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만의 부활ㅡ절묘한 배합

유월절 안식일과 일반 안식일과 평일이 절묘하게 배분되어 있는 "3일만의 부활"

Tayseek Kwon 2019. 4. 8. 07:51




유월절 안식일과 일반 안식일과 평일이 절묘하게 배분되어 있는 "3일만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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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안식일과 일반 안식일의 절묘한 배치 


그러므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사이에 두 종류의 안식일이 끼이는데 하나는 '유월절 안식일' 그리고 '일반적인 안식일'로서, 처음 안식일은 주님께서 우리를 새 피조물로 만드시기 위한 "일하심" 즉 '새 창조'를 "다 이루시고"(요 19:30) 이전 "6일"간의 창조를 마치시고 "제7일"째 쉬신 것처럼 쉬신 것을 의미함이다. 이 사실은 이미 '안식일(安息日ㅡSabbath)에 대해'라는 항목에서 설명한 바 있다. 


말하자면 안식일 개념에서 그 첫째의 것 즉 하나님의 애초의 "6일" 창조 후 안식하심과 같은 의미의 '창조 작업 후 그 완성에 따른 쉼 즉 안식'에 해당됨이다. 이전 창조나 새 창조나 창조임에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는 안식일의 두번째 의미 즉 하나님께서 쉬시니 우리도 쉬는 것 다시 말해 죄의 종살이로 부터 해방됨으로써 편히 안식하는 것, 곧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희 하나님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으므로 너의 하나님이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신다"(신 5:15)는 말씀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안식일의 첫번째 의미는 말할 것도 없이 천지창조에서 "6일" 창조를 마치시고 "7일"째에 쉬신 것을 가리킴이다. 그래서 새 창조의 완결을 고하는 유월절 안식일이 목요일이고 그 유월절 안식일과 일반 안식일을 격(隔)하는 경계가 되는 금요일은 첫 안식일 즉 "6일" 창조의 완료가 인간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미완성이 아닌 미완성이 되어 버려 하나님께서 부득불 새로 창조의 일을 하실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새로 일하실 수밖에 없는 그 사실을 가리킴이다. 이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이미 천명되어진 바다. 


그러나 이제 새 창조가 완료되었으므로 이제 진정한 의미의 "6일" 창조가 완료되었다는 점에서 토요일의 일반 안식이 중복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반적인 안식일은 이와 같이 안식일 그 자체에도 의미가 분명하지만 그 안식일 이후 첫 날이 되는 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함으로 비로소 산 자가 되어 산 자로서 "일하게" 되는 첫날을 의미함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6일 창조의 그 첫날부터 창조의 일을 시작하신 것처럼 주님은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을 머리로 하여 주님을 모시고 사람 구원하는 일에 새롭게 뛰어드는 계기를 처음으로 맞는 의미가 됨이다. 


