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P pix(DPA pix)/SBP pix(DPA pix)

방향 감각을 잃은 개화(開花)

Tayseek Kwon 2019. 4. 1. 18:11






2016년 1월 9일 오후 2시 40분





자연계만 왕창 버려놓아 자연계 생물에게 몹쓸 짓만 하고 자신은 자승자박한 꼴이 된 인간 군상

자기 고향(초자연계 육체)으로 복귀, 환원하면 되는 간단한 일을 가지고...




한겨울에 <꽃>이 피어 났으니 봄의 전령사가 아니라 문명을 빙자한 인간의 자연 파괴에 신음하며 용틀임치는 지구에 장단 맞추기인가. 자연계 존재로 전락한 인간에 의해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파괴되고 있는 여파이다. 초자연계 육체로 변환하는 것만이 해결책이지 이런 자연계 환경에서 초자연계 삶을 동경하니 그런 억지가 없다. 문명 발달이란 거창한 이름을 지어 붙이지만, 자신이 몸 두고 있는 자연계만 결딴 내고 있는 모순만 잔뜩 안고 있는 인생, 비극의 주인공.


사진 촬영은 한반도 남단이라는 정도로 지금은 소개한다. 1년 전 DPA pix를 촬영했던 현장이다. 촬영했다기보다 촬영된 것이다. 의도적으로 찍은 것은 없으니까. 발자국 외에는. 즐비하게 널려져 있는 "발자국"만은, 발자국이 남겨져 있으니까 찍은 것이고, 그 외에는 모두 카메라 렌즈에 포착되어 있으니까 찍힌 줄을 안 것뿐이다.


무슨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지만 발자국이라도 있으면 하고 갔던 것인데, 그러나 "발자국"은 찾아볼 수 없었다. 1년 전에 찍힌 발자국도 의도적으로 발자국을 남긴 것이 아님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눈이 올 때이면 눈 위에도 그런 발자국을 총종 박아놓는 것을 보면 그들 나름대로 부드러운 흙이나 눈 위를 걷는 것을 어느 정도 즐기는 모양.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 정체가 폭로될 수 있는 부담을 안고 그렇게 발자국을 남길 리 없다.


DPA pix는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인류사상 영물(靈物, 이 경우 악령)이 사진에 포착된 예는 일찍이 없다. 사진술이 발명된 지도 오래지는 않지만. 오직 예외가 있으니 NASA의 용(龍)의 모습의 촬영. 우연히 얻은 수확. 그 외에는 악령들이 UFO, 기타로 가장해서 찍힌 것은 무수히 많지만 직접 그 모습(극히 부분적이기는 하나)이 찍힌 예는 없다. NASA에 의해(http://blog.daum.net/trinia/16)
 용의 모습이 찍힌 후에는 악령들은 이에 대한 물타기 작전을 시도해 그렇게 촬영된 후로는 여러 가지 뱀 또는 용의 형태로 가장해 공중에서 쇼를 부리는 일이 부쩍 늘어났음을 youtube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용은 보통 다른 악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는 말은 유일하게 인간의 눈에 띄게 되어 있는 영물이라는 말이니, 아담 부부를 죽음에 몰아넣은 대가로 저주 받아 "흙을 먹음"으로써 된 결과다. 때문에 인간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는 판이라 그의 고충도 실상 이만저만이 아니다. 왜냐면 인간의 눈에 띔으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그는 "에덴동산의 그 뱀"이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데 아주 성공적이었던 사실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지금까지도 성경을 믿는다는 기독교계에서 이 악령을 그룹(cherub) 중의 하나로만 인정해왔지 에덴 낙원의 "그 뱀"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성경에 "그 뱀"이라는 뜻으로 "옛 뱀"이라고 두 번씩이나 밝히고 있지만(계 12:9/20:2ㅡ"용...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 사람(기독교인)들이 성경 기록을 무시하기가 이 정도이다. 하물며 성경을 믿지 않는 이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자연계에서는 뱀이지만 초자연계이므로 "용(dragon)"이다. 저주 받아 "배로 기어다니니까" NASA 카메라에 찍힌 것도 영낙없는 뱀의 형상이다. 애초에는 모든 영물이 그러하듯 직립보행인 것이다. 형상은 자연계의 동물들의 모습이나(그 대칭 꼴이므로) 초자연계 존재이므로 그 모습은 아름답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조화와 균형을 잃은 보기 흉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사람들이 아는 대로의 소위 악마의 형상은 악령들이 그들의 정체를 감추기 위한 일환으로 스스로를 그런 흉한 것으로 변장하여 인간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악령이라는 것이 별도로 처음부터 존재하는 양으로ㅡ. 


