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교회"란 말은 어폐가 있다. 초대교회 형태를 벗어나, 이 세상이 마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 것처럼 교회당 건물을 보란 듯이 크게 짓고 하나님의 교회랍시고 위세를 과시하던 지금까지의 무지한 교회 운영을 기준하여 하는 말이기에 그렇다. 마지막 아담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핍박 받는 것으로 시종일관하게 되어 있는 교회의 본래의 사명을 망각한 세속적 표현이므로, 우리는 마땅히 "초대 교회 형태"라고 고쳐 불러야 마땅하다. 아니라면 "세포(cell) 교회"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세포"라는 의미는 핵 분열하듯이 12명을 적정 단위로 하고 그 이상으로 불어나면 반으로 다시 쪼개어 6명 선에서 출발, 계속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불려 나가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매일 모이고(매일 모이는 것으로 원칙으로 삼고 적절하게 신축성 있게 운영하면 될 것이니 개인 사정을 따라 불가피하게 빠지는 날이 있을 것이므로) 일주 한번은 기백명이든 천명이든 전체가 한 번에 모여(건물이 없을 때는 하루쯤 임차해도 무방할 터) 대집회를 여는 구상도 좋은 것이다. 어쨌든 틀에 박힌 것에 집착하여 화석화(化石化)하는 것을 막도록 힘쓸 일이다. 생명체는 환경에 순응하여 적절히 변화하는 것이 특색이다. 그런 변화가 없으면 목석과 비교해 나을 것이 무엇이랴.
앞 글에서 악령들이 속일 때 "기독교는 지금까지 인류 생활을 향상시키지 못했다. 현재에도 평화와 안녕의 질서를 지키지 못했으니 어찌 미래의 영생의 약속인들 제대로 지킬 것이냐" 식으로 무지한 인생들에게 접근한다 했거니와, 실상 이런 점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이들이 많은데, 인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 악령들이 이런 식으로 성경을 오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러, "내가 바로 구원자다" 하고 나설 준비로써 그런 생각을 광범위하게 인생들의 뇌리 속에 미리 각인시켜 놓았다 함이 옳은 분석일 것이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의 안녕과 복락을 약속한 일이 없다. 이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니, "악인에게 평안이 없다"고 성경이 처음부터 선언한 것처럼, 악인 즉 자아중심으로 나가는 인간이든 영물이든 단 하나라도 있을 때 그 사회는 안녕과 질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 하나가 들어 얼마든지 전체 사회를 온통 흐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탄 하나가 들어 전체 인간을 죽음에 몰아넣을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고통 속에(한 몸으로서의 체제이므로) 빠뜨린(롬 8:22) 현재의 예를 들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상태에서의 안녕과 평안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강제와 간섭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악인 혹은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때요 그런 장소(무대)로서의 세상인 것이다. 생명의 핵심이 사랑이 되어 있는 속성상 절대로 강제적 수단으로 평안과 안녕을 보장할 수 없는 일이다. 자진 자발적인 자유인으로서의 선택에 의해 그래서 의와 선(그 총합이 바로 한 몸 체제에서의 삶)을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수하는 이들로써 구성된 사회라야 자유, 평등, 박애의 이상이 구현되는 것.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이 세상에서는 악인이 승승장구하고 득세할 수밖에 구조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의인(선인)은 밀리고 부대끼고 박대를 당하는 것이 필연으로 되어 있다. 성경은 이를 다시 필수적인 것으로 가르친다. 이유는 생명 가운데 있는 의인이 구원의 대상자의 죽음에 동참하여 하나가 되어야만 그의 죽음이 의인의 생명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항구불변의 삶의 법칙(이는 또한 구원의 법칙이니 곧 머리와 몸으로서의 한 몸됨의 이치)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친히 본을 보여주신 바다.
적 그리스도의 거짓된 속임수의 수작은 그런 소위 "외계인"의 메시지 전달에 의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과 같이 강제력에 의한 통일, 통할이다. 그런 강제적인 것은 위의 설명처럼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고로 이 영원한 삶의 법칙을 애호하여 준수하는 하나님의 의인들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건져내는 갸륵하고 숭고한 작업에서 모든 고난과 죽음을 각오하고 있기에 악령들이나 악인들의 위협이나 회유가 먹혀 들 수가 없다.
성경 내용의 합리성은 가장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이 총동원되어 있는 것임을 항상 명심할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시니까 그런 것이다. 모든 법칙의 창조자이시니까 그런 것이다. 법칙에 모순이나 자가당착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법칙일 수 없다. 이런 사실은 외면한 채 그리고 알려고도 않은 채 "무조건 믿는 것이 대수다' 하고 무식하게 가르쳐 온 것이 오늘날까지의 서글픈 실상이었다. 여기서 한시 바삐 탈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