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P pix(DPA pix)/SBP pix(DPA pix)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성/人性이 변혁되지 않는 한 여전히 삶은 살풍경

Tayseek Kwon 2019. 3. 22. 22:45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성/人性이 변혁되지 않는 한 여전히 삶은 살풍경



스마트폰을 당시 최고 좋다는 것으로 최고가의 월부 판매에 응하여 

사용하다보니 2년도 채 안되어 습기가 차기 시작 작동이 안되어 새로 

다시 다른 회사 제품을 2년 계약으로 역시 최고가에 구입하여 사용하다가 

2년 만료가 되기 무섭게 일부 중요 기능이 마비되어 버렸다. 

처음의 것은 쌀자루에 집어넣어 2년 썩힌 결과 습기가 제거되어 

귀중한 자료도 살아나고 옛 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생각은 되나 

신뢰는 가지지 않는다. 


덕분에 난생 처음 카메라로 사진이라 찍는답시고 흉내 내다가 

처음 스마트폰으로는 NSO는 물론 DPA 사진과 비디오

(제1호 14초 동영상 및 제2호 1분11초 동영상 그리고 16초 짜리 비디오 등)

를 뜻밖에 찍고, 두 번째 것으로는 이미 소개한 3분여 짜리 

중요 DPA 비디오 두 점을 얻었으니 

200만원 가치 이상 본전은 뽑았다고 자위해본다. 

그 이상의 비용을 들인들 어디 가서 언제 이런 소중한 것을 입수할 수 있겠는가.


속고 속이는 세상이다. 

장사가 안되기 때문에 제작할 때부터 2년만 

정상 가동 수명이 되도록 해둔다는 것이다. 

필자도 처음 이를 알았다면 매입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고가로 사면 오래 갈 줄 알았으니 바보 노릇한 셈이나 

그 대신 DPA pix가 탄생했으니 그나마 위안은 된다. 

학 기술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한 시점이라 

아주 행복하게 살 듯하지만 

사실상 인간 샤회는 더욱 야수의 '정글의 법칙'만 

더욱 기승을 부리며 옥죄어 드는 느낌이다. 


죄짓지 않고는 못사는 세상이라 한다.

이런 세상에서 헛되이 살고자 하는 미련을 못버려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죄인 의식에서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비명을

바울 사도 자신의 믿은 후 체험이라는 망측한 교리를 만들어

지금까지 자기도 속고 남들도 속여 온 것이다.


누가 이런 세상 살라고 했는가.

성경에서, 절대로 살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요 12:25).

그런데도 말씀을 무시하기가 이 정도다. 

말씀을 골라 가면 믿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누가 그런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했는가. 


그러므로 자기 부인의 이상향적 삶이 구현되지 않는 한 

서로 죽이고 죽는 공멸(共滅)의 자아중심만이 언제 어디서나 판 칠 뿐이다. 

3위1체의 법칙에서 대칭으로만 존재하므로 그 중간 지대는 없다. 

생명 아니면 죽음, 딱 둘로만 갈라진다. 

흑백 논리만 통하고 희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기루의 단 꿈에서 깨어 황야(광야) 

사막의 현실에 똑바로 직면해서 살필 일이다. 

되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오로지 인간 개조, 새 창조의 하나님 사업에만 매진해야 

천국 들어가는 입국 사증을 취득하게 된다(마 7:21).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로만 

지금까지 잘못 가르쳐 왔고 잘못 배워 온 것이다. 

처음 창조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셨고 

지금은 하나님의 직접 양자들로서 새로 창조되고 있다.

인간 로봇을 만드시자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함인데(벧후 1:4)

그런 피동적인 존재일 수는 없는 것이다. 

주인 의식에서의 능동성, 적극성이 

하나님의 성품에 속하는 영적인 것의 주된 특징이다. 

그래서 각자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미 창조되었기 때문에 주체 의식을 발휘하는 것이지 

내가 나 자신을 창조한다는 뜻이 아니니까 헷갈릴 이유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인간 로봇을 만드시는 것처럼 오해 착각하는 것이다. 

해괴한 논리 속에 아무 의심 없이 안주하고 있으니 

이 세상 神의 농락에 찌들어 있다는 증거다. 

직접 성경을 읽음으로써 진리의 문을 부지런히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중도에 그만 둠이 없이) 

두드려야 성령 친히 가르치시는 은혜에 들어가게 된다. 


새 창조만이 은혜의 영역이다. 

물론 창조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지, 

피조물이 처음부터 지닌 피조물에 속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이다. 

이것을 새 창조에서는 "은혜"라 하는 것이다. 첫

창조에서의 창조는 은혜가 아닌 이유다.  

일단 창조되었으나 

인간의 자업자득으로 야기된 멸망의 위기에서 구제됨으로써

새 창조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은혜, 긍휼, 하나님의 무한 자비인 것이다. 

창조의 특성상 모두가 하나님 주신 힘이므로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영원히 은혜다. 


단지 아담과 영물들의 일부 소행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 

자기 자신을 생명으로부터 스스로 격리시키는 만행을 

서슴지 않는 결과를 낼 뿐이다. 

이런 전례를 우리는 두려워하고 떨어야 하는 것이니, 이는 마땅하다. 

미리 택하심 받았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남에 내게 대하여 혹 할 수 있거나(살전 1:4) 아니면 

그렇게 미리 정하시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오로지 우리의 몫은 베드로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우리 자신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스스로 굳게 하는"(벧후 1:10) 것 외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