"큰 용"이라 했듯이 용의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큰 것은 저주 받아 배로 다니고 전속력으로 다녀야 함으로써 빚어진 부수적인 것이다. 말하자면 병적인 것이다. 인간을 속여 이러한 비참한 상태로 전락시킨 장본인으로서 그리고 인간 역시 이로 말미암아 저주 받아 있는 상태인데(아담 부부의 잘못, 죄과도 상당하므로), 그 정도 수준의 저주는 당연한 것이다. 그가 자기 모습을 감추려고 하는 것은, 그런 용이 에덴낙원의 그 영물이라는 것을 실물로 보고 사람들이 확인하는 경우 온 세상이 구원 받기 위해 큰 소동을 일으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실상이 알려진다고 해서 그리 큰 손해라고 판단하지 않는 것은, 그 자신 창조자 하나님으로 가장하여 아주 그럴듯하게 속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음을 잘 알기 때문. 그 때에는 자기를 사탄이라고 올바르게 지적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사탄의 패거리로 몰아 뒤집어씌워 처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만 기다리고 있고 그 때는 목첩에 와 있음을 우리 또한 알고 있다. 


인간의 모습은 성경에서 밝히는 대로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양"이다. 유일한 것이므로 다른 피조물 즉 영물의 모습들이 사람의 형상일 수는 없다. 단지 사람에게 나타날 때에만 인간의 형상으로 자신을 변형시킬 수 있다. 초능력자들이므로 자신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고(그래서 오늘날은 소위 "UFO"로도) 심지어 인간 여자와 관계할 정도로(악령들의 경우)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어 "네피림"(창 6:4)이라는 자식들까지 생산할 수 있었을 정도다. 천사들은 인간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렇게 하지만 악령들은 자기 정체를 감추기 위해 그렇게 한다. 


그런 능력으로 물체로도 자신을 변형시키는 것이 예컨대 "외계인의 우주선" 등이다. 자신을 변형시킬 수도 있고 그런 임시 변통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급조하는 능력도 있다. 우리 인간으로 기준하면 거의 무궁무진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이 자연계 육체로 전락한 우리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비극적인지 이로써도 절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말 그대로 사탄(우리말 성경은 "사단"이라 되어 있으나 발음상의 문제다)은 이 세상 신(神)이다. 따라서 그 정체를 까발리는 누구든지 특심한 증오와 공격의 대상이 됨은 당연하다. 필자도 그 중의 하나다. 필자도 이미 죽음의 고난을 각오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 다시 출생하고 새로 창조된 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세상 신의 공격과 증오의 대상이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를 전화위복으로 돌리셔서 이 죽음의 고난 받음이 그리스도 곧 마지막 아담의 사람 살리시기 위한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되게 하셨으므로, 이러한 기쁨과 큰 보람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수용하고 감내하도록 하신 것. 따라서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장차 나타날 영광도 크게 하신 것("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가벼운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고후 4:17")이니 모든 것이 다 때가 있고 목적이 있다고 한 솔로몬의 지혜의 정의(定義) 그대로다. 


