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교회

모든 교회 분쟁에서 바울 사도가 세운 기준ㅡ"안식일"

Tayseek Kwon 2019. 3. 31. 17:26





 모든 교회 분쟁에서 바울 사도가 세운 기준ㅡ"안식일"









처음 모세 율법을 통해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6일간의 창조를 끝내시고 제7일에 쉬셨으니 토요일로 정하신 이유를 밝히셨다. 다시 여기에 유월절의 의미가 더해진다. 이집트 사람의 장자는 몰살당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들은 모두 살아났으니 즉 장자라는 의미에서는 함께 죽어야 함에도 이스라엘 사람이라 하여 즉 그 날 밤 죽인 희생양의 피로 살아 남았으니 그 살아 남은 장자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 고로 특정일을 정해서 하나님의 소유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 이것이 안식일을 통해 이스라엘에 베푸신 초기 교육이니 즉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이 그림자적인 유치원식 교육은 끝나게 마련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시는 의미는 더 있다. 하나님께서 6일 창조를 마치셨으나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 창조를 새로 시작하시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바로 이 사실이다. 


고로 이스라엘 모든 장자를 소유로 삼으신 것처럼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로 속죄된 사람마다 하나님의 소유이다. 따라서 그의 모든 날들, 모든 수입, 그에게 속한 모든 것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다. 따라서 그 자신을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해 살게 되어 있다(고후 5:14,15). 바로 이 사실을 모세 율법의 그림자적 상징성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줄곧 6일 일하시고 7일 쉬신 것으로만 고집하여 그 잣대에 맞지 않는다고 그리스도를 배척했던 것.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신 것. 지금도 마찬가지. 지금도 창조 작업 중에 계신다. 그리고 유대인이 고집했던 것처럼 지금도 까닭 없이 고집하여 파멸을 차조한다. 


그러므로 일하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의 새 창조 작업에 함께 동참하여 일하는 것이 유일의 목적이지 하나님께서 쉬신 날이니 우리도 쉬어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 유대인과 하나도 나을 바가 없다. 심지어 요즘 안식일보다 유월절이 원래 의미이니 안식일이 아닌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는 망나니들의 이단도 생겨났다. 요즘 "레밍(lemming) 현상"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할 생각은 않고 무조건 군중심리로 움직여 남도 하니 나도 한다는 식으로 나가 집단 자살행위의 들쥐와 같다는 뜻인데 바로 그런 유형의 인생들이다. 성경적으로 과연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보려 하지 않고(사도행전의 베뢰아 사람들처럼) 그냥 우우하고 따라가고 몰려드는 것이다. 마땅히 지양되어야 할 일이다. 영원 멸망을 초래할 일을 왜 자청하는가. 성경이 없어 못읽는 것이 아니지않은가. 


안식일로서 특정일 지키는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이니 때문에 지킨다고 말한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으로 알고서 그것을 소홀히 할 때는 성경에 나타난 모든 계명에도 똑같은 자세로 나가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십계명 중의 하나다. 지금도 십계명이라고 달랑 올려놓고 무엇 위하듯이 위하는 이들이 거의 전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바라는 대로 모세 율법 아래에서 사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이런 류의 계명까지도 "율법 행위"라 하여 무시하는 경향까지 있다. 이도저도 아닌 것이다. 


이 세상 신(神) 이하 모든 악령들의 속박과 조종에서 인간은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다. 철저히 억압되어 있다. 성경에 보이신 대로의 하나님 인도를 받기 위해 이를 앙망하지 않는 한 필연적이다. 찾고 구하고 두드리라 하셨으면 찾고 구하고 두드릴 일이다. 말씀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재앙을 자초하는 것이다. 은혜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율법시대에 사는 이가 거의 전부다. 그러면서도 "율법 행위"로는 구원받지 못하니 하면서 "율법 행위"란 말은 곧잘 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도 모른다. 사탄은 이와 같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다시 언제나 강조하지만 돌이켜 어린 아이같이 사랑할 줄 아는 이들은 구원 받음에 하등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와 같이 성경의 모든 내용이 재조명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완연히 다르니 크게 경성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