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진리의 증언자·證言者

"이제 웃는 자는 애통하며 울게 된다" 하셨으니 웃음을 완전히 금기시할 것인가

Tayseek Kwon 2019. 4. 10. 18:31




"이제 웃는 자는 애통하며 울게 된다" 하셨으니 웃음을 완전히 금기시할 것인가 





주님께서 "이제 웃는 자는 애통하며 울게 될 것"(눅 6:25)이라 하신 것은 "위로"(:24)나 "부유함"(:24)과 같은 맥락으로서, 이 세상을 인간(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한 저주 받은 상태로 보지 않고 정상적인 창조 당시의 삶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을 지적하여 경고하심이다. 


무조건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니, 바울 사도가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다"(딤전 6:17) 한 그대로다. 사람이 웃는다고 해서 "저 사람은  경건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사람이라" 하고 저울질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식으로 잣대를 들이다는 일이 허다하니, 형식이야 물론 중요하지만 그와 같이 겉모양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많은데, 실속은 외면하고 그 대신 형식에 치우치는 것은 자아중심의 한 형태가 되는 것인즉 주의를 요한다. 교회에만 무조건 충성되게 나가면 믿음이 좋은 것으로 분류하는 것도 이런 유형에 속한다. 


이런 것을 성경은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약 2:1) 즉 외형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바울이 말한 대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 것이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하고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라야 한다 함과 같다(롬 2:28,29).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습니까 할 것이나 그 때에 내가 저들에게 밝히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할 것이다"(마 7:21-23) 하심도 "표면적"인 것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경우다. 


"표면적(outwardly)"인 것과 "이면적(inwardly)"인 것을 스스로 구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늘 이 시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냐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냐(롬 14:7-9) 양심대로 판단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바울 사도가 이런 면에서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한 대로 항상 유의하여 자신을 편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다"(고전 9:26,27) 함과 같으며, 이 경고 즉시 이스라엘 광야 교회의 예를 들어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지만"(고전 10:1) 당시 "그러나 저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은"(민26:65/고전 10:5)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으니 사안이 심각성을 재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