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올린 전도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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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사람과 징승의 삶이 달라, 태어났다고 사는 게 아니고 살아'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 모두가 평등한 가장 행복한 합리적 삶을 목적하고 삶의 법칙에 맞추어 각자 주체의식으로 살기 때문. 고로 자유, 평등, 박애가 최고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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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①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프랑스 3색기가 잘 표상하고 있는 바, 자연계가 자연법칙대로 한 치 오차 없이 운영됨으로써 존립 가능하듯, 인간 역시 삶의 법칙이 있으니, 3위1체 짝의 원리를 따라 '머리'와 '몸' 관계에서의 '한 몸' 구조에서, 머리는 몸을, 몸은 머리를 위함으로써 이상향적 삶이 구현되는 것. 머리와 몸의 신체 체제에서 머리도 몸도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고 오직 자기 상대를 위함 즉 머리는 몸을, 몸은 머리를 위함으로써 각자 자기 자신(소아)를 위함이 아닌 대아(大我)가 위해짐으로써, '나'를 포함하여 전체 즉 '모두' 다시 말해 '우리'가 위해진다는, 그리고 '우리'가 위해짐으로써 '내'가 위해진다는 이치로서, 이것이 흔히 말하는 "공동체 의식"입니다. 윤리 도덕 예의 범절 일체가 여기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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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② 이 한 몸 구조의 삶에서는 절대로 나 자신을 위할 수 없으니, 머리는 반드시 몸을 위하고 몸은 머리를 위함으로써 비로소 한 몸 즉 하나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됨으로써 자유, 평등, 박애 즉 홍익(弘益) 인간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법칙, 다시말해 사람 사는 '법'입니다. 좌, 우 양자 택일입니다. 법대로 살아 함께 행복한 삶을 꾀하느냐 아니면 법없이 법을 무시하고 행동하느냐를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 기계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짐승과의 차이입니다. 짐승도 대중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 따라 움직입니다. 인간만이 자기 자유 의지를 따라 자기 소신대로 자유 선택에 의해 스스로의 행복을 도모할 수 있는 결정권을 향유하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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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③ 인간의 육체는 물론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칙을 엄격하게 따릅니다. 그러나 질적으로 최고도의 경지를 함께 인류 공통으로 누릴 수 있는 삶을 각자 지향할 수 있는 의지력은 인간에게만 있으니, 인간의 생애를 지배하는 3운법칙이 그 증거. 이 삶의 법칙을 어길 때 죄, 불의, 불법이라 하고 법칙을 따를 때 선(善ㅡ좋은 것), 의(義ㅡ올바른 것)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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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④ 자기가 자기를 위하는 것ㅡ이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으나 사실은 모든 인간고의 뿌리입니다. 자기 집착, 자기 중심, 자기 위주ㅡ이것이 자기도 망치고 남도 망치는 원흉입니다. 앞서 설명처럼 모든 악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세상에 종교(성경은 종교가 아님)도 많고 철학자, 사상가, 도덕군자도 많지만 이 머리와 몸 관계의 한 몸 구조에서의 진정한 삶의 법칙을 가르친 예가 없습니다. 그저 막연히 안개 움켜쥐는 식으로 말만 해 왔을 뿐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말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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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한 몸' 체제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도의 이상향적 구조의 삶이 됨은, 전체인류가 가령 백억이면 나는 이 '한 몸'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그 백억 모두가 나를 위해주는 내 소유가 됨이니, 나(我)X100억=100억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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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① 그래서 소아(小我)가 아닌 대아(大我)입니다. 신체 내에서의 눈, 귀, 팔, 다리의 역할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 몸 구조에서 내가 그 구성원이라는 것은 그런 '몸의 지체(肢體)' 역할을 말합니다. 눈은 눈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몸의 각 지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뿐입니다. 자기를 위하지 않고 자기의 상대 즉 다른 지체에게 눈 역할을 해 줌으로써 눈은 머리를 위시해 몸 전체를 '자기 자신'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되는 바로 그 이치입니다. 