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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신에게 맥을 못추는 인생들

Tayseek Kwon 2019. 3. 30. 13:36




이 세상신에게 맥을 못추는 인생들







창조주께서 인간(아담)을 모든 피조물("6일 창조")의 통치자로 세우셨는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창 )으로 만드신 이유. 다른 어떤 피조물도 이러한 창조주의 형상으로는 창조되지 않은 것. 그리고 그 휘하 보좌역(왕에 대한 신하 격)으로 지식이 출중한 영물(靈物, 지금 우리가 "천사"라고 부르는)을 세우신 것인데 짝의 원리에서 자연계의 동물들을 대표하고 그 대칭/對稱 존재들. 예컨대 자연계의 "뱀"은 초자연계에서의 용/龍(창 2:19). 이 창세기 기록에서 "용"이라 하지 않고 "뱀"이라 한 것은 아담이 성경이 기록되고 있던 당시에는 이미 자연계 육체가 되어 있어 아담을 기준으로 하여 서술해 가기 때문입니다. 

이 아담에게 하극상을 하여 반역을 한 것이 이 용입니다(계 12:9).

아담이 창조주의 말씀보다 용의 말을 더 믿어 선악과를 먹었으니 당연히 통치 서열은 뒤바꾸어졌고 또 선악과를 먹은 결과가 자연계 몸으로의 전락 곧 초자연계 육체의 상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의미하신 "죽음"인 것입니다. 

고로 상대적으로 영물들은 인간들에게 신/神의 존재로 격상되어버린 것입니다. 

자연계 육체로서의 죽음과 더불어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인간고/人間苦의 비극입니다. 

신/神들이니까 그 각종 초능력 앞에서 인생들은 문자 그대로 맥을 못춥니다. 

아담 이래 완전 장악되어 왔고 지금은 그나마 하나님의 뜻으로 유보되었던 것도(살후 2:6) 이제는 그 막았던 것이 치워져 봇물이 터져 나오듯 거침없이 밀려드는 판국입니다.  

아담을 속였듯이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이 그들의 특장으로서 오늘날 "UFO"니 "외계인"이니 하는 일체의 것이 모두 그런 속임수의 일환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고 이는 적 그리스도의 등장을 위한 전주곡, 정지 작업, 들러리 역할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인간고는 ①자연계 육체로서의 죽음, 

②악령들로부터의 압박, 이 둘로 나누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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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그러한 악령들의 분신으로서 "귀신"의 실체입니다.

악령들은 수가 한정되어 있지만(창세기의 "각종 짐승들"의 일부인즉)

이 귀신들은 네피림의 망령/亡靈들이므로 말 그대로 부지기수로

우리들 주변에 꼭 차 있어 각종 방법으로 인생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아담)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이기 때문에

대칭/對稱아담께서 다시 세상 오시는 날까지는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아래 주소에서 각종 자료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ULUt7ByEH0YLIvtiJjhSfA

유튜브











 언제든지 파양될 수 있는 양자의 위치(빌 2:12)



모로 가든 바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고

약해서든 강해서든 이기면 되는 것이고

단 사람들 구원해내는 일은 오직 "약함"으로밖에는

달리 길이 없기에

그래서 자기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해내셨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한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하신 것.

십자가 진 사형수가 자기 모든 소유 그대로 간직하고 형장으로 갈 수 있는가.

자기 목숨 미워하지 않고서야 자기 발걸음으로 사형장으로 갈 수 있는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십자가 지라 하신 것이 아니니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양자/養子)이 되었은즉

양부(養父)의 뜻을 행해야 양자 자격이 있는 것(롬 8:15,23).

양자가 양부의 소원대로 하지 않는데

어찌 그대로 양자로 남을 수 있는가.

파양되는 수밖에.

하나님의 양자됨과 사람의 양자됨이 다르다면

굳이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라 표현하지 않았을 터.

그냥 "아들"이라 해도 충분하니까.







하나님의 어버이 사랑




나를 사랑하시어 나 위해 그것도 하나님으로서 사람되신 몸으로

장장 6시간에 걸쳐 완전 나체로 벌거벗겨진 채

(아랫도리를 가린 그림은 일종의 거짓에 속합니다.

그런 그림 내다걸려면 일절 모든 조각 그림 걷어치우는 것이 옳습니다)

죽음을 당하신 내 주님께서 나와 같은 다른 멸망할 죄인들 구원하시려고

아직 그 남은 고난 가운데 계시는데

나 홀로 편하겠다고 몸을 빼낼 수 있나요?

더군다나 "나와 함께 고난 받자" 하시는데?

함께 고난 받는 것이 상식 아닌가요? 믿는다면.

속절없이 영원히 멸망 당할 인생들 불쌍하지도 않나요?

(그들의 구원을 위해 남겨 두신 고난인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믿지 않든가>

아니면 <구제불능의 악인 중의 악인>이든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사랑이 주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형수로서 처형될 십자가 짐

따라서 내 목숨까지 미워함이 동반됨이니(눅 14:25-35),

그렇지 않는 한 절대로 "나를 따를 수 없고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즉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하신 것(: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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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아주 잘못 인식하고 있는데,

아담의 범죄의 죽음 그 직접적인 영향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데

죽음과 저주의 질서가 장악하고 있음이 당연하지,

무슨 생명의 질서가 우리를 떠받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검은 것을 희다 하고

칙칙한 무덤의 색깔을 화려한 장밋빛으로 도색해 놓은 것은

오직 이 세상 신/神의 속임수요,

이 속임수에서 벗어나 눈을 떠야

비로소 구원의 빛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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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고 눈 먼 자가 다시 보는 것이 <구원>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을 이러한 실상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한 구원은 불가능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아무나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오는 것이 아니다"(요 6:44,65)라 하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 짐, 자기 부인 등의 말씀을 듣고

("내가 내 피와 살을 내 목숨을 남을 위해

즉 너희를 위해 제공한다" 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러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니

도저히 그것은 수용 못하겠다" 하고

그 놀라운 기적, 놀라운 교훈의 말씀 다 팽개치고

예수님을 미련없이 떠나가 버린 사실에 유념해야 합니다(요 6:66).

그들은 그렇게 해서 스스로 멸망을 불러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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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이 이 정도로 심각하니 결코 소홀히 여길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항상 주제는 사랑에 있으니

이 핵심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사랑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순종하고 따르고

생사고락을 함께 합니다.

사랑이 없고 사랑과는 반대인 이기적인 욕심,

영생에 대한 욕심만으로 차 있는 한

구원은 영원히 요원합니다.







황혼이 짙게 드리워져 가는

러시아 어느 벌판

한 대의 마차가 서 있고

그 옆에는 마부/馬夫가 쓰러져 있었는데

그 손에는 평소에 그가 적어 두던

시구(詩句) 공책이 들려져 있었고


멀리서 은은히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ㅡ


이 구슬픈 교감으로

한 나그네의 회포가 묻어난 것이

이 노래와 곡이라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