과정을 밟아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교회 고등학생회를 인도하던 중 

함께 수영을 나갔다가 26세에 익사했다. 

직업청소년 훈련소를 세울 계획으로 

미국 지인들로부터 상당액의 모금까지 해두었는데, 

그 사고가 일어나기 얼마 전 학우들 앞에서 

"믿음이 무엇이냐?" 하고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결심하기를, 이 청춘을 이렇게 만든 것이 "기독교"이니

정말 하나님이 있는지 직접 밝혀보겠다 작정하고,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나도 당연히 그 일에만 평생을 바쳐야 할 것이요 

신이 만일 헛된 인위적인 것이라면 

인류 사회 악일 수밖에 없는 기독교 박멸을 명분으로 

일생을 바치겠노라 하여 가장 먼저 성경이 기독교의 뿌리가 되어 있으니 성경부터 연구해보자고 나섰던 것. 


영화 "벤허(Ben Hur)"의 원작자가 

유명한 무신론자 잉거솔의 친구였는데 

그 역시 기독교 궤멸을 목적하고 자료를 수집하던 중 

도리어 복음 진리의 확실성에 접하게 되자 

거꾸로 기독교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벤허"를 쓰기 시작한 것과 같다고 할까....





위 그림은 아래 사진 NSO(화살표)의 

좁쌀만한 크기를 확대한 것입니다. 

이 확대 그림은 화살표 NSO

(Nephillim Soul Orb-네피림의 죽은 망령의 구/球형체)

이기는 하나, 지금 현재 나타나 있는 형태는 아니고 

그 중 하나입니다. 

단 몇 초만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우연히 포착된 장면을 여러 개로 쪼개어 본 결과 

순식간에 여러 형태로 변형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귀신"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NSO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모양이나 지금 이것은 발광체입니다. 

그리고 금속처럼 태양광을 반사시키기도 합니다. 

카메라에만 잡히고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YOUTUBE를 보면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악령들이 이 세상에 꽉 차 있어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인생들에게 음양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딤전 4:1)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는 의미에서 이 사진을 올렸습니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쏜살 같이 지나는 것이 포착된 것.
이것이 곧 둘로 갈라지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집니다.
발광체이니까 그 통과하는 주변의 나뭇 잎사귀 등이
환하게 비쳐지는 장면도 있습니다.
자연계와 대칭되는 초자연계의 말하자면 하나의 대표적 실존
(비록 카메라의 렌즈로만 잡아냈지만 <가시적/可視的>인)
의 표본이라 할 수 있기에 중요성을 갖습니다.

네피림(창 6:1-4)이 설치고 그 죽은 망령들이 귀신이 되어
우글대며 인생들을 억압하는 것 모두 아담의 범죄로
인간이 자연계 육체가 되어버린 후유증으로서의 결과물.
요컨대, 이와 같이 인간과 동존, 동거하는 정도가 아닌
완전히 인간을 장악하여 노예처럼 삼고 있는
험악한 현실의 세계에서
단지 우리 육안으로 감지할 수 없다고 하여
천진난만하게 희희낙락하며 이 세상 살고자 해야 하겠느냐
하는 그 엄중한 경고인 것입니다.








인간을 처음에는 시한부 자연계 육체로 만드셨으나

다음 단계로 영원성의 영혼을 조성하심으로써

이중 구조가 되게 하심으로 그 육체도

영원성의 초자연계 몸이 되게 하신 것이다.

육체는 시한부로, 영혼은 영원성으로

서로 엇박자로 어긋나게 만드실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해석조차도 못하도록

이 세상 신/神 사탄은 차단시켜

인생들을 바보로 만들어 왔던 것이니

이런 일은 그에게는 식은 죽먹기다.

아담으로 인해 죄가 왔고 죄로 인해 죽음이 왔다

즉 자연계 육체가 되었음을

명백히 설명하고 있음에도(롬 5:12)

사탄의 농락에 빠져 말귀를 못알아듣는 바보들(fools-시 14:1).

죄가 없었으면 죽지 않았다는 말이요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데 어찌 죽지 않을 수 있는가.

이는 아담의 육체가 자연법칙의 지배를 초월한

초자연계 육체임을 확언하는 것이 아닌가.

꼭 이것은 자연계 육체, 저것은 초자연계 육체

이렇게 꼬박꼬박 일일이 짚어주어야 알아듣는가.

래서 말귀도 하나 못알아 듣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가장 기본적이라 할 이 실상에 대해 

지금까지 무지몽매해 왔다는 것을 

단지 사탄의 소행에다 책임 전가할 것인가?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다. 

하나님의 진리 터득이 계시로 말미암는다는 말씀을 

무시한 크나큰 불찰, 불순종 때문이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전폭적인 일대 혁신이 요구된다. 

기존 권위, 전통을 다 뒤엎어버리고 심기 일전하여 

회개하는 심정으로 오직 성경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하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주제에 

무슨 체면 찾고 위신 찾고 말고 할 겨를이 있다는 말인가. 





이미지: 텍스트







사랑하는데 잘 나고 못나고가 없다.

유식 무식 구별 없고 빈부 귀천 찾지 않는다.

남녀노소 어린 아이 가릴 것 없이 사랑은 할 수 있다.

이렇게 사랑을 하는 자, 사랑을 아는 자가 천국 간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만인 평등이다. 

허나 사랑 자체가 머리와 몸의 하나됨

즉 짝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머리되시는 하나님, 머리되시는 대칭 아담을

믿고 사랑하지 않는 한

사랑일 수가 없고, 실속 없고 실효 없는 사랑,

빈 껍질만의 사랑이므로 당연히 제외된다.

고로 사랑으로써 모든 종교를 통합하자는 주장은

인생을 속여 멸망시키기에 도통해 있는 악령의 거짓이다.


사랑의 특징은 양면성의 동시성이니

이는 항구여일, 지조, 의리, 인내 등과 통한다.

이것이 결여된 변절, 조급함, 불충 등은 

자아중심으로 인식되므로 따라서 걸러질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그런 불충한 자를 솎아내는 장소와 때임을

부디 명심할 필요가 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 중 

"충성(faithfulness)"이 들어 있는 이유다. 

고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나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마 24:12,13) 하신 것.

따라서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즉 말씀을 잘 가르치는 자였고 악령들도 축출하고 

주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화려한 경력이 있어도

이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불법을 행함이므로

결국 심판의 대상이 됨을 명심할 일이다(마 7: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