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의 원리(3위1체 법칙)/짝의 원리(3위1체 법칙)

3위1체의 원리(만유의 존속 법칙)을 통하여ㅡ

Tayseek Kwon 2019. 4. 1. 15:31




3위1체의 원리(만유의 존속 법칙)을 통하여ㅡ



초자연계의 실존을 주지시키려 노력하는 이유



애초 창조하시던 대로의 정상적 인간 삶의 원리인 한 몸 체제로서 전개되는 초자연계 몸의 초자연계 이상향인 천국("하나님 나라", "하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로 성경은 처음부터 명시해 왔다)에서는 머리를 비롯해 나를 상대하는 모든 이웃이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 몸 구조에서는 다 하나로서 너와 나의 구별이 없기 때문. 손, 발, 머리, 다리 모두가 제각기 다르면서도 한 몸으로 결집되어 있음이다. 눈, 코, 입 등의 너와 내가 결코 같지는 않지만 하나, 한 몸으로서 기능하는 까닭에 그러하다.


머리로서의 마지막 아담께서는 바로 그 증거(모두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에 대한)로서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다 바치셨으니(갈 2:20) 곧 나를 위하신 십자가 죽으심이다. 우리를 위한 죽으심이나 하나님이시므로 또 동시에 사람이시므로 '우리'와 '나'에 똑같이 통하시는 유일한 사람이신 것. 사람은 육체가 하나뿐이라 사람을 사랑해도 자기처럼 된 한 사람만 사랑하지 여러 사람을 상대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이시므로 여러 사람을 그와 같이 하나처럼 한 사람처럼 다시 말해 나만 사랑하시는 한 사람으로서의 관계를 그 수가 얼마가 되든지 간에 각자 모두에게 두루 통하시는 의미가 되실 수 있다. 때문에 바울 사도는 "나를 사랑하시어 나에게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갈 2:20) 안에서 산다 한 것이다. 그런즉 나 자신의 삶의 확장, 확대, 극대화이다. 이웃이 천명이면 천 배의 다종다양한 삶을 살고 1억이라면 1억 배의 다종다양한 나 자신의 삶을 향유함이다.


이 자연계 몸의 외톨이 삶에 비하면 좋아서든 놀라서든 입이 벌어지고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머리되시는 주님께서 자신을 나를 위해 바치시고 선물로서 통째로 주신 마당에(갈 2:20/요 4:10/행 2:38) 다른 내 이웃들이야 자기 자신들을 나를 위해 전용(專用)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 자신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시기 때문에 나의 소유가 되시어 나와 함께 지금 계신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소유하셨으므로 나와 함께 사시는 양면성의 동시성.


전도하는 것도 알고 보면 "잃은 양" 하나라도 찾으려고 두루 헤매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의 손이 되고 발이 될 사람을 찾아 다니는 의미가 된다. 그러면 결국 자기를 위하니까 이기주의가 아닌가 하겠으나 핵심은 항상 양면을 동시에 의식함이다. "어렵다, 어찌 동시에 생각함이 실제 가능한가" 할 것이나, 여기서도 양면성으로서의 주종, 대소, 선후, 인과 관계가 작용된다. 즉 양면성이지만 대등하지 않다는 것이니 역시 머리와 몸의 관계다.


그러므로 상대를 위함은 머리 부분이다. '인'(因)이다. '인'은 항상 '인'일 뿐이지 '과(果)'의 색채를 띠는 법이 없다. 그러나 머리 홀로가 아니니 몸이 있음으로써 머리가 비로소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인즉, <동시에> '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 이런 것이 동시 작용이다. 고로 항상 나를 위하지 않는다는 일념으로만 동기 설정이 되고 결코 남을 통해서 내가 위해진다는 그런 의식이 행동의 목표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 아담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해 목숨을 버림이니, 이를 내게서 빼앗는 누군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버린다.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다'(요 10:17, 18) 하신 것이다. 만일 "생명을 버리심"과 "생명을 얻으심"이 대등한 것이었다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끝까지 망설이시고 두 틈바구니에서 고민하셨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예수님의 행보를 살필 때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직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제게서 옮겨주십시오. 그러나 저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하신 것이 전부다(마 26:39). 그 기도하시기 전에 또한 제자들에게 고민하고 슬퍼하셔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기까지 하셨다(마 26:37,38/막 14:34).


얼마나 진솔하신 심령의 피력이신가. 한 인간으로서의 죽음 앞에 임하는 얼마나 진실된 가식 없는 고백이신가. "다시 살아날 것이니 아무 거리낄 것도 없다" 하시지 않았다. 이 역시 성경의 진실성의 자체 증명인 것이다. 그 부활하심이 지어낸 것이라면 일견 이런 잣단 내용을 삽입해 넣을 이유가 없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4복음서 저자들이 서로 약속이나 하여 짜맞추기도 하듯이 일제히 그런 모습을 그려놓은 것도 아니다. 오직 마태와 마가만 기록했을 뿐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젊은 요한도 그 대목은 무시해 버렸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은 바로 이 두 틈바구니에서 머리되는 부분을(몸이 아닌) 끝까지 붙들고 충실히 놓치지 않으시는 아들의 그 점 때문임을 친히 밝히신 그대로다. 아들의 뜻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없다면 그것은 기계이다. 내 뜻이 있지만 내 뜻을 거두고 나의 상대를 위하는 즉 "나 자신을 위하지 않고 내 이웃을 위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구원 얻게 하는"(고전 10:24, 33ㅡ바울 사도가 여기서 거듭 강조하는 것을 보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함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터전이 되는 것(8:3).


