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부침이 심한 가운데에서도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해 온 이유ㅡ이 마지막 때 역사적 사명이 있기 때문.
구미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받은 역사가 오래이면서도 오래 되면 부패하기 쉽다는 이치대로(하기야 바울 사도 생전에도 바울의 직접 전도를 받은 교회들이 그 가르침을 벗어나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따름을 개탄하여 "이와 같이 신속히 떠나는 것을 이상히 여긴다"고 했지만-갈 1:6) 거의 전부가 "다른 복음" 또는 세상 종교화하여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상태가 되어 "나는 배 부르다"는 착각 아래 쇠귀에 경 읽기가 돼 있은즉 일단은 접어두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아시아 아프리카 교회의 활동 상황들을 보고 그들 나름으로 자극을 받아 자체 내의 정화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해외에 나가 있는 숫자가 적지 않으므로 그들이 구원의 진리를 받게 되면 현지 선교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는가. 현지어에 어느 정도 통달해 있을 것이므로 그들의 입을 통해 3운법칙과 3위1체 법칙의 상호 검증 관계를 설명하고 이 모든 것이 성경에서 나왔으므로 이 성경의 자체 증명(진실성)의 권위를 알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음이다. 한반도 교회는 아아(亞阿-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복음화를 위한 선교 이민을 적극 권장할 때다. 현지 주민으로 동화(同化)되어 그곳에 뼈를 묻을 각오로 임하는 그리스도의 군병(軍兵)들이 됨이 바람직하다. 죠지 뮬러(George Muller)의 순수한 믿음의 기도 응답에 의한 고아원 사업 경영에 자극 받고 그런 방침을 선교 사업에 도입 적용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역시 크게 성공한 의사 출신인 헛슨 테일러(Hudson Taylor)의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는 큰 귀감이 된다. 모두 영국인이다.
그리고 외지 선교 활동의 효과적인 방략으로 한국 주재 선교사들의 1907년 한국교회 부흥을 위한 4개월에 걸친 정오기도회를 들 수 있다. 매일 저녁 식사 때까지 장로교 감리교 미선교사들의 합동 합심 기도로 이룩한 본보기이다. 이 정오 기도회(the noon-day prayer meeting)의 발단은 1857년의 미국 교회 부흥이 도화선이 되어 시작된 것이다. 그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부흥은 한 개교회에 유급 채용된 한 사람의 평신도 전도인(Jeremiah Lanphier)에 의해 비롯되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유럽 교회 부흥인 모라비아 운동(the Moravian Movement)의 특징은 하루 24시간 연쇄(連鎖) 기도운동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한국 교회 부흥의 특징은 새벽기도이다.
모름지기 각 선교사는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 "Praying Hyde"(기도자 하이드)와 같은 자세로 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인도(印度) 선교를 위해 기도로 몸 바친 인물이다. 그가 장시간 기도하고 있는 집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별안간 영적 각성이 와 불현듯 하이드가 기도하고 있는 선교관으로 달려왔다는 일화도 있다. 하루에 단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여 완전히 회개시켜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굳게 정하여 그렇게 장시간 엎드려 기도한 후 밖에 나가 성령의 인도로 전도함으로써 그 목표를 차질없이 달성해 나갔다고 한다. 그러므로 외지 선교나 국내 전도나 기도에 헌신하지 않고는 말씀만 전한다고 무조건 할 일을 다했다고 착각하지 말 것이다.
죠지 뮬러가 고아사업을 하게 된 동기도 교회를 맡아 있을 때 한 대장쟁이 교인 집에 심방을 갔더니 기도할 틈도 성경 읽어볼 틈도 도무지 없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은즉 먹고 살기가 바빠 그렇다는 것이다. 이에 깊이 느낀 바가 있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긍구한 것만 아니라 이 모든 것도 겸하여 주신다"는 친히 하신 약속 말씀을 왜 사람들은 믿지 못하는가 내가 그 본을 보여 주리라 결심하고 부부 합의 아래 그 날로부터 목회자로서 정기적(월정액)으로 받는 사례금을 일절 사절하고 순수히 기도 응답으로써 생계를 꾸려 가기로 결심 이를 교인들 앞에 선언한 후 실천해 갔고(그 때가 20대 중반) 그리고 이러한 기도 응답 생활의 본보기로 어떤 것이 좋을까 기도한 끝에 길거리의 부랑 아동들을 수용하여 먹여 살리며 교육시키는 고아사업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유명한 인물도 한국 교회에는 지독한 교파 관념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유감이다. 그는 초교파주의의 "형제회(Brethren)" 소속이었던 것이다. 그가 원래 독일 태생으로 국교회(國敎會) 교역자 지망생으로(안정된 직업을 찾아)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온갖 난봉을 부리며 방탕생활을 하다가 어쩌다 한 조그만 교회에 듈러 거기 사람들이 무릎 꿇고 기도하는 광경을 처음 목격하고는 크나큰 충격을 받은 후 그 길로 회개하여 하나닐 사업에 헌신하게 된 것이다. 이런 믿음의 개척자로서의 본보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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