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구원론(십자가 짐·자기 부인)

우리 구원됨이 하나님의 양자됨이나 이 양자는 파양될 수 있기 때문에 양자로 규정하는 것

Tayseek Kwon 2019. 4. 7. 07:19


우리 구원됨이 하나님의 양자됨이나 이 양자는 파양될 수 있기 때문에 양자로 규정하는 것





구원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정하는데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구원되기 전에는 그 일이 불가능ㅡ일방적인 죽음이요 멸망뿐이었음.

이제는 살아 있는 자가 되어 있으므로(과거에는 죽었으나)

죽음과 생명이 바로 내 앞에 나의 선택 사항으로 놓여 있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죽음이나 악령들(지금은)의 멸망 역시 그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사탄 등 악령들이 부단히 시험해 오는 이유입니다. 


현재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양자된 소임을 다하지 못함이 판명날 때

그 결과야 불을 보듯 뻔합니다. 상식적입니다. 

양자(養子) 노릇을 않는 양자는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말씀으로 낳으셨지만 양자의 성격임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고로 얼마든지 파양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라는 장소와 때는 

사람 살리는 즉 구원받게 하는 다시 말해 새롭게 창조되는 의미밖에 없음을

백번 강조해도 좋습니다. 너무 강조하지 않아 외려 탈입니다. 

달리로는 일절 생각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데

사탄은 인간의 생각을 통해 침투하므로(그것이 그의 침투로)

시종여일하게 이 세상을 사는 곳으로 착각하도록 세뇌시켜 놓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집어 넣어 주는 실체(주체)가 곧

NSO, DPA 등으로 실물 파악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항상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귀담아 듣고 마음에 새겨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막 10:15).


어린 아이에게 천국에 대한 실상을 주입시켰다 합시다.

그 어린 아이가 자나깨나 생각할 것은 천국일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하라는 경고이시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천국 입국이 불가능입니다. 

(상식에 속한 일입니다. 논리의 비약도 아니고 심심한 연구의 대상도 아닙니다.)

이 세상 삶에 관해서 그렇습니다. 

세상 삶을 사랑해서 거기 빠져 있는 이가 천국 삶을 동경할 리 없습니다. 

성질이 정반대인 샹대적이기(대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동반자로서는 대칭 아담만 주로 의식하는 것이야 물론입니다. 

삶의 시각과 시선, 관점을 180도로 바꾸는 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 영생 얻었다,하나님 앞에 의인되었다"는 그 한 가지만 

만족해 하는 자로서 천국 갈 사람 없습니다. 

영생이란 것이 무슨 물질이나 어떤 상태이거나 

또는 내 이름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영생은 곧 내 안에 계시는 대칭 아담이신 고로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못하고

너희 안에 있다 하신 것입니다. 

고로 대칭 아담괴의 둘이 하나되는 머리-몸 관계의 삶을 

매일 매순간 이루어 가면서(한 번 이루어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천국 삶을 그리워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약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 성령의 가르치심을 앙망하고

배운 대로 실천하여 쉼 없는 기도를 힘쓸(실천할) 일입니다(살전 5:17). 

성경 말씀으로써 마음을 항상 부지런히 닦달해야 하고

제사장으로서의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이 전투하는 자로서의 긴장 상태입니다.  


사람은 주님 경고하신 대로 한 두 가지로 생각을 한정해야지(눅 10:42)

여러 가지로 생각을 갈라놓으면 당장 무기력해집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도 자기 목적하는 바에다 정신일도하는 것이지

여러 가지로 분산되면 성공은 백년 하청이라고 바울도 지적했습니다.

분산 없이 주님 섬기기 위해 

결혼까지도 재고하라 하고 혼자 사는 것이 복되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이 경고/충고의 핵심을 마음에 새겨둘 일입니다(고전 7:35). 


고로 우리 믿음의 삶도 마라돈 경주자와 같다 했고 

그 자신 그렇게 달려간다고 여러 번 강조한 것을 그 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바울 사도는

위의 것을 쳐다보며 응시하고 땅의 것 즉 땅을 내려다 보자 얺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골 3:1-3). 그리고 왼손에 방패, 오른손에 칼입니다(엡 6:10-19). 

필자는 기억력이 없어 그런지 말씀을 잘 잊어버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특히 영적인 일에서(왜냐면 악령들이 끊임없이 공격하므로ㅡ엡 6:16)

사람마다 일반적이어서 바울과 베드로는

"여러분이 진리에 섰으나 항상 일깨워 생각나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칼은 전투에서 휘둘려야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칼입니다(엡 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