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에 그토록 초능력의 기적을 보이셨으나 그 때 잠시뿐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기는 마찬가지였으므로
적그리스도가 초능력을 나타내는 21세기에는
오직 성경 말씀의 합리성/진실성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가 전파되게 하셨으니
짝의 법칙, 3운법칙 등으로 필요한 증거는 다 나타내신 것.
지금은 구원받은 사람마다 반드시 말씀의 나팔수/手가 되어야 하는 때.
현재의 죽음을 비롯한 모든 인간고/人間苦가 아담의 범죄 때문에 왔으므로
자아중심, 자기 본위, 자기 위주의 모든 욕심을 회개하고
상대방 중심의 사랑과 생명의 법칙을 알려주어
이 법칙 따라 살기로 결단하여 회개함이 하나님 뜻을 전달해 주어야.
아담의 범죄로 마귀가 이 세상 신이요 왕으로서 지배하고 있음을 알려야
마귀의 세상이므로 마귀 아래에서 살려면 죄 짓고 결국 멸망임을 알려야.
에덴동산이 초자연계였고 아담이 초자연계 몸으로 살았음을 알려야.
이 사실을 이 세상 신이요 지배자인 악령이 지금껏 감추고 거짓말로 속였음을 알려야.
그러므로 성경과는 상치되는 일체의 것이 이 악마의 속임수임을 알려야.
무신론을 위시해서 소위 "기독교(천주교도 기독교로 행세)" 교리에 이르기까지ㅡ.
초능력을 아무리 행해도
병 고치고 죽은 자까지 살려낸다 해도
소위 "방언" 기도를 300분 이상을 해도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안다"는 것이 주님의 경고시다.
"좋은 열매"이면 성령으로 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전 4:20)는 것은
새 창조의 변화된 삶 즉 자아중심을 버린 자기 부인에 있다는 뜻.
초능력(기적)을 말함이 아니니 성령으로 난 것이라 해도
불법을 행하면 멸망하는데(마 7:22,23) 하물며 오늘날이랴.
지금은 적그리스도의 때로서 무제한의 악령의 초능력 발호다.
그런 악한 열매의 두드러진 사례 중 하나는 "돈"이다.
"돈 사랑이 일만악의 뿌리"이듯이 돈에 쌓여 있으면 가라지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돈에 초연한 것이 그 특징 중 하나다.
가난한 현세상의 실정에서 가난한 자로 처신해야 안전판이다.
도둑질 그만 두고 선한 직업 가져도 목표가 "구제"다(엡 4:28).
가난한 자들과 나누는 판인데 나 홀로 부유해질 수가 없다.
좋은 환경에서의 호의호식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좌우지간 우선 이 하나만으로도 저울질해도 대과 없다.
성령의 역사/役事 진위 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
오늘날 "초능력 행한다"는 자치고 돈에 초월한 자를 구경 못한다.
"하나님 축복"이라며 다 호화판으로 살고 있음이 그 정체다.
"오늘날" 관련해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인위적인지 자연적인지
좌우간 온 세상을 휩쓰는 역병으로 인해 대소간 집회가 중단됐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정의가 새로 정립되고 있다.
종전 방식대로가 하나님 정하신 예배라면 죽을 각오로 지속시켜야.
그렇지 않다면 "두세 사람"(마 18:20)의 점 조직 예배를 활성화시켜야.
강경책보다 유화책이 교회 파괴에 더 효율적이라 손을 안대서 그렇지
이 세상 신 사탄이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대형 교회당을 압수,
산산조각이 나도록 철퇴를 가할 수 있는 실정을 모르면 바보다.
현재의 북한처럼 할 수 있어도 못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 실상과 대비시켜 마치 이 세상이 사탄의 세상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자유로이 예배할 수 있는" 자유를 하나님이 주신 것처럼
감쪽같이 속이기에 안성맞춤이라 사탄은 느긋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교회"는 푹푹 썩어들어가 생명수는 거의 구경도 못한다.
이제 "마지막 때"에 이르러 "하나님 예배" 개념부터 바로잡으신다.
소위 "온라인 예배"는 기존의 "배도"(살후 2:3)의 또다른 양상일 뿐.
성경대로 두셋씩, 서너, 너댓씩 모이면 되는데 무슨 뚱딴지 소리인가.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교회는 북한처럼 항상 핍박을 각오함이 기본.
세상에는 약함으로 인식되나 실은 "약함이 곧 강함"(고후 12:10).
사탄은 우리를 압제하여 믿음을 버리게 함이 목적이나
우리는 주님처럼 약함으로써(13:4) 사람 살림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고로 사탄은 강함으로 이긴다면 우리는 반대로 약함으로써 이긴다.
비록 사도들의 가르침이 최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던 초대교회
그런 사도시대에서도 사도들의 가르침(설교)이 위주가 아니었다.
그들이 어떻게 집회를 진행했는지는 고전 14:31 전후에도 나와 있다.
여기에도 보니 시의적절하게도 "방언" 언급이 나와 있다.
