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진리의 증언자·證言者

두 가지 점에서 처음부터 잘못 믿은 것이 되므로ㅡ"회개하고"(행 2:38) 새로 출발해야

Tayseek Kwon 2016. 8. 25. 18:52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한 것만 통하는 것이지 어중간한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100% 복이 충만하든가 복이 아주 없든가 둘 중 하나임. 고로 복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마찬가지로, 100% 하나님의 것이든가 아니면 100% 자아중심이든가 그 중간은 존재하지 않음. "성현군자"라는 것은 인간의 양심을 따라 최대한의 반응을 보인 경우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 부인이 아니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기 부인 가능) 전혀 무의미한 것. 소위 "기독교"를 중심한 종교 통합을 말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을 전혀 모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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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파 교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 구원을 전파하는 것 (재수록)


죠지 뮬러, 헛슨 테일러, 찰즈 피니 등이 한국 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어쭙잖은 교파주의 때문. 자기 교파만이 진리인 줄 아는 독선, 아집이 진리의 진로를 가로막은 것이다. 헛슨 테일러는 초교파로 나간 것이다. 죠지 뮬러는 소위 "형제회(Brethren)" 계통이었다. 찰즈 피니는 장로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깔벵의 빗나간 예정론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에서도 목회했었고 말년에는 오벌린 대학에서 후진 양성에 주력했으나 끝까지 장로교 목사로 남아 있었다. 장로교든 감리교든 침례교든 전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구원이지, 장로교 교리, 침례교 교리, 감리교 교리를 전파하고자 목사로서의 인생 진로를 택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디에 몸 담든 진리를 가르치고 전파할 일 외에는 없는 것이다.


교파주의가 얼마나 진리에 걸림돌이 되는가 하는 것은 바울 사도의 경고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날을 중히 여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견해 차이는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교파로 갈라설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유일한 표준을 제시한 것이니 곧 롬 14:5-11이다. 이 점에서만 일치하면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엡 4:3) 책무가 있다. 1907년 한국 교회 부흥의 도화선이 된 장감 선교사들의 한 자리에서의 합심 기도에서 강조된 것이 일치, 일체(一體)감이었다고 한다. 성령께서는 이러한 교파주의를 책망하신 것이니 이것이 성령 충만한 역사의 선결 과제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파주의를 혐오하신다. 



















"구하라(to ask)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to seek)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to knock)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