그러면 묻기를 인간에게 결과론적으로 유익한 것을 왜 사탄이 하느냐 하겠는데, 묘한 것은 인간이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스스로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기를 즉 믿기를 거부한다는 데에 있다.  말할 수 없는 크신 사랑으로 인간에게 크나큰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지만 이러한 하나님 믿기를 많은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을 보라. 이 역시 '인간의 교만'이다. 사탄은 이 틈을 노리는 것이다. 위협을 해도 회유를 해도 그대로 먹혀들기 때문이다. 


성경에 사탄이 교만함으로써 범죄에 이르렀다고 했는데 교만은 남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법. "비둘기 같이 유순하고 뱀과 같이 지혜로우라" 하신 대목이 있는 바 우리는 뱀이 어느 정도 지혜로운지 알 수 없으나 만물을 지으신 분께서 그렇다 하시므로 그런 줄 아는데 따라서 자연계의 뱀의 대칭형인 용이 동료 영물보다 머리가 좋은 것은 명백하다. 이 머리 좋은 것을 악용할 때에는 "가장 간교한 것"(창 3:1)으로 나타나게 마련.   


앞에서 "그룹"에 대해 언급했지만, 그룹과 스랍(seraph)들은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모르나 만물의 양면성 이치가 적용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이들은 "6일" 창조 이전의 피조물들이다. 이 "6일"도 우리가 아는 1년 365일의 날 수와는 무관하다(창 1:14). 성경이 인간이 지어낸 것이라면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지어낼 줄도 모른다. 뿐 아니라 성경은 여타의 것은 과감히 생략해버린다. 구원의 길을 밝히려 함이지 우주 생성에 대한 공부를 하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것만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이 세상 신이 시시콜볼 잡다한 것을 두고도 사람의 생각들을 분산시키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이런저런 사정들을 말해보아야 사탄에게 인생들들 속이는 호재(好材)로만 악용될 것이기 뻔하다. 또 설명한다 해도 자연계에 속한 존재가 되어 모든 것이 제약된 상태에 놓인 인간이 능히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지식일 수도 없으니 덕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물이 어째서 생겨났는지 그 물 속에 뭍이 어떻게 되어 풀어져 있었는지 도통 설명이 없다. 이 역시 이야기를 꾸며낸다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창조는 초창기(준비기)와 완숙기로 양분되어 대칭꼴을 이룬다. 지금은 초창기에 불과하다. 창조주의 역량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성향에 따라 불가피하게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창조의 뜻에 벗어나는 무자격자(생명에 관한 한)가 각자 자유 의지에 따라 생겨나기 때문. 그래서 처음 세계(6일 창조 전)에서는 "그룹" 중의 하나가 이탈자가 되었다. 때문에 당시 세계는 물로 망했고(벧후 3:6) 그 다음 세계 즉 우리 세계는 불로 불살라지게 되어 있다(:7). 그래서 물로 종결되는 세계와 불로 종결되는 세계로 짝 지어져 있다. 그렇게 처음부터 정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계속 그런 이탈자가 생겨나기 때문. 


