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의 원리(3위1체 법칙)/상보성 원리

2019년 4월 1일 오후 8시 55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Tayseek Kwon 2019. 4. 1. 20:57




아인슈타인은 "틀렸고" 보어는 "몰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연계에 대칭(상칭, 대립)되는 초자연계가 존재한다. 우주는 자연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우주와 대립되는 초자연계 우주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세계가 하나만이 아니라 짝(a pair)을 이루는 두 세계로 양립되어 있는 체제임이 이제 비로소 밝혀졌다. 이 사실은 만물만상이 짝으로 되어 있다는 증거 중의 하나이다. 만물이 짝으로 되어 있다는 진실은 3위1체 원리에 의해서 증명된다. 3위1체 원리는 3운법칙으로 검증된다.


동시적 반(反)작용의 양면성이 원래 하나의 본질에서 파생된 것이므로 항상 하나의 형체로 존재하려는 특성이 있음을 기술하는 것이 3위1체 원리다. 2011년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실험을 거듭한 결과, 쌍으로 되어 언제나 하나를 이루어 있는 두 반대되는 성질(하나가 그 회전 운동량으로 '업'스핀이 되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그 반대인 '다운'스핀이 되는)의 소립자(원자를 구성하고 있는)를 따로따로 일정 원거리로 격리시킨 다음 방출(발사)시켜 그 중성미립자의 속도를 재어보았더니 광속보다 훨씬 빨랐다는 사실이 확실한 결론으로 검증되었다고 하여 물리학계에 다시 한번 충격의 파문이 일고 있는 것같다.


그렇게 짝으로서 구성되어 있는 두 전자는 일시 격리되어 있다는 것뿐이지 여전히 하나로서의 존재인 것이다. '둘'이 '하나'로서 존재하고 활동하는 본성적인 것이기에 그러하다. 이 '둘'의 개념을 양립성이라 하고 '하나'로서의 개념을 단일성이라고 한다. "단일성"이라는 것은 이미 양립이 되어 있음을 전제하고 "양립성"이라는 것 역시 둘이 하나가 되어 있음 즉 짝으로 된 구조임을 기정 사실화하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은 이 양자 단일성(quantum unity)을 말함이다.


만물만상이 이 양립성과 단일성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3위1체 원리다. 아인슈타인은 빛보다 더 빠른  것은 우주에 없다고 했는데 이는 물론 자연계만 알고 초자연계의 실존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인 우리 모두의 식견을 대변한 것이나 이제는 인식을 새로이 할 때가 되었다. 빛보다 더 빠른 정보 전달 매질매질(媒質)이 있다고 하면 또 그보다 더 빠르게 전달하는 무엇이 있지 않으냐 하기 쉬운데, 그런 매질 차원이 아니라 이 "단일성"과 "양면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무리가 없다. 그래야 산뜻한 마무리가 된다.


양면성은 다시 상호 도치성(倒置性)에 기반을 둔다. 짝으로 결합된 소립자로서의 두 전자 중 하나가 업스핀이라는 전자의 고유운동을 하면 나머지 구성입자는 그 즉시 반드시 그 반대인 다운스핀을 하는 것을 가리킴이다. 소립자 자체를 놓고 볼 때는 그것이 업스핀을 할지 다운스핀을 할지  50:50으로 반반씩이나 그 중 어느 하나라도 업스핀을 할 경우 반드시 그 나머지는 시간 차 간격없이 즉각적으로 다운스핀을 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양자 양립성(quantum duality)이다. 다자(多者) 다원(多元) 관계가 아닌 반드시 양자 이원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3위1체 원리에 따르면 두 전자는 반드시 주종(主從), 대소(大小), 선후(先後), 인과(因果) 관계에 있다.


이 단일성과 양립성은 운동의 동시성(동시에 움직임)과 상태의 양면성으로도 나뉘어지는 것이니 인간 만사 역시 여기서 예외가 없다. 남녀 부부(커플)됨도 이 원리를 따라 되어 있다. 남녀 동시성은 남자의 몸은 여자의 소유이고 여자의 몸은 남자의 것이라는 점에서 나타난다. 쌍(짝)을 이룬 두 전자의 서로 얽힘은 물질이지만 마치 사람이나 생물처럼 움직이는 품이 하도 기이하여 "불가사의"라 하고(자연과학자들에게 "신비하다"는 표현은 금기처럼 되어 있으나 이제는 정히 편협된 시각에서 벗어날 때) 고로 이런 양자 단일성과 같은 이론은 물리학적 연구라기보다 철학적 연구처럼 여겨져 아인슈타인도 "유령 같은 원격(遠隔) 작용"이라 해서 일소에 붙였었다.




위의 그림은 3위1체 원리 도식을 따라 두 전자의 상관 관계를 보인다. 원래 c였으나 a, b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둘로 나누어져도 원래의 하나의 모습인 c를 여전히 유지하고자 하는 성질을 묘사한 것이다. 업스핀과 다운스핀이 거리와 상관없이(아무리 멀게 떨어져 있어도) 일어난다는 것은 "거리와 상관없이 정보가 전달된다"라기보다 둘이 하나되어 있는 본성 때문이라고 정리해야 제대로의 설명이 된다. 형태는 '둘'이지만 '하나'로서 존재하고 운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거리든 무엇이든 그 어떤 제약이 존재할 수 없다. 이 본성적 움직임을 막을 수 없는 까닭이다.


3위1체 원리를 알 리가 없는 물리학자들은 이를 두고 "두 입자간의 정보 교환이 거리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거창한 말로 어렵게 표현하지만 "본성적"이라고 해두면 훨씬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두 입자의 업스핀과 다운스핀 현상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그것이 본성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이고, 하나인 고로 물리적으로 아무리 둘을 격리시켜 놓아도 그 본성을 거스를 수 없어 마치 하나의 몸(一體)처럼 동시에 즉각적 반음을 보이게 되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생명체(자연계)라면 그렇게 몸뚱이를 강제로 격리시켜 놓으면 목숨이 끊어지는 판이라 구처 없는 일이나 물질일진대 아무리 찢어발겨놓아도 그대로 하나로서의 작동을 넉넉히 해낸다는 이치다. 그러므로 이 실험에 동원된 중성미자를 "유령 입자"라고 하듯이 초자연계 영역에 근접한 자연법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운법칙으로 검증되는 3위1체 원리는 이상의 실험이 정확하고 아무 하자가 없음을 처음부터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동안 사고(思考) 실험에 머물러 있었던 양자역학 실험이 실제 가능하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실험에서 선택한 특정 기준에 따라 실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측정의 임의성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반론이 대세인데 그러나 3위1체 원리는 "이 우주 공간이 유기체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이 입증되었다"라는 뒤늦은 결론의 손을 이미 높이 치켜들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입자일까 파동일까 하는 논쟁으로 이어 온 빛의 본성에 대한 의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입자도 파동도 아닌 제3의 형태를 지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나, 제3의 존재로서의 의미가 사람의 인식에 쉽게 와 닿는 것이 아니므로 입자나 파동이라는 형태로 바꾸어 생각하고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마땅하다고 보는 일부 견해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3위1체 법칙은 양자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둘을 하나로서의 존재 가치로 인정하는 데에 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닐스 보어는 "빛은 둘 다일 수는 없다. 특정 실험에 의해 빛은 입자이거나 파동으로서의 성질을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입자이면서 파동일 수는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만유(萬有)를 갑(a), 을(b), 병(c) 삼자(三者)로 분류하는 3위1체 원리는 이를 제대로 정확히 표현하여, "a(입자성)와 b(파동성)가 c(빛)로 하나되어 있으므로 c를 'a로 보면' a이고 'b로 보면' b이다. 그러나 a는 b와 하나되어 있는 관계로 a라 할 수도 없고, b 역시 a와 하나되어 있으므로 b라 할 수도 없다. a도 아니고 b도 아니면서 a일 수도 있고 b일 수도 있으니 이상과 같은 표현의 '둘의 하나됨'을 가리켜 아예 c라 한다. 존재하는 것은 a와 b이다. 그러나 이 둘이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하나로 존재하므로 이(하나됨)를 가리켜 c라 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 신학자들이 말하는 "3위1체적 창조신(창조주)"으로 말하면(마 28:19), "창조신을 아버지로 보면 아버지시이고, 아들로 보면 아들이시다. 아버지와 아들께서 사랑으로 둘이 하나되어 계시기 때문이다(요 10:30/17:22,23). 이렇게 하나로 계시는 모습을 아버지시라고도 할 수 없음은 아들과 하나되어 계심이요 아들이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아버지와 역시 하나되어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경우 '성령'이라는 이름으로 통해지시는 것이다. 고로 '3위(位)'라 함은 이렇게 불려지시는 세 '이름'을 뜻한다"가 된다.