내가 비록 발가락의 발톱에 해당하는 아주 미말의 위치에 있어도, 발톱이 망가지면 머리를 비롯해 전체의 지체들이 나 발톱에게 관심을 가지므로 즉 발톱인 나를 위하는 존재가 되어 있으므로, 실질상 머리와 똑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등, 자유, 박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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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② 이 한 몸 구조의 삶에서는 모두가 '나'이므로 '우리'로서 통일됩니다. 말 그대로 하나이므로 내가 남(한 몸에서의 다른 지체)을 위해도 그것은 곧 나 자신을 위함이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원치 않는 것을 아니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인즉 남을 위하는 것이 나의 낙입니다. 왜냐면 그가 나 자신의 소유로서 나를 위하는 존재이니까. 전적으로 나를 위해 주니까 나의 소유입니다. 내가 남의 것을 탐내고 욕심낼 근거가 아주 없습니다. 모든 지체가 자진자발적으로 나를 섬기기 위해 365일 24시간 대령해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 여기에는 평화만 있고 분쟁, 알력, 증오가 일절 발 붙일 틈이 없습니다. 고로 나는 자동적으로도 나 자신을 위하지 않으니 나를 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데 왜냐면 내가 나를 위함보다 남이 나를 더 잘 위해 주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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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③ 이것은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는 이치로 설명됩니다. 내 이웃이 나를 보아 주어야 합니다. 내 등 뒤에 무엇이 묻었는지 나로서는 볼 수 없고 남이 나를 보아 주어야 합니다. 나를 전체로 볼 수 있는 내 이웃이니까 그 본 대로 나를 더 잘 위해 줄 수 있는 것이지, 나 자신을 잘 보지도 못하는데 내가 나를 더 잘 위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살도록 처음부터 되어 있습니다. 나는 파랑색인데 개성미가 다 달라 이이는 노란색, 저이는 빨간색입니다. 파란색인 나는 저 노랑과 빨강이 탐납니다. 그래서 이 한 몸 체제로서의 삶의 법칙대로 않을 때 시기하고, 빼앗고, 훔치고, 그러다보면 싸우고, 미워하고, 불신하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목도하는 대로 인류사는 인화(人禍)입니다. 인간고(人間苦)는, 우리 육체가 자연계에 속했기 때문에 오는 것과 이 인간 관계에서 오는 불행과 비극적 결말, 이 두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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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④ 여기서 머리의 존재가 핵심이 됨은 물론입니다. 우리 신체에서도 보듯이 머리는 몸의 그 어떤 지체와도 다릅니다. 특수한 존재입니다. 이 특수하다는 데에 본질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무나 머리가 되지 못합니다. 똑같은 인간으로서는 머리 역할이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모든 인간의 어버이여야 합니다. 그리고 능력이 여타 모든 인간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야 합니다. 즉 비상한 '능력'과 '사랑'의 화신(化身)이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몸'을 위해 자기 목숨이라도 내놓을 정도의 사랑의 본보기라야 '머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의 제1호 요건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을 한 가슴으로만 아니라 한 손 안에 넣고 일별해 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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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누가 그런 것을 모르나 이 세상이 어디 그런가 한낱 공리공론에 불과한 이상론이다 그런 세상이라면 모두가 일제히 그런 생각으로 단일화됨이 선결과제가 아니냐ㅡ(성경은 종교가 아니라 했는데 "기독교"도 이런 식으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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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① 장차의 삶 즉 "영생"에만 한정해서 교리를 만든 것이 일반적 기독교. 이상 설명과 같은 삶의 법칙과 연계해서 성경대로(이 생명의 법칙은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가장 이기적이라고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이 기독교교인들. 타종교인이나 일반인은 양심의 가책이나마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지만 대체적인 기독교인은 "모든 죄가 용서되어 영생은 따놓은 당상"처럼 여기고 있기에 양심의 가책마저 무디어버린 기현상을 낳고 있는 현실입니다. "구원받은" 자로 자처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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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② 다시 강조하지만, 이 삶의 법대로 살지 않는 한 절대로 행복한 삶은 불가능합니다. 이 덧없는 세상도 살 줄 모르면서 어떻게 영원한 삶을 산다는 것인지 어불성설입니다. 