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정신(공익·共益)으로 살아야

이순신 정신

Tayseek Kwon 2020. 1. 23. 09:55






이것이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기뻐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이 모자의 위치에 함께 있어 주어, 함께 <인생의 의미>를 나누는 것이 인간 상식이다. 
이 모자는 기구한 팔짜이고 나는 호팔짜라고 생각하는 이는 인생을 살 자격이 없다. 
인생을 모르니까ㅡ 모르고서 어찌 인생을 산다 하리요. 
자연계에 속한 인간 육체의 비극ㅡ아, 이 비극에서 탈출하는 것만이 시급한 그리고 유일무이의 과제다.  
석가(고타마 싯달다)는 인간의 이 생로병사를 보고 깊이 탄식하여 그 원인과 해결책을 갈구하여 출가했다.
그러나 그 처절한 구도, 진리 탐색의 여정이었건만 겉돌기만 하다가 마쳤다. 
겨우 생각새낸 것이 이 자연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번뇌, 인간고로부터 탈피해보려는 피상적 궁여지책이었다.
인간이 원래 초자연계 존재였다가 이 자연계로 전락해버린 내력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음을 당시는 몰랐기 때문ㅡ초자연계로 환원하면 간단히 끝난다.

그 방법은 마지막 아담으로 말미암는 재 출생, 새 창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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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사적지 부산 동래성 북문(北門)의 인생 교훈


임진왜란 당시, 부산 동래성 북문을 통해 하나는 목숨이 아까워 도망쳐 나갔고(경상 우병사 이각), 다른 하나는 연로하신 어머니께 절하여 마지막 하직 인사를 고하고는 사지(死地)로 뛰어들어 동래부사 송상현과 합류해 전사한다(양산 군수 조영규). 이각은 도망 가다가 붙잡혀 도망자로서 결국엔 처형되어 후세에 길이길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조영규는 청사(靑史)에 그 떴떳한 이름을 빛내게 된다. 인생 삶의 명암이 교차했던 유적지다. 


조영규가 승전 없는(승전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도망치던 경상우수사 원균과 대조적으로 왜선 10척을 쳐부수었다는 그의 장계는 조정을 기망한 것임이 드러났으니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적과 조우했을 때에는 아군의 피해도 분명히 있어야 하거늘 전연 언급하지 않은 것 자체가 이를 증명) 죽음뿐임을 뻔히 알면서도 필마단기로 (이미 부하 기백명은 1차 입성 때 성내에 남겨졌고 노모님께 하직 인사를 고하고자 해서 일단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2차 입성에서는 혼자였다) 북문으로 치달으며 이미 성을 포위하고 있는 왜병들을 노호 질타하면서 성문 앞 가까이 이르자 왜병들도 감복하여 순순히 길을 열어주었다고 전해진다. 







"악령들"이니 "천사들"이니 해도 생소하고 어색한데 "귀신들"까지 들먹이니 요괴스럽다 할지 모르나, 그러면 성경에 "더러운 귀신"들을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도 요사스럽다 할 것인가. 그래서 인류 역사를 사탄의 기만사(欺瞞史)라 하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 살아 오며 꾸며진 내력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생들로 하여금 그렇게 살도록 하신 것도 아니고(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주 내에서 이뤄지는 일이지만), 이 세상 신(神) 사탄이 어떻게 인간을 속여 왔는지(계 12:9) 그 자초지종의 과정을 나타내는 기록들인 것이다. 처음 에덴낙원에서 아담 부부를 속인 데에서 발단된 역사이고 자연계 몸에 속한 인간 비극의 인간고(人間苦)이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들에게는 귀신의 초능력을 과대 포장하기까지 해서 공포에 떨게 하는 사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 전파되기 시작하면서는 무신론을 만들어 내어 "귀신"에 대한 언급을 미신화(迷信化)함으로써 성경("귀신"을 말하는)의 품격을 떨어뜨리기에 혈안이었던 것이다. 이런 것은 이중 잣대도 자가당착도 아니고, 속이고 거짓말하는 자의 수단 방법 가리지 않음의 무궁무진함을 말하는 것이다. "모순"이라 함은 진실과 진리를 최고 가치로 인정하는 마당에서나 써 먹을 수 있는 단어다. 거짓에는 전혀 그런 기준이 없다. 처음부터 언어의 유희요 농간이니까.


