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사를 가름하는 양단간의 결정
왜냐면 아무도 범접 못할 초능력으로
악마가 위장하여 등장하는 마지막 때이므로
혹자는 말할 것이다.
나의 행함 여부와는 일절 관계 없이
오직 나를 그 죽으심으로써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영원 불변의 구원이 보장된다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이 되었었다고.
그래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부인하리라" 하시니
불안하다는 것인가ㅡ한 마디로, 그것은 잘못 배운 것.
아담을 자연계 존재, 에덴을 자연계 동산으로 착각하던
이들이 메시야의 죽으심도 "대신 죽으심"으로 착각
자기도 잘못 알고 남들도 잘못 가르친 것이다.
사랑 없음을 스스로 한탄하라, 다른 이유 없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롬 13:8)고 한
바로 그대로다ㅡ사랑은 그 상대의 뜻을 내 뜻처럼 여겨
행하는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 위해 자기의 모든 것 바쳐 그 모진 고통 다 당하신
분을 사랑하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인가.
그것도 자기 자신을 위해 내게 요구하심이 아니라
결과론적으로 바로 나 자신을 위해 내리시는 분부시다.
머리와 몸 관계로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
그리도 힘들고 불안스러운가ㅡ믿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갈 5:6)
사랑 없으면 믿음도 당연히 없다.
사랑 유무로써 자기 믿음 유무를 진단할 수 있다.
믿음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했다(고후 13:5).
스스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시험, 확증하라 한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 바로 고후 5:15과 롬 14:7-9이다.
아무도 "우리 중에 없다"는 단정은 누구나 알 수 있다는 뜻.
하나님의 명령대로 회개(행 17:30) 않으면 믿음도 불가능.
무엇을 회개(행 2:38)하느냐, 머리되신 하나님 뜻을
몰라뵙고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으니 회개다.
몸은 머리 위하고 머리는 몸 위하는 '위함'이 사랑이다.
몸의 구조상 서로가 서로를 위하지 자기 위함이 없다.
이것이 생명의 법칙이다. 이 법을 어기미 죄다(요일 3:4).
이런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자신이 없어 하면
차라리 삶 자체를 포기한다고 말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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