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이비 이단 집단에서 이런 "통용"을 실천했다느니 어쨌다니
하는 말이 있는데 그 교주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하니까
성경의 본질적 내용과는 동떨어진
"공산주의"식 종교(기독교 이단의) 독재일 뿐이다.
또 그 집단 내에서만 그런 상호부조, 유무상통이라면
단순한 집단이기주의로 끝날 뿐이다.
목적이 "빈궁한 자 구제"(엡 4:28)에 있음을 성경은 강조한다.
이는 신자건 비신자건 간에 차별 없는 구제 행위를 뜻하고
그 기반은 머리와 몸의 한 몸 체제에 있는 것이다.
즉 한 지체가 고통 당하면 모두가 고통 당하고
한 지체가 자랑거리가 되면
그 자랑은 모든 지체가 함께 향유하는 자랑이어야 하는 것.
고로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것이 기준이 아니라
이 죽음의 고통의 세상에서 가난한 자가 절대 다수이니
시종 가난한 자로서 이 세상을 거쳐 간다는 각오라야.
때문에 성경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경고다.
그런데 예의 그 교주는 "돈이 좋기는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담 범죄로 이 세상이 사람 사는 곳이 아니므로
오직 장차 오는 사활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에
교회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그러므로 이 사이비 집단의 소위 "통용"은
칼 마르크스가 시도한 공산주의 시행착오와 하나도 다름 없으니
일개인의 야욕을 채워주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공통이다. 정치적 독재나 종교적 독재나 독재는 독재일 뿐이다.
영생과 존귀와 영광을 앞두고 있는
메시아 예수님 즉 대칭 아담께 속한 사람은(롬 2:7)
이 세상에서는 역시 대칭 원리에 따라 상대적으로 삶의 열악함을 만끽해보는 것이 정석이니,
현재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히 13:5)
먹을 것, 입을 것 있으면 족한 줄 아는(딤전 6:8) 것이
정상 궤도에 위치함이다.
왜냐면 이런 초라한 육체 건사한다고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단 몇이라도(고전 9:22) 구원해내는 것이 유일한 목적, 유일한 보람이기 때문.
바로 이를 위해 우리가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요 20:21,22)
이런 구차한 자연계 몸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구원받은 즉이
초자연계 몸의 영광 가운데 화려한 삶을 누리고 있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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