이제 이렇게 "일하는" 날들의 안식은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일을 마치는 그 날 주님처럼 "다 이루었다" 하는 그 날 들어가게 될 것을 성경은 명백히 밝히고 이를 가리켜 "저 안식에 들어간다"(히 4:3) 한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신 말씀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주제를 삼고 주님을 공박하여 물고 늘어질 때에, "너희는 하나님이 창조를 다 마치시고 이제 안식하시므로 그런 의미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느라 그렇게 고집하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쉬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범죄로 인하여 지금도 일하시는 과정이시고 나도 그렇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니 너희가 고집하는 그 주장은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하시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도 인간 구원의 종료가 아직 끝나지 않아 여전히 우리가 사람들을 구원해낼 막중한 책임을 그 교회로서 지고 있고 일하고 있는 와중에 있으므로 구태여 당시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을 특정일로 정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안식하셨으니까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명백히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언급에서도 나타나듯이 "한 날을 더 중히 여기지 않고 모든 날을 똑같이 여기는"(롬 14:5) 경우가 그런 뜻이다. 성경에 "주님의 날"이라고 특별히 표현된 것은 있으나 이는 '유대'인 안식일의 대안(代案)으로 삼으라는 의미도 아니고 또 그런 것은 위의 설명처럼 실상 무의미한 것이다. 단지 주님의 날로서 기념하면 가하나 그것을 다른 날보다 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그 뜻이다. 왜냐면 안식일이나 십일조 바치는 것이나, 우리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으로서 인식하지 못하고 무조건 내게 속한 것이니 모두 내 것이라는 자아중심 일변도의 사고방식으로부터 탈피 또는 해방되어, 장차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가르치실 진리 즉 우리의 [메시아 예수님(마, 막, 눅, 요 복음서 한꺼번에 보기)ㅡ4 • 168 전부] 존재 자체가 조물주이신 하나님의 것임(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것이니, 이는 사랑의 원리에 의해서)을 부분적으로나마 미리 일깨우는 한가지 방편으로 그렇게 명령하셨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와 우리의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다. 7일 중의 하루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7일의 7일, 일년 365일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고 내 것은 없는 것이다. 나의 소유의 1/10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100프로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이다. 왜냐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내게 주신 선물로서 주님의 것이 다 내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전히 9/10는 내 것이다 또는 7일 중 6일만은 내 것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 이 진리를 달리 표현하면,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자기를 위하여 사는 이가 없고 죽는 이도 없다"(롬 14:7)가 된다. 이 언급에 다 함축되어 있음이다. 그래서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해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고 아주 못 박아 버리지 않았는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는데 내 것이 어디 있으며 나의 9/10가 어디 있고 나의 6일이라는 것이 어디 있는가. 그런 것을 미련스럽게 아직도 인정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1/10, 하나님의 안식일(7일 중의 1일) 등을 고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루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날이 다 하나님의 것으로서 거룩하다. 안식일로 치면 하루만 아니라 7일 모두가 안식일로서 오직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날이지 내 일을 하는 날은 더 다시는 존재하지를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 나의 영과 육체가 다 주님의 것이다. 혹자 이를 두고 "그렇다면 내 것과 하나님의 것과의 경계가 불분명해지지 않는가. 주님의 날(이전의 안식일 개념)도 지킬 것 없고 십일조도 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 것이 대관절 어디 있는가? 아직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을 믿지 않고 어떻게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논하는가?" 하는 반문이 그 답변이 될 것이다. 내 것이 없기 때문에 자기 부인이다. 즉 나를 위해 살지 않는 것이다. 주님을 위하고 섬기는 차원이 아니면 나는 한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새 피조물"됨이다. 


나를 위하는 몫은 주님 친히 담당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게 영원한 선물로서 성령을 주신 의미이다. 곧 그리스도 자신 께서 내게 영원한 선물이 되어 계시고 생명이 되어 계심이다. 우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나의 개인적인 소유 즉 하나님 주신 개인적인 선물로 모시고 있음이다. 이 곧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하는 생명과 사랑의 원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오로지 나를 위하심은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갈 2:20) 사실로써 충분히 입증되어 더 이상 증거를 요하지 않는다. 창조(새 창조)의 차원에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나를 위하시는 사실은 영원무궁 변하심이 없다. 


고로 이런 의미에서도 '유월절 안식일'과 '일반 안식일'에 걸쳐 또는 두 의미가 동시에 두루 겹쳐지는 "사흘 밤 사흘 낮"에 의한 그리스도의 수요일 수난(受難)은 정확한 것이다. 왜냐면 이는 첫 창조와 새 창조의 관계 및 이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자세를 명확히 마치 그림을 그려 주듯 나타내고 있는 까닭이다. 새 창조를 떠나서는 첫 창조가 완결될 수 없고 첫 창조를 무시하고서 새 창조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 

