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보다 '전파'에 치중한다는 것은, 소위 식자들만의 전유물이 됨을 막자는 것이니 세상에는 지식과 지혜가 없는 자가 있는 자보다 절대 다수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복음(福音) 즉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달함에는 없는 자, 약한 자, 천대 받는 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보다 크다는 사실을 성경이 강조하고 있음에랴(고전 1:26). 이유는 그런 환경에 있는 이들이 세상에 배 부른 자들보다 오는 세상에 대한 열망의 강도가 비교적 높기 때문이다. 고로 이렇게 세상의 대다수가 되어 있고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버림 받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지식"보다 "전파"에 역점을 두는 것이다. 한국인들만 철저히 "복음화"하기 위해 한 우물을 파도 일은 절반이나 진척되는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회가 닿는 대로 간단하게나마 영어로 전달할 기회를 만들어 나갈 계획으로 있으나 그것은 그 다음 순서이다.
§ 아담 이래 수천년 전통적 인식일 뿐 아니라 인류의 양식(良識)이기도 한 것에 반하여 소돔 고모라처럼 국지적인 것도 아닌데 오늘날처럼 개화되었다고 믿는 지구촌 시대에 동성 성행위를 그것도 소위 지도 국가로 자처하고 있다는 더군다나 기독교 문화권이라고 자타 인정해 온 구미 제국에서 합법화하는 것을 보아도 인류는 진화해 가는 것이 아니라 퇴화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미개하다고 여기는 타 문화권에서 이를 독자적으로 법제화하지 않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으로 치닫고 있으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 자연계에만 집착해 온 고정 관념을 모조리 타파할 때다. 자연과학의 진수처럼 여겨 왔던 진화론도, 수천년 관록의 불교 교리도 그렇다. 자연계의 천년도 초자연계로 치면 하루 정도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다. 위의 둘이 그런 지금까지의 미망(迷罔)의 대표적인 것이기에 거론하게 된다. 사탄이 인류를 퇴화시키면 퇴화된다고 할 정도로 꼼짝 못하게 손 안에 움켜쥐고 좌지우지하고 있으므로 그러하다. 영생하기로 창조되어 있다가 느닷없이 죽은 자로 전락해 있는 인간이니 이것만 해도 퇴화이지 아니라면 무엇인가. 진리라도 이 세상 지배자 사탄이 거짓이라고 하면 거짓으로, 거짓을 진리라고 하면 진리라고 온 세상이 지금까지 믿고 따라 온 인류사가 아니던가.
§ 이제는 교회 설교 방식도 강단에서의 일방적인 주입식이 아니라, 설교자도 편안히 앉아 대화식으로 주고 받는, 아니면 여럿이 주고 받는 것을 사회하는 진행자로서의 역할이 바람직하다. 성경 지식이 전무한 일반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경우야 의당히 주입식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듣는 내용이니까 그 수용 여부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구원의 기본 지식으로 토대가 쌓여진 다음에는 직접 성경을 파고 드는 것이 마땅하므로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으면 그 은사를 따라 오히려 설교자를 가르치는 경우도 당연히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에게든 일방적으로 몰아서 어떤 은사를 주시는 것이 뜻이 아니다. 바울 사도 같은 경우는 초대 교회의 초창기이므로 혹 그런 수가 있다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모든 지체가 함께 교회에 덕을 세워 나가는 일에 참여하는 것인즉, 오직 머리는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신 까닭이다.고로 "너희 각자는 '스승'이라, '아비'라, '지도자'라 일컬음 받지 말라" 하신 대로 진작부터 교회는 평준화, 민주화로 방향을 잡아간 것이라 할까. 초대교회는 사도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달되었고 그리고 이 사도에게서 배운 이들이 사도들이 떠난 후에도 그 소임을 맡고 있었다는 것이야 마땅하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를 우리는 말하는 것이다. 개혁이 필요하면 언제든 단행할 수 있는 그런 유동성, 가변성이 적극 권장될 때다. 이것은 진화 개념이 아니라 환경 적응이다. 변천해 가는 시대상을 따라 유효적절하게 자신의 자질을 확대해가는 대응력이다.
80세가 되어도 어린 아이에게서 배운다는 말도 있듯이 어린 아이가 무슨 전문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착안점, 시각, 사고 방식 등을 어른이 얼마든지 새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 간에는 일방적인 주입식이 아니라 일문일답 식으로 나가는 것이 학습 효과에서는 최상이니, 잊어버리지도 않거니와 핵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다 용이할 수도 있고 사제간이라도 위와 같은 이유로 피차간에 배울 수가 있기에 그러하다. 예수님도 일방적으로 "전달하라"고만 말씀하시지 않고 "각 족속의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으라" 하셨던 것. 공자나 소크라테스는 항상 이런 대화 방식을 취했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야 진리이고 모든 지혜의 총합이므로 물론 일방적이지 토론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서의 다원적인 교류, 대화는 필수이다.
§ 어떤 이론이나 학설이 나오면 그 진리로서의 절대성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여러가지 실험과 검증이 필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므로 3위1체의 법칙, 3운법칙은 상호 검증하는 것으로써 충분하다. 보어의 상보성 원리를 새삼스럽께 꺼내는 것은, 그런 자연과학 분야에서의 권위에다 지금까지의 일방적 한계(자연계밖에 모르고 그것이 전부인 양 착각해 온)의 습성을 따라 아직도 무게를 두는 사람들을 위한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