사도시대 교회의 표준대로 하면 오늘날은 "방언"의 ABC도 모른다.
즉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방언하는 자는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그렇지 않으면 "미치광이"(:23)라는 소리밖에 못들으니
절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거늘 당시 교회가 그러했을진대
오늘날에 와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건만 이 경고를 외면한다.
심지어 무슨 영력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럽게 여기니 마신(魔神)이다.
실상 오늘날은 "사도"의 "은사"가 불필요한 것처럼(고전 12:28)
"방언", "통역" 등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것인데도
이 "마지막 때" 마귀는 새삼스럽게 꺼내어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적그리스도 시대의 초입에 들어선 오늘날 마귀가 왜 이런
가짜 "성령의 은사"로 흉내 내는지, 이런 무리들이 나중에
적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 미혹의 선두에 서는 효과를 노림인지
알 수는 없되 이같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너무 엉성한 짓거리다.
성경을 조금이라도 부지런히 유의해 읽는다면 능히 간파 가능하다.
오늘날 성령으로 난 "음성"이라면 성경 관련 사탄의 모든 거짓말,
그 모든 속임수부터 벗기는 것을 일차 과업으로 정할 일이다.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고 한 거짓말, 에덴을 자연계 동산쯤으로
믿게 만든 속임수, 십자가 짐과 자기 부인을 말하지 않는 탐욕의 죄,
자기 재물을 조금도 제 것이라 여기는 자가 없었던 초대교회 전통을
무단으로 쓰레기 취급한 죄를 통박하여, "회개"를 외쳐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일치하게 일언반구도 없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겉모양만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지 속 내용인즉 아무것도 없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주동인물이 가난한가 부유한가
그것만 우선 살펴도 그 정체가 단번에 드러나는 것이다.
자연계 육체로 전락한 가난한 인생들을 대표하신 주님께서
가난한 자로 세상에 오심은 너무나 당연하고 그 몸된 교회 역시
그 닮은꼴이라 제자들이 스승보다 더 나은 모습일 수 없다(눅 6:40).
선생은 맨발인데 제자는 비까번쩍 구두라면 제자가 아니란 증거다.
사형수로서의 십자가 형구(刑具)를 메고 가는 매일의 형국인데
어찌 "잘 믿어 축복 받아" 잘 산다는 소리가 나오더냐.
그러면 죄인도 이 세상에서 잘 사는데 경쟁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갑부 자리를 성령 충만한 자들이 독식해야지.
하나님 축복이, 사탄이 자기 패거리에게 내리는 "포상"보다 못하냐?
이와 같이 사탄은 암암리에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데, 여기 놀아난다.
본디로 돌아가, 주님의 이름으로 두셋이라도 모일 때에는
주님 친히 목자이시고 그 성령으로 모인 자들에게 유익함을 주시니
각자가 모신 성령의 은사와 지도하심을 따라 발언할 수 있는 것이지,
설교자 한 사람만이 기계적으로 매양 틀어놓는 녹음기인 양
재탕, 삼탕 말하는 것이 아니니 머리되신 주님 친히 모인 각자를 통해
훈육하시고 책망하시고 위로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질서 차원에서 여자는 발언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을 뿐이다.
여자가 영력이나 지력이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에서 통용되는 것은 인간의 말이 아닌 성령의 행하심이라
<대표적으로> 남자들을 통해 말씀하심으로써만 충분하지
인간의 실력 자랑이라고 해서 여자까지 끼어 경쟁하듯 할 것인가.
남녀가 한 몸되어 하나일진대 짝의 법칙에서 둘은 주종관계요
선후관계라 바로 그런 첫 사람 아담 중심의 질서를 말함뿐이다.
사도들의 초대교회에서처럼 합심 기도가 첫째이다(행 2:42).
그리고 대면함으로써 피차간의 영적 상태를 알아보며 교제하니
성령께서는 각자를 지체 삼아 한 몸의 머리로서의 목자 역할이시다.
고로 각자 자기가 받은 은혜, 은사(선물) 따라 목자이신 주님 인도로
얼마든지 교회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반드시 남자가 끼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형편 따라 여자들만이 모일 수도 있고 그 때는 발언 제약이 없다.
남자 꼬마가 끼어 있다고 그 때는 일절 발언 못하는 것도 아니다.
상식대로 하는 것이지 큰 줄거리가 그렇다는 것뿐이다.
우리의 직접 머리로서의 주님이시고 주님의 머리께서는 아버지시다.
성부와 성자께서 둘이 하나되어 계시기 때문에 성령이신 것이다.
궁궐이나 초막이나 들판이나 그 어디나 내 하나님 계신 곳이 성전이다.
건물이 하나님 성전이고 이를 신성시해야 한다는 발상은 세상 종교다.
마귀가 이 세상 권력가라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데 그렇다면
공산당이 교회당을 파괴했다면 감히 하나님 성전을 손댔단 말인가.
이제는 어린 아이 적 일을 버리고 당당한 성인으로서 우뚝 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