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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록>

Tayseek Kwon 2018. 8. 25. 06:53




이 세상에서의 죄의 결말도 이처럼 처참한데

이 세상과 대칭이 되는 영원세계에서야

이루 입에 담을 수도 없음은 자명합니다.

빌립도 간수에게처럼 이 하나님의 위엄을

전도 대상자에게 알려야 합니다. 

고통 중에 기절, 까무러치는 것은 외려 복입니다.

충격의 한계를 넘어 미쳐나감도 사치에 속합니다.

자기 목숨 끊는 것도 이 세상에서만 통합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 보듯

오는 영원세계에서는 "내 혀끝에 물 좀 축여달라"

했듯이 고통은 100%로 감지하면서도

의식은 멀쩡한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오릅니다.


이 한세상 70년에 강건하면 80일지라도

장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영원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판단하고 또 판단하라 함이니

이 영원 멸망에 대해 충분한 대비 검토 시간으로서

주신 것일 뿐이지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미처 생각 못했으면 내일이라도 생각하라는 것,

오늘 회개할 기회를 못찾았으면

내일이라도 회개할 기회를 빨리 찾으라는 뜻뿐입니다. 

그런 의미의 집행 유예가 하루 이틀 쌓아거서

일평생을 훌쩍 넘기면 오직 그 때는 <무자비>

오직 무자비/無慈悲ㅡ 이 한 마디뿐입니다. 

자다가 꿈에서라도 소스라쳐 벌떡 일어날 일입니다.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