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삶ㅡ사람 사랑

합리적 예배

Tayseek Kwon 2019. 4. 10. 11:32




합리적 예배





바울의 초대교회 모습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고전 14:27-33 등이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성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는 것이니 곧 이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성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할 것이다"(요 4:23,24) 하셨으니, 이 말씀의 요지는 어떤 고정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각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요 제사장이요 제물인즉(롬 12:1) 삶이 곧 예배라는 데에 있다. 이 말은 예배 형식을 도무지 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구애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각자의 올바른 일상생활 즉 그리스도 중심(자아중심이 아닌)의 삶을 원하시는 것이지 특별한 형식을 갖추어 '실체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했던 모세 시대처럼 하여 그런 것을 <받으시는> 양 그런 것을 기뻐하시는 양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합리적(reasonable-KJV) 예배"(:1)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의 남으신 고난에 동참하는, 그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는(골 1:24) "산 제물"로서의 일상 생활이다. 이런 삶의 영위자가 함께 모여 각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고전 14:27-33) 합심 기도하는(행 2:42) 등으로 진행해 나가게 된다. 형식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까지 해 온 방식대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되면 그렇게 하는 것이요 억지로 폐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또 새롭게 방금 말한 식으로 하는 경우가 있어도 이를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항상 유일한 척도를 삼는 것은 바울이 가르친 대로,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는데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어 그가 세움을 받을 것이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님께 있음이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한 대로 할 것이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님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님 위해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님 위하여 먹지 아니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으로서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영생을 위함이라고 단세포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 우리의 주인,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니 즉 몸과 머리 관계에서 머리께 대한 몸의 절대 복종의 중심에 위치하려 하심이다. 오늘날의 "배도"(살후 2:3) 사상은 오로지 영생 하나에만 집착해 있기 때문이다. 원활한 몸과 머리 관계에서 생명의 법칙에 따른 순종의 열매가 영생일 뿐이다(롬 6:22). "그 마지막이 영생"(:22)이라 했으니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필수적인 과정을 생략하고서는 그 어떤 구원의 의미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믿으라 하시지 않고 "회개하라"(행 17:30)는 명령부터 내리신 이유가 여기 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기록되기를 '주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으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 것이다. 그런즉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는" 데에 있음이다(롬 14: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