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삶ㅡ사람 사랑

옛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과의 대칭 정도는 훤히 꿰뚫었었다

Tayseek Kwon 2019. 4. 7. 14:30




옛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과의 대칭쯤은 식은 죽먹기로 알고 있었다



열자(列子ㅡ기원 전 4세기 전국 시대의 인물)의 책에 다음 말이 있다고 한다. 

"보이는 현상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의해 이뤄진다. 

보이는 것을 보려 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라. 

그래야 보이는 (모든) 현상을 (제대로) 알게 된다"


제법 가시적인 것과 불가시적인 것,

자연계와 초자연계의 대칭법을 말하는 듯하다.

그럼 그가 진리를 벌써 체득했으니 그의 말에 무조건 따르라는 것인가?

아니다, 일면의 진리, 일면의 반진리(비진리)ㅡ이런 것이 성경 아닌 모든 인간의 소리다.

그 진리의 측면 하나만 보고서 나머지를 진리라고 신뢰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사탄이 처음 여자에게 그와 같은 "일면 진리, 일면 반진리"의 수법을 사용하였다.

둘이 평평하게 대등하니 양자 택일하면 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반드시 인간의 소리는 이 세상 神 사탄의 조종하에 있음을 알아야 실황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탄은 여자에게 핵심 부분만은 진리 아닌 것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진리는 이에 대한 들러리 구실뿐이다.

비진리 곧 거짓으로 인도하기 위한 낚싯밥 역할이다. 

그렇게 낚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열자의 책을 다 들추어 보려 할 것은 없다. 

왜냐면 다음 목차만 보아도 그 성격ㅡ이상 설명과 같은ㅡ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천서6. 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행복이다 
천서8. 죽음이란 편안히 쉬는 것이다 
천서9.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기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두 이상 세 항복의 본론을 드러내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다.

인생의 당면 문제가 죽음인데 이 죽음을 희석시키기에 바쁘다. 

그러면 일체가 무의미한 것이요 속 없는 빈 깡통 소리의 요란함뿐이다.


인생의 주제가 당연히 죽음이어야 한다.

원래 죽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존재로 지으심 받은 것이 인간이다.


고로 죽음 아닌 원래 상태로 되돌아감이 1차, 2차, 3차 과제다.

그 외에는 논해보아야 백해무익이니 말짱 걷어치움이 상책이다.


그런 종류의 책들이 생활의 지혜를 준다고 자랑하지만

그렇게 생활하고 살아보아야 그 종말이 죽음일진대

죽고나면 지혜로 살아왔든 지혜 없이 살아왔든 차이가 무엇인가.


생활(생명 곧 영생)의 법칙을 가르치는 성경이니 

당연히 삶의 지혜까지 포함해서 가르친다. 

그 지혜 중 하나 아니, 근본되는 것이 

이 세상 신(神)이 지배하는 세상 삶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성경만이 가르칠 수 있는 지혜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죽음 일변도로만 나가라는 것이다.

절대로 삶이라 착각하지 말고 살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 외 다른 것은 듣지도 보지도 말 것이다. 시간 낭비다.

하나님께 내 스스로 바친 시간, 하나님의 소유인 시간ㅡ

낭비도 믿음 없음의 한 가지 증거다.

내 것처럼 착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