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내가 과연 하나로 즉 짝이 되어 있는지 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인간은 죄짓고 하나님은 용서하시고ㅡ인간은 죄짓는 것이고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것이고ㅡ죄짓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용서는 하나님의 속성이고). 이런 말을 사람들은 쓰기 좋아하는데 '회개 없는 구원'의 지금까지의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의 소위 서구 기독교 문명권 사람들의 넋두리 혹은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경을 제대로 배웠으면 오히려 "Wrath and vengeance belong to God, sympathy and forgiveness to man."(분노와 응징은 하나님이 하시고 동병상련의 용서는 인간이 하고) 정도로 나와야 당연한 것이다.
이 세상 神 사탄 곧 용의 인간 지배는 "어미 말 안듣는 청개구리"들로 만드는데 있다. 성경에 나타난 대로의 하나님의 뜻과는 항상 반대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무신론을 만드는가 하면 유신론자가 되어도 그런 식으로 나가게 만들어 멸망을 자초하게 해 온 것이다. 회개는 죽어도 범죄치 않겠다는 결의다. 죄에 대한 증오다. 그런 증오가 없기 때문에 범죄(자아중심)가 나온다. 이는 나 위해 죽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죽어도 배반하지 않겠다는 바로 그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정도가 아니면 "구원 얻는 믿음"일 수가 없다.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고 악을 선으로 이기라고 명령하는데 원수 갚고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자아중심이다. 믿음은 자기 부인이니 자기를 위해 살면 그는 아무리 "믿음, 구원"을 떠들어도 구원된 것이 아니다(고후 5:15/롬 14:7-9). 자기를 중심하니까 원수를 미워하고 악을 악으로 갚는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어(빌 1:21)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마 7:21) 절대로 그런 일이 생길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은 원수 사랑이요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데 있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원수 사랑, 악을 선으로 이김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우리 위해 못박히실 때 하신 기도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가 그 근거가 된다. 스데반도 돌무더기 속에서 운명할 때 이 뜻을 받들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주십시오" 했다. 사탄에게 속아 알지 못하여 그런 악행(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나타낸 타 생명 파괴 행위)을 하고 원수가 되는 것이다. 범죄하여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원수" 노릇이다. 곧 육신의 생각(롬 8:7) 곧 자아중심이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과실도 용서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희도 용서가 없다"(마 6;14,15)는 하나님의 뜻은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도 충분히 밝히신 것으로서(눅 11:4) 회개는 자아중심을 버리고 자기 부인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함인즉 용서 없고 악으로 갚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한 마디로, 자아중심인 것이다. 회개가 없는데 다시 말해 다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오직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믿음이고 구원받음인데 여전히 자기를 위주하는 삶인데 어찌 영생이 있으랴. 요한 사도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자라 함이 그 때문이다. 영생이 없다(요일 3:15).
원수 사랑이 무어 대단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5:3) 함과 같다.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 위해 살면 당연지사 중의 당연지사다. ①그 사람이 참으로 사탄처럼 악한 마음인지 아닌지는 오직 하나님의 판단이지 인간이 알 수 있는 일이 절대로 아닌 것이다. ②또 원수 갚음과 악을 악으로 보응함이 내가 나 자신을 위한 것인즉 절대로 정당시될 수 없다고 했거니와 나를 위하시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와 짝을 이루신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다(아버지와 내가 하나가 아니지만 아들과 하나되어 있고 아들 안에서 아버지와 하나되어 있는 것).
그런즉 우리가 믿음에 있는가 우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이 방법을 따라 그리스도와 내가 진정 하나가 되어 있는지 여부 따라서 내가 버림받은 자가 아닌지 충분히 자기 진단할 수 있는 것이다(고후 13:5). 뒤늦게 심판대에 가서야 내가 나를 속였구나 하고 탄식 아니할 수 있는 진단법이다(마 7:21-27). 내가 과연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인지 확증할 수 있는 것ㅡ그것은 내가 원수를 사랑하는지 악을 악으로 갚는지만 살펴도 자명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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