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리/진리의 증언자·證言者

도는 "회개하라"이지 "믿으라"가 아닌 이유

Tayseek Kwon 2019. 4. 4. 11:11





도는 "회개하라"이지 "믿으라"가 아닌 이유




영생하던

(죽지 않던, 죽을 것으로 예정되어 있지도 않았던-롬 5:12) 아담이

범죄함으로써 영생을 잃게 되어 지금 우리가 구원 받으려는 것인즉

아담이 그 죄를 회개해야 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지은 모든 죄와 악을 회개해야 

구원의 초입에라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회개하기로 작정이 되어 있는 자에게만

메시아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 적용되는 것.

죄를 버리겠느냐 않겠느냐 하는 우리의 의지와 결단을

묻는 것이 그러므로 상식일 수밖에 없다. 

영생에 이르는 일에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전도가 합리성을 띠게 된다. 


"인간이 범죄했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고가 왔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니

(현재의 비참한 인생 처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됨이다)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들되는 방법으로 영생하게 하십니다" 등.  

"회개하라"에는 반드시 현재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에 대한 

설명 역시 뒤따르게 됨은 당연한 것.


그냥 "당신 죄인이니까 죄인인 줄 인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이다" 하면

논리에도 맏지 않고 구원 받은 기쁨도 평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왜 논리에 맞지 않는가 하면

영생하게 하시려고 인간 아담을 범죄하도록 방치하셨다는

의미밖에 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 의지로써 범죄하여 이 불행을 초래했은즉

역시 우리의 자유 의지로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필요하고 

바로 이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 회개하라는 명령이신 것.

어쨌거나 그런 불합리한 전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만은 확인하였은즉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순종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응했고

그것은 고의적인 범죄를 하지 않는 것으로 통했기 때문에

구원 얻음에는 그동안 아무 하자가 없었다 하겠으냐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심각한 걸림돌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회가 이런 사실을 방치해서는 안될 일이다. 


과거에는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개념 정립이 되어 있지도 않았다.

따라서 의와 선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막연한 주먹구구식이었다.

단지 하나님의 계명과 그 뜻을 어기는 것으로만 

추상적으로 알아 왔으니

그 증거를 "십자가 지는" 것이라든가 "자기 부인"을

교회 강단에서 충실하게 설교하는 예가 극히 드물었다는

현실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생명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 죄요

하나님을 머리로 모시고 모두 한 몸의 지체됨이 생명이니

자기를 위하지 않는 것(자기 부인)이 선이요 의이며

그 반대로 나가 자기를 위해 사는 일체가

죄요 악인 것이다. 

이런 이기주의는 세상 사람 즉 비신자도 타기/혐오하는 바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적당주의로는 안되고

철저하라는 것이다. 법조문을 지키듯이ㅡ. 

단 1%라도 자기를 위함이 있을 때는 팔이 안으로 굽듯이

그것은 빙산일각으로 통하여 100프로 자아중심인 것.  

법은 원래 타협이 없다. 지키면 지키는 것이고 

안지키면 안지키는 것이다. 그 위법에는 처벌만 뒤따른다. 


사랑의 법이기 때문이다. 

법정신이 사랑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한 점의 가식도 거짓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