불교는 만물이 대립(대칭) 원리로 되어 있어 자연계와 초자연계로 양립되어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인정 않기에, 세계는 무조건무상(無常, 덧없음)이라는 가정하에 세워진 교리입니다. 동전의 양면에서 한 면만 강조하는 비논리에 진리는 발 붙이지 못합니다. 이런 만물 만사 양면성의 짝의 원리에서 인과(因果) 관계도 설명되는 것을 생각 못하고 있습니다. 상주(常住)함이 없는 것은 자연계 영역입니다. 초자연계는 처음부터 반복적 생멸 전변(轉變)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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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③ 이 짝의 원리는 상고(上古)시대부터 전승되어 온 진리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이론이 있을 수 없지만 학적으로 입증 난항이었기에 지금까지 응분의 대접을 받을 수 없었는데, 20세기에 들어 상보성의 원리(닐스 보어)라는 이름으로 물리학적으로도 그 실상이 규명이 되었기에 당당히 서양문명권도 그 실체를 인정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 진리의 경이(驚異)에 놀란 나머지 물리학자이면서도 철학자이기를 내심 더 바란 닐스 보어입니다. 그러던 것이 3운법칙과 상호 검증 관계에 있는 3위1체의 원리에 의해 이제 그 정확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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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④ 삶의 법칙도 이 3위1체 법칙에 의한 '둘의 하나됨'에 근거한 머리와 몸 관계에 기초한 것입니다. 모름지기 인간 삶에서 이 머리와 몸 관계를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한 나라에 국가 수장이 있고 모든 집단에는 그를 대표하는 단체장이 있습니다. 모든 공동체의 가장 기본 단위가 되는 가정에서도 가장이 있습니다. 이것이 질서와 조화의 아름다움입니다. 자연계가 있으면 반드시 보이지 않는 초자연계가 있고, 이 세상이 있으므로 반드시 오는 세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결과가 있으니 원인은 필연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원인은 내일의 결과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결과물은 어제의 원인이 작동되었기 때문입니다. 짝으로 상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반드시 성질이 거꾸로 되어 있어 정반대라는 것이 특성입니다. 오늘의 시한부 불안정적인 것은 미래의 영원한 완결 완성된 세계로 마무리 됩니다. 우주의 자연법칙에 한 치 오차도 없듯이 이 질서 역시 한 치 오차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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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시한부 자연계 생명 말그대로 무상 즉 덧없어 내일 어찌 될지도 몰라 오직 확실한 것은 오늘밖에 없어(수도 목적으로 입산 도중 이승 하직할 판) 고로 삶의 법 아는 것도 중요하되 나의 이 시간 입지(立地)부터 확고히 보장받는것이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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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① 그럼 화급하게 어떻게 보장 받느냐, 내일 내 목숨 교통사고라도 나서 어찌 될지 모르는데 오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바로 그래서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된다"ㅡ이것입니다. 진실/진리를 사실로서 인정하여 믿으면 그것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의 최선의 할 일이란 것입니다. 이는 공자가 일찍 말한 "아침에 도(道, 진리)를 들어 알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ㅡ조문도 석사가)"의 뜻이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고 그 진리대로 살기로 작정하면 그것으로써 내일에 대한 공포는 당장 해소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실상을 알아야 하느냐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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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② 이를 설명하기 전에, 사회주의 그리고 그 급진적 형태인 공산주의는 앞서 말한 그런 공동체적 삶의 구조를 설명하는 성경에서 본딴 것임을 먼저 밝힙니다. 칼 마르크스도 신학교에 다니면서 성경의 본질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 외형에 불과한 공산 사회의 이상만을 따와 이것이 인생문제의 구극적 목표점이다 하고 선전하고 레닌이 여기에 선동당했지만 원천적으로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것입니다. 때문에 자아 집착이 강한 독재자들의 도구로만 전락해 온 서글픈 역사입니다. 어떤 점에서 본질은 외면하고 껍데기만 안고 나자빠지는 꼴이 되었느냐. 앞에서 말한 자유, 사랑, 평등 대신에 억압, 증오, 계급 사회로 역행한 원인이 그 답입니다. 