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운법칙/3운법칙

전에 올린 게시물을 앞당긴 것입니다

Tayseek Kwon 2018. 11. 5. 07:52






1972년에 3운법칙에 대한 단서를 잡고 그 후 지금까지 거의 반세기가 흘러갔으나  그 기나긴 세월에 역대 인물들의 생애 분석 자료만 해도 수천 권을 헤아릴 정도로 쌓아놓았을 법도 하지만, 굳이 이에 대한 증거를 더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그 너무나 정밀한 정확성이 압도해오기에) 또 인간의 생애 분석을 하나의 도락(道樂)처럼 여길 것은 아니기에 그런 일에 집증하지 않았다. 다른 일에 힘을 쏟느라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다만 독자들 스스로 직접 분석하면 될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인데,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분석해 놓으신 것이 있을 경우 보내주시면 분석자의 인적 사항을 밝혀(원하시지 않으면 물론 그 부분은 생략하겠으나) 이 블로그에 게시할 생각이다. 분석상의 문제점도 함께 제시해주신다면 다른 분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다른 일에 힘을 쏟았다"는 것은, 현재의 기독교 교리가 너무나 성경과는 판이하여 성경에서 일탈해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정리 작업에 시간을 바쳤기 때문인데 지금은 때가 되었으므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놓는 셈이다. 천 수백년 간의 "전통적인 교리"로 고착화되어 왔던 잘못된 성경 해석을 타파하기 위한 일대 공사로서는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도 지나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위인이 워낙 게으르고 보통을 넘는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가 잘 아는지라 진작 발표하지 못했음을 항상 부끄러하는 생각뿐이다. 전반적으로(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극소수이기는 하나 있기는 있으므로) 지금까지의 기독교 교리가 성경과 다르다는 것은 간단히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는, 로마서 7장에서 "육신이 죄 가운데로 나를 사로잡아 온다"는 바울 사도의 설명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해방"(롬 8:2) 이전에 죄의 육신에 매여 있으니까, "생명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계명"(롬 7:10)으로서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고 신령한"(롬 7:12,14) 그 율법과 계명"(롬 7:14)이 "육신에 속해 죄 아래 팔려 있는 인간에게는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롬 7:14)이 되고 죄인으로서의 실상을 알게 함이었다.


왜냐면 나라에 법이 없으면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아 처벌될 수 없으나 법이 생겼을 때는 그 법대로 하지 않을 경우 처벌되는 것과 같음을 상세히 밝힌 것에 불과한 것이다. 고로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함께 죽음으로 함께 장사지낸(무덤에 묻혀버린) 사실을 세상 앞에 공표하는 뜻으로 회개의 세례를 받듯이(골 2:12), 우리의 죄의 몸이 그리스도를 믿어 그 안에 있으면 죽어 멸해진 것이다(롬 6:6,4). 그런데도 왕청스럽게 인위적인 교리를 만들어내어 바울 사도 자신의 믿은 후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라고 로마서7장을 가르치는 오늘날까지의 기독교다. 


따라서 죄를 어느 정도 지어도("지을 수밖에 없어도"가 더 정확한 표현일 터) 구원은 받는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유도되어, 성경에 "항상 복종하여(하나님의 말씀에) 두렵고 떨림으로 각자의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한 엄중한 경고를 완전히 무시하고 들어가게 된다. 죄를 지어도 의인으로 정하시니까 구원을 이루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일 수밖에 없게 된다. "두렵고 떨림으로"까지 심각한 경고인데도 이를 무시하면 그 결과야 뻔하지 않은가. 마땅히 경고할 자리에서 경고하지 않는 경우 간접 살인 행위, 살인 방조 행위라 해도 무방하다. 즉 살인자의 반열에 들어서 있는 것이 오늘날까지의 일반적인 기독교 교리다. 이것이 둘째다. 