처음부터 성경은 자연계와 초자연계가 대립되는 만물의 대칭 원리를 밝혀 왔다. 3위1체의 법칙이다. 지금까지 이 세상 신이요 지배자(임금)는 그의 왕권을 동원하여 이 사실을 숨겨 왔던 뿐이다. 인간이 알려고 해도 차단한 것이 아니라, 아예 생각하지도 못하게 이성의 눈을 감겨 왔다는 의미이다(고후 4:4). 그런 지식의 유무와는 관계 없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동안 손쓰시지 않았다. 인생들 스스로가 찾고 구하고 두드리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여 강제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모든 사리(事理)와 이치를 밝힐 필요성이 대두되는 때이므로 이런 지식(3위1체의 원리)도 나타내어지도록 하신 것이다. 적 그리스도의 특징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하나님의 능력)을 능가하는 초능력을 과시하는 데에 있으므로(거짓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기에 그 끝을 모른다는 데에 유념할 것-살후 2:9,10), 그리고 이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속이는 데에 있으므로, 그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이러한 최신 지식(인간 생애를 주관하는 3운법칙 등)도 소요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탄이 감추어 왔던 초자연계의 실재가 이제야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자연)과학이 그 자체의 한계성으로 인해 이 실상 하나 깨치지도 못하면서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으스대어 왔으니 자조(自嘲) 섞인 한숨이 아니 나올 수가 없다.  




양산 군수 조 영규 관련 자료

http://blog.naver.com/trinia/220751164792

 





주식으로 번 돈 450억을 50년간에 걸쳐 전액 사회에 환원시키기로 작정한 졸업을 앞둔 한 대학 4년생이 있었다. 어제 조선일보(인터넷판) 첫 머리 기사로 났기에 블로그에 주소를 옮겨 소개해 두었더니 기사가 모두 삭제되어없어졌다. 주인공이 철회 삭체 요청을 한 모양인데 세상에 드러나기를 싫어하여 평소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는 바 모처럼 조선일보의 취재진이 기회를 잡았으나 아쉽게도 사라져버렸다. 우리서는 아쉬우나 주인공으로서는 당연한 조처라 하겠다. 그러나 그냥 덮어둘 수는 없어 기사를 읽은 기억을 더듬여 여기 옮겨놓으나 건성으로 읽었기 때문에 이름 석자를 알아두지 못했다. 그러나 한 손이 하는 것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 나 이 역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권유를 따라 일찍부터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았고 그동안 이에 관해 여러 방면으로 연구를 많이 해왔다고 한다. 군에 입대해서도 휴가를 나올 때는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제대할 때에는 수익이 2억 정도 되었다는 것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학생 신분으로 홍콩의 주식 관련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는 것. 어쨌든 이제는 450억의 자산가가 되었고 그리고 주식에서 손을 뗐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런 결심을 한 것이다. 자신의 노후자금, 부모님 봉양을 위하고 외국유학을 위한 것으로 일부 남겨두는 것 외에는 전액 기부라고 한다. 어릴 때에는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생하던 중 자신도 자신이려니와 양친을 제대로 봉양해드리지 못할까 싶어 더욱 고민하게 된 효자. 그래서 당시 수백만원으로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 현대판 고려장을 서슴치 않는 요즘 젊은이들 세대에 비하면 아주 신선한 쳥량제다. 


그 전에도 새상에 알려지지 않은 장학사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장학 관련만 아니라 복지 재단 등 그동안 기부해 온 금액만 해도 17~20억 정도였다는 것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 기부하는 것보다 좀더 많은 자산을 늘인 다음에 해도 늦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금부터라도 일찍 돕는 것이 더 나을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대구 태생. 어쨌든 이 정도로나마 소개하게 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런 젊은이가 많은 삶에 귀감이 될 것을 확신하여 잠시 시간을 낸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31/2016083101811.html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407047030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16/2016081600292.html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22/2016072201920.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03/2016080300228.html?related_all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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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 Chi Minh
호치민

모름지기 세계의 모든 위정자들은 호치민을 배우라. 베트남 국민은 공산주의를 따른 것이 아니라 호치민을 따랐고, 호치민은 애국, 애족, 애민을 따랐고 공산주의는 그 방편의 한 가지일 뿐이었다. 필자는 호치민이 화려한 주석궁에서 집무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스럽게 허름한 창고를 자기 사무실로 삼으면서, "모든 국민이 헐벗고 떠는데 어찌 나만 편안할 수 있느냐" 했다는 데에서 이미 그의 인물을 알아보았다. 그들이 일본, 프랑스, 미국을 꺾은 원동력은 다른 아무 것도 아니고 호치민에 대한 국민의 사랑 그리고 국민에 대한 호치민의 사랑이었다. 그래서 머리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힘이 자주 독립과 통일의 위력이 되어 준 것이다. 공산주의 독재자들은 이와는 반대로 공산주의 이념을 사리사욕의 도구로 삼은 것뿐이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통일후 많은 종교인, 지식인,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것은 물론 그의 흠결이다. 통일을 공고히 하기 위한 통치 행위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도 과오는 과오다. 공산 독재 체제에서 호치민만이 진정한 애국애족의 독보적 존재로 남아 있음은 심히 유감이다. 호치민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사리사욕을 이념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아니, 이념을 사리사욕으로 때 묻힌 독재자의 행티 일색이었다. 호치민도 그러한 일반적 대세에 밀려 판단이 흐려짐으로 인해 그런 무분별한 학살이 감행된 것으로 본다. 사리사욕 없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상이야말로 이상적이니, 본시 "공산"이라는 말은 한 몸(one body) 체제를 말하고 이는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 사리사욕을 배제한다.