자진해서 즐겁게 인민들이 그 취지를 따라주어야 하는데 강제로 하다보니 무진장 피만 흘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강제성을 띠다보니 이기적인 독재자의 좋은 미끼만 되어 주어 개인적인 부귀영광만 만족시켜 주는 것으로 일관하여 타락되어 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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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③ 스스로 내 재산이 공동의 소유라 해서 기쁨으로 내어놓아야 제대로 되는 순서인데, 억지로 빼앗듯이 하니 그런 무리가 없고, 또 소위 무상 분배라 하여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게 하니 이제까지 자기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국가에서 다 해결해준다니까 도무지 일할 맛이 나지 않아 게으른 국민이 되어버려 국가 경쟁력이 제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습성이, 인식 자체가 갑자기 생겨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공산/사회주의는 이상만 낳고 시행착오만 항구적으로 되풀이될 뿐이지 뜬 구름이요 허공의 메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자아중심이라는 인간의 고질적인 병폐가 척결되지 않는 한 인간은 상호간 싸우고 죽이고 미워하고 그래서 한 사람 남김 없이 공멸할 때까지 이어져 갈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인간 생애를 당사자 아닌 타의에 의해 조절하는 3운법칙이 없다면 인간은 벌써 오래,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바로 이 자아중심의 척결에 문제의 본질이 있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이 바로 "오직 믿으면 구원되는" 성경 진리에 있는 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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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④ 자아중심, 자기 집착, 자기 본위와 반대되는 말은 "자기 부인"으로서 즉 자기를 위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자기를 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대로 내가 아닌 나의 상대가 나를 더 잘 위해 준다는 전제하에서, 고로 내가 나를 위함보다 더 잘 위해 주는 나의 상대가 존재한다는 토대 위에서 가능해지는 개념입니다. 첫째 나의 상대는, 한 몸 구조에서 '머리'입니다. 둘째는 이 머리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는 이 머리를 중심으로 '한 몸'을 구성하여 나와 더불어 지체 역할을 하는 나의 이웃입니다. 즉 한 머리를 공통으로 모심으로써 공동 운명체를 이룬 구성원입니다. 이구성원이라야 바로 '나 아닌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나 자신"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비유대로, 백억의 나 자신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런 이웃은 당연히 많으면 많을수록 내게 더 없이 기쁨이 됩니다. 그 대신 나 역시 당연히 나 자신을 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휼륭한 유기체를 형성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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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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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① 모든 진실/진리는 법칙입니다. 법칙에는 거짓이나 속임수가 없으니 있다면 우주 자체가 존립 불가능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인간이 주관적 견해가 개입된 과학 아닌 간판만의 "과학"이라는 것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뜻입니다. 완벽한 객관성을 조방할 때 그것이 과학입니다. 과학이라도 자연과학에 한합니다. 이제는 초자연계가 양립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으니 영역이 초자연계까지 확대되어야 마땅하나 현재 우리 인간의 처지로서는 거기까지 넘본다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현재의 인간의 육체가초자연계 육체로 변환되어야 가능해질 일입니다. 지금 '초자연계 육체'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만 인간이 영원히 생존한다는 것은 초자연계 육체가 되었을 경우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제껏 인류는 초자연계의 존재 자체도 인식하지를 못했습니다. 불교에서 자연계에만 한정된 종래의 인식만 놓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거대한 종단을 유지시켜 온 것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초자연계가 이 자연계와 처음부터 대립해 온 '과학적' 사실이 제대로 정착하면 그야말로 공중분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종교입니다. 그 초자연계 실존의 증거가 다름아닌 오늘날 널리 회자되고 있는 소위 "UFO"입니다. 자연과학자들이 애써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자연과학의 한계를 잘 지적해 주고 있는 사례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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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② 지금 이 시간이라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그 구체적인 방법을 말하기 전에 사물의 전체적인 윤곽을 먼저 설명할 필요성에서 이 초자연계에 대한 언급을 간략히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현재의 '결과'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원인'을 아는 것이 필수이기에 그렇습니다. 이 인과 관계를 따지고 들어가는 것은, "인간이 어디로 가느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어디서 왔느냐"를 푸는 것이 필연이므로 그렇습니다. 