이런 풍성한 삶을 코 앞에 두고, 이 세상 한 때뿐인, 내일도 보장받지 못하는, 목숨이 오늘 이 시간만일지도 모르는 자연계 삶에 코를 박고 지낸다는 것은 참으로 "미친 마음"(전 9:3)이 아닐 수 없다. 남이 80을 살았으니 나도 80은 살리라고 자신을 우격다짐으로 속이고 사는 궁색함이다. 식욕 다음에 성욕이란 말이 있는데 이 역시 그렇다. 왜 남녀 사이가 그런가 하면 원래 아담 홀로 존재하다가 아담의 육체(갈빗대 하나)로부터 여자가 분리됨으로써 존재하게 된 까닭이니, 3위1체 원리에서 갑, 을, 병 관계다.


애초 홀로 있던 것으로부터 다른 하나가 파생됨으로써 그 둘이 당초 하나로 존재하던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귀소성(歸巢性)인 것이다. 이유가 그것뿐이다. 다른 아무 신비한 것도 불가사의한 것도 없다. 남자에게서 여자가 나오지 않았다면 애초 그런 남녀간의 욕구도 있을 까닭이 없다. 천국 곧 영원한 이상향에서는 남녀 구별이 없으니 그런 동물적 욕구도 없다. 그 대신 그 근본 이치는 여전한 것이니, 왜냐면 아담은 그 육체를 여자에게 그리고 여자를 통해 그 씨들에게 물려주었지만, 우리가 모신 분은 마지막 아담으로서 육체와 상대적인 의미의 영의 근본이시기 때문.


자연계에 속한 육체의 귀소성이 그러하다면 초자연계 영역의 영의 귀소성은 더 완벽하고 더 오밀조밀하고 더 이상적일 것임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육체의 귀소성은 억지로 비교한다면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즉 지혜자 솔로몬이 결론적으로 말한 대로 이 세상 자연계 삶은 너무 헛되어 "바람을 잡는"(전 1:14) 격이니, 깨끗이 단절하고 이웃을 위해 보람찬 사람다운 일, 즉 영원 멸망으로부터 건져내는 구출작업, 구출작전을 펴는 것이 영원을 두고 후회할 것이 없고 오히려 보람찬 전생(前生, 즉 그 때 세상에 가서 추념해보는 이 세상)을 보냈다는 자부심에 겨워서도 그 행복감은 끝이 없으리라.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하지 않았는가.


참고로, 성경에 네피림(창 6:4/민 13:33)에 대한 언급이 있다. 악령들의 일부가 그 초자연계 몸의 초능력으로 사람의 육체로 스스로를 변환시켜 남성으로 화(化)해 인간 여자의 육체와 결합하여 자식을 생산함으로써 생긴 인간 별종을 말한다. 여기서의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함은 하나님 친히 직접 창조하신 것을 뜻한다. 인간이나(아담만은 제외하고) 자연계 동물은 낳고 낳는 과정으로 통해 간접적 창조에 속하지만 아담이나 에덴동산의 영물들은 하나님 친히 만드신 존재들인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면 그들은 아담과는 별개인데 여자와의 어떤 관계로 그리하였던가. 인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간은 전술한 대로 귀소성이 있어서이나 이 악령들은 성경이 밝히는 대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를 삼았다" 한 그대로다. 자연계에 속한 사람의 육체의 방법대로 해보고 싶었던 것뿐이다. 이 일에 사탄이 선두를 섰다(창 3:15). 곧 세상에 등장하게 될 적 그리스도가 바로 그의 자식인 것이다(:15/계 17:8). 세상에서 말하는 환생, 전생이란 것은 이런 네피림의 장난인 것이다.


사탄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은 인생들을 보다 효과 있게 속이고 시험하고 장악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사탄이 이 짓을 감행하는 것을 따라 다른 악령들이 저지른 짓거리인데 이들은 이런 불법 행위를 인하여 마지막 심판 때까지 무저갱(bottomless pit)에 유폐되어 있는 상태다(유 1:6,7). 사탄만은 이 세상의 신(神)이요 지배자라는 점에서 유보되어 세상에서 시험하는 자로서의 역할을 하다가 그리스도 천년 통치 기간 중에야 들어가게 된다. 그 대신 그 자식이 무저갱에 들어가 있다가 이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모두 희대의 아니, 세계 제일의 성인 군자라고 칭송하게 될 것이나 실상은 인류 최대의 사기한(詐欺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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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든 알림 마당을 개설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출생하여 새로 창조됨으로써 영생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길잡이가 되려는 오직 하나의 목적밖에 없습니다. 온 세계인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언어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시급하니 영어에 능통하신 분은 자원 봉사로(지금 능력으로는 사례비를 드릴 수 없어) 적극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방면에서만 아니라 기타 여러 모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도움의 손길을 뻗쳐주셔서 사람을 갱생시키는 좋은 일에 함께 힘을 보태십시다. 이 목적을 위해 www.hahahehehihihohohuhu.com 을 설치했습니다. 사이버 주소가 기억되기 쉽도록 영어 모음 aeiou에 웃는 소리가 나는 h를 덧붙이는 별난 방법을 택했습니다. "바르게 영원히 사는 회개 운동(바영사운)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렇게 믿음의 동지들이 모이면 그것이 소박(素朴)한 교회 활동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이면 내가 거기 있다" 약속하셨고 "두 사람 이상이 합심하여 기도하여 구하면 내가 응답하겠다"고 또한 약속하셨습니다. 때가 촉박하고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우리로서(고후 6:1) 힘을 결집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