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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중지 곳 하면 아니감만 못하니라

Tayseek Kwon 2018. 8. 29. 19:23










잘 가노라 닫지 말며(돌다리도 두들겨 가며) 못가노라 쉬지 말라

부디 긋지(그치지) 말고 촌음(寸陰)을 아껴 쓰라(엡 5:16/골 4:5)

가다가 중지 곳 하면(중간에 그만두면) 아니감만 못하니라(김천택)











"회개"와 "회개의 열매"를 강조한다고 해서 하기 쉬운 말로 "행위구원"론이라고 비난합니다. 우리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위해 성취하신 일이니까 그 이루신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음직이는 것은 사랑입니다(갈 5:6). 우리의 믿음의 사랑 역시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는 것입니다. "사랑"의 행위요 "행함"이라는 뜻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그런 "행위"는 얼마든 선전하고 강조할 것입니다. 


이미 설명했지만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성경이 강조한 이유는 율법행위로 구원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더군다나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런 말을 하니까) 그 착각하고 있는 것을 바로 시정해주다보니 강조된 상대적인 표현이었을 뿐입니다. 그런 당시 상황이 아니었다면 "믿음구원"을 그토록 역설하는 인상을 우리에게 남겼을 리 만무합니다. 


사탄과의 대결에서 사탄이 이 세상 지배권을 쥐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칼 자루가 아닌 칼 끝을 쥐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사로잡히지 않게 했을 것"(요 18:36)이라는 말씀까지 하신 것이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인들(백성들)이 메시아 다시 오시기까지는 상대적인 열세에 있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기정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탄이 심어놓은 가룟유다들이 곳곳의 요직에 포진해 있어 여론을 주도하고 대세를 좌우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메시아 다시 오실 때까지는 이와 같이 진리는 항상 소수에 속합니다. 다수에 서 본 역사가 없습니다. 이는 사탄이 이 세상 신으로 왕으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수수이기 때문에 약하고 약하니까 핍박의 대상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환영 받지 못하나 단 "몇이라도"(고전 9:22) 그 중에는 구원될 사람 곧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이 있겠으므로 우리를 불러 올리실 때까지는 만난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말씀 전파에 힘쓰는 것이고 제사장의 기도를 중간에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 것이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되어 거두게 될 것"(갈 6:9)입니다. 국지적으로는 드문드문 소수라도 전세게적으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계 7:9,14)임은 틀림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숭성하기를 바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