안식일(安息日ㅡSabbath)에 대한 고찰


(17註-안식일이란, 일주 가운데 토요일 하루를 쉬도록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분부하신데 따른 것이다. 쉰다는 것은 그 날에 국민들이 일체의 일을 손놓는다는 의미인데 따라서 자연 그 날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하게 된다. 이 안식일은 6일에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쉬시고 제7일에 쉬신(안식하신) 데에서 이를 기념하고, 동시에 이집트에서 종 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하던 날 양(羊)을 잡아 '이스라엘' 각 가정 집 문설주에다 피를 발라놓으면 당시 이집트에 임한 국가적 재앙(각 가정의 장자(長子)와 가축의 첫 새끼를 몰살시키는)을 면할 수 있어 이 때로부터 '유대'인들은 이 날을 유월절로 지키는 것인데 이를 함께 기념하는(신 5:15)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서는 일하심으로부터의 해방 또는 쉬심 그리고 우리 인생으로서는 마귀에게 매여 종 살이 하던 데로부터의 해방 즉 노예 고역(苦役)으로부터의 쉼, 이 둘을 함께 의미함이 된다. 그러나 인류 구속사 (救贖史)를 볼 때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하신 대로 그 6일 창조가 다시 인간의 새 창조로 연결, 연속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이상 두 가지가 합성(合成)된 본질적 의미이다. 당시 첫 유월절 때 각 가정에서 잡은 양은 바로 이 새 창조의 주체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다시 말해 이렇게 두 가지 뜻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첫 창조와 새 창조의 연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첫 창조는 인간(아담)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무효화된 것이므로 새롭게 인간을 창조하시지 않으면 안되었으니 고로 하나님의 안식이라면 두 창조를 동시에 거론해야 하는 것. 따라서 하나님의 안식은 첫 창조를 마치신 후의 안식만 아니라 새 창조를 완성하신 후의 안식을 함께 의미하게 되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처음 창조의 안식(쉼)으로 상징되는 바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하고 섬기는 1주 중의 하루>의 의미가 인간의 범죄와 죽음으로 인해 불가피해진 새 창조(현재까지 진행 중)의 결과로 나타난 바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영원하고도 정상적인 삶>으로 최종 종결되는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측면의 의미는 이 글(17註ㅡ이미 위에서 소개한)의 말미에 가서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요일이 수요일이냐, 금요일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다시 언급이 되겠지만 '유월절 안식일'과 '일반 안식일'과의 관계에서도 뚜렷이 드러나게 되므로 마땅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유대'인들은 매주 토요일 안식일(일반 안식일) 외에도 또 다른 안식일을 지켰으니, 즉 유월절로써 시작되는 무교절(無酵節)(누룩 없이 만든 떡을 그 일주간 먹는다)의 일주간(7일)에서 그 첫날은 그것이 그 주의 무슨 요일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안식일이었던 것이다. 이래서 이 경우의 안식일을 설명 편의상 '유월절 안식일"이라 부른다. 


일반 안식일이 있고 유월절 안식일이 별도로 있는 것은 위의 설명처럼 첫 창조와 새 창조가 구분되어 있고 따라서 첫 창조로서 끝난 것이 아니고 [메시아 예수님(마, 막, 눅, 요 복음서 한꺼번에 보기)ㅡ2 • 63] 메시아로 인한 새 창조의 과업이 수행 중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무조건 첫 창조의 안식일 휴식에만 매달려 이 새 창조의 의미를 무시해버림에서 오는 마찰이 이상 대목들에서 보는 바와 같은 안식일에 대한 여러 차례의 주님과 '유대'인들과 충돌로 나타난다. 그 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 또는 설명을 시간 대별(時間帶別)로 나타난 사건의 전후 순서를 무시하고 여기 모두 한데 모아 편집해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요약된다. 


