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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과 "한 몸"ㅡ똑같은 "둘이 하나됨"ㅡ그러나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한 영"됨이 비교가 안되리만큼 훨씬 우세

Tayseek Kwon 2020. 1. 19. 04:30


남녀 사랑 주제 가사를 만든 이유는

절대로 결혼 예찬의 뜻이 아니니 오해 마시기를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지금이 어느 때라고 감히...

언제 어디서나 젊은이들을 상대해서는

"천국을 위해 고자되는 것"(마 19:12), "혼자 지내는 것"(고전 7:26)

"더 복이 있음"(:40)을 변함 없이, 아니 주님 오심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더 강조하는 바이다


여기서 남녀 사랑의 "한 몸"됨을 주제로 다룬 것은

우리 주님과의 각자의 "한 영"됨을 보다 실감 있게 다루기 위함이다

그래서 남녀 사랑을 연상하면서 

주님과의 하나됨을 음미, 감상, 돈독히 하자는 것

고로 두 가사, "내 마음 그윽한데서"와 "이 마음 그윽한 데서"를

함께 음미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

가사를 분류할 때 전자는 "생명수 강물의 노래"(계 22:1/요 7:38)

후자를 "둥지의 노래"라 해도 무방하겠다


굳이 비교하자면 남녀 사랑은 가냘픈 새들의 둥지

자연계 육체의 구차한 둥지에 비하면

하나님 사랑, 초자연계 육체로서의 삶은 큰 강물과 같은

유유하고 도도함이 충분히 부각되는 것이다

좋은 대조가 된다


성경에 남녀 사랑을 그린 아가서가 끼어 있다는 것이 바로 이 뜻이다.

하나님 사랑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아 8:6)

"남자의 몸은 여자의 것이 되고 여자의 것은 남자의 것이 됨"(고전 7:4)

주님과 나는 삶 그 자체가 그렇게 된다 


이 가사에서, 아무리 이상적인 남녀 사랑이라 해도

"그 삶을 내가 살아주고 내 삶을 그가 살아준다"는 것은

한낱 이상론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사랑과 생명의 법칙 차원에서 본다면 영원불변의 진리 

그러나 주님은 문자 그대로 그러하시고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한다>는 것으로써 양자 사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 웅큼 쥔다는 점에서는 아기나 부모(어른)나 같지만

그 움켜쥔 양으로 따질 때는 결코 같을 수가 없다는 그 뜻이다 


곡조는 그대로 하면 되는 이안삼의 곡

이 남녀 사랑의 노래 가사는 이상과 같은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저작권을 가지며 뜻이 있는 작곡가가 작곡하는 것은 환영한다

"내 마음 그윽한 데서"의 가사는 저작권을 행사할 필요가 없다