그래서 마치 c가 a(제1위, 派生시킨 자)나 b(제2위, 파생된 자)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인 양 나타나므로 "제1위"나  "제2위"처럼 이 c에다 별도로 "제3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3위1체(三位一體) 원리라 하는 것이다. 앞서의 설명대로 "위(位)"를 "이름(name)"으로 이해하면 좋은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파동에서든 입자에서든 어느 하나(派生者)에서 다른 하나(被派生者)가 생겨난 것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3위1체 원리다.


이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묻기 전에 먼저, 암탉이 먼저냐 수탉이 먼저냐 하고 물어야 과학적임과 같다. 여기서 150년간이나 과학계는 물론 인생 전반에 걸쳐 지배해 온 진화론은 한 순간에 묵사발처럼 허무하게 분쇄되어버린다. 암수(雌雄)가 '종족 유지 보전'을 목적으로 사전(事前) 구상, 기획, 고안, 설계에 의해 '동시성'과 '양면성'으로 창조되고 나서야 진화에 필요한 장구한 시간을 비로소 벌어들일 수 있음이 아닌가. 이렇게 단순히 생각해도 진화론의 멸종(滅種)이다. 


생물학적 '환경 적응'을 진화로 오인, 인간 이성과 지성을 무수히 사살(射殺)한 죄과는 크다. 인류는 지금까지 이런 많은 허수아비 우상을 영문도 모른 채 경배해 온 것이니 인생이여,  부디 네 자신을 알라("Know Thyself"-Socrates). 인류사(人類史)는 이 세상 신(神)과의 전쟁사(戰爭史)요 이 세상 신의 대(對) 인류 기만사(欺瞞史)이다. 고로 자연계가 있으니 그 상대적인 초자연계가 있는 것이요 과연 그러한 세계가 있는가 하고 끙끙 대며 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과학"을 말하면서 "악령"이니 무엇이니 한다고 헛소리 한다고 할지 모르나 DPApix까지 가세한 여러 증거 앞에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어쭙잖은 편견과 선입견은 모든 과학 지식의 적(敵)임을 드디어는 알게 될 것이다.   


자연계가 있으니 반드시 초자연계가 있다는 자체적인 증명이  됨이니 자연계 자체가 초자연계가 있다는 증거, 증명이 된다는 것이 3위1체 원리다. 빛이 파동성이냐 입자성이냐 하고 논쟁할 필요 없이 입자성이라고 실험 결과 확정된 바로 그것이 파동성임을 확정하는 검증이 된다는 사실을 3위1체 원리는 밝히고 있다. 현재의 이 세계가 자연계라는 것 자체가 초자연계의 실존을 검증하는 것이다. 물론 그 세계가 과연 어떤 세계냐 하는 것은 별문제다.


양자통신시대가 열리면 인간이 초자연계로 진입하는 무슨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나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음을 단언할 수 있다. 초자연계의 존재가 자연계 존재처럼 될 수는 있으나 현재 자연계 존재로서의 인간이 초자연계 영역으로 드나드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없음을 확언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 물질계에 준(準)초자연계적 성격을 가진 것이 존재하느냐 여부는 미지수다. 양자 동일성("양자 얽힘")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중성미립자가 그런 예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사실상 중요하지도 않다.


그런 것보다 이들 짝을 이룬(3위1체 원리에서는 이를 대칭성이라 부른다) 소립자들이 하나가 업스핀이라 판정 나면 그 상대가 되는 것은 다운스핀을 반드시 나타냄으로써 3위1체 원리의 이원(二元)을 입증하고, 그 둘이 하나임을 나타내어 거리에 상관없이 즉 그 둘이 어느 정도의 거리로 격리되어 있든지 간에 전연 상관 없이 그 동일성을 나타내어 똑같이 도치성(inversion)으로 반응함으로써 마치 두 전자가 아닌 하나의 전자처럼 움직여 3위1체의 一始一體三位를 입증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3위1체 원리의 공식 명칭은 일시이원3위1체(一始二元三位一體) 법칙이다. 둘이지만 하나처럼 행동하는 것이 "광속보다 빠른 정보 전달"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나로서 행동할 때는 반드시 둘은 도치성(倒置性)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up"스핀과 "down"스핀과 같은 그런 용어가 가리키는 의비다. 빛의 본성을 구성하는 파동과 입자와 같은 것이다. 고로 반드시 반대되는 성질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까닭에 양립한다는 것이요 그 이상의 요소는 없다는 뜻이 된다.


어느 쪽이든 한 현상이 현실화되어 나타나 있으면 그 짝이 되는 것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그리고 그 성질은 정반대의 개념으로 전개되는 것이니 이는 다시 말해 어느 쪽이든 하나만 입증되면 그 나머지 하나는 입증할 필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증명이 된다는 것이 3위1체 원리다. CERN 실험의 결론을 그래도 못미더워 하는 이들은 그 실험 결과에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우연일 가능성이 더 크다 하여 실험을 거듭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런 결론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이들이 우세하나, 3운법칙으로 검증되는 3위1체 원리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확고하게 단정 짓고 있다.


그 실험이 틀림없음을 보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실험 역시 삼위 일체 원리 검증의 한 사례라고 할 것이다. 3위1체 법칙은 만물이 양면 구성이 되어 상호 보완한다는 사실만 아니라 그 둘이 둘로 존재하지 않고 항상 하나의 형체를 이루어 운동하고 있음을 밝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비추어서도 3운법칙 검증법은 초 특급이라 할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빛보다 더 빠른 것이 실존한다는 데에만 흥분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만물만상이 짝으로 되어 있고 이 짝으로 하나를 이루어 단일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기가 막힐 정도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우리 인간 삶의 풍요의 원동력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정작 코끼리는 보지 못하고 그 일부분만 더듬어 확인하고는 네가 옳다 내가 옳다느니 지엽적인 것에 신경을 쓰는 눈 먼 사람들의 근시안적 자세를 한시 바삐 탈피할 일이다. 초(超)광속이든 아니든 그 운동을 계량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들이 자연계에 속함을 입증한다. 중성미자는 입자 중 가장 가벼워 이 우주에 충만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물질과도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이와 같은 거의 초자연적이라 할 정도의 신속성(빛보다 더한)으로 인하여 "유령"입자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인간의 실험 대상이 되고 있으니 자연계적 존재임에는 분명하나, 그 특성으로 말하면 초자연계의 영역에 거의 진입하는 1, 2보(步) 차이의 준(準)초자연계 속성이라 할까.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은(여기서  성경만은 제외시켜야 하는 바 이유는 다음에 설명된다) 자연계에 관한 것으로서, 초자연계는 인간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니 왜냐면 인간 자신이 자연계에 예속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3위1체 원리는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망라하는 법칙인데 이를 검증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이제껏 알아온 자연법칙에 대한 지식 또는 실험 도구를 가지고는 한 마디로 말해 한계 밖이라 단언하게 된다. 고로 자연법칙을 검증해온 지금까지 인간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는 어떠한 검증 작업도 불가능하고 따라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이 틀렸다"고 하니까 아인슈타인을 능가할 만한 지식을 가지고 말하는 줄로 착각할 필요가 없다. 분야가 다르고 영역 자체가 틀린다. 자연계에만 통하는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는 마치 마천루를 잰다면서 30cm 자(尺)를 가지고 설쳐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초자연계는 말 그대로 자연계의 모든 것을 초월한다. 그 실체는 첫째 아예 처음부터 눈에 보이지를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실체로서 나타나지를 않는데 무엇을 관찰하고 실험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여기서 겨우 통하는 것은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뿐이다.


