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물질 축복 운운" 하면 타락의 지름길이지요.
사탄은 여기서 교회의 급소를 찔러
오늘날까지 빈사 지경에까지 몰고 간 것ㅡ
인간의 범죄 때문에 모든 피조물마저 함께 고통
(고통 중에도 최고 강도인 산통, travail, pangs-계 12:2)
중에 있는 것은 하나님 친히 아직도
(대칭아담이신 "아들"과 하나되신 "아버지"이시므로)
"남은 고통"(골 1:24/행 22:7) 중에 계시기 때문이지요.
창조주 친히 고통 중에 계시는데
감히 피조물이 더군다나 고통의 장본인인 인간이
편안하게 지내겠다고 물질 축복 운운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최소한의 먹을 것, 입을 것 있으면
족하게 여기라 했고 (왜냐면 이 죄 많은 곧 멸망 당할 세상에서는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각자 화급하게 구원받고
자기 구원받은 다음에는 다른 사람 구원해내기가 바쁘니까ㅡ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니까)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로써 만족하라 가르친 것이지요.
이것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는 결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즉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경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도들의 가르침이요,
이 가르침을 따른 것이 초대교회의 무소유/無所有주의지요(행 4:32).
즉 아무도 자기 재물을 자기 소유라 여기지 않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만 힘쓴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넘기고는 오늘날까지 기독교 교회가
이 증인 역할 곧 전도(witness)의 최대 장점이자 강점을 상실하고
한 번도 실천해본 적이 않고 그냥 내다버려
자승자박의 비극을 연출해 온 것임을 자각해야지요.
단지 세상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오직 교회 역사가들에 의해서만 부분적으로 알려진 교회
(예컨대 "발도/Waldo"파)만 그 "무소유"를
그러니까 극소수의 교회 집단에 의해서만
최소한 종교 개혁 당시까지 실천해 왔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개신교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 개신교에 흡수당해서 그런지 이후로는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①최우선적으로 구원 받야야 하고
②천국에 들어가는 자격 유무가 저울질되는
이 두 가지 의미밖에 없는 세상인데, 정신나가도 유분수지
감히 물질 축복 받아 한 세상 잘 살겠다고 해요?
그 "축복받아 잘 사는" 것이 내일까지 보장 받아요?
오늘 밤에 끝날 수 있는 기약 없는 인생 한평생 아닌가요?
영아 시절에 죽고, 10대, 20대, 30대 등 짬이 없어 죽어 나가는 등
하나님의 경고가 빗발치듯 하는 안개 같은 인생이잖은가요.
영생과, 내일도 기약 못하는 찰나적인 이 세상 목숨과,
맞바꾸자는 심산인가요?
살려면 범죄 전 아담의 휘황찬란하던
그래서 대칭 아담이신 주님께서 그 부활로써 입증해 보이신
초자연계 몸으로서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살아야지
왜 이 썩어질, 초라한 자연계 몸뚱이 가지고 살려고 그래요?
그래서 아담의 범죄 전 영광스러운 초자연계 몸을 강조하는 것이고,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인생이 모두
"미친 마음을 품었다"(전 9:3)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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