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의 원리(3위1체 법칙)/짝의 원리(3위1체 법칙)

만법 귀일(萬法 歸一)의 귀처(歸處) ㅡ 3위1체의 법칙

Tayseek Kwon 2019. 4. 1. 08:44





만법 귀일(萬法 歸一)의 귀처(歸處) ㅡ 3위1체의 법칙









3위1체 법칙ㅡ외곬으로 판단하는 편견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처방전





"자력 갱생"은 인간의 힘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님.

처음 창조에서나 새 창조에서나 피조물 스스로 자기 능력으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함은 상식.

창조주께서 생명을 주심(선물)으로써 비로소 살 수 있는 것이니 자기 능력이 아님.

인간의 재(再) 출생, 새 창조에서도 마찬가지. 

같은 선물이라도, 새 창조의 경우 "은혜"라 함은 

아담의 범죄로써 모든 인간이 죽은 자가 되어 있고 또한 모두가 현행범으로서 죄를 짓고 있는데도

그래서 정식으로 원칙으로 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 친히 나를 사랑하시어 나 위해 사람 되시고 나 위해 죽으심으로써

영원히 나를 위해 사시는 위치로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

고로 아무리 내가 내  의지력으로 이 세상에서 "산 자"로서의 일을 만족스럽게 해내어도

나를 사랑하시고 항상 나와 '둘이 하나되어' 계시는 나와 함께 사시고 일하시는 능력 때문이지 

내 자신의 능력이 될 수가 없는 것.

이것이 3위1체 법칙의 사랑과 삶의 원리에서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함으로 '둘이 하나됨'임.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 하는 것.

왜냐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바치신(영원히 나의 소유로서 내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갈 2:20)이기 때문.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함과 같다.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거니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 15:32) 한 것이다. 내가 죽는 것이 자랑이요 그래서 날마다 죽는다고 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와 같이 죽음을 초탈하는 죽음을 딛고 발로 밟는 인간 승리의 개가를 울려 낸 역사가 있던가.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희소식(福音, 복된 소식)이 크게 왜곡, 곡해되어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만 강조하여 구원의 "양면성과 동시성"의 진리가 무시 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리하여 "항상 순종함으로써 두렵고 떨림으로 각자의 구원을 어루라"는 엄중한 경고가 외면 당하는 혼돈 속에서 

이 색다른 메세지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 의지ㅡ의지력은 누구도 간섭하거나 강제 못하는

인간 각자 고유의 영역이다.

유일한 "자력(自力)"이다. 

삶과 사랑의 원리에서 상대를 사랑하고 위하는 그래서 자기를 위하지 않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양면성과 동시성"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과 반드시 병행하고 병존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오늘날 기독교계는 3위1체의 법칙을 따라 "두려워하고 떪"을 다시 배우지 않는 한 여망이 없다






왼쪽은 3위1체 법칙의 도식, 오른쪽은 그 도식을 빼닮은 3운법칙의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