간단히 "유추(類推)한다"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사고 실험"이라는 용어를 동원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3위1체 원리는 이 "사고 실험"에서 넉넉히 검증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면 된다. 양자 동일성("얽힘")에서 쌍으로 된("얽혀" 있는) 소립자는 측정 결과 한 입자의 상태가 확증되면 나머지 입자는 비록 수백 광년으로 떨어져 은하의 반대쪽에 있다 하더라도 동시적으로 그 반대되는 상태로 확정된다는 것. 이 결론은 은하계 저쪽에 가서 직접 실험함으로써 얻은 것은 아니지만 사고 실험을 통해 확증됨과 같은 이치다.


보통의 물질(matter)을 이루는 원자와 반대되는 반(反)원자로 이루어진 것을 반물질(反物質, antimatter)이라 말하는데, 반원자라 함은 원자의 구성 입자인 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반대되는 입자 곧 반양성자, 반중성자, 반전자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한다. 전자를 두고 말하면 - 전기인 전자(electron)와는 반대의 성질 즉 + 전기를 가지는 것이 반전자(positron)다. 질량 등 모든 성질은 전자와 동일하나 단 움직이는 방향이 전자와는 반대인 + 전기를 띄므로 전자처럼 +극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극으로 움직인다.


반전자만 아니라 다른 반입자도 존재함이 입증되었다. 이렇게 반물질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물질의 정의가 바뀌어버렸다. 원래는 '우주를 구성하는 질량을 가진 모든 것'이었는데 지금은 '실증된 특정 종류의 입자' 정도로 말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버렸다. 반전자가 먼저 발견되었고 그 다음에 반양성자 그리고 반중성자는 1959년에 발견 완료되어 1995년 CERN에서 반 수소 원자가 만들어졌다. 원래 수소 원자는 양성자 1 개, 전자 1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 수소 원자는 반양성자 1개, 반 전자 1개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성함과 동시 광속 수준으로 움직여 머문 시간이 불과 40나노초 정도였다. 그런데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 충돌하면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면서(에너지 형태로 바꾸면서) 멸절(annihilation)되어버린다. 이 반입자 발견이 반자연계 발견의 단초가 될까. 이 반자연계가 있으면 이것이 초자연계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지금까지 발견된 이들 반입자들은 단지 입자의 반작용 현상 즉 양자 "얽힘"에서 보듯 대칭 원리(짝의 원리)의 적용 정도 수준의 것일까.


우주가 생성될 때 물질과 반물질이 동일한 양으로 생성되었으나 물질과 반물질의 반응 충돌로 반물질은 거의 다 소멸하고 비교적 대량으로 남아 있던 물질 세계에 현재 인간이 살고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아니면 인간이 사는 세계는 물질 세계이고 어디인가 반물질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앞머리에서부터 밝혔지만 초자연계는 실존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반물질계가 바로 그 초자연계에 해당되지 않는가 할지 모르나 어쨌든 오늘의 자연계와 대칭(상칭, 대립)이 되는 전혀 반대되는 성질의 세계이다.


해당이 된다면 이 물질계와 더불어 반물질계 즉 초자연계는 현재 공존하고 있음이 부분적으로나마 실험으로 검증되는 것이라 할까. 그러면 그런 반소립자들이 과연 초자연계를 구성하는 인자일까 하는 점만은 미지수로 남는다고 했지만, 앞에서 준(準)초자연계적 성질 운운한 대로 초자연계와 자연계에 대한 일종의 연결 고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초자연계 자체를 확고하게 검증하는 수단은 되지 못한다. 그 검증 방법은 오직 3운법칙이다.


3위1체 원리의 검증


3운법칙이든 무엇이든 엄정한 논리에 기초해야 함은 변동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러기 위해서는 가설을 세워야 한다. 3위1체 원리가 만유의 법칙으로서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망라함으로써 모든 만물이 적용되는 것이라면 이 3운법칙도 당연히 그 적용을 받는 것이라 볼 때 과연 그러면 그 적용을 받는 증거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부터가 일차적으로 통과해야 할 관문이요 과제다. 3운(三運)법칙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 생애를 단 3가지로만 분류하여 그 전성기와 쇠미기(衰微期)를 가려 내는 것을 말한다.


3운법칙 자체가 반(半)자연계-반초자연계 법칙이다. 인간의 생애를 빈 틈 없이 정확히 가려내기 때문인데 인간 자체가 자연계 존재이니 자연계적(的)이라는 것이고 그 가려 내는 기준이 자연계와 동떨어진 즉 자연계를 초월하는 것이기에 초자연성(性)이다. 그렇다면 3위1체 원리와 마찬가지로 자연계적인 실험 관찰로는 역시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 "상호 검증" 방법밖에 없다. 다시 말해 3위1체 원리가 3운법칙을 검증하고 3운법칙이 또한 3위1체 원리를 검증한다는 것이다. 모두에서 언급한 양자 동일성 곧 "양자2 얽힘"과 3위1체 원리와의 관계도 그런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최종적인 근거는 앞에서 "3위1체"라는 용어로 잠시 언급했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하나"로서 계시고 움직이시는 모습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요 10:30),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입니다"(요 17:22) 등 대목에서 나타나는 이 "하나"라는 표현은 인류에게는 실상 생소한 표현일 수밖에 없다. 기껏 이해한다는 것이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인일 경우에만 쓸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러나 "우리"라 하셨으므로 분명 아버지와 아들 '둘'을 의미하신 것인데도 '하나'라 하셨으니 전연 차원이 다르다.


이와 같이 "하나"(一始 또는 一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三位), 아버지와 아들(二元)이시라는 이 사실이 3위1체 원리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되어 있다. 많은 아들들이 아니라 외아들 곧 독자로서의 아들이시니 실체로서의 아버지께 대하여 대립되는 형체, 형상의 의미이므로 형상은 하나뿐이지 둘 또는 그 이상도 필요치 않다. 형상은 말 그대로 실체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때문에 아들을 "말씀(言)"으로도 표현되신다(요 1:1).


여기서 3위1체 원리의 '선후', '주종', '대소', '인과'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므로 결코 다원일 수 없고 오직 이원 구조 즉 짝의 개념만이 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이 3위1체 원리의 정확성과 진실성을 보장, 보증하는 것이다). 3위1체 원리와 3운법칙의 상호 검증이 어떻게 가능하느냐 하면, 앞에서 지적한 대로 3운법칙이 3위1체 원리의 적용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3운법칙의 구조가 반드시 그런 증거를 나타내는 것이 필연인 바 과연 그런가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3운법칙이 3위1체 원리의 지배를 받아 3위1체의 원리가 적용되는 증거는 그 특성상 3운법칙의 구조(構造)밖에 없다. 3운법칙의 구조라는 것은 인간 생애를 3가지로 분류하여 그 때를 정한다는 그 3가지의 특징을 이루는 짜임새를 말한다. 즉 A, B, C 3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중 A형은 LP(전성기-Lively Period)와 DP(쇠미기-Dull Period), JP(유청소년기-Joseph"s Pattern)가 균일, 균등하게 1/3씩으로 짜여져 있다.


다시 말해 생애가 90년인 사람이 A형일 때는 태어나서 30년 동안(30세까지)이 유청소년기(幼靑少年期), 그리고 나머지 각 30년이 LP와 DP에 해당된다. B형은 또 다르다. 생애가 38년으로 요사한 사람이 B형일 때는 LP는 그 생애의 7/19에 해당되는 14년, DP 역시 14년, 나머지 JP는 5/19에 해당되는 10년이 된다. C형은 생애가 70년인 경우 LP가 생애의 4/7인 40년, DP가 생애의 3/7인 30년, JP는 없으므로 산정(算定)되지 않고 이런 생애의 유청소년기는 LP 또는 DP에 포함된다.