이와 같이 범죄자가 생김으로써 필연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는 세계(초창기)와 그런 변화가 두 번 다시 없는 세계 즉 새 하늘과 새 땅(완숙기)으로 최종적으로 짝 지어지는 것이다. 그 때 가서야 본격적으로 생명을 누리는 자는 생명의 환락을 즐기게 되고, 그 반대 쪽에 해당되는 이들은ㅡ인간이든 영물이든ㅡ생명과 정반대되는 것만 무궁한 세월 동안 끝도 없이 당하게 되어 있는 것.  그러므로 이런 위치에서 살고자 함으로써 나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나 자신이 들어 부정적으로 결정 짓는 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고 몸서리날 일이니 한사코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힘을 경주할 일이다. 마지막 아담을 통하여 다시 출생하고 새로 창조하심을 입어 사랑의 생명의 길 외곬으로 나아가 충성하면 되는 것이다. 싸울 때는 싸우고 일할 때에는 일을 하고 울 때에는 울어야 하는, 때를 분별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지금은 악령들과 인간이 전쟁하는 때이다. 이 전쟁은 인간의 범죄 몰락으로 시작하여(창 3:15) 마지막 아담의 천년 통치 말기까지(계 20:9) 지속되는 성질의 것으로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함(work)"과 맞물려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악령의 유일한 목적은 가능한 한 사람들이 구원되는 것을 막는 데에 있기 때문. 그리 되어야 자기에게도 숨 돌릴 여유가 있을 것이라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 세상의 신인데 어찌 당신을 금방이라도 처치하지 못하느냐 하고 누가 묻는다면, 이 세상 신이지만 그래서 "이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지만"(요일 5:19) "만지지도 못하는"(:18) 것은 마지막 아담께서 자기와 하나되어 있는 모두를 지켜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고난 받느냐 하면, 고난 받는 것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기 때문(빌 1:29)이요 따라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 이 고난 받음은 아직도 죄 중에 있어 죄인으로서 받는 저주에 함께 함으로써 즉 그들과 하나됨으로써 나의 생명과 하나되게 함 즉 구원하여 살려낸다는 바로 한 몸됨의 이치 둘이 하나됨의 이치를 따름이다. 그래서 3위1체 원리는 삶의 법칙이기도 하고 인간 구원의 원리이기도 한 것이다. 만유 창조의 법칙이기도 하고 그렇게 창조된 만유를 유지 존속시키는 법칙이기도 한 것. 악한 자는 그리스도와 하나된 자들을 증오하고 인간 구원의 사업을 사력을 다해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것이 또한 우리에게는 유익이 되고 덕이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이 모든 일이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은 것이다. 


악령이라고 함은, 똑같은 사람이지만 그 행동이 악할 때 악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거룩한 천사들과 애초 똑같은 선한 영물들이었지만 중도에 자아중심으로 나감으로써 악하게 된 것. 자연계 동물들은 악하고 선함이 없지만, 초자연계인 에덴 동산에서 창조된 "각종 짐승들"(창 2:19)은 인간(아담)을 위해 창조되었으므로 이지적 인격적 존재로서 모양만 사람과 다르지 사람과 하나도 다름이 없고 오히려 지적인 면에서는 사람보다 월등하여 그래서 인간(아담)을 보좌하게 되어 있었던 것. 반면 거룩한 천사들은 악령들처럼 심적 요동을 일으키지 않고 끝까지 옳음과 선함(좋은 것)을 따라 충실했기 때문. 우리 사람으로 치면 의인(義人)들인 것이다.  


NASA는 그 후 그 사진이 나도는 것을 싫어하여 차단시키고 있는 모양. 그러나 이미 사진은 널리 유포되고 있는 실정. 진실을 똑바로 알려고 해야지 그것을 은폐한다고 무슨 소득이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진실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도의 자세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싫건 좋건 시대는 초자연계 영역의 문턱 위에 올라 서 있다. 이 세상의 신(神) 즉 용(ㅡ계 12:9:20:2/고후 4:4) 자신이 창조자 하나님으로 가장하는 때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적(anti) 그리스도의 출현.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기 위한 최대 규모의 사기극이다.


문명 발달은 단적으로 말해서 이 악한 자의 출현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한 것. 인간 생활의 편익을 위한 것이 아님. 세계를 일순간에 완전 장악하고 통제하기 위한 가장 효과 있는 방책이기 때문. 20세기에 들어 갑자기 화산 폭발하듯 용수철 튀어오르듯 급속도로 지식이 상승하고 교통, 통신 분야의 발달이 현저해지는 이유이니, 이를 벌써 다니엘이 예언한 바 있다(단 12:4). 그 때에 가서 창조주 찾고 초자연계 찾고 하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니 벌써 악한 자의 장중에 완전히 사로잡혀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는 지금 이 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