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정체(초자연계 존재)/아담·에덴의 초자연계 속성

인간만이 스스로 지어 입는 옷이 있을 뿐ㅡ아담의 범죄의 결과물

Tayseek Kwon 2019. 4. 8. 22:05







인간만이 스스로 지어 입는 옷이 있을 뿐이다.

자연계 동물도 하나님이 애초 입혀주신(지어주신) 옷이다.

초자연계 존재는 그 몸의 광채가 옷이다. 

몸의 구조 내지 본질 자체부터가 차원이 다르지만.

천사가 인간에게 나타날 때 입은(것같이 보이는) 옷은

인간에게 나타나기 위해 그 초능력으로 두른 것에 불과하다.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자신을 변환시켰을 따름이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경우도 마찬가지.


아담 부부는 그 초자연계 몸이 자연계 육체로 환원되자

벌거벗은 몸으로 드러나게 되고 그래서 급하게 치마를 해입었다. 

그 후 인간은 천성(본성)적으로 아랫도리를 부끄러워한다.


생산을 담당하는 기능으로서의 신체 중요 부분이니 

자랑스럽게 보배처럼 여겨야지 왜 부끄러워할까. 

이 '부끄러워한다"는 말은 창세기 첫머리에서부터 등장한다. 

아담 부부가 "벌거벗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가 그것이다. 

이는 아담이 초자연계 몸으로 현란한 광채로 덮여 있었으므로

다시 말해 빛의 옷을 입고 있었기에 벗은 것이 아니므로 그런 것.


벗었다 함은 현재 자연계에 속한 육체의 인생들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다. 

나중에 범죄하여 초자연계 육체의 광채가 벗겨지고 

자연계 몸으로 드러나자

얼른 아랫도리부터 가리기에 바빴다. 

그 이유는 주변 이웃(영물 곧 천사)과 달리

하계(下界)인 자연계 동물과 같은 

신체 구조(성별로 나누어진)임을 직감했기 때문. 

이것이 인간만이 아는 "옷"의 기원이다. 


처음부터 인간이 옷을 지어 입는 상황이었다면

온갖 영화로 치장해 입은 솔로몬의 옷이

들의 꽃보다 절대로 못할 리 없다. 

처음부터 창조된 바가 아닌 

인간의 작품으로서의 의복이기 때문에 못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서의 인간인데

한낱 풀 포기의 꽃에 비해 절대로 못하다 하실 리가 만무한 것. 


이런 인간의 비극적 참상을 나타내시기로는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는데 

인자(사람)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하신 데에서도 충분히 드러나는 것이니 

이런 궁색한 몰골을 하고 있는 인생.

오직 일편단심 옛 영광(롬 3:23)의 그 모습만 사모하며 

이 세상을 백안시할 일이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기 때문에

자멸의 길을 스스로 재촉한다는 것이

성경의 엄중한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