A형과 B형에만 있는 JP에도 물론 양달 기간, 응달 기간이 있는데, LP라는 양지기간(陽地期間) 즉 보다 나은 환경의 유청소년기는 C형의 LP처럼 전체 기간의 4/7, DP(陰期間地) 즉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이 전개되는 때는 3/7이다. 즉 이 JP는 C유형의 축소판(형)인 것이다. A형을 OT형이라고도 하는데 one Third(1/3의 약자이고 , B형은 SN형 즉 Seven Nineteenths(7/19)의 약자, C형은 FS형이라고도 하고 Four Sevenths(1/4)의 약자이다. 각종 숫자 배열을 기억하기 좋도록 하기 위해 그런 별명을 붙였다.


이상이 3운법칙의 짜임새(구조)다. 이러한 숫자 배열이 3위1체 원리와 어떤 연관성을 지니느냐 하는 것인데 3위1체 원리의 구조식 또는 도식(圖式)과 관련이 된다. 즉 3위1체의 원리 구조식과 3운법칙의 구조식이 똑같다는 데에 있다. 이것이 3운법칙이 3위1체 원리의 지배를 받아 그 원리가 적용된다는,  3위1체의 원리가 반영되어 있다는 증거다. 아래의 3위1체 원리의 3각(脚-tripod) 구도에서 보듯 갑과 을은 병의 형상을 각각 반분(半分)해 나누어 가짐으로써 같은 본질임을 보이되 그러나 성질이 정반대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 구조식이 나타내는 것은 갑과 을이 원래 하나로서 병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임과 동시에 나누어져 있어도 원래의 병의 모습을 유지 보전하려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을 강력히 시사한다. 3위1체 원리의 차이 또는 특장점(음양론이나 보어의 상보성 원리에 비할 때) 또는 얼굴은, 이 갑을병 3각 구도에서 "병"에 있다. (3운법칙의 얼굴은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19"라는 숫자에 있다). 상보성 원리도 음양론도 이 "병"을 말하지 않는 데에서 3위1체 원리와 하늘과 땅의 격차를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 결과만 놓고 논할 뿐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만물이 양면성으로 되어 있음을 알지만 그리고 음양론에서는 그 짝을 이룬 둘이 서로 반대되는 성질일 뿐 아니라 대소(大小) 관계에 있다는 것까지는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왜 크고 작은 구별이 있는지 원인을 말하지 못함이다. 상보성 원리의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접어두고 대체적으로 간단히 말하면 음양론의 윤곽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즉 짝을 이루는 두 개의 개념이 상호 대립적이면서도 서로 보완적이 되어 둘 다 필요하다는 그 이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어 자신이 중국에 갔다 와서 음양이원론에 대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했고 태극 문양을 스스로 그려 넣은 집안 문장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을 정도다. 그러나 음양론이나 상보성 원리로는 그 양면성 구조의 원인을 구명해내지 못하니, 그  원인만 규명되면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논쟁도 종식되건만 오늘까지 미해결로 남은 숙제가 된 것이나 이제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본디로 돌아가, 3위1체 원리와 3운법칙의 "상호 검증"을 증명해야 하는데, 3운법칙으로 말하면 인간 생애를 주관 주장하는 법칙이므로 모든 인간의 생애를 일일이 분석해 보지 않는 한 법칙으로 인정될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닌다.


왜냐면 그 중 하나라도 이 3가지 분류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을 분석해보지 않는 다음에야 누가 이에 대해 가부간 장담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대두되는 것이 이상 소개한 바의 3가지 유형의 짜임새로서, 이 구조가 틀림 없어 이 외 다른 유형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판정이 되면 그제야 비로소 모든 인생들의 생애를 일일이 분석해볼 필요도 없이 하나의 엄연한 법칙으로 대접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 된다. 물론 대표적으로 분석되어 나타나는 역사 인물의 분석 사례(예외없이 들어맞는)가 그 방증(傍證) 역할을 하게 됨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과연 3운법칙의 구조가 위 그림에서 소개된 대로의 3위1체 원리 도식을 꼭 그대로 닮고 있느냐 그 여부에 모든 것은 달렸다. 다시 3위1체의 원리와 그 도식을 설명하면, 만물의 양면성이 원래의 단일성에서 파생된 것임을 말하고 이를 나타내는 것이 그 구조식 또는 도식이다. 왜 3각 구도로 나열되어 있느냐 하면, 애초 병으로서 홀로 존재하던 것이 자기의 닮은꼴을 파생시킴으로써 지금은 갑이 되어 있고 그 파생된 것이 을이며, 둘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항상 하나로서만 존재하므로 이를 갑이라고도 또는 을이라고도 할 수 없어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닌 별도의 제3의 존재처럼 병으로 위치함을 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갑과 을이 원래 하나였고 갑이 병이었으며 을이 갑에게서 파생했다는 그 근본을 밝힘에 있다. 둘이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자생(自生)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하나에서 둘로 갈라졌기 때문에 같은 본질이되 성질만이 달라 정반대라는 것이 3위1체 구조식(도식)에서 명시되어 있는 것이니 그래서 병은 ●, 갑과 을은 ◐, ◑으로 나타내게 된다. ◐, ◑은 ●에서 나왔다는 뜻이고 둘이 하나가 되니 또한 ●이라는 의미이다.


◐, ◑에서 검은 바탕이 서로 엇바꾸어져 있는 것은 둘의 성질이 정반대라는 뜻이다. 이런 엇바꿈을 3운법칙에서는 "도치(倒置)"라고 한다.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것은 운동의 방향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갑에서 을로 작용하나 병을 통해(즉 하나이기 때문에) 그와 반대로 을에서 갑으로 또한 작용함을 가리켜 양면성(상태)임과 함께 동시성(작용)임을 명시하고 있다. 상호 작용 즉 상호 보완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이 사실을 3운법칙의 구조는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


아래 그림과 같은데 3운법칙만의 구조가 아니라 만유(무릇 존재하는 것)의 구조도이니 이 틀에서 벗어남이 없다. 사람을  예로 들어도 남자만 있지 않고 또한 여자가 있어 둘이 짝을 이루어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라 하면 반드시 남자의 개념과  함께 여자의 개념도 동시에 떠올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또 남자든 여자든 인간의 신체 구조만을 보아도 좌우 양면으로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동물의 모든 육체도 마찬가지다.



3운법칙은 이 구조도 또는 도식을 앞서 소개한 대로 인간의 한평생을 ①3가지 종류로 나눔으로써 나타낸다. 이는 3위1체  원리의 3각(tripod) 구도를 그대로 반영함이다. ②A, B, C 3가지 유형은 3위1체 원리에서의 갑, 을, 병을 차례대로 나타내는데, 병에 해당되는 C는 JP가 없는데 반해 갑에 해당되는 A와 을에 해당되는 B유형에는 JP가 있으니 이는 3위1체 원리 구성도에서의 ◐, ◑, ●를 각각 나타내기 때문이다.


즉 앞에서 지적한 대로 JP는 C형의 축소형(판)으로서 3위1체  원리 구조도에서의 ◐, ◑, ●의 그림을 마치 베껴온 듯이 C형의 4/7, 3/7의 LP, DP 배열을 그대로 닮음으로써, 3위1체 원리에서의 C형의 ●를 A, B가 ◐, ◑로써 반분해 나누어 가진 형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③그러면 3위1체 원리의 A, B를 나타내는 ◐, ◑은 3운법칙에서 어떻게 상징되어 있는가 하는 것인데, 여기서 3위1체 원리에서나 3운법칙에서나 공통으로 중요한 핵심 포인트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④즉 19라는 숫자다. ●가 둘로 갈라지면서 검은 바탕을 ◐, ◑ 식으로 서로 위치를 엇바꾸어 가지게 되는 바로 이 형상을 마치 그림으로 그려내듯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갑은 반분된 검은 바탕을 좌편에, 을은 그와는 정반대로 우편에 가지게 되는 형국인데 이를 19라는 숫자가 어떻게 나타낸다는 것인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이 19라는 숫자는 B유형의 전체 생애에서 LP, DP의 배열을 각각 7/19로 정한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그렇게 정해졌는가 하면 여러 역사 인물의 생애 분석에서 그런 결론이 도출되었다.