즉 모세 율법을 통해 나타난 이 안식일 개념은,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이 모두 자아중심이 되어버려, 조물주 하나님이 그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위하시고 우리 피조물은 조물주 하나님을 위하게 되어 있는 이 생명의 기본 원리, 삶의 질서를 어김에서 범죄가 유발되어 모든 인생들이 이 자아중심 일변도로 변하였으므로, 이와 같이 하나님을 위하는 생각이 조금도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위함이 인간 삶의 근본 도리임을 외형적으로나마 가르치는 데에 그 기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 자신을 위한 일체의 일은 중단하고 오로지 하나님을 섬기는 날로 정하신 것인데 그러나 이는 초보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것이고 실상은 일주 단 하루만 아니라 일주 전체, 우리의 삶 전체, 영원한 생명 자체가 하나님을 위하는 (동시에 이웃을 위하는) 것이어야 함을 이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명백해졌는데도, 이를 알지 못한 '유대'인들과의 알력인 것이니 이를 예비 지식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내가 이웃을 위한다는 것은 내 이웃 역시 자기 이웃인 나를 위하는 의미가 되므로, 실은 나 자신이 위해지는 것이요 따라서 전체로서의 우리가 다 함께 위해지는 다 같이 행복해지는 최고도의 삶의 지혜인 것이다. 이와 같이 안식일 개념이 하나님의 처음 창조만 아니라 새 창조도 아울러 포함하는 까닭에,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그 새 창조가 지금 한창 진행 중임이 명료해진 이상, 현재는 모두(모든 피조물이-롬 8:22)가 달려들어 일하는 시기로서 안식은 이후의 일이 되어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의 모든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사업 일색으로 곧 사람 살리고 건져내는 일뿐이요 따라서 새 창조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시기이므로 이전처럼 특정한 날을 정하여 안식일이라 선포하고 그 날에만 주님의 일을 하는 날로 정하는 것은 '유대'교와 같은 종교의식으로나 의미가 있을 뿐이지 우리 시대에는 전혀 해당되지도 않는 무의미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주 1일만 주님의 것이 아니라 7일 모두가 주님의 것이요 10의 1만 하나님의 것이 아닌 즉 10프로만 아니라 100프로 모두가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나고 새로 삶을 출발시키는 것은 과거 나 자신이라는 존재가 죽었고(그리스도와 함께)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하는(그리스도께서 바로 나를 위하시므로) 삶 일변도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일체의 구별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구별이 있다는 것은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해 사신다는 그것뿐이다. 이 구분만이 유일한 것이다. 


제 3일에 즉 사흘만에 부활하신 이유 


이 두 가지 의미의 안식일 개념이 주님의 3일만의 부활에서도 드러난다. 왜 꼭 "사흘만"일까. 단 하루만에 살아나셔도 되는 일이다. 이 또한 부활과 기타 성경 기록이 인간이 무턱대고 지어낸 이야기가 아님을 웅변하는 성경의 진실성의 자체 증명이 되어 있다. 부활이 사흘 동안이나 지체했다는 거짓말보다 단 하루만에 금방 살아나셨다는 거짓말 쪽이 더 능력 있음 직하게 보일 것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일부러 어떤 의도가 있어 "사흘만"이라고 설정했으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사흘"이라고 한 데에 대한 그럴싸한 설명이 붙게 마련이다. 부활이 거짓말이라고 가정하면 말이다. 그러나 일절 그런 설명이 없다. 이런 것이 바로 성경의 진실성의 자체 증명이라는 것이다. 


왜 3일만인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새 창조와 첫 창조와의 관계를 이로써 설명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월절 양의 죽음이 상징하는 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써 이제 우리는 새 창조를 입어 새 피조물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들(養子)이 된다. 새 창조가 필요하게 된 것은 첫 창조에서 인간의 범죄 행위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차질이 빚어진 까닭이다. 모든 인간이 죽음에 이르고 멸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득불 새롭게 인간을 창조하시느라 하나님께 [메시아 예수님(마, 막, 눅, 요 복음서 한꺼번에 보기)ㅡ2 • 64]서는 안식하시다 말고 새롭게 일에 뛰어드신 것이다. 


그래서 일을 마치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신 것처럼 새 창조의 일이 완수된 것이다. 그것이 유월절 안식일의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새 창조의 일을 완수하시고 안식하신 것이다. 그것이 목요일인데 즉 수요일 저녁에서부터 시작하여 목요일 저녁까지의 하루 동안이 그 안식일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오는 것이 금요일로서 평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토요일이므로 '일반 안식일'이다. 이 안식일은 말할 것도 없이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6일 창조를 마치신 이후의 하나님의 안식을 상징함이다. 묘한 것은 그리고 여기서 의미 심장한 것은 이 두 안식일 사이에 평일 금요일이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래서 하루, 이틀, 사흘이라는 의미가 된다. 즉 안식일 하루, 평일 하루, 그리고 다시 안식일 하루이다. 그러나 이 두 안식일이 그 의미가 아주 다른 것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새 창조와 첫 창조의 차이다. 새 창조는 인간에 대한 것으로 한정되어 있고 첫 창조는 대체적인 즉 일반적인 창조이다. 하나님의 안식 측면에서 볼 때, 새 창조가 먼저 오고(첫 창조가 망가졌으므로 이를 보완한 후) 그래서 이를 완수하신 후 쉬신 그 다음에야 일반적인 창조(먼저 있었던)의 안식이 오는 그런 순서가 합당하기 때문이다. 이 배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총체적인 창조는 이미 6일 창조로 끝난 것이다. 그래서 7일째는 쉬시는데 불행히도 다시 새 창조로써 일을 새로 시작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벌이진 것.