이 인간고(人間苦)에서 구제 또는 구원되어야 하는 그 원인과 결과를 결코 따로 놓고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UFO가 저렇게 이 시대에 들어 부쩍 잦은 횟수로 출몰하느냐 하면 인간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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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③ 사람은 자연계와 초자연계 양면성을 지녔기 때문. 양 세계에 다 속해 있습니다. 초자연계가 인간의 근원입니다. 자연계도 물론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계와 초자연계가 엄연히 구별되어 전자는 하위 세계이고 후자는 엄청난 차이의 상위 세계인데, 초자연계 존재들이 하릴없이 자연계 인간 세계에 수시로 침입하여 인간을 놀라게 할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상위 그룹인 초자연계 존재들이 하위 그룹인 인간 세계에 관심을 둘 만한 가치를 느낄 리 없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인류의 '머리'가 되는 원조(元祖)가 아담인데, 이 최초의 사람 아담이 현재의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아울러 통할한 수장(首長)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죽지 않는 영원한 존재였으나 자기 수하(手下)에 있던 한 다른 초자연계 존재에 의한 하극상적 모반 행위의 계략에 넘어가 오늘날까지의 모든 인류처럼 자연계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영원히 사는 존재였으므로 그 후대인 모든 인류가 영생하도록 되어 있는 초자연계 존재가 될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아담 자신이 모든 인류의 어버이가 되기도 전에 이같이 불시에 자연계 존재가 되어 버린 까닭에 이후 그의 후대 인간 모두가 자연계 육체로 태어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비극적 결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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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④ 오늘날의 UFO 및 기타 모든 초자연계적 현상은 (일부만 제외하고는) 모두 이 초자연계적 존재로서의 역도(逆徒)들의 소행인 것입니다. 소위 "외계인"도, "외계 문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초 아담을 속인 그 거짓을 따라 지금도 인간들을 속이는 수단이 UFO 등 못된 수작들입니다. UFO는 인간을 속이기 위한 그들의 변장술입니다. 오늘날에 와서 그 누구도 UFO 등을 비현실적인 착시, 착각 등 비과학적으로 논단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현실은 현실 그대로 수용해야 합니다. UFO가 하나의 현실임을 직시하는 경우 그 정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입니다. 그냥 넘기고 갈 사안이 아닙니다. 미신은 더더욱 아닙니다. 몇몇 선진국도 정부차원에서 이미 실제적 존재임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정체가 규명되지 않을 때 그런 혼돈도 없습니다. 그 정체도 이렇게 밝혀지고 있지만 성경을 모르는 절대 다수가 정체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성경은 이미 유일하게 밝히고 있지만 성경을 최종 권위로 인정한다는 기독교 역시 말과는 다르게 이 핵심 부분에 와서 엉뚱한 해석을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한동안 세상이 창조주의 실존을 부정해 왔던 미련스러움과 똑같은 맥락입니다. "무신론"도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 반역의 초자연계 존재 무리들의 인간을 속이기 위한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이들 악령들 스스로가 창조신을 가장하여 다시 한 번 대대적으로 인생들을 기만하려는 단계에 와 있어, 한 때 왕성했던 무신론도 자연스럽게 퇴색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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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초자연계 존재의 초능력은 UFO 등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가히 신출귀몰 그래서 성경은 "신(神)"이라 하는 것. 어떤 형태(생물로든 무생물로든 가리지 않는)로든 자체 전(변)환이 가능ㅡ또 신축(伸縮) 기능도 월등하여 1m 미만의 몸체로도 자신을 축소시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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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①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 했듯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움은 이미 절반이나 이긴 것과 같다는 말대로, ufo가 날아들지만 그 정체를 모를 때 황당하기가 이를데 없게 되나, 일단 그 실체를 파악해 버리면 그런 부담이 없어집니다. 또한 모든 결과의 원인을 알아버리면 결과로 인한 문제 풀이가 일사천리로 전척될 수 있습니다. 원인 없이 결과만 아무리 붙들고 용을 써보아야 끝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원인 분석을 하고 있는데, 3위1체 법칙에서의 '짝의 원리'의 특성은 서로 대립되는 양면 중 하나만 확인하게 되면 그 나머지는 굳이 검증해보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그 존재와 성격이 입증되어 나온다는데 있습니다. 가령 깊다는 개념 하나만 놓고 볼 때 얕다는 정반대되는 성질은 동시에 떠올려지는 자동적인 것입니다. 