이 인간 생애 분석이 맨처음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 내력을 소개할 필요가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대로의 모세의 120년 생애가 유청소년기 30년, 침체기 30년, 전성기(활동기) 30년 꼭 1/3씩 나누어지는 것을 보고(성경 신약 사도행전 7장 24절/구약 출애급기 7장 7절) 흥미를 갖게 된 것이 생애 분석의 동기였다. 인간의 생애가 모두가 다 그렇게 3등분되어 나타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역사적 인물들의 생애 분석을 진행해보니 어떤 인물은 들어맞고 어떤 인물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그러면 성경의 다른 인물들은 어떻게 나오는가 해서 살펴보니 생애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모세 외에도 노아, 아브라함, 다윗 등인데 노아가 600세 때 세상에 노아홍수가 났고 그 후 350년을 더 살다가 950세에 죽었으니 모든 인류가 홍수로 전멸하고 노아 가족 8명만이 새로운 인류의 시조처럼 되었으므로 그 나머지 생애가 모세와 같은 전성기에 해당된다 보았고, 모세가 LP, DP 모두 같았으니 노아도 같을 것이라 가정해서 그렇다면 모세에게 JP가 있었으니 노아에게도 있을 것이라 하여 그 기간을 250년(950-350x2)으로 잡은 것이다.



그러면 노아의 생애는 모세처럼 균일하지 않고 LP, DP, JP가 7/19, 7/19, 5/19로 나가는 셈이 된다. 여하튼 그렇게 가정하고 모세 유형으로는 들어맞지 않는 다른 역사적 인물들을 노아 유형으로 산출해보니 용하게 들어맞는 인물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런데 또 상당수 인물들이 노아 유형에도 맞지 않고 모세 유형에도 맞지 않음이 드러났다. 그래서 다시 성경의 인물 약사(略史, 요즈음 식으로 하면 年譜)로 돌아가 아브라함 유형에다 맞추어 보기로 했다.



아브라함은 그 생애의 유명한 특징을 이루는 '믿음 생활'에 들어간 때의 나이가 75세다. 왜냐면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믿고 정처없이 자기 고향 메소포타미아 하란을 떠나는 일대 전향적 삶을 그 후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75세에 죽었으니 100년간 그런 믿음의 생활을 한 것으로서, 남들처럼 성곽(城郭)을 쌓아 그것을 본거지로 하여 국가 세력을 형성하려 하지도 않았고 그냥 천막 생활로만 평생을 보냈던 것이다. 


이 아브라함형에는 모세형이나 노아형에서 보는 바와 같은 JP가 없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같은 생애 유형이 있다고 가정하고 나머지 역사적 인물들의 생애들을 분석해보니 과연! 모두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필자가 생애 분석한 인물들 중에 이상 3가지 유형에 들어맞지 않는 생애가 없었다. 다시 말해 이 세 가지뿐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예외였으니 이유는 "마지막 아담"(고전 15:45)이시므로 비록 십자가에서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죽으시기까지 하셨으나(갈라디아서 2장 20절) 다시 부활하셨듯이, 죽으실 수 없는 유일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아담"이시고 게다가 "마지막"이시므로 첫 사람 아담은 범죄로 죽어서 그렇지 그런 범죄만 아니었다면 영원토록 초자연계 몸으로 살아 이 인간 세상만 아니라 만물을 다스리게 되어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디부터 죽는 자리가 아니고 죽어서도 인되는 위치다. 인류가 이 자연계 존재가 되어 있어 내일도 보장받지 못하는 하염없이 처량한 기구한 죽음의 신세가 된 것은 아담의 범죄 때문에 되어진 비극으로(로마서 5장 12절) 아담 따라 모두가 아담처럼 죽음으로 몰락하게 된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3운법칙은 죽는 인생들의 생애를 관장하는 법칙인 것이다. 영원히 존재하셔야 하는 아담(마지막)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성경이 "마지막 아담"이라 규정한 것은 아담은 하나뿐이어야  하나 양면성의 원리에서 오직 도치성에 의한 첫 아담과 반대되는 성질이 아담으로 오직 한 분일 수밖에 없음을 보임이다.  그래서 단행본을 스스로 꾸려(새 헌장도서 보급중앙회라는 이름으로 출판사 등록, 지금은 폐업) 권삼열(權森悅)이라는 필명으로 수백권 책자를 만들어(1993년 출간, 책명은 "호모리듬 해설(解說)") 각 서점에다 풀지는 않고 각 도서관에 기증 배부했다. 그러나 허황하다 판단해서 그런지 포항공대에서는 반송해오기까지 했고 일부 서너 대학 도서관에서만 감사장을 보내왔다. 지금도 인터넷에 그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사람의 한평생이 명암을 교차하면서 리듬처럼 흘러간다 해서 처음에는 "호모리듬(Homorhtythm)"이라 했다가 폐기하고 "파스 호모(fas homo, fashomo)"라 고쳤으나, 지금은 주로 "트리니 호모(trinihomo)"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데 영어 trinity(삼위일체)가 라틴어 trini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fas 역시 법, 법칙과 관련된 라틴어다.  


세계 인물들을 흥미가 가는 대로 임의 추출하여 99명으로만 한정하여 만들었는데 이 99명으로 정한 것은 나머지 100을 채우는 1명은 독자가 어느 인물이든 택하여 스스로 생애 분석을 해서 얼마든지 넉넉히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당시에도 물론, 모든 인류는 틀림없이 이 3가지 종류로만 분류되어 그 생애의 명암이 드러난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내 인물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오는 정도의 연보(年譜)를 가진 역사 인물이면 충분했었다. 그래서 국내 인물도 대표적으로 몇 사람 소개했고, 또 분석이 가능한 인물만 일부러 뽑아 분석했으리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35명의 미국 역대 대통령의 생애 분석도 추가했다.


세상에 발표하고 싶은 성급한 마음에 그렇게 했는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항상 마음에 맴도는 것이 B형의 생애 분석에서 왜 19라는 숫자가 엉뚱하게 개입되어 있는지 바로 그 궁금증이었다. 물론 그 책자에서는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았고, 그래서 "성급하다"고 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기 때문인데 내용의 정작 핵심을 빠뜨린 셈이다. 그러나 얼마 못가 마침내 수수께끼는 풀렸다. 그러나 이런 기이한 사실을 발견하고서도 여기 마음을 두지 않은 것은(그래서 오늘날까지 22년 세월을 두고 침묵해온 것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올바른 성경 해석이라고 여겨 여기 매달렸기 때문이다.


성경에 전혀 상이한 내용을 교리로 삼아 가르치는 오늘날 거의 전부의 "기독교" 실상임을 통탄하여 여기에 골몰하다보니  장구한 시간이 흘러갔고 오늘날에서야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리게 된 것이다. 예의 "19"의 수수께끼를 푼 다음에도 발표를 미루어 왔던 이유다. 그 수수께끼란 알고 보면 너무나 간단한 것인데도 책자를 낼 당시에는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이 간단한가? A형의 특징인 3과 B형의 특징인 19를 곱하면 답이 나온다.


