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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았다면서도 그리스도의 증인될 만한 용기 없는 자는 믿지 않는 자로 분류된다(계 21:8)
똑같은 자아중심이기 때문이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마 25:30). 이 무익한 종도 종임에는 틀림없었다. 일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대로 않는 종이 무슨 종이겠는가. 결국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바깥 어두운 데가 그 종착지이니 이는 멸망 당하는 이들을 가리켜 말씀하실 때 쓰시는 표현이다.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에 인생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믿지 않는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우신 것을 보라. 그보다 더 불쌍히 여기실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도 속수무책이시기 때문에 우신 것이다. 자아중심을 깨끗이 버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십자가 그 모진 고통의 죽음을 당하신 것이다. 왜 자아중심이 그토록 경계의 대상이 되느냐, 사탄이 아담 부부를 죽인 데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데에서 이미 증명된 바다. 자기도 망하게 하고 이웃도 함께 망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고로 이 자아중심을 버리지 않는(못버리는 것이 아니라 버리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자로서 천국에 들어갈 자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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