즉 <반대되는 성질>로서의 개념화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즉 창조자의 존재를 증명하려 할 필요가 없는 것은 현재이 삼라만상 모든 '결과'가 그 해답이 되는 까닭입니다. '생겨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우주 만물로서의 '결과'이니까, '생겨나게 하고 존재하도록 한 것'이 그 '원인'으로서의 창조인 것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결론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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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② 내가 어디서 왔나ㅡ양친 부모에게서 났다, 인과 관계입니다. 우주 만상이 어디서 왔나, 우주가 존립되도록 했으니까 생긴 것이다ㅡ같은 논리. 이 '원인'은 '결과'의 '머리'요 '어버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과 관계는 다시 말해 모자(母子) 관계이기 때문. 모자 관계란 것은 본질이 하나이되 성질이 같지 않다는 차이 즉 상호 상치되는 데에 있습니다. 모든 어미가 자기 새끼를 금 쪽 같이 위하는 것은 자기와 같은 본질로서 자기의 닮은꼴이기 때문입니다. 곧 '또 다른 자기'라는 것인데 이것이 둘이 하나됨의 기원입니다. 남녀가 처음부터 따로 생긴 것이 아니라, 처음 있던 원(元)으로부터 그 처음 존재하던 것의 닮은꼴이 나옴으로써 현재는 양립하는 둘이 있게 된 결과입니다. 이래서 한 몸됨이니 즉 둘은 둘이되 하나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 사랑이니 모든 사랑이 여기에 근원을 둡니다. 부모자식간 사랑, 남녀간 사랑. 즉 둘이 하나됨이고 인과 관계로서 반드시 성질은 다르되 본질은 하나입니다. 하나로 존재하기보다 양면으로 존재함이 합리적이기 때문.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창조자는 어버이입니다. 아기에게 엄마는 절대 불가결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머리'와 '몸'의 관계입니다. 잘못된 인식이 처음부터 주입되어 그렇지, 창조자는 우주 만물에게 '어버이'요 '머리'입니다. 모든 인식은 여기서부터 출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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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③ 창조자의 존재를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창조주가 계시면 왜 세상에 악이 들끓고 이렇게 인간고가 심하냐ㅡ그런 것은 소소한 지엽적인 것으로서 그것은 그 자체대로 해명될 성질의 것이고, 큰 가닥은 결코 흐뜨러지지 않습니다. 잘못해 아버지/어머니에게서 심하다고 생각되는 회초리를 맞고 우리 부모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자기를 아무리 합리화한다고 해서 그 부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다른 면으로 생각할 때에는 그지없이 고맙고 없어서는 안되는 부모이니까. 자기 살점도 떼어줄 수 있는 부모 마음이지만 때로는 회초리를 들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창조자의 양면성입니다. 원래 짝의 원리는 극과 극의 조화입니다. 양면으로서의 빛의 입자(粒子)성과 파동(波動)성은 도저히 조화할 수 없는 전혀 반대되는 성질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일치 조화해서 빛으로 작동하니까. 만물의 제1'원인'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끝내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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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④ 이 창조주(主)의 대리자로 창조된 것이 인간(아담)입니다. 대리자이니까 만물을 관할하는 통치자. 그리고 이 아담을 보필하기 위한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보좌역으로 창조된 것이 초자연계 존재들로서 이들을 영물(靈物)이라고도 하는데 흔히 말하는 "천사"가 여기에 속합니다. 성경에는 단순히 사자(使者-messenger)라고만 되어 있지만 "천(하늘)"은 초자연계를 의미하므로 "천사"로 통하는 것. 이 천사들 중 하나가 앞서 설명처럼 아담에게 하극상을 한 것이고 이 자를 따른 무리들(초자연계 존재)이 있어 이들을 통틀어 악령(惡靈)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처음 창조되기는 모두가 선하고 거룩하고 정의로운 존재들인데 각자 자기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에 따라 자기 중심으로 흘러 악하게 된 것이고, 그렇지 않고 처음의 자기 분수를 지키면 거룩한 천사들로 남게 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니 인간도 선과 악으로 구별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담으로 말미암아 선이 아닌 악으로 분류되어버린 고로, 초자연계가 아닌 자연계, 생명의 낙이 아닌 죽음의 고난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고, 만물의 지배자가 아담이었는데 이 아담을 자연계 존재로 추락시켜 버린 장본으로서의 악령이 인간 위에 올라서는 계략이 성사된 결과 이 세상의 지배자 곧 이 세상의 신(神)이 된 것입니다. 이 인간 세상의 지배자는 아담이지만, 아담이 결과론적으로 악령의 추종자가 됨으로써 세상 지배권이 악령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간계로 꾄 악령이나 그 간계에 넘어간 아담이나 똑같이 생명(삶)의 법칙을 범한 측면에서는 동일하므로 벌어진 결과입니다. 만일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악령 혼자만 처벌을 받는 것으로 끝났겠지만, 공범(共犯) 격이므로 당분간 인간이 악령의 지배하에 들어와 있는 현실의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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