그러면 57인데 A형과 B형을 각각 3등분, 19등분하지 말고 57등분을 하는 것이다. 이 등분하는 것은, 사람 생애가 대나무의 마디처럼 되어 있다고 보고 "마디(節)"라고 특별히 일컫는 바, 그렇게 되면 A유형은 57마디에 LP, DP, JP가 각기 19마디씩 3묶음(束)이 되고, B형은 57마디에 LP, DP, JP가 3마디씩 19묶음이 되어 나오게 된다. 그러면 A형과 B형은 19와 3을 서로 엇바꾸어 가지는 마치 그림을 그린 것과 같은 형상이 드러나게 된다. 즉 3위1체 원리의 ◐, ◑의 형상 그대로다. 


이것이, 난데없이 참으로 뚱딴지같이 19라는 숫자가 나오게 되는 이유이다. 왜 19라는 숫자가 문제가 되었느냐 하면 앞서의 설명대로 A유형이나 C유형이나 모두 우리 인간에게 익숙한 숫자로만 모두 표현되기 때문이다. 즉 1,3,4,7 등이다. B형의 5(JP의 5/19에서 나오는), 7(LP, DP의 7/19)까지도 그렇다. 전혀 낯설지 않은 숫자다. 그런데도 유별나게 유독 19가 B형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19라는 숫자를 눈에 띄기 쉽도록 나머지 숫자는 일부러 그런 익숙한 것으로만 채웠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실상 3위1체의 도식을 나타내는 ◐, ◑, ●의 기호도 이 3운법칙의 구조를 알게 되면서 생각해낸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3운법칙의 짜임새(구조)에서 3위1체 원리의 힌트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성경이 처음부터 이상 모든 사실을 밝혀왔고(각 인물의 연대와 더불어 고전 15:44의 "신령한 몸"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마 28:19)이라 하신 대목 등) 직접 그 근원이 되어 있지만,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3운법칙의 이 "19"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음은 ⑤JP의 LP, DP가 C형의 LP, DP와 똑같은 4/7, 3/7으로 과연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인데, A, B유형의 각 인물의 유청소년 기간(JP)을 산출해본 결과 얻은 결론이다. 이 JP가 꼭 그대로임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의 생애를 점검해보지 않고서는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할지 모르나, 그런 우려 또는 문제는 이미 "19"라는 숫자로써 말끔히 해소되었다 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인물 중 A, B형에 속하는 대상자를 선정 그 JP를 산출해보면 되는 일이다.


그래서 모택동, 허버트 후버 미 대통령의 JP분석도 책에 소개했었다. 이들의 경우도 분석해본 결과 맞는 것만 고른 것이 아니고 그냥 무작위로 뽑아 분석해본(JP에 대한) 결과물일 뿐이다. 필자로서는 위의 두어 인물 외에는 그 이상 분석해보지는 않았지만 독자 중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단 한 가지 유의할 것은, 3가지 유형 모두 신문 지상 또는 엔사이클로피디아류의 백과사전, 인물 사전에 나오는 정도의 연보(年譜)로도 거의 모든 인물이 다 분석 가능한데도 더러 몇몇은 상세한 전기류 등을 참조하지 않고는 정확한 계산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밝혀둔다.


생년월일은 물론 그 행적이 정확하게 나오는 경우 몇 달은 물론 며칠 상관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김일성, 영국 스콧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그런 예이다. "생년월일"이라니까 마치 사주 점괘의 하나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런 길흉을 따지는 것과는 전연 차원이 다른 것이 이 인간 생애의 법칙이다. 다시 말해 그 인물을 평하고 논하는 아주 진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에 판사를 지내다가 죄 없는 애국 지사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고는 고뇌 끝에 판사직을 팽개치고 불교 승려가 된 효봉선사(曉峰禪師)는 C형 곧 FS형으로서 승려가 될 때부터 그 LP가 시작되지 않고 그 2년 전인 판사직을 헌신짝 같이 버린 해로부터 산출된다.


그렇게 LP, DP 산출이 되어 나오니까 우리로서는 할 말이 없는 터이다. 그와 비슷한 예가 Jenny Lind라고 하는 스웨덴 태생의 유명한 19세기 오페라 여가수다. 19세에 무대에 처음 데뷔하여 10년간 명성과 부를 쌓았고 자선사업도 많이 하여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돌연 그 화려한 무대를 미련없이 떠났다. 이유인즉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성경 볼 시간이 없고 너무나 틀에 박힌 바쁜 일정에 인생을 조용히 관조해볼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원치 않은 것을 버렸고 원하는 것을 취했으니 바로 그 때부터가 그의 전성기이고 오페라 가수로 등단할 때부터가 아닌 것이니 이는 효봉선사와 같은 생애 유형이다. 남들은 다 부러워해 마지 않는 직업이지만 훌훌 털어버렸다는 점에서 공통이기 때문. 67세에 죽은 Lind 역시 FS형이다. 이 Jenny Lind의 생애 분석은 일반적인 연보(年譜)에서는 나오지 않고, 그 희귀한 결심의 무대 퇴장에 대한 동기를 어느 잡지 한 귀퉁이에서 읽지 않았더라면 필자 역시 상당히 장기간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여차하면 이 3운법칙마저 회의를 느끼고 낙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면 화려한 무대를 장식하기 시작한 19세부터 당연히 그 LP를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 되면 백날 가도 그 생애 분석은 불가능해진다. 그렇다고 그 생애에 대한 자세한 전기를 구해 읽는 것이 당시의 필자로서는 쉬운 일도 아니다.  그러니 3운법칙 자체에 대해 불신을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을 것인데 그 잡지가 필자를 구해준 셈이다. 고로 분석시 의문이 갈 때에는 반드시 보다 상세한 전기류를 참고하실 일이다.


뿐 아니라 이 3위1체 원리가 이제 비로소 세상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⑴성경을 비롯하여 ⑵동양 일원 주로 중국의 음양론 및 ⑶현대에 와서는 보어의 상보성 원리를 통해 확인되어 왔던 것(비록 완벽한 의미는 아니어서 3위1체 원리로써만 정확하게 증명되었지만)으로서 단지 그것이 검증 단계를 거치지 못했을 뿐으로, 이제 3운법칙에 의해 그 희한한 구조로써 입증된 이상,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것이 3위1체 원리다. 


그러므로 A, B유형 인간의 JP를 모두 분석 검증해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19의 숫자가 그 핵심인 3운법칙으로써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으니 곧 DPA pix이다. 우리가 이 3위1체 원리를 주장하고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자연법칙처럼 하나의 원리로 인정, 앞으로의 자연과학 연구에 큰 기둥으로 삼고자 함이 아닌 것이다. 왜냐면 세상은 더 이상 이런 불완전한(불완전하다는 것은 초자연계를 그동안 몰랐으므로 동전의 양면에서 일면만을 인지해온 격이어서) 자연계로만 지속될 일이 아니고 당연히 초자연계의 세상으로 진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자연계에만 머물 일이 아니라 초자연계 인식 전환으로써 모든 부문에 걸쳐 옷을 새로 입혀야 할 과제가 중요하고 큰 것이니, 이를 결정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정보 제공자가 다름아닌 사진 촬영물로서의 DPApix다. 거듭 강조하지만, 3운법칙으로 검증되는 3위1체의 원리를 세상에 알림도 초자연계의 삶에 대비하라는 것이요 초자연계가 엄존함은 처음부터 이를 밝혀 온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함이니 이는 곧 우주 만물에 충만히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성으로 직결된다.


애당초의 초자연계 삶으로 인간이 복구될 수 있는 유일무이의 방법으로 재차 다시금 출생하고 새로이 새 사람으로 창조되는 것을 말씀하셨은즉 이는 그 중심에 위치하여 핵심이 되시는 마지막 아담을 가리킴이다. 이 초자연계의 존재를 실물 사진으로써 입증하였으므로 초자연계가 검증된 것이다. 이 초자연계에 속한 존재를 (부분적이기는 하나) 2013년 초겨울부터 동영상 및 사진으로 촬영해온 것이다. 의도적으로 찍은 것이 아니고(보이지를 않는 것을 피사체로 삼을 수 없는 것) "찍혀졌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3운법칙과 3위1체 원리가 "상호 검증한다"고 했지만, 이 DPA pix 역시 <3운법칙 및 3위1체 원리>와 그런 관계를 가진다. 즉 DPA pix로써 찍혀진 촬영물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3운법칙 및 3위1체 원리가 증명해주고 3운법칙 및 3위1체 원리로 입증된 초자연계를 그 실물 증거로서 나타내주는 것이 DPApix(또는 DPA pex)다. DPA는 Devils' Practical Appearances(악령이 실제 나타난 모습)의 약자이고, pix는 pictures(그림)의 뜻을 담고 있다.


