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삶ㅡ사람 사랑

열매 맺음ㅡ생명의 법칙 따라 살기 시작하는 결과물 (1)

Tayseek Kwon 2019. 4. 4. 11:26





열매 맺음ㅡ생명의 법칙 따라 살기 시작하는 결과물 (1)








우리가 죄 중에 살겠느냐.

"죄에 거(居)하겠느냐"(롬 6:1).

죄를 짓겠느냐.

바울은 단연코 "그럴 수 없다"(:2).

"죄에 대하여 죽었는데 어찌 또 살겠느냐".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은 사실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았음이다. 


우리의 구원받음은 함께 죽어 장사지내진 후

함께 살아나 새 생명 가운데 행하기 때문(:4).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근거/이유다(:7) .

즉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죄의 몸이 멸해짐으로써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기"(:6) 때문.


이와 같이 인과 관계를 명백히 서술해놓고 있건만

덮어놓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선언하시니까

의로운 것으로 무조건 인정되는 것으로 아주 잘못 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죽어 나 위해 살 그 나가 없어졌기에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나를 의롭다 하시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이 말을 남기지 않았다면

무조건 "선언 식의 의롭다 칭하심(칭의/稱義)을

고집할 것이 아닌가. 속말로 환장할 일이다. 


내가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데도 나를 의롭다 하시면

하나님도 거짓말하시는 것이 됨을 왜 미처 깨닫지 못하나.

죄가 무엇이냐ㅡ나를 위해 사는 자아중심의 일체이다. 

앞에서 "죄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그 나 자신에데 대해

주님과 함께 죽고 무덤에 들어감이 되었다는 그 뜻이다. 

내가 존재해야 자아중심에게 종노릇할 것이 아닌가. 

죽은 것을 믿지 않으면 왜 세례는 받았는가.


이런 이치를 모르니까 무작정 세례를 주고 받는다. 

마치 특정 사실(주님의 나 위한 죽으심)을 믿는 징표인 양

세례를 함부로 주고 받는다ㅡ세례의 뜻을 도통 모르니까.

"믿음"의 징표가 아니라 죽은 징표이다. 

성령(예수님의 보혜사 되심)의 선물을 받아 모심으로써 

그 징표가 현실화, 구체화되어 내게 적용되는 것이다. 

주님을 내 영혼처럼 모심으로써 말 그대로 둘이 하나됨이다.


세례를 들먹이면서까지의 바울의 일갈은

죄 운운 할 것이면 세례는 무엇 때문에 받았냐 하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나 요한 사도나 베드로 사도나

죄를 짓지 말라고 연속 되풀이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다.

죄를 지으면 자아중심으로 회귀하면

모든 것은 순간적으로 와해 붕괴되기 때문이다. 


요한 사도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그렇지 않은 죄를 

구별해서 설명한다(요 5:16).

후자의 경우가 형제 사랑의 결여와 같은 

부지중 짓는 죄다(요일 1:6~2:2).

전자는 말할 것도 없이 진리를 알고 죄를 알면서도 짓는 것.

이렇게 고의적으로 "짐짓 짓는"(히 10:26)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박는 것이요 그를 짓밟아(10:29)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함"(6:6)이다. 


물론 구원 받은 즉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죽었던" 것이 "되살아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옛 사람의 죽음은 어디까지나 믿음에 의함이고

성령을 받아 모심으로써 현저히 이루어지는 변화이므로

그 믿음 버리고 옛 자아중심으로 흐르면

위의 성경의 묘사와 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이제는 사랑하는 나의 예수님 위해서만 살 때

자아중심이 발 붙일 여지가 없고 죄 지음(자아중심)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지 

처음부터 어렵게 복잡하게 이제껏 세뇌되어 온 대로의

사고방식을 따르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강조하여 말씀하시기를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 18:3) 하신 것이다. 


죄가 무슨 꿀이 발린 달콤한 것이 아니다.

인식 나름이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믿음 나름이다. 

그래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사랑이다.

우리 "믿음이 사랑으로써 역사한다"(갈 5:6) 함과 같다. 

요컨대 내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느냐 여부다. 

사랑이 없을 때 그것은 대개 믿지 않음이라는 진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