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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휴거"의 교리는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롬 9:3)와는 상치되는 것

Tayseek Kwon 2019. 2. 19. 17:01








소위 "휴거"는 하나님의 구원의 영역이다.

죄로부터서의 구원이 아니라 

우리 자연계 육체의 위해로부터의 구원이 될 것인즉

주님의 일을 하다가 순교하여 영광 돌리기를 바라야지

세상은 멸절하는데 거기서부터 빠져 나가는 것을 바람은

우리 믿음의 양심으로써 바랄 일이 아닌

안일하기 짝이 없는 망상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성경이 혐오하는 자아중심밖에 더 될 것이 없다. 

주님의 오심은 바울이 살후 2:5-12에서 밝혔듯이

적그리스도가 온 후에야

그래서 많은 사람이 순교한 다음에 오는 것이다(계 13:15).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한 것"이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휴거"가 바로 "주님 앞에 모임"이 아니고 무엇인가.

주님 앞에 모임이 여러 번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 없다.

고로 이런 건을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고

오직 우리는 죽기(죽음의 고난 받기)를 한하고

주님의 일에 힘쓰고 주님과 함께 일하는 것 외에

일절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은 다 망하는데 나 혼다 빠져 나간다는 

그런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는 자가

어찌 바울 시대처럼 현재 북한처럼 목숨을 걸고 복음을 믿겠으며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하겠는가.

둘이 밭에 있는데 또는 멧돌을 갈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하나는 남겨진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는 그대로 믿으나 

재차 말하지만 그 데려감을 당하는 것은

우리가 관심을 둘 사항이 결코 아닌 것이다. 

바울처럼 몇이라고 더 구원하기 위해서

그 일에만 노심초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고로 휴거에 관심을 두는 정도라면

휴거커녕 나 자신의 영적 상태가 구원 여부조차

불투명하다는 진단이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

더 합리적 자기 진단이라 할 것이다. 

위의 주님의 말씀은 주님 강림하실 때의 광경을 

미리 말씀하신 것일 뿐이다

(적그리스도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자가 있어-살전 4:15).

주님의 재림이 "휴거" 때 공중에서만 있고

그 다음 적그리스도 멸망 때 다시 있다는 것은

"휴거" 교리의 합리화를 위한 억지로 꿰어맞추기 해석일 뿐이다.

자기 부인, 십자가 짐 등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면

대과 없음을 명심하시라.

여기서 그르치면 첫 단추 잘못 채우기가 되니 유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