악령의 형태가 그것도 여러 차례 실제 사진으로 촬영되기로는 유사 이래 처음이다(2011년 NASA에 의해 우연해 촬영된 용(龍)의 형체를 제외하고는). Youtube에 올려진 것을 보면 가끔 귀신을 촬영한 것이라 하여 올려진 영상물을 대하게 되는데 그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악령이 실제 (그 형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사진으로 찍힌 예는 지금까지 PApix 외에는 없다. 여기서는 DPApix를 소개하자는 것이 아니고, 3위1체 원리가 확증하고 있는 초자연계에 대한 실증으로서 잠시 언급하는 것뿐이기에 관련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DPApix라는 이름으로 동영상 및 사진과 함께 별도로 세상에 발표할 예정이다.



과학성은 논리성이다. 논리만 정연하면 자연계든 초자연계든  통하지 않는 데가 없다. 위에서 보어가 말한 대로 우리 인류가 20세기에 들어 제법 많은 것을 안다고 해도 초자연계에 비하면 어린애 같은 지식일 뿐이다. 이런 극히 한정된 지식을  가지고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이 기고만장해 온 인류가 부끄럽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달에 사람이 첫 발을 디디게 되자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했다고 야단법석을 떤 적이 있다. 이런 것을 보아서도 인간은 전반적으로 아직 철부지 단계에 있다.


이 모든 것은 초자연계를 모르고 지내온 무식이 낳은 비극적 참화이다. DPA pix가 그 일단을 드러냈지만 악령들의 수장(首長)인 사탄("사탄"은 인간을 대적하는 자라는 의미의 별명이고 본명은 아니다)이 이 세상 신으로서 모든 인간의 의식 작용을 통제, 속박하고 자기 의도대로 독재하고 있는 현실이 빚어낸 결말이다. 그래서 비극이라 하고 처참한다 한 것이다.  처음부터 인간이 아둔하게 창조되지도 않았고 무식무지에 춤추고 장단 맞추도록 되어 있지도 않았으니 사탄이 철권 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인즉 이 사실에부터 "눈뜨는"(사도행전 26장 18절) 것이 급선무다.


20세기 지식과 급속한 통신 교통 분야에서의 발달은 이미 다니엘이 말세의 전주곡이라면서 예언한 바 있다(다니엘서 12장 2절). 이런 교통 통신 분야의 급속한 발달("사람이 신속히 왕래하게 될 것이다"ㅡ다니엘)과 이에 관련된 지식의 급증("지식이 더할 것이다"-다니엘)은 모두 이제 곧 등장하게 될 사이비 창조신(기독교 신학자들이 말하는 "적 그리스도")의 등장을 위해서만(신속한 세계 장악을 위한) 처음부터 준비된 것이다. 인류의 삶을 향상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은 초자연계 몸만 되면 이런 구질구질한 도구나 기계를 이용할 필요도 전혀 없이 직감적으로 컴퓨터 수백 대의 기능과 응용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런 소위 문명의 이기들은 한낱 어린애 장난감보다 못한 거추장스러운 것밖에 되지 못한다. 적대자(敵對者) 사탄은 늑대 소년의 수법을 써 그동안 많은 인간을 통해 "말세(末世)"를 외쳐대도록 조종해왔다. 그 말한 모든 것이 모조리 허위 망상으로 판명되자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늑대 소년에게 속지 않는다 하여 이제는 그 어떤 "늑대야!"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함이 처음부터의 사탄의 의도였다.


이 세상 신(神)이요 왕(王ㅡ요한복음 14장 30절)으로서 세상  인간을 주물럭거리는 판이니 못할 일도 없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 의지만은 절대적이어서 하나님도 간섭 못하시는 터라 이 부분만은 불가침이다. 그런즉 각자의 영원한(초자연계에 속한) 운명은 각자가 결정하는 것이지 그 어느 누구도 조종하거나 제약하거나 개입하지 못한다. 이 자연계 생명(인간 생애)만은 정작 인간 고유의 삶의 모습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제약 아래 둔 것이니 그 증거가 3운법칙이다.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께서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 지배자를 세우시나(단 5:21) 그 권력이 첫 사람 아담에게 원래 위임되었던 것인데 아담이 엉뚱하게도 자기 아래에 있던 영물(靈物)을 추종하여 범죄한 결과로 그 영물에게 권력이 넘겨진 것이다(눅 4:7). 이 악령(惡靈)은 천사들 중의 하나였으나 처음부터 범죄하였으므로 "악하다"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데 용(龍, 창 3:1/계 12:9/20:2)이 그 정체다. 나름대로 꿍꿍이 속이 있어 인간에게는 시종 부정적인 의미의 악한 목적으로 활동하는 자이나 일반 영물(천사)들처럼 "하나님의 부리시는 영"(히 1:14)이라는 범주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사탄은 인간과 같은 일개 피조물이다. 인간이 범죄로 자연계에 예속되면서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양자간의 우열(優劣)이니 곧 "신(神)"과 "육체"와의 하늘과 땅의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사탄의 세력"(사도행전 26장 18절)으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새로이 창조되고 재차 출생하여 초자연계 몸으로 복구되는 길만이 유일한 것이니 그래서 3운법칙으로 검증되는 3위1체 원리를 오늘날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오늘날에서야 인간에게 알려지는 것은 때가 때인 만큼 시의적절한 것이다.


"세계 종말"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대(this generationㅡ마 11:16)"가 종료됨이다. 다음 세대로 연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세대의 특징은 전술한 바와 같이 사탄의 집권 시대다. 그래서 그 요술과 조화(자연계에 국한하는 우리 인간의 표준으로 말하면 초자연계의 초능력으로 인한)로 초자연계의 존재부터도 모르도록 지금까지 차단시켜 온 사탄이다. 다음의 "오는 세대"는 첫 사람 아담의 위치를 회복시키신 마지막 아담의 정상 회복 시대다.


이제껏 몰라 왔던 초자연계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전개되면서 그 충격은 크다. 그래서 억지로 초자연계를 부정하려 들어도 단지 현실 도피요 자살 행위로 그칠 따름이다. 중세기를 암흑기라고 유럽인들은 공인(共認)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암흑기는(행 26:18) 아담이 이 세상 자연계 몸으로 전락하여 비로소 한 살 두 살 나이를 세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다. 아담이 에덴낙원에 있을 때는 나이가 없었다. 항상 이팔청춘이니까 나이를 센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었다. 하나님을 호호백발 노인으로 그려놓은 것을 인정하는 소위 "기독교 신학"이니 성경에 관한 한 그리고 초자연계에 관한 한 무지의 극치다.


초자연계로서의 에덴 동산은 자연계로 치면 지구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에덴 동산이 창설되기 전 이미 에덴이라는 데가 있었고 그 동쪽에 인간을 위해 동산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고로 초자연계는 에덴이 창조되면서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성경에서 밝히는 "6일" 창조 이전에도 자연계는 존재했으니 그 증거가 "6일" 창조 시작 전에 벌써 물이 있었고 그 물 속에 땅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과 "땅"은 자연계에 속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대목은 "6일" 창조를 가리킴이 아니라 총론적인 서술로서 설명이 생략된 "6일" 창조 이전의 세계와 "6일' 창조를 통틀어 지칭한 것이다.


