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정체(초자연계 존재)/아담·에덴의 초자연계 속성

<폭탄 선언>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마지막 경고>

Tayseek Kwon 2019. 3. 30. 13:25






<폭탄 선언>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마지막 경고>


아담이 초자연계 육체의 영생하는 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교회 사상 유례 없는 폭탄선언>이 아니다.

신구약 성경에 이미 이 사실은 낱낱이 공표되어 온 것이다.

단지 초대교회 이후 급격히 변질되어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세상 신으로서의 막강한 힘 앞에서 꺼둘려 온 것뿐.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하지 않는 순간("순간"이란 표현이 적절할 듯)

여지 없이 이 세상 신/神의 농락거리가 될 수 있다는 상황을

실감하지 못하는 데에 기인한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자연계적 본질의 상대적 열악성을 웅변한다.


오늘날 필자는 성경에 있는 대로의

인간 생애를 주장하는 법칙(3운법칙)을 공표하고 있다.

성경에 있는 것이기는 하나

이 역시 인간의 힘으로 알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이전에는 발표되지 않았던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생들이 성경을 읽었음에도ㅡ.

때가 되어 한 인간을 통해 이 비밀을 나타내 주셨기에 알려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성경 왜곡을 이 마지막 때만은 밝히실 필요가 있어서다.

이 사실을 알고 모르고 간에 구원 받음에는 하등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주지하다시피 초능력의 존재들이 횡행하여 거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UFO 등을 신뢰하지 않고 허무맹랑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으나 일찌감치 시인하는 것이 신상에 유리하다.

왜냐면 그들의 거짓에 넘어가 멸망하거나 아니면 구원되거나

반드시 둘 중 하나로 양상이 나타나질 것이기에.

에덴낙원에서 창조된 초자연계 존재들이 그 실체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정체를 바로 파악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바로 그 차원에서

처음부터 인간을 영생하는 초자연계 존재로 창조하셨고

그 배경이 되는 에덴이 초자연계였음을 다시 만천하에 알리시는 것이다.

성경에 이미 밝히셨지만 다시 한 번 최후로 경고하시는 것이다.






예로부터 음양론은 알았으나(그것도 중국을 비롯)

그리고 현대물리학에서 닐스 보어의 상보성 이론으로

겨우 그 실체에 눈뜨기 시작했지만

짝을 이룬 양자 사이가 모자(母子) 관계

즉 하나가 다른 하나를 파생시킨 사실은 입증되지 못했는데

성경은 처음부터 3위1체 법칙을 설명해 왔고

더군다나 3운법칙으로 검증되고 있어

이 둘은 상호 검증 관계로서

그 진실성과 정확성에 대한

난공불락의 자체 증명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

3운법칙이 짝의 원리(삼위일체의 법칙)를 검증하고 있다는 것은

짝의 원리가 만유를 지배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3운법칙도 독자적 개성을 가진 하나의 법칙(인간 생애의 주관)인즉

예외일 수 없고 반드시 그 지배를 받음은 필연이나

그 반영하는 방식/형태가 바로 그 짜임새(structure)에 있어

마치 그림 그려놓은 듯이 투영시키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놀라운 경탄 그 자체가 되어 있습니다.

<숫자>의 안배(배열)로써 그렇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생의 삶 자체가 허무하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자아중심의 이기주의로 뭉쳐진 아비규환의 이런 삶,

정글의 법칙이 주도하는 듯한 짐승 같은 삶은

아예 삶이 아니기 때문.

사랑과 생명의 법칙으로 철두철미 운행되어

모두가 예외 없이 행복하게 영원토록 다함이 없이

지속되는 삶만이 삶이기 때문.

이 요점을 정확히 짚으시라.




자기 운명을 하나님의 은혜로

(그 베푸신 구원으로) 잘 정했으면

그 다음은 다른 사람들도 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힘쓰고 애쓰는 데에서

또한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므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경고.

"나의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과는 별도로

나의 행위로써 새로 이룬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연장선에서

하나님께서 나 위하심의 몫을 다하셨으니

나는 하나님 위하는 내 몫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짝의 원리의 동시성의 양면성입니다.

무엇이든 일방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짝의 원리의 양면성입니다. 



내일도 보장 받지 못하고 

오직 오늘 밤으로써 끝날지도 모를 

그 충분한 개연성으로도 

이 세상의 의미가 오직 이 단 한 가지뿐임이 명백한데도 

그리고 그 증거인데도 

이 세상 살겠다고 밤낮으로 끙끙대다가 

바람결에 티끌 날아가듯이 

속절없이 세상을 훌쩍 떠자는 

자살 행위를 하는 인생들이 거의 전부이니 

그래서 성경은 이를 

"미친 마음"(전도서 9장 3절)이라 한 것입니다.




꽉 찬 장래의 복된 희망(소망)이

만장(萬丈)이요 만발(萬發)인 삶입니다

내일도 기약할 수 없는 현재의 삶이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을 극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공허한 메아리일 뿐.

허나 현실이 아무리 각박해도

매일매일 희망을 먹고 마시는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자유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