그래서 이 새 창조가 끝남으로써 진정한 총체적 의미의 전체 창조의 안식이 이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즉 새 창조가 완결됨으로써 이전의 그 총체적 창조의 대단원이 비로소 종결됨이니 그래서 새 창조의 안식이 먼저 오고 나중에 총체적인 창조가 비로소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의미이다. 원래는 이렇지 않은 것이다. 인간 범죄만 없었더라면 새 창조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안식도 한번만으로 끝났을 일이다. 그러나 인간 구원이라는 새 작업을 완수할 절대적 필요성에서 새 창조가 시작되고 그리고 그것이 완결됨으로 인해 거기 따른 안식(하나님의 창조 작업이 완수되었음을 고하는)이 필요하게 된 것이고 이것이 이렇게 완수됨으로써 이제 다시 그 총체적인 창조가 처음으로 그 완전 종결을 고하게 되므로, 주님 부활의 그 사흘 기간에 이 '일반적 안식일'이 개입해 있음으로써 상징하는 의미가 이렇듯이 크다. 


중요한 것은 다시 말하지만 그 두 안식일 사이에 끼인 평일(금요일)이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평일은 안식일과 대비해 볼 때, 더구나 이 두 안식일 사이에 끼인 그 성격상, 분명 그것은 쉬는 날이 아닌 "일하는" 날로서의 의미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새 창조의 과업은 종결되셨으나 그러나 대단원의 창조 즉 총체적인 창조가 종결되어 끝나기 전에 아직도 여전히 "일하는" 기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함이다. 이것이 바로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그 몸된 교회를 통하여 일하시는 바로 오늘날의 이 세상에서의 교회 기간이 가지는 의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아들들이면 당연히 아버지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 그 상속자된 도리이자 의무이고 받은 바 특권이다. 우리 자신 하나님의 이 새 창조로 말미암아 새로 난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됨으로 인해 이 아버지의 새 창조의 일 즉 하나님의 아들들 탄생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남으신 고난을 우리 각자의 몸에 채우는(골 1:24) 일차적 의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고난 받으신 날은 천하없어도 반드시 수요일이어야 하는 것이며 수요일이 '유월절의 예비일'에 해당되어지는 해에 돌아가시도록 모든 것이 짜여져 있었던 것이다. 