그 때 세상이 물의 넘침으로 멸망한(벧후 3:6) 원인을 가리켜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3:5)이라 했고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살라지도록 예정되었다 했으니(3:7) 물과 불이라는 대칭면으로 비교해볼 때 물 또는 불로 세상이 아주 망해버리는 것을 의미함이 분명하므로(벧후 3:10,12) 노아의 홍수를 지칭함이 아니다. 노아 당시 세상은 그런 식으로 망해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먼저는 물로, 다음은 불로 망함으로써 옛 하늘과 땅은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전개된다(3:13) 했으니 이 의미는 한층 명백해진다. 


"주의 날"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표현하기도 하고(살전 5:2/살후 2:2) 심판의 날 역시 "주의 날" 혹은 "하나님의 날"이라고도 한다(벧후 3:10). 어쨌든 이로써 우리 인류는 초자연계 인식 후(後)시대와 전(前)시대로 갈라지는 획기적 의미의 분기점이 되는 때에 위치해 있음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사고방식과 인식, 의식 자체를 송두리째 바꾸어야 할 시대에 처해진 것이다. 천지개벽이 아니라 "의식" 개벽이다.


자연계의 수천 년 세월도 초자연계의 시공간을 기준하면 불과 며칠 상간(相間)이다. 전시대가 설령 몇 만년이었다 해서 거기에 권위가 실리는 것도 아니고 후시대가 이제 갓 시작했다 해서 그 의미와 가치를 축소시킬 아무 근거도 없다. 만물이 양면성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예로부터 중국 일원에서 널리 알려졌던 것이고 현대 물리학에서도 보어의 상보성 원리에 의해 재확인되었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인간은 원래 초자연계 존재로서 현재의 이 자연계 몸에 속박되어 있는 현실에 눈뜨고 초자연계 몸으로 한시가 급하게 복귀하는 것만이 급선무이지 이 자연계에 예속된 지식 가지고 밤낮없이 노닥거려본들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보어가 상보성 원리는 주장했지만 그래서 인생 전반에 미치는 원리임은 간파했지만 짝을 이루는 그 양면이 하나에서 났음과 이는 만유의 창조자 자신께서 그와 같은 모습으로 계시기 때문임은 간과하여 여전히 무신론자로 남아 성경의 하나님을 몰라 정작 자기 생명은 잃었으니 그 지식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 하신 말씀을 굳이 들지 않고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명약관화다. 빛의 성질이 입자와 동시에 파동이라는 사실이든, 양자의  동시성("얽힘")에서 쌍을 이룬 두 소립자가 광속보다 더 빠르게 "정보 전달"이 가능하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것은 본질적인 현안에 대해 지극히 지엽적인 것이다. 다만 그런 지엽적인 사실을 통해 본질적인 것에 접근하는 한 방도라면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이냐. 인간이 초자연계에 속한 영원성의 존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멸이다. 단지 "그 상태가 생명이냐 비생명("죽음" 또는 "멸망"으로 표현되는)이냐"일 뿐이다. 생명의 핵심은 사랑이요 사랑은 "하나됨'이 그 본질이요 따라서 완전한 자유 자주(自主)가 문제의 중심이 되는 것으로서 때문에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보장되어 있는 것인데, 그 결과로서의 "생명이냐 비(非)생명이냐"를 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양자 동시성("얽힘")에서 보여지듯 이 우주는 국소성(局所性)을 배격하는 '하나'의 관념만을 허용한다. 자연계 우주가 아무리 광활하다 해도 그 대칭(상칭, 대립) 면에서의 초자연계가 존재하듯 순식간에 하나로 통해지고 기능하는 체제다. 사람 삶이 이 원리의 적용을 받음은 당연하니 요약해서 말하면 '머리와 몸'으로 구성되는 양립성의 '한 몸'이라는 단일성이다. 다시 말해 나 하나의 존재만으로 따지면 우주의 먼지만도 못하나 이 단일성으로 말할진대 거짓말을 일 점도 보태지 않고 정직하게 말해 나는 이 우주만큼 거대하다.


왜냐면 이 우주 만유가 바로 '나'가 되는 것이 '우리' 의식, 공동체 의식이니 곧 단일성의 의미이다. 그러나 방금 지적했듯이 "생명이냐 비생명이냐"로써 모든 의미가 다시 180도로 달라진다. 즉 "우리" 의식에서 살지 못할 때 그런 "먼지만도 못한" 존재로서 비참해지고, 나를 위하지 않을 때 즉 나 자신과 나의 모든 소유를 던져버릴 때 모든 것(萬有)이 나의 소유가 되고 내가 주인이 되어 누림이다. 살고자 하면 오히려 죽고 죽고자 하면 도리어 산다는 손자 병법의 한 대목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 알의 밀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여러 갑절로서의 자신의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나 스스로를 보전한다 하여 한 알의 낟알로 남기를 선택하면 그것으로 끝이라 하심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실 때 하신 말씀이니 곧 그 죽으심의 의미 즉 이상에 밝힌 영원한 '생명의 법칙'을 밝히심이다. 자기를 방기(放棄)함으로써(성경에, 이를 "자기를 부인함"이라 하셨다) 그래서 전체(우리)를 위함으로써 공동의 행복을 꾀하여 함께 더불어 살고자 하는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하는 대신, 스스로를 위함으로써 살고자 하여 지금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거꾸로 반대 방향으로 살고 있는데(이것이 죄, 악, 불법, 불의다) 대한 엄중한 경종이 성경이다.


반면 이러한 '머리와 몸의 한 몸' 체제에서의 이상향적 삶을 기약하고 보장하는 것을 처음부터 강조해오는 가르침이 성경이니 3운법칙으로 검증된 3위1체의 원리를 따름이다. 대소, 주종, 선후, 인과 관계를 따라 먼저 머리 자신이 몸(의 각 지체-롬 12:4,5/고전 6:15/12:12-27)을 위하는 솔선수범이 있어야 이를 배우고 몸도 머리를 따르는데 그 가장 확실한 증거가 몸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머리의 모습인 바 곧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이다.


스스로 죽으셨다면 어떻게 다시 살아나실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역시 이 3위1체 원리이다. 즉 하나님 친히 아버지(실체)와 아들(형상)로 "둘이 하나되어" 계시므로 아들께서 "죽으시고" 아버지께서 "살리시는" 방법을 취하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께서 "하나"로 계시므로 아들이 당하신 죽으심의 고난이 또한 아버지의 것이 되어 아들과 함께 당하심이었으니 아버지 또한 아들을 통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이다.


빛이 파동성과 입자성으로 양립되어 있고 다시 말해 입자성이라는 갑(a)과 파동성이라는 을(b)이 빛이라는 제3의 형식(병, c)을 취해 각자 자기를 통합적으로 나타내어 이를 증명하는 것이 양자 동일성("양자 얽힘")으로서, 짝을 이루는 두 전자가 아무리 원격(遠隔)해 있어도 하나의 상태가 측정되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그리고 동시에 그 반대되는 상태를 나타내는 도치(inversion)의 양립성이니 모두 위의 인간 삶의 진실처럼 3위1체의 원리를 따름이다.


그러므로 3위1체 원리는 만유(무른 존재하는 모든 것)의 법칙이니, 창조의 원리이고 만유 유지 보전의 법칙이고 또한 인생 구원의 원리가 되어 있음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아인슈타인은 틀렸고 보어는 몰랐다고 할 수밖에 없다. 모르기는 둘 다 똑같으니 누가 틀렸고 맞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원히 사느냐 멸망하느냐가 문제다. 우리가 현재 하나님의 진노(震怒, wrath) 아래 있다는(마 3:7)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정확하게 현실을 사실대로 파악하고 거기 대처하는 선택만이 부여되어 있을 따름이다. 타인의 그 어떤 소위 전문  지식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고 독자 스스로 넉넉히 판단하실 수 있는 일인 만큼 스스로 결정하실 일이다. 초자연계 현실에  눈뜨는 그야말로 인간 개벽이 요구되는 때다. "아인슈타인이 틀렸다"의 머리말을 대신하여 이 글을 맨앞에 먼저 올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