원래 칼 마르크스는 성경에서 그의 공산주의 이념을 전개시켰다. 허나, 마르크스는 인간의 자율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타율에 의한 강압적 공산 사회를 꿈꾸었으니 이것이 결정적 패착이다. 성경도 인생도 모두 잘못 파악한 것이다. 그런 사회는 이 세상에서는 말 그대로 "이상"에만 그칠 뿐임을 그가 한 때 신학교에서 수박 겉 핥기로만 배운 성경에서 제대로 깨칠 리 만무하다. "마지막 아담"(성경 신약 고린도전서 15장45절)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다시 출생하고 새로 창조되지 않는 한 불가능이다. "천국"은 바로 그렇게 재출생, 신창조로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초자연계 육체가 되어 있는 이들의 이상향 구현의 세계인 것이다.



이순신 정신 선양 운동 국내외 천거 인물 (3) 

(아래 구글 블로그에서 연이어집니다)

http://trinia5.blogspot.kr/2016/0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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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pva.tistory.com/1930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2744




http://rigvedawiki.net/w/%EC%82%AC%EC%9C%A1%EC%8B%A0

https://ko.wikipedia.org/wiki/%EC%83%9D%EC%9C%A1%EC%8B%A0

생육신(生六臣)


https://ko.wikipedia.org/wiki/%EC%9B%90%EC%B2%9C%EC%84%9D

같은 원주 원씨로서, 원균은 자아중심의 표본이고 원천석과 원호(생육신 중 하나)는 그 반대이기 때문에 대비하여 올린 것(블로그 필자). 원균만이 규탄 받을 인물이 아니고 공동체 의식이 희박한 자아중심의 성향이라면 모두가 원균이기이 필자는 "나"원균이라는 말을 잘 쓴다. 마지막 아담 안에서 자기 부인이 되어 있지 않은 모든 사람은 이상 두 가지 유형 즉 '원균'형과 '원천석'형에 속한다. 이공 순신도 물론 후자에 속하니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복음(福音, 구원의 희소식)을 생전에 듣지 못한 이들은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벧전 3:19)고 한 그 경우에 해당된다고 믿는 것이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3697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93473&cid=49231&categoryId=49231




임진란 당시 양산 군수 조영규

http://yoksa.aks.ac.kr/jsp/ur/TextView.jsp?ur10no=tsu_2575&ur20no=Q_2575_1_01A&keywords=

http://sitetrans.naver.net/tune.dic?siteUrl=https%3A%2F%2Fko.m.wikipedia.org%2Fwiki%2F%25EC%25A1%25B0%25EC%2598%2581%25EA%25B7%259C_%28%25EC%25A1%25B0%25EC%2584%25A0%29

부산 동래성 북문을 통해 하나는 목숨이 아까워 도망쳐 나갔고(경상 우병사 이각) 다른 하나는 연로하신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고하고는 사지(死地)로 뛰어들어 동래부사 송상현과 합류해 전사한다(양산 군수 조영규). 인생 삶의 명암이 교차한 유적지다. 이각은 도망 가다가 붙잡혀 도망자로서 결국엔 처형되어 후세에 길이길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조영규는 청사(靑史)에 그 떴떳한 이름을 빛내게 된다. 


조영규가 승전 없는(승전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도망치던 경상우수사 원균과 대조적으로 왜선 10척을 쳐부수었다는 그의 장계는 조정을 기망한 것임이 드러났으니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적과 조우했을 때에는 아군의 피해도 분명히 있어야 하거늘 전연 언급하지 않은 것 자체가 이를 증명) 죽음뿐임을 뻔히 알면서도 필마단기로 (이미 부하 기백명은 1차 입성 때 성내에 남겨졌고 노모님께 하직 인사를 고하고자 해서 일단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2차 입성에서는 혼자였다) 북문으로 치달으며 이미 성을 포위하고 있는 왜병들을 노호 질타하면서 성문 앞 가까이 이르자 왜병들도 감복하여 순순히 길을 열어주었다고 전해진다. 



(네이버 블로그 그림은 <전용뷰어 보기>를 통해서 보면 보다 선명해짐)




효(孝)는 공동체 의식의 기본 소양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19/2016071903584.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01/2016070101562.html#news_comment_id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30/2016063001810.html

 


http://news.joins.com/article/19988955


















주변의 이런 인물들 아시는 대로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