고로 결과론적으로 셋째, 구원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비로소 알아 그 사랑에 감동되어 사랑의 순종을 함으로써 영생에 이르는 것인데도, 처음부터 창조주의 임의 결정으로 구원받도록 조정되었기 때문에(그들은 성경의 "미리 택하심"을 이런 식으로 곡해한다) 믿게도 되고 영생한다고도 가르치게 된다. 앞에서 말한 "항상 복종하라"(빌 2:12)는 경고는 앞서 설명한 사랑의 순종을 힘쓰라는 뜻인데 이를 완전히 무시하니 필연적으로 이런 인위적인 교리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이로써 세상에서도 지탄 받는 이기적인 각종 사이비, 이단이 발호하는 온상이 되어 온 것이다(그렇지 않아도 이단이 생기게 되어 있는 판인데ㅡ악령이 이 세상 신이 되어 있음을 인해). 


고로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만 사는 결초보은의 순종으로 말미암는 사랑의 순종을 힘쓰라는 뜻으로서, 나 자신의 구원을 또(이미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에도) 이룬다는 뜻이 아니니, 원래부터 삶이란 것이(인간에게나 천사와 같은 초자연계 존재에게나) 나를 위함이 아닌 나의 상대를 위해 사는 즉 한 몸 체제에서 머리는 몸을 몸은 머리를 위함으로써 눈, 코, 팔, 다리 등 각 지체된 자기 임무와 역할을 다함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이 아무리 자기를 위해 살아보아야 살아지지 않는다. 팔, 다리 기타 다른 지체를 위해 눈 역할을 해야 자기 역시 위해지는 그런 구조다. 이것이 삶의 법칙이다. 따라서 그 삶의 법칙 즉 나를 사랑하는 머리의 뜻대로 순종을 잘 하여 그 지시대로 다른 지체된 이들 즉 내 이웃 곧 '사람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 "구원을 이루라"는 의미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죽은 목숨을 살려주셨으니 "열심히 살라"는 그 뜻이다. 앞의 설명대로 이웃을 위하지 않고, 이타주의가 아니고 이기주의 즉 자아중심으로 흐르면 그 때에는 생명의 법칙을 어긴 결과로 생명으로부터 이탈, 분리되는 판이니 어찌 두려워하고 떨 일이 아닌가. 왜 두려워하고 떨 충분한 이유가 되느냐 하면 그런 선례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을 현재의 이 모양 이꼴의 자연계 죽음의 육체가 되게 한 장본인인 첫 사람 아담이 그렇고, 그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 악마 사탄을 위시한 여러 악령들의 영원한 멸망에 빠져 있는 운명이 바로 그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사는 법(칙)을 따라 "열심히 살지" 않음으로 인한 자기 파멸인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뜻에도 위의 "인간 구원이 미리 정해졌다"는 교리는 상치된다. 진리에는 모순이 발 붙일 틈이 없다. 미리 택하심(predestination)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의 영역(foreknowledge)이다. 무엇을 미리 아시느냐, 우리가 우리 자유 의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순종할 것을 미리 아시기 때문에 그 순종의 결과에 차질이 없도록 미리 장애를 제거하신다는 의미다. 당연하지 않은가. 온통 자유 의지로 움직이는 세계인데 그 무엇이 장애가 되어 나의 사랑의 순종이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그런 일은 하나님의 머리로서의 직권으로써 의당히 막아주셔야 하는 것이니 바로 이를 가리켜 미리 택하심이라 하는 것인데 일개인 몇몇의 제멋대로의 해석을 지금까지 마치 하나님의 말씀처럼 위해 온 것이다. 


