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운법칙/3운법칙

이렇게 되면 불교는 이젠 한 방에 가버리는 것 아냐?

Tayseek Kwon 2019. 4. 18. 04:11


(카테고리 <불교도와의 허심탄회 토론장>에서 일부 옮김)









윤호진 박사의

"불교인이 보는 기독교"

에 대한 답변의 요약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라는 문제를 위해서는 이와 같은 글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백프로 동감. 기독교와 불교의 올바른 대화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두 종교간에 넘을 수 있는 벽과 그럴 수 없는 벽을 서로가 확실하게 아는 일일 것ㅡ필자도 그것이 무엇인가 매우 기대됨. 불교는 교리적으로 <절대자(神)>의 존재를 받아 들일 수 없다ㅡ그 이유를 매우 흥미 있게 들어볼 것이다이 글은 토론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ㅡ필자는 토론을 선호한다. 단지 불교인이 기독교와 접하면서(특히 성경이나 신학서적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을 그대로 말해보고자 한다ㅡ단 여기서 성경 위주로 해야지 "신학서적"은 제외시켜야 끝없는 방황,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미로를 벗어날 수 있다. 가능한 대로 솔직하게 쓰려고 한다ㅡ대환영이다. 불교인이 기독교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ㅡ매우 듣고 싶다. 이러한 기회를 주어 감사하다. 매우 소중한 자료 그리고 기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이 불교와 친숙해 있는데 그들에게 구원의 희소식을 전하려 할 때 저들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점이 심이 궁금했는데ㅡ. 불교인이 보는 각도에서 성경을 음미하는 의미는 자못 크고 소중하다. 


신의 창조문제

이 <창조> 항목을 전체로 살펴보았는데 구약을 중심으로 한 소견인 바, 성경이 신약경과 구약경으로 되어 있듯이 둘을 조화시켜 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창조주의 특성이 양면으로 되어 있어 창조주를 이해하려면 이 둘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 고로 한 쪽만 보면 섣불리 결론을 내리게 되고 서투른 판단을 유발시켜 이것이 전제가 됨으로 해서 차후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아주 바람직하지 않은 접근임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그러면 세부적으로 들어가보겠다. 


그 전에 먼저 우리의 기본 입장부터 밝히겠다. 창조는 실제 사실이고 창조주는 실존하신다. 그 증거를 댈 수 있느냐 하실 터인데 바로 3운법칙으로서 모든 인간의 생애를 자로 재듯이 규격화하여 꼭 3가지로 철통같이 마름질하고 있음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1972년에 발견되어 아직 널리 홍보되지 못한 탓에 대중적 인지도가 제로에 가깝지만 이 블로그 카테고리에서 "3운법칙"을 찾아 클릭해 들어가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일찍부터 말해 오기를, "일사불란 질서 정연한 자연법칙이 창조신의 작품이라는 증거라 주장하는데 그래 좋다, 그러면 인간을 그와 같이 철두철미하게 관장하는 것이 그 무엇이 있는가 묻고 싶다. 없지 않은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그런 소위 신의 통제 아래 놓여 있지 않는데 어떻게 자연법칙만 가지고서 창조 운운 하겠는가. 인간을 그와 같이 옥죄고 있다는 증거를 대보라" 하며 아주 의기양양하게 도전, 도발해 왔는데 이제 보기 좋게 그 증거가 혜성 같이 나타난 것이다. 


카테고리를 찾아보면 대충 내용을 알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고 되풀이하지 않겠다. 이와 같이 인간을 철통 같이 규제하고 있는 것은 인간 스스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인간 외의 인간을 초월한 힘에 의한 것이다. 그 증명이다. 고로 토론장을 여기가 아닌 "3운법칙" 영역 또는 분야로 옮겨 이야기를 진행함이 이치적으로 적합하다. 왜냐면 창조신의 존재 여부를 처음부터 따질 수밖에 없으므로 그러한 것이다. 이 3운법칙으로써 창조신의 실재가 확정되면 이야기 방향이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가장 일차적으로 3운법칙을 취급해보라. 여기서 대세는 이미 판가름난다. 이 3운법칙 하나로 이미 천하평정이 된 것이다. 불교는 창조를 부정하는 무신론적 사고방식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그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으니 이제는 그 자취나마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왕 말이 났으니 다음의 소견에 대해 답을 달아보자. 

 
불교인에게 신과 인간의 창조 문제에 대해 말하라 한다면,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할 것이다. 이미 위에서 밝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불교인에게는 신의 존재 여부는 아예 문제 제기도 안된다. 때문에 창조문제 역시 그렇다. 역시 이미 밝혔다.

이같은 입장의 불교인이 구약성서 창세기를 읽으면 그들에게 진지한 것으로 나타날 리 없다. 일종의 신화, 동화 같은 것이다. 천만에. 이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윤호신 박사 스스로가 지적한 대로 무아설과 윤회설의 충돌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상호 모순되는 곳에 진리는 없다. 더군다나 중심 교리일 때 그것은 그 종교 자체의 궤멸, 붕괴를 뜻한다. 무아설은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주장을 말하는데 그 나라는 실체가 엄연히 존재하여 전전유리하는 것이 윤회, 전생/轉生이기 때문이다. 둘 중 어느 하나는 마땅히 사라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이 둘에 처음서부터의 불교 사상이 기초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것은 명확히 불교의 존폐 문제다. 


이러한 무신론적 사상을 토대로 하여 발전해온 불교이니 이제 3운법칙으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의 실존이 증명되어 있는 이상 불교 교리는 더 이상 갈 데가 없고 숨어 기사회생할 기회마저 없다. 그냥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는 것밖에 없다. 불교도인들은 대개 선한 양심가들이다. 이런 선남선녀들이 그런 미신에 짓눌려 온 것은 이제부터는 과거사로 돌리고 이제는 물 흐르듯하는 순리를 따라 자신을 자연스럽게 적응시키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