왜냐면 그렇게 해야 위의 설명대로 유월절 안식일 후의 평일 그리고 그 다음의 일반적인 안식일이라는 순서와 배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안식일과 평일의 배열 또는 위치가 평일, 일반 안식일, 유월절 안식일이 되어도 안되고 유월절 안식일과 일반 안식일이 겹쳐져도 안되는 것. 일반 안식일이 먼저 오고 그 이후에 유월절 안식일이 와도 안된다. 그렇게 되면 그 의미가 어떻게 되는가 하면 일반 안식일이 가리키는 바 총체적인 창조가 전부 무효화하고 새 창조가 전부를 차지하는 것과 같이 되어 버리기 때문. 이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총체적인 것은 그대로 두고 오직 인간만을 새로 창조하시어 손보심으로 그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창조라 하더라도 온통 모든 것을 다시 창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창조의 안식은 잠깐 유보하시고 먼저 새 창조 즉 인간을 새 피조물로 만드시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짐으로써 비로소 총체적인 창조가 종결되는 그런 형식을 취해야 제대로 된 순서이고 과정이다. [메시아 예수님(마, 막, 눅, 요 복음서 한꺼번에 보기)ㅡ2 • 65] 그래서 반드시 유월절 안식일이 먼저 오고 먼저 오되 그 후에 반드시 평일이 끼어 있어 "일하는" 기간이 상징되어야 하고 그리고 총체적인 창조가 종결되어 안식을 맞는 그런 상징성이 충분히 완벽하게 나타나 있어야 하는 것. 따라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도 그런 의미에서는 안식일이어서도 안되고 반드시 안식 후 첫날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유월절 안식 후 첫날이어도 안되고 유월절 안식일을 먼저 보내고 일반 안식일도 마친 그 첫날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앞서 설명한 유월절 안식 후 평일(일하는 날)의 의미가 강조되기 때문이다. 유월절 안식일과 일반 안식일의 순서대로 그리고 그 둘을 겸하여 모두 종료한다는 것은, 새 창조이든 총체적 창조 즉 첫 창조이든 모든 창조의 주체이신 조물주로서 이제 필요한 모든 창조를 끝내시고 안식에 들어가심 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리고 이 두 안식을 종료한 후 첫 날이라야 하는 것은 "일하는 평일(두 안식일 사이에 끼인 그 '3일' 안에 포함된 평일)"로서의 의미를 살려 하나님께서 계속 그 교회를 통해 일하심을 상징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구원의 작업 즉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 모두가 구원되고 끝난 다음에는 최종 안식이 선포되는데 그 때가 오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제까지도 일하시는" 것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들"(고전 3:9)이라 한 것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고후 6:1)라고 표현된 그대로다. 우리가 새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있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하나되어 계시므로 총체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여기서 "안식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작업을 종결하셨다는 의미이다. 더 다시 창조의 일을 하 실 필요가 없다는 뜻인데 그런데도 일하는 "평일"이 오는 것은 그렇게 종결되어 완성된 창조 작업을 기반으로 하여 나머지 정리를 하는 작업 기간이라 할까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된> 구원을 터전으로 하여 사람 살리는 일을 하심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단독으로 하시는 창조 작업은 끝냈고 이제는 그 피조물인 우리 구원된 사람들(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하고 있는)과 함께 일하심이니 창조를 위한 작업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창조"는 하나님의 단독 행위의 영역이기 때문. 피조물인 우리가 동참하게 되는 작업은 하나님 친히 함께 하시는 작업이기는 해도 창조의 일은 될 수 없으니, 하나님의 6일 창조가 끝난 후 아담이 계속 인간들을 배출시키는 작업을 한 것과 같은 속성의 일이기 때문이다. 단 여기서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신다 함은 하나님의 아들과 내가 하나됨으로써 이루어진 구원이므로 우리 홀로 일하는 것이 없고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일이 되어 있음이요(하나되어 있음을 인해)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하나되어 계시므로 아버지 또한 움직이시는 일이므로 총체적인 "하나님의 일"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이 일을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벧전 1:12)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이런 오묘하신 섭리와 경륜은 사람이야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고 모든 것이 이와 같이 빈 틈 없이 아름답게 제대로 된 이치를 따라 짜여져 있음을 우리는 그 한 귀퉁이나마 이렇게 잠시 들여다보고 맛보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필자는 예수님 부활의 이 "3일"이라는 '구조'에서 3운법칙의 '특이한 구조'를 불가불 연상하게 된다. 왜 3일인가ㅡ유월절 안식일 이후의 평일 그리고 이후의 일반 안식일 그리고 이후의 평일("안식 후 첫 날")이라는 이 합리적인 순서는, 왜 3운법칙에서 FS형에는 없는 JP가 OT형과 SN형에는 있고 왜 SN형에 유독 특이하게 19라는 숫자가 작용하는가, 그리고 왜 FS형은 7등분되고 OT형은 3등분되어 반듯한 형태를 취함에도 SN형만은 그와는 전연 다르게 나타나는가 등등에 대한 오밀조밀한 설명과 유사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지으신 삼라만상이 그 합리성을 결한 데가 단 하나도 없다, 원인 없는 결과가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할까. .......................................................................................................


위의 유월절 안식일과 일반 안식일에 대해서는 토래이(R.A.Torrey)박사의 글을 참고하였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