모두 이 세상 신(神)의 장난질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날 팽배해 있는 사조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이다. 우리말 성경은 버젓이 그렇게 번역되어 있으니 번역자가 그런 당치도 않은 신학 사조에 물들어 편견과 선입견으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영역 "for"는 반드시 대신이 아니다. 무난하게 그저 "위하여"이다. 그렇다고 영어권에서는 이 "대신"이라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쪽 "신학"에서 묻어 들어온 "신학" 사조인 것이다. 성경은 "대신 죽으심"이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대신"이 아니라 "함께"(엡 2:5/골 2:13)이다. "대신"이라 속고 있기 때문에 "적당히 어쩌다 죄를 지어도 이미 나는 구원되었으므로 일 없어" 하는 태평 심사(心思)가 된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것과는 정반대 개념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한 몸 관계에서의 사랑이 구원의 요체다. 하나님의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나에게 대한 사랑이 모든 것의 시발점, 도화선이 된다. 하나님이 나를 자신을 바치시기까지 사랑하셨다는 이 사실에 있는 것이니 이것 하나만 확신해도 그 후는 당연히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할 것이니 즉 순종할 것이므로 이것이 구원받음의 증거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설혹 그렇게 성경에 위반되게 가르쳤다 하더라도 자기 양심의 명령에 따라 그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구원받음에 아무 하자가 없었음에 유의할 일이다(고전 8:3).  오직 그런 교리를 핑계대고 빙자하여 자아중심으로 사는 빌미를 스스로 만들었을 때 자멸의 함정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현상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그것은 아니니, 왜냐면 이런 모순에 가득 찬 인위적인 교리는 일반 세상 사람들의 인식에도 부합하지 않을 것은 당연하여 성경을 이상한 논리의 괴상망측한 것으로 치부해버려 구원의 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마저 부정하게 만든 것이다(롬 2:24) 논리에도 맞지 않는 성경의 그런 하나님을 누가 신뢰하고 공경할 것인가. 무턱대고 영생에만 욕심이 있는 이들이 구원과 영생이 "공짜"라고 가르치니까 거기 혹해 달려들지는 몰라도. 놀고 먹는 그런 공짜는 세상에 없다. 자기를 위함으로써 멸망에 이르는 결과를 맺든 아니면 이웃을 위해 열심히 살든, 어디에든 열심을 내게 되어 있는 것이 인생이다. 성경은 이웃을 위하는 선과 의로운 일을 독려하는 것이다. 자아중심 곧 자기의 유익을 위하는 일에 경고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각자의 구원을 이루라"고 끊임없이 경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음도 "선한 일을 하기 위해"(엡 2:10/요 5:29) 새로 창조됨을 말함이다. 


성경 장절을 꼬박꼬박 첨부하는 이유는 개인의 소견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에 의한 것이라는 근거를 삼음이며 성경을 아는 이들로 하여금 과연 그러한가 하여 직접 확인해볼 수 있도록 하는(행 17:11) 차원.



달라이 라마는 FS 유형으로 90세로 생을 끝낸다. 본인의 말대로 하면 113세까지 산다 하나ㅡ





그는 지금 팔순을 넘겨 그의 연보 또한 단순하기 때문에 이런 다이어그램 작성이 가능하다. 그의 생애에 대한 것은 인터넷으로 나오는 자료로써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달라이 라마는 "윤회", "환생"의 대표적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성경은 그러나 이런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면 둘의 대결에서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가.

둘 중 하나는 거짓이다. 병행 공존할 수는 없다.

성경은 악령의 존재를 강조한다.

악령들은 아담 대신 이 세상을 통치하는 자들이다.

우리 육체에 비하면 거의 무소불위다.

인간의 육체가 상대적으로 극히 열악하다는 의미다.

이 악령들은 처음부터 거짓말하고 속이는 자로 성경에 명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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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성경대로 하면 얼마든지 악령들은 이런 짓거리를 할 수 있다.

영물들이니까 모르는 것이 없다. 

인간 내면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런 지식을 가지고 연극을 꾸민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유튜브에 유포되는 것을 보니

유대인 하바드대 교수에게

마리아가 나타났다고 떠들썩하다.

그래서 유대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평소에 신(유대교의)을 알게 해달라고

짧은 마음 속의 기도를 꾸준히 해오던 중

한 번은 꿈에(생시 같았다고 하는데)

평생 본 적이 없는 가장 아름다운, 기품 있는

젊은 여성이 나타났다고 한다.

직감에 "성모 마리아임을 알아보았다"는 것.

그래서 이 세계적인 일류대에 몸 담은 교수는

거기 홈빡 취해 천주교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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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성경과는 전연 다르다.

성자/聖子 하나님께서 대칭 아담으로 오시어

첫 사람 아담의 육체를 우리가 뒤집어 쓰고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대칭 아담 역시 성령으로 완전히 나와 하나되어 계시니

나는 그 육체로서 내 영혼처럼 계심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사이로 계신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무슨 소용인가. 

따라서 위의 불교의 환생, 윤회처럼

이 천주교(소위 대표적 "기독교"로 자처)의

마리아가 꼭 그렇다.

성경과 상치되니 성경과 천주교 둘 중 하나는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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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육체로서의 나약한 인간은

초능력 앞에서 완전히 속수무책이다. 

거기 끽 소리 없이 굴복하지 않으면

오직 성경만으로써 대척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달라이 라마 식 초능력(기적)이나

천주교의 마리아 식 초능력(기적)이나 동일 속성이다. 

만일 당신 앞에서 이런 마리아가 나타난다면 어찌 하겠는가.

지금은 바야흐로 초능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제까지 막는 자가 있었으나 옮겨졌으므로(살후 2:7)

봇물 터지듯이 온 세상을 휩쓸고 있고

앞으로 적그리스도의 등장으로 

더 심하면 심했지 완화될 조짐은 없다. 

신적/神的 권위를 과시하는 이 초능력 앞에

백이면 백 모두 넘어지게 되어 있음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택하신 자라도 할 수만 있으면 미혹한다 하실 정도이니

가히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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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그 어떤 권위든 과시하는 법이 없다.

이 한 가지만 명심해두어도 적절한 대책이 된다. 

오직 말씀으로써만 권위를 나타내시고

또 이미 나타내셨기 때문(눅 16:31).

그러므로 오직 성경에 대한 확신

그 논리성, 갖가지 자체 증명(그 진실성에 대한)만이

성경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안겨 주는 것이지

그 외로는 그 어떤 것이든

바람에 날려가는 깃털보다 더 불안정한 것이다. 

"대칭아담론"을 위시해 많은 말을 하게 됨도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생애 분석 경험이 극히 짧기는 하나) 인생이 5,60대에 접어들면 

그 생애의 전체 다이어그램을 스스로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판단된다. 대략 그 윤곽은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유명 인물에 대해서는 신문지상에 올려져 있는 그의 연보(年譜)만 보고도 충분히 그 생애를 도식화할 수 있다. 여러 인물의 생애를 이와 같이 분석해보면 흥미진진하다기에 앞서, 


"아아, 이런 것이 인생이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새어 나오게 될 것이다.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경험으로 단언할 수 있는 것으로서 각 생애 끼리끼리 유사하게 공통점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3종류의 유형에는 제한 받지 않는 공통점이다. 즉 3유형(FS, OT, SN)으로 한정되되 이런 생애에서도 내용별로 분류 가능한 내용별 분류다. 예컨대, 이효봉 선사와 스웨덴 오페라 여가수 Jenny Lind, 미국 대통령 트루만과 남미의 영웅 산 마아틴이 그렇다. 


이쯤 되면 "인간학(人間學-homonology)"이라는 새 영역이 탄생할 만도 하다. 셈법이 극히 간단하여 초등학생 저학년 산술 수준이므로 어린 아이들이라도 손댈 수 있는 분야다. 


생애 분석시에는 사주팔개자 풀이나 점성술 따위로 인식하여 접근하면 번지 수부터 틀린 곳에서 집을 찾는 격이 된다. 다시 예를 들지만, 이 효봉 선사의 생애를 분석할 때에는 그가 화려한 판사직에 있던 기간이 단연 배제된다. 또 Jenny Lind의 경우 그가 화려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때와 그 명성을 세계적으로 드높이던 기간은 그의 LP(활동기, 전성기)에 전혀 합산되지 않는다. 오히려 DP(그 반대 현상의 기간)에 해당된다. 같은 독립운동을 해도 간디는 그 투옥된 햇수가 모두 LP에 포함되나, 네루는 그 기간을 헛되이 날려보낸 손해 보는 햇수로 여긴 그대로 그의 트리니 호모(FAS HOMO, TRINI HOMO, 3운법칙)는 계산되어져 나온다. 즉 간디는 그런 투옥 기간을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믿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각 인간의 생애에서 3운법칙은 그 '인간됨'을 그려내는 것이다. 해당 인간의 총합(總合)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트리니 호모에 관해 대충 설명해놓은 전체 내용을 찬찬히 훑어 보신 다음에(네이버 블로그에서 시리즈 (1)~(35) "보어와의 논쟁에서 아인슈타인이 틀렸다"

 https://blog.naver.